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가미」 매끄럽지 않은 움직임과 분절된 서사, 그럼에도 오래 남는 그림과 목소리

영화가 끝났는데 이상하게도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왔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인물들의 움직임은 때때로 어색했고, 이야기는 매끄럽게 흘러가기보다 장면과 장면 사이에서 자주 끊기는 듯했다. 물속에서 숨 쉴 수 있는 특별한 존재와 그를 둘러싼 상처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 역시 판타지라는 장르 안에서 아주 낯선 소재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극장을 나오면서 기억에 남은 것은 그런 아쉬움만은 아니었다. 어두운 물속을 채운 몇 장의 그림, 물 위로 번지던 빛, 그리고 누군가 오래된 이야기를 조용히 읽어주는 것 같았던 목소리였다. 애니메이션 「아가미」를 보고 나왔는데, 이상하게도 한 권의 조금 슬픈 동화책을 덮고 나온 것 같았다. 9월 9일 개봉한 「아가미」는 구병모 작가가 2011년 발표한 동명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한국 애니메이션이다. 〈소나기〉, 〈무녀도〉 등 문학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옮겨온 안재훈 감독이 연출했고, 정해인이 곤, 강하늘이 강하, 이청아가 해류의 목소리를 맡았다. 러닝타임은 103분이다.

죽지 못한 아이에게 생긴 아가미

이야기의 중심에는 ‘곤’이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물속에 던져진 곤은 죽지 않는다. 대신 그의 몸에는 물속에서 숨 쉴 수 있는 아가미가 생긴다. 그렇게 살아남은 곤은 자신을 구해준 노인과 그의 손자 강하의 집에서 성장한다. 영화는 곤의 이야기를 곧장 보여주지 않는다. 현재의 시간에서 먼저 만나는 인물은 해류다. 직장생활과 아픈 어머니를 돌보는 일에 지쳐 있던 해류는 우연히 강에 빠지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에게 구조된다. 자신을 살리고 다시 물속으로 사라진 남자를 찾아 나선 해류는 강하를 만나고, 그에게서 곤의 오래된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다. “이야기가 길어질 텐데 괜찮아요?” 영화가 내세우는 이 문장은 「아가미」의 형식을 꽤 정확하게 보여준다.

관객 역시 해류와 함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방식은 「아가미」의 매력이면서 동시에 영화적인 약점이 된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고, 한 사람의 기억에서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구조는 소설에서는 그 자체로 서사의 리듬이 될 수 있다. 독자는 문장을 멈춰 읽기도 하고, 앞장을 다시 펼쳐보기도 하며 자신의 속도로 이야기를 따라간다. 영화에서는 다르다. 장면이 바뀌고 시간이 이동하고 화자가 달라질 때 관객은 정해진 속도로 그것을 따라가야 한다. 「아가미」에서는 이 전환들이 때때로 유기적으로 이어지기보다 하나의 에피소드를 닫고 다음 장을 펼치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름다운 그림과 자연스러운 애니메이션은 같은 말이 아니다

「아가미」의 그림은 아름답다. 특히 물이 그렇다. 칠흑처럼 내려앉은 깊은 물, 빛이 스며드는 수면, 곤의 등에 번지는 비늘, 물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몸. 물은 곤을 죽음으로 끌고 갔던 공간인 동시에 그가 가장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안재훈 감독 역시 물의 색감과 질감을 이번 작품에서 가장 많이 고민한 부분으로 꼽았다. 좁고 어두운 물에서 시작해 더 넓은 바다로 갈수록 화면을 밝게 가져가는 방식도 의식적으로 선택했다고 설명한다.

정지된 화면만 떼어놓는다면 한 장 한 장이 그림책의 삽화처럼 보이는 순간도 적지 않다. 하지만 아름다운 그림과 자연스러운 애니메이션은 반드시 같은 말은 아니다. 「아가미」의 인물들은 때때로 움직이는 순간보다 가만히 화면 안에 머물러 있을 때 더 아름답다. 걷고, 돌아서고, 대화를 주고받는 일상적인 동작에서는 움직임이 다소 딱딱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인물의 표정과 동작이 가진 미세한 리듬 역시 최근의 상업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낯설 수 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아가미」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들은 캐릭터가 화려하게 움직일 때보다 화면이 잠시 하나의 ‘그림’처럼 머무를 때다. 이것을 모두 작품의 의도였다고 해석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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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이 물의 움직임과 인물의 표현을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와 별개로, 관객이 실제 화면에서 느끼는 움직임의 자연스러움은 또 다른 문제다. 정성은 작품을 평가하는 중요한 배경이지만 그 자체가 완성도를 보증하지는 않는다.

「아가미」에는 그래서 묘한 긴장이 있다. 그림은 아름다운데, 움직임은 때때로 그 아름다움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영화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가미」를 단순히 ‘움직임이 아쉬운 애니메이션’이라고 정리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영화가 중반을 지나면서 그 어색함마저 조금 다른 감각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장면과 장면 사이가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 대신 마치 책장을 한 장씩 넘기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나의 장면이 끝나고, 여백이 생기고, 다시 다음 그림이 펼쳐진다. 여기에 목소리가 더해진다. 특히 해류를 맡은 이청아의 목소리가 그렇다.

그의 대사는 캐릭터가 화면 안에서 말을 한다기보다 때때로 화면 바깥에서 이야기를 읽어주는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과장된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방식 때문이다. 안재훈 감독은 해류에 대해 타인에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다가가고, 곤과 강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는 인물이라고 설명한다. 이청아 역시 대본에 밑줄을 그어가며 원작의 문체를 분석했다고 한다. 감독에게 해류가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었다면, 관객에게 해류는 어느 순간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처럼 다가온다.

그래서 「아가미」를 보는 경험은 조금씩 달라진다. 영화 속 세계가 실제처럼 살아 움직여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몰입과는 다르다. 오히려 누군가 펼쳐놓은 그림을 바라보면서 그 옆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경험이다. 영화를 보고 있는데, 어느 순간 영화를 ‘보고 있다’는 감각보다 이야기를 ‘읽고 있다’는 감각이 강해진다.

이 지점에서 「아가미」는 흥미로운 질문을 남긴다. 문학을 영화화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원작의 이야기와 대사를 충실하게 보존하는 것일까. 아니면 원작의 문장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영화라는 매체만의 리듬으로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일까. 안재훈 감독은 원작에 대한 애정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구병모의 소설에 담긴 한국어 문장이 너무 아름다워 그것이 영상화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한국을 배경으로 그대로 옮길 경우 인물들의 가난과 비참함이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대상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영화가 원작의 문체가 지닌 아름다움을 다른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배경을 유럽으로 옮긴 이유다.

상처처럼 생긴 숨구멍

그리고 그렇게 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제목으로 돌아오게 된다. ‘아가미’다. 곤의 아가미는 그를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구별 짓는다. 감추어야 하는 흔적이고,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낯선 신체이며, 곤을 인간들의 세계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것은 곤을 살아 있게 한 기관이다. 감독은 아가미가 상처처럼 보이기를 원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 상처는 동시에 숨을 쉴 수 있게 하는 통로다. 이 역설이 「아가미」의 이야기 전체를 관통한다. 곤에게 물은 죽음의 장소이면서 삶의 장소다. 세상과 다르게 만들어버린 아가미는 고립의 흔적인 동시에 생존의 증거다. 그래서 「아가미」가 이야기하는 것은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된 소년의 판타지라기보다 어쩌면 상처 입은 사람이 어떻게든 살아남는 방식 인듯 하다. 상처가 사라져야 비로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상처는 끝내 남는다. 다만 어느 순간 그 상처의 틈으로 숨을 쉬게 될 수도 있다.

「아가미」를 잘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라고 권하기는 어렵다. 소재는 새롭지 않고, 이야기의 흐름은 여러 차례 끊긴다. 인물의 움직임에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적인 리듬과 몰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객이라면 103분이 길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실패한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깊은 물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곤의 모습, 빛에 반짝이는 비늘, 어둡고 푸른 물빛, 그리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따라가는 목소리가 영화가 끝난 뒤에도 남기 때문이다.

영화 한 편을 보고 극장을 나온 것보다, 조금 슬프고 아름다운 동화책 한 권을 천천히 덮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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