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캐나다 더럼칼리지의 전략전문가 더그 하트(Doug Hart)가 발표한 보고서를 읽었다. 제목은 좀 길다. ‘Academic Agility: The Answer to Global Complexity’s Impact on Educational Systems’, 직역하면 ‘글로벌 복잡성 시대에 대응하는 교육의 민첩성’쯤 된다. 처음엔 “이런 이야기 또 하나 보다” 싶었는데, 이상하게 자꾸 마음이 갔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대학의 땅이 얼마나 낡았는지를 아주 솔직하게 짚어낸 글이었기 때문이다.
30년 전보다 30배 더 복잡해진 세상
하트는 말한다. 지금 우리는 30년 전보다 30배 더 복잡한 세상에 살고 있다고. 수치가 좀 과장된 거 같지만, 고개가 끄덕여졌다. 예전에는 교과서를 만들면 5년, 10년은 쓸 수 있었다. 지금은 기술이 바뀌고, 산업이 바뀌고, 세상의 요구가 바뀌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오늘 설계한 커리큘럼이, 졸업할 땐 이미 구식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대학은 여전히 1970년대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략 시스템은 낡았고, 기술만 여기저기 ‘덧댄’ 상태다. 속도는 안 맞고, 방향은 뿌옇다. 요즘 대학이 ‘관리’는 철저한데, ‘리더십’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하트는 이런 상황에서 대학이 바꿔야 할 몇 가지를 제안한다. 그중 하나가 ‘목표관리(MBO)’ 방식에서 벗어나 ‘호신계획(Hoshin Planning)’이라는 전략 방법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입학생 수를 5% 늘리자”는 목표는 우리가 익숙한 MBO 방식이다. 하지만 하트는 이런 식으론 변화에 대응 못 한다고 말한다. 그 대신 “새로운 과정을 개설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3년에서 1년으로 줄이자”는 목표를 제시한다. 처음엔 말도 안 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 “불가능해 보여서 더 시도할 가치가 있는” 목표가 오늘날 필요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같이 가야 멀리 간다
또 하나 인상 깊은 제안은 ‘같이 하자’는 것이다. 열 개 대학이 따로따로 고민하는 대신, 전략팀을 꾸려 공동으로 문제를 풀자는 제안이다. 기업처럼 ‘스컹크웍스(skunkworks)’ 조직을 만들어 민첩하게 실험하고, 빠르게 조정하자는 이야기다. 실제로 복잡한 문제는 한 기관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특히 교육처럼 느리게 움직이는 조직이라면, 협업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다. 교육과정을 만드는 주기가 평균 3년. 요즘 같은 세상에 3년은 너무 길다. 하트는 교육 설계도 ‘애자일(agile)’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한 번에 완벽하게 만들기보다, 작게 시작하고, 반복하며, 실시간 피드백을 받는 방식이다.
물론 불안정할 수 있다.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그는 단호히 말한다. “혼란 속에서 나오는 긴장감이 혁신의 씨앗”이라고.
전략이 바뀌고, 방식이 달라져도 결국 중요한 건 사람이다. 특히 ‘변화의 리더’라고 불리는 존재들. 이들은 일반적인 관리자와는 다르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방향을 잡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다.
하트는 이들을 조기에 발굴하고, 교육하고, 조직의 중심에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이 많은 리더의 중요성도 놓치지 않는다. 60대 이상 리더가 더 뛰어난 전략적 사고와 영감을 보여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빠른 속도와 젊은 에너지만으로는 세상의 복잡성을 다룰 수 없다는 말이다.
지금 우리가 가르치고 있는 것은, 정말 학생과 사회가 원하는 것인가? 하트는 이 질문을 마지막에 던진다. 복잡한 세상에서 대학이 해야 할 일은 효율적으로 낡은 걸 반복하는 게 아니라, 불확실함 속에서도 방향을 감지하고, 리더십으로 앞서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건 더 뛰어난 전략이 아니라, 더 열린 시선과 용기 있는 리더들이다. 지금은 모든 것이 빨라졌다. 그래서 대학은 더 빨라져야 한다. 하지만 그 속도가 학생과 사회를 향하고 있지 않다면, 아무리 빨라도 소용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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