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 대신 실전 – 대학 교육, 이제는 연습이 아니라 리허설이다

“달라져야 할 평가 방식”이 대학 교육의 진짜 개혁을 이끈다, 문제는 ‘무엇을 배웠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는가’다

“성적은 좋은데, 실전은 안 돼.” 많은 기업들이 신입사원을 채용하고 나서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그들은 학점이 뛰어나고 자격증도 많지만, 정작 회의 자리에서는 의견을 내지 못하고, 과제를 맡기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린다. 대학은 분명 ‘잘 가르쳤다’고 말하고, 학생은 자신이 ‘열심히 공부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준비가 안 된 사람’으로 보인다. 왜 이런 간극이 생기는 걸까?

그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근본적이다. 대학이 여전히 ‘점수’로 학생을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점은 성실성의 지표일 수 있지만, 실제 업무 수행 능력이나 문제 해결력까지 대변하지는 않는다. 반면 산업 현장은 수치가 아니라 결과를 요구한다. 문제를 정의하고, 협업하고, 해결 방안을 제시하며, 의사소통 능력과 상황 대처력까지 갖춘 사람을 원한다. 이들은 말한다. “당신이 무엇을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이는 단지 기업들의 요구가 바뀌었다는 뜻이 아니다. 학생들 역시 달라졌다. 이들은 자신의 시간과 돈을 투자한 교육이 실제 삶에서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다시 말해, 시험을 위한 시험이 아니라, ‘삶을 위한 교육’을 원한다. 그리고 그것을 판단하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지표는 바로 ‘평가 방식’이다. 지금의 평가는 여전히 연습문제 풀이에 머물러 있다. 이제는 그것을 ‘리허설’로 바꿔야 할 때다.

실전이 곧 수업, 현장이 곧 평가 – 산업과 손잡은 새로운 모델

University World News에 실린 칼럼 「How industry partnerships reshape university learning」은 대학 교육의 본질적 변화를 다룬다. 특히 주목할 점은 평가 방식의 변화다. 과거에는 기업이 수업 말미에 “채용만 잘 해주면 된다”는 입장이었다면, 이제는 수업과 평가의 ‘공동 설계자’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라이브 클라이언트 프로젝트’다. 이는 단순한 인턴십과 다르다. 예를 들어 학생들은 어느 스타트업의 신제품 시장 진입 전략을 수립하거나, 럭셔리 브랜드의 SNS 캠페인을 설계하고, 실제 기업의 재무자료를 분석해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기업은 학생들이 만든 결과물을 실제 내부회의에서 검토하거나, 자사 마케팅 전략에 반영하기도 한다. 즉, 학생은 과제를 교수에게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 실무진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셈이다.

이런 변화는 학생에게도 압박이 된다. 제출기한을 어기면 감점이 아니라 ‘신뢰 상실’이다. 대충 만든 보고서는 피드백이 아니라 ‘실제 무시’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만큼 몰입도는 높아진다. 학생들은 단순히 학점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누군가 진지하게 검토할 것이란 기대, 자신의 아이디어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 그것이 주는 동기부여는 기존의 어떤 시험보다 강력하다. 평가가 실전이 되면, 학습도 달라진다.

객관식 시험은 묻지 못하는 것들

대학에서 가장 오랫동안 유지돼 온 평가 방식은 시험이다. 특히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로 대표되는 객관식·주관식 시험은 지금도 대다수 강의에서 핵심 평가 도구로 사용된다. 하지만 이런 시험이 정말로 학생의 역량을 측정할 수 있을까? 시험은 정답을 요구하고, 그 정답은 강의자료나 교과서에 있다. 학생은 질문을 보고 정답을 회상하면 된다. 이 과정은 사실상 ‘지식의 재생’에 가깝다. 문제는 이 방식으로는 학생의 ‘생각하는 능력’, ‘응용력’, ‘대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특히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산업, 글로벌 협업, 융합형 문제해결이 요구되는 오늘의 사회에서는 단편적 지식보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과 해결하려는 태도가 훨씬 중요하다. 그러나 시험은 여전히 “무엇을 알고 있느냐”에 머물러 있고, “그걸 어떻게 쓰느냐”는 묻지 않는다.

광고
대학

반면, 산업 연계 프로젝트는 그 반대다. 문제는 정해져 있지 않다. 상황은 모호하고, 변수는 많으며, 정답은 없다. 평가의 기준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현장에서 통할 수 있는 전략이냐’는 것이다. 기업 실무진은 그 제안이 실행 가능하고, 청중을 설득할 수 있으며, 실무에 반영할 만한지 평가한다. 즉, 이들은 “이게 얼마나 맞았느냐”보다 “이게 얼마나 의미 있느냐”를 본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 과정이 학생의 ‘내면’까지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시험에서 낙제는 창피할 수 있지만, 누구에게도 공유되지 않는다. 하지만 프로젝트에서의 실패는 팀원과의 갈등, 기업으로부터의 부정적 피드백, 실행 무산이라는 현실적 결과로 이어진다. 이런 경험은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가장 강력한 학습이다. 지금 대학은 이런 ‘진짜 배움’을 제공하고 있는가?

시험을 넘어서야 교육도 바뀐다

평가가 바뀌면 수업도 바뀐다. 수업이 바뀌면 교수법이 바뀌고, 결국 교육 전체의 틀이 달라진다. 다시 말해, 평가는 단순히 마지막에 붙는 절차가 아니라, 교육 방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지금 대학들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떤 수업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평가를 할 것인가”이다. 평가가 정해지면 수업의 흐름과 과제의 형식, 학생의 몰입 방식까지 모두 달라지기 때문이다. 산업 연계형 평가가 확산되면서 나타나는 변화는 이미 다양하다. 디지털 마케팅 과목에서는 특정 브랜드의 실제 SNS 계정을 분석해 전략을 짜는 과제가 등장했고, 디자인학과에서는 포트폴리오 대신 기업 클라이언트를 위한 실전 제품 프로토타입을 개발하는 프로젝트가 이뤄진다. 해커톤, 케이스 챌린지, 시나리오 기반 에세이, AI 기반 시뮬레이션 등도 활발히 도입되고 있다. 이 모든 변화는 시험이 아닌 ‘성과 중심의 리허설’이라는 공통된 방향성을 따른다.

또한 이러한 방식은 학생 개개인의 학습 유형이나 강점을 드러내는 데도 효과적이다. 일부 학생은 발표나 전략 설계에 강점을 보이고, 또 다른 학생은 데이터 분석이나 협업 과정에서 뛰어난 성과를 낸다. 전통적인 시험이 하나의 방식으로 모두를 줄 세웠다면, 실전형 평가는 다양한 역량의 조합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이는 학생의 잠재력을 보다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주며, 평가의 공정성과 수용성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제 대학은 실전의 무대가 되어야 한다

산업과 연계된 교육, 특히 평가 방식의 실전화에 대해 여전히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대학이 직업훈련소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 “산업의 요구에만 휘둘리다 보면 학문적 자율성과 깊이를 잃게 될 것이다”라는 비판이 그것이다. 특히 인문사회계열에서 이런 우려는 더욱 강하다. 기업 중심의 과제가 ‘상업적 논리’만을 강화하고, 비판적 사고나 윤리적 성찰 같은 고등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연계’와 ‘종속’을 혼동한 데서 비롯된 오해다. 산업과의 협력은 교육의 주도권을 산업계에 넘긴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교육의 실질성과 유의미함을 높이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문학 전공자가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콘텐츠 기획 역량을 실제 미디어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기를 수 있다면, 그것은 학문적 배경을 현실에 적용하는 능력을 기르는 과정이지 학문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대학이 자신의 교육 철학과 목표를 분명히 하면서도, 산업과의 접점을 전략적으로 설계하는 것이다. 단기성과에 매몰되기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학생에게 무엇이 남는가’를 중심에 두고 평가를 설계해야 한다. 기업은 결국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사람’을 원하고, 대학은 ‘사고할 줄 아는 사람’을 기르려 한다. 이 두 지점은 결코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접점을 만들 때, 대학 교육의 진정한 혁신이 시작된다.

변화는 어렵다. 그리고 교육에서의 변화는 더욱 어렵다. 오랜 시간 동안 유지돼 온 방식, 익숙한 시스템, 교수자와 학생 모두가 편안하게 느끼는 루틴을 벗어난다는 것은 용기와 전략을 동시에 요구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용기를 낼 때다. 대학은 더 이상 ‘지식 전달의 공간’만이 아니라, ‘역량 증명의 장’이 되어야 한다. 학생들은 더 이상 ‘졸업장’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들은 ‘경험’을 원하고, 그 경험이 ‘가능성’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따라서 대학이 해야 할 일은 그들이 실전과 가장 가까운 환경에서 실패하고, 시도하고, 다시 설계할 수 있도록 무대를 만들어주는 일이다. 그리고 그 무대의 중심에는 ‘새로운 평가’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 시험을 넘어서야 한다. 과제를 다시 설계하고, 피드백의 방식을 바꾸며, 성취의 기준을 점수에서 실행력으로 옮겨야 한다. 평가가 바뀌면 배움이 달라지고, 배움이 달라지면 교육의 가치도 달라진다. 대학 교육은 이제 연습이 아니다. 학생들이 나가야 할 세상을 앞둔, 가장 진지한 리허설이어야 한다.

#대학평가혁신 #실무중심교육 #프로젝트기반학습 #교육리허설 #산업연계수업 #라이브과제 #대학개혁 #스포트라이트유칼럼

Social Share

함께 읽어보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