교육부·거점국립대 9곳 논의 착수, 5극3특 초광역 전략과 연계한 지방대 개편 시동
2025년 9월 30일, 서울 포시즌스 호텔. 교육부는 전국 9개 거점국립대 총장들을 한자리에 불러 ‘국가균형성장을 위한 지방대학 육성방향(안)’을 공식 논의했다. 이날 간담회는 이재명 정부가 확정한 국정과제 가운데 ‘모두가 잘 사는 균형성장’ 목표 아래, 지역교육 혁신을 통한 인재양성을 핵심 축으로 두고 추진하는 첫 정책 협의 자리였다.
교육부는 이번 회의를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상징적 표현으로 요약했다. 수도권 일극 체제를 완화하고, 지방대학이 각 권역의 성장 거점으로 재편되는 구조를 예고한 것이다. 현재 수도권 대학과 지방 거점국립대 간 교육격차는 수치로도 분명하다. 2024년 기준 지방 거점국립대의 학생 1인당 교육비는 평균 2,520만 원으로 서울대(6,300만 원)의 40% 수준에 머문다. 교육부는 이 격차가 지역 청년의 수도권 유출과 지방소멸을 가속화한다고 보고, 국가 차원의 균형성장 전략과 연계한 고등교육 재편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구상 – 거점국립대를 국가인재양성의 거점으로
교육부가 제시한 기본 구상은 명확하다. 거점국립대 9곳(강원대, 경상국립대, 경북대, 부산대, 전남대, 전북대, 제주대, 충남대, 충북대)을 중심으로 지방대학 전체 생태계를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핵심은 각 거점국립대를 ‘특성화 연구대학’으로 전환해, 권역별 산업 전략과 연계된 연구·교육 거점으로 만드는 데 있다. ‘5극 3특 초광역권 성장 전략’은 수도권, 동남권, 대경권, 중부권, 호남권의 다섯 권역과 제주·전북·강원 세 특별자치도를 중심으로 한다.
각 권역별 거점대학은 지역 전략산업(예컨대 동남권은 미래모빌리티, 호남권은 그린에너지, 강원은 바이오·관광 등)에 맞춰 학부–대학원–연구소를 하나로 묶는 패키지형 구조를 갖게 된다. 이를 통해 기업·출연연·과학기술원·지역대학과의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산업 문제 해결형 연구 및 융합 기술 개발에 집중한다.
교육부는 이 모델을 통해 2030년까지 각 권역에 최소 1개 이상, 사실상 ‘서울대급’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대학을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다만 ‘서울대 10개’라는 표현은 실질적 복제보다는 기능적 분산을 의미한다. 서울대처럼 고급 연구·산학협력·우수 교원 시스템을 지방으로 확산하는 것이 핵심이다.
교원·재정·제도 개혁 – 규제특례와 4조 원 증액 계획
교육부는 지방대학 혁신의 최대 걸림돌로 “재정 격차와 인사 규제”를 지목했다. 이에 따라 2026년부터 2030년까지 5년간, 최소 4조 원 이상의 추가 재정 지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현재 서울대의 40% 수준인 거점국립대 학생 1인당 교육비를 5년 안에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한다는 구상이다. 재원은 2025년 종료 예정이던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고특)」를 5년 연장하고, 교육세 개편을 병행해 마련한다. 고특 예산은 2023년 9.7조 원에서 2026년 정부 예산안 기준 17.1조 원으로 증액될 전망이다. 또한 교원 인건비 상한 확대, 겸직·겸임 교원제 활성화, 정년 연장 등 인사제도 특례가 추진된다. 산업계 전문가를 교수로 겸직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개선안도 포함됐다. 실제 사례로 서울대-구글 겸직교수 모델을 예시하며, 지역대학에서도 유사한 형태의 ‘산업연계 교수제’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이다.
학부교육 혁신 – AI·글로벌 역량·현장 연계 중심 재편
교육부는 거점국립대의 학부 교육을 “학생 성장을 중심으로 한 AI·글로벌 기반 구조”로 재편하겠다고 밝혔다. 모든 학생이 인공지능(AI) 기초 교육과 전공 기초 교과를 이수하고, 해외 대학 학점 교류·복수학위제·글로벌 인턴십을 경험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또한 대기업 및 지역 앵커기업과 연계된 계약학과를 확대해 ‘입학 시 취업이 보장되는 구조’를 정착시킬 예정이다. 기업 현장 프로젝트, 창업학기제, 딥테크 기반 창업교육 등 현장형 교과를 모든 전공에 의무화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교육부는 “지방에 있어도 가고 싶은 대학”의 조건은 결국 안정적 진로와 취업이라며, ‘AI·글로벌·고용’ 세 축을 중심으로 학부 혁신을 설계하고 있다.
이번 구상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RISE(Regional Innovation System & Education)’ 체계의 활용이다. 거점국립대가 교육과정·교원·연구장비·인프라를 지역 대학과 공유해 지역 전체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구조다. RISE는 이미 일부 지역에서 시범 운영 중인 제도로, 지방자치단체가 대학과 함께 지역 현안을 자율적으로 해결하도록 지원하는 재정 시스템이다. 2025년 약 2조 원이 투입되는 RISE 사업은, 거점국립대를 중심으로 중소규모 대학이 산업 수요 맞춤형 학과 개편과 특성화 전략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교육부는 거점대학을 ‘공유대학 허브’로 설정해 기초교양과목 공동 운영, 산학연 인프라 공동활용, 지역 연구장비 공유 등을 제도화할 계획이다. 이는 단순 지원이 아닌 ‘동반성장 생태계’ 구축으로 요약된다.
균형성장의 관점에서 본 고등교육 재편의 의미
교육부의 이번 지방대 육성정책은 단순한 대학 지원을 넘어, 국가균형발전 전략과 구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5극 3특’은 산업과 교육을 통합적으로 배치하려는 구상으로, 지방대학이 단순 교육기관을 넘어 지역 산업의 ‘핵심 엔진’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과거의 ‘지방대학 지원사업’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전 사업들이 주로 재정 투입 중심이었다면, 이번은 권역별 산업과 연구 기능을 연계한 체계적 구조 개편이다. 결국 “교육이 산업을 견인하고, 산업이 대학을 유지하는” 순환구조를 설계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현장의 평가는 엇갈린다. 교육비 격차 해소와 교원 특례만으로는 수도권 선호 현상을 뒤집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또한 ‘서울대 10개’라는 상징적 구호가 실제 지방대 구조 혁신으로 이어지려면, 산업계·지자체·기업의 참여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지역대학 관계자들은 “지방 거점대학이 권역별 중심이 되는 건 환영할 일”이라면서도, “RISE나 연구대학 모델이 지역 사립대와의 격차를 더 벌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교육부가 제시한 ‘공유대학 생태계’가 실제 작동하기 위해선, 거점대-중소대 간 명확한 역할 조정과 협력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교육부는 12월까지 현장 의견 수렴과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최종 ‘국가균형성장을 위한 지방대학 육성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부내 특별 TF를 구성해 거점국립대와 상시 협력체계를 가동하고, 지방시대위원회 및 국가교육위원회와 정책을 정교화할 예정이다. 2026년부터는 시범대학을 지정해 단계적 사업 추진에 들어간다. 교육부는 향후 평가 체계를 마련해 거점국립대의 연구성과, 지역산업 연계도, 재정 효율성 등을 기반으로 지원 규모를 차등화할 방침이다.
이번 정책은 단기 성과보다 중장기 구조 재편을 겨냥한 고등교육 전략 전환으로 볼 수 있다. ‘서울대 10개’라는 표현은 자극적이지만, 실제 내용은 ‘국가 단위의 기능적 분권’이다. 즉, 지방대학이 지역산업 성장의 실질적 축으로 작동하는 체계를 설계하려는 시도다. 관건은 실행이다. 재정·교원·산학협력·지자체 간 조정이 하나라도 지연되면, 정책은 선언에 그칠 수 있다. 특히 4조 원 규모의 추가 예산이 국회 심의를 통과할 수 있을지, 고특 회계 연장이 실제로 이뤄질지가 최대 변수다. 결국 지방대 혁신의 핵심은 대학 자체의 변화뿐 아니라, 산업과 정부의 구조적 협력이 동시에 작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교육정책의 수사이자, 균형발전의 실험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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