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노동시장을 잇는 대학의 새 책무 : 학위에서 현장과 평생학습으로

미국 인재경제의 단절이 드러낸 대학의 새로운 책무

불안한 미래, 침묵의 대치 속에서

2025년 미국 노동시장의 표면은 안정적으로 보인다. 대규모 실업이나 급격한 붕괴는 발생하지 않았고, 다수의 근로자들은 당장의 일자리에 큰 위협이 없다고 느낀다. 그러나 이 평온 뒤에는 불안이 숨어 있다. 최근 DeVry University가 발표한 『Bridging the Gap: Overcoming a Silent Standoff in America’s Talent Economy』 보고서는 이 불안을 “침묵의 대치(Silent Standoff)”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근로자의 85%는 “향후 5년간 추가 학위나 자격이 없어도 고용 가능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답했다. 반면, 고용주의 69%는 “자사 인력이 미래에 필요한 기술을 충분히 보유하지 못했다”고 우려했다. 이처럼 근로자는 현재의 기술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고용주는 미래 대비가 미흡하다고 보는 인식의 불일치가 노동시장을 가르고 있다.

보고서는 이러한 불일치를 “성장 교착(Growth Gridlock)”으로 이어지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한다. 근로자는 기업이 교육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고용주는 근로자가 주어진 기회를 활용하지 않는다고 본다. 결국 양측은 각자의 위치에서 “우리는 충분히 하고 있다”는 착시 속에 머무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래 대비가 지연되고 있으며, 이는 노동시장 전반의 혁신과 경쟁력을 저해하는 심각한 문제다.

AI 시대의 역설 – 기술과 인간 역량의 균형

노동시장의 불확실성을 더욱 증폭시키는 요인은 바로 인공지능(AI)이다. 최근 몇 년 사이 AI 기술은 기업 운영 전반에 깊숙이 스며들며 업무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자동화와 알고리즘 기반 의사결정은 채용·분석·고객 서비스 등 다양한 영역에서 빠르게 확산됐다. 이런 변화는 근로자들에게 새로운 기술 습득의 압박으로 다가온다. 근로자들은 AI 도입에 따라 기술 역량이 곧 생존의 조건이 될 것이라고 여긴다. 실제로 DeVry 조사에서 근로자 응답자의 57%는 “AI 활용 능력이 미래 고용에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라고 꼽았다. 반면, 고용주들은 조금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 78%의 고용주는 비판적 사고, 문제 해결, 소통 능력 등 소프트 스킬(Durable Skills)이야말로 장기적으로 종업원의 고용 가능성을 보장한다고 답했다.

이 차이는 흥미로운 역설을 보여준다. 근로자는 기술 자체에 집중하고, 고용주는 인간적인 역량을 더 중시한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양측 모두 부분적으로는 옳다. 실제로 AI가 가져온 자동화는 기술만으로는 차별성을 만들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누구나 비슷한 도구를 활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 결국 경쟁력을 좌우하는 것은 창의적 문제 해결, 협업, 리더십 같은 인간 고유의 능력이 된다. 동시에 이러한 소프트 스킬이 AI 활용 능력과 결합될 때 비로소 조직의 혁신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미래 인재가 갖추어야 할 요건을 “기술과 인간 역량의 균형”이라고 강조한다. 단순히 코딩을 잘하거나 데이터 분석 툴을 다룰 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변화하는 기술을 빠르게 학습하는 민첩성과 더불어, 인간만이 발휘할 수 있는 직관, 윤리적 판단, 협상력, 그리고 리더십이 함께 요구된다. DeVry 보고서는 이를 “AI 시대의 새로운 고용 안전망은 소프트 스킬”이라고 표현했다.

학생에게는 현장 중심 교육이 답이다

미국 대학생들에게 ‘경험’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Strada가 2025년 발표한 『National Survey of Work-based Learning』에 따르면, 졸업 예정자의 65%가 인턴십이나 현장학습에 참여한 주된 이유로 “특정 직업 분야에서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라고 응답했다. 단순히 진로 탐색이나 경력 시험이 아니라, 졸업 후 실제 취업 경쟁에서 차별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또한 87%의 학생이 인턴십을 통해 “취업에 필요한 기술을 쌓았다”고 답했으며, 특히 유급 인턴십 경험을 가진 학생들은 향후 경력 발전과 연봉 상승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체감한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히 직무 기술만이 아니라, 네트워킹·멘토링·팀워크와 같은 소프트 스킬도 함께 길러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NACE(전미대학취업협회)의 연구 역시 인턴십 등 현장 경험이 초기 경력의 만족도, 급여 수준, 장기적 커리어 안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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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그러나 모든 학생이 인턴십 기회를 고르게 얻는 것은 아니다. Handshake 조사에서는 12%의 학생이 졸업 전까지 인턴십 경험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답했으며, 특히 유색인종, 1세대 대학생, 커뮤니티 칼리지 학생들이 그 비율이 더 높았다. 이는 교육 기회의 불평등이 현장 경험의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대학의 책무는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단순히 이론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학생들에게 산업체와 직접 연결된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Strada 보고서는 대학이 취할 수 있는 구체적 조치로, 모든 학생에게 최소 한 번의 현장 학습 기회를 보장하고, 교내 과정과 프로젝트를 통해 실습을 통합하며, 고용주의 피드백을 반영해 학습 기회를 설계할 것을 권고했다. 결국 학생들이 원하는 것은 ‘더 많은 경험’이 아니라, ‘더 의미 있는 경험’이다. 대학이 이를 지원할 때, 학위는 다시금 노동시장에서 실질적 경쟁력을 담보하는 자산이 될 수 있다.

성인에게는 재교육과 평생학습이 필수

학생들이 취업 준비를 위해 현장 경험을 요구한다면, 이미 노동시장에 진입한 성인들은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해 있다. 기술 발전과 산업 재편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과거에 취득한 학위 하나만으로는 더 이상 경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DeVry의 『Bridging the Gap』 보고서에 따르면, 고용주의 67%는 “대부분의 학사 학위는 현장의 요구와 맞지 않는다”고 답했다. 대신 최신 자격, 인증, 단기 교육과정이 경력 유지와 전환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DeVry 조사에서 86%의 고용주는 “산업 최신 동향을 따라잡는 직원이 조직 전체에 이익을 준다”고 응답했으며, 80%는 교육 투자가 개인의 경력 발전을 실질적으로 촉진한다고 답했다. 이는 고용주가 단순히 학위가 아니라 “최근에 취득한, 실질적으로 유효한 자격”을 중시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반면 근로자들 중 상당수는 고용주가 제공하는 교육 기회를 충분히 체감하지 못한다고 느낀다. 예를 들어, 고용주의 90%는 “업스킬링 혜택을 제공한다”고 답했지만, 실제 근로자 중에서 이를 이용할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이러한 인식 차이는 결국 근로자들로 하여금 자비로 단기 과정이나 온라인 학습을 찾게 만든다. 최근 몇 년 사이 마이크로 크레덴셜, 산업인정자격(Industry-recognized credentials), 온라인 단기 코스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고용주의 75%가 “향후 5~10년 동안 고등교육은 여전히 가치 있다”고 답했지만, 그 ‘가치’는 전통적 학위가 아니라 산업 맞춤형 자격과 교육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학의 역할은 점점 더 분명해진다. 학생에게는 졸업장 이상의 현장성 강화를 제공하고, 성인에게는 직업 전환과 경력 지속을 위한 재교육과 평생학습의 거점이 되어야 한다. 과거 대학이 청년 교육에 한정된 기관이었다면, 이제는 “생애 전반을 지원하는 학습 파트너”로서의 정체성을 새롭게 확립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고용주와 근로자의 인식 차를 메우는 연결자

근로자와 고용주 사이의 불일치는 단순한 의견 차이를 넘어, 신뢰의 문제로 번지고 있다. DeVry 보고서에서 고용주의 90%는 “자사 직원에게 업스킬링이나 학비 지원 혜택을 제공한다”고 답했지만, 실제 근로자 중 이를 이용할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55%에 그쳤다. 반대로 근로자의 32%는 “고용주가 미래 대비를 위한 교육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이 간극은 결국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고, 서로가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가 굳어진다. 고용주 입장에서 문제는 긴급하다. 52%의 고용주는 “필요한 기술을 갖춘 근로자를 확보하지 못하면 생산성이 저하된다”고 답했으며, 10%는 “숙련 인재 부족으로 회사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까지 응답했다. 반대로 근로자들은 여전히 당장의 일자리에 안주하거나, 회사에서 제공하는 훈련 프로그램이 실제 경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인식한다. 이로 인해 양측 모두 교육에 투자하지 않거나, 투자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 대치 상황에서 대학은 중재자이자 연결자 역할을 맡을 수 있다. 대학은 학생을 위한 현장 중심 교육과 성인을 위한 재교육을 동시에 제공하면서, 고용주의 수요와 근로자의 기대를 조율하는 ‘공통의 장(commons)’을 마련할 수 있다. 예컨대, 기업의 피드백을 반영해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근로자가 필요로 하는 자격 과정을 대학이 운영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DeVry 조사에서 고용주의 79%는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은 대학이 더 현장 친화적인 교육을 제공한다”고 답했다. 또한 대학은 고용주에게는 투명한 경력 경로 설계를 지원하고, 근로자에게는 접근 가능한 교육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상호 불신을 줄일 수 있다. 한쪽에서는 “기회를 줬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기회가 없다”고 하는 말이 어긋나는 이유는, 교육 제공과 이용이 제각각 단절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대학이 양측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한다면, 이러한 단절을 줄이고 신뢰 회복을 촉진할 수 있다.

대학의 이중적 책무 – 학생과 성인 모두를 위한 플랫폼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학생과 성인이 대학에 기대하는 역할은 다르지만, 그 근본에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모두가 변화하는 노동시장에서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실질적 역량’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대학은 더 이상 단일한 기능에 머물 수 없다. 이제는 이중적 책무를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우선은 학생을 위한 책무다. 대학은 학문적 지식 전달이라는 전통적 기능에 더해, 현장 중심 교육을 필수 요소로 편입해야 한다. 인턴십·현장실습·산학협력 프로젝트를 통해 학생들이 졸업과 동시에 즉시 투입 가능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Strada 조사에서 드러났듯, 학생 다수는 이미 대학을 단순한 ‘배움의 공간’이 아니라 경력 준비의 출발점으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대학은 학생들의 이 기대에 부응하여, 경험 기반 학습을 제도화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그리고 성인을 위한 책무로는 이미 사회에 진출한 근로자들에게 대학은 평생학습의 거점으로 기능해야 한다. 산업별 맞춤형 단기 과정, 마이크로 크레덴셜, 온라인 기반 재교육 프로그램은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안전망이 된다. DeVry 조사에서 고용주의 80%가 “교육 투자는 경력 발전의 실질적 촉진제”라고 응답한 것은, 대학이 이런 과정을 체계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이유를 뒷받침한다.

결국 대학은 학생과 성인 모두를 위한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인생의 특정 시기’에만 필요한 기관이 아니라, ‘생애 전반을 아우르는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학위 과정과 단기 재교육, 현장 실습과 온라인 수업을 모두 포괄하는 종합 플랫폼으로 변모할 때, 대학은 교육과 노동시장을 연결하는 핵심 허브가 될 수 있다.

새로운 사회계약으로서의 대학

교육과 노동시장의 단절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 경쟁력, 사회적 안정, 나아가 경제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되는 구조적 문제다. DeVry 보고서가 보여준 “침묵의 대치(Silent Standoff)”와 “성장 교착(Growth Gridlock)”은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근로자는 현 상태에 만족하며 미래를 과소평가하고, 고용주는 다가올 기술 변화에 대비하지 못한 조직의 불안을 키운다. 그 사이 대학은 여전히 전통적 학위 제공자로만 머무른다면, 이 단절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학은 이제 새로운 사회적 계약을 맺어야 한다. 더 이상 “학위를 수여하는 기관”에 머무르지 않고, “생애 전반에 걸쳐 역량을 갱신할 수 있는 평생 파트너”로 변모해야 한다. 학생들에게는 현장 경험과 산업 친화적 교육을 제공해 졸업과 동시에 경쟁력을 갖추게 하고, 성인들에게는 산업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재교육과 지속적 학습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는 대학 혼자만의 과제가 아니다. 고용주는 명확한 기술 요구와 경력 경로를 제시해야 하고, 근로자는 자기주도적 학습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그 양측을 연결해주는 공동의 장으로서 대학이 자리할 때, 불신과 책임 전가의 구조는 깨질 수 있다. 교육-노동시장 간 단절을 해소하는 것은 결국 대학을 매개로 한 협력에 달려 있다.

앞으로의 대학은 단순한 출발점이 아니라, 끊임없는 귀환의 거점이 되어야 한다. 젊은 시절 한 번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돌아와 지식과 기술을 보충하는 평생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AI와 불확실성의 시대에 대학이 감당해야 할 새로운 사회계약이며, 동시에 미래 인재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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