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존중 없는 사회 :한병철 」 무례한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누군가 SNS에 글을 올린다. 몇 분 뒤 첫 번째 악플이 달리고, 두 번째 사람이 거기에 ‘좋아요’를 누르고, 세 번째 사람은 수위를 한층 높인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 촘촘하게 연결돼 있지만, 타인을 대하는 태도는 어느 때보다 거칠다. 이 무례함은 대체 어디서 오는가. 「피로사회」로 성과사회의 자기착취를 진단했던 재독 철학자 한병철이 이번에는 ‘존중’의 실종을 정면으로 다룬다. 2025년 스페인의 아스투리아스 공주상을 받은 그의 신작 「존중 없는 사회 」가 정창호 박사의 번역으로 출간됐다. 미국,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 21개국에서 번역 출간이 이어지고 있는 책이다.

진단의 출발점은 신자유주의 성과사회다. 이 사회에서 존중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리는 권리가 아니라, 각자가 이룬 성과와 돈, 지위의 대가로 주어진다. 존중받으려면 끊임없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하고, 그래서 모두가 출세의 사다리를 더 높이 오르려 한다. 저자는 이 무자비한 경쟁이 사람을 고립시키고 사회의 뿌리를 뒤흔든다고 말한다. 정의는 연결하고 화해시키지만, 성과는 쪼개고 고립시킨다는 것이다.

승자독식의 체제는 패배자를 구조적으로 만들어내고, 모든 계층은 지위를 잃을까 불안에 시달린다. 낙오된 이들의 분노는 뚜렷한 목적 없이 불특정 다수를 향하거나 자기 자신을 향한다. 한스 엔첸스베르거가 말한 ‘분자적 내전’이 일상이 되는 셈이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공론장의 역사를 되짚는 부분이다. 저자에 따르면 18세기 유럽의 공론장은 일종의 ‘극장’이었다. 사람들은 사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대신 정해진 역할과 가면으로 자신을 연출했다. 그것은 남을 속이기 위한 위선이 아니라, 서로의 사적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안전장치였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솔직함과 진정성이 미덕으로 떠오르면서 이 거리는 무너졌다. 내면의 감정과 분노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솔직함’은 역설적으로 공적 대화의 무대를 무너뜨렸다. 디지털 공간은 여기에 기름을 붓는다. 화면 속 타인은 얼굴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 데이터로 다뤄지고, 익명성 뒤에서 조롱과 폭로가 쏟아진다. 저자는 ‘수치심 주기’가 횡행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오히려 수치심 자체를 잃어버린다고 진단한다. 뻔뻔함과 무례함은 그렇게 우리 시대의 풍경이 됐다.

거리 두기, 그리고 우정의 정치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한병철이 내놓는 처방은 의외로 ‘거리’다. 존중은 상대를 나의 연장이나 ‘적’으로 규정하는 대신, 나와 다른 독립된 존재로 인정하고 적절한 거리를 두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는 칸트의 정언명령을 끌어와 사람을 수단이나 생산물로 바라보게 만드는 자본주의의 논리와 맞세운다. 진정성마저 상품이 된 사회에서, 사람은 자기를 생산하고 연출하다 끝내 팔아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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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친구와 적을 가르는 칼 슈미트의 정치 대신,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함께 나누는 ‘우정의 정치’를 제안한다. 서로를 견제하지 않고 경청하며 화음을 만드는 재즈 연주자들의 협주, 리처드 세넷이 말한 ‘음향공동체’가 그 모델이다. 그에게 존중은 고상한 덕목이 아니라, 야만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원서는 100쪽이 채 안 되는 짧은 에세이지만, 한국어판은 192쪽에 이른다. 헤겔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옮긴이가 중고생도 읽을 수 있는 책을 목표로 풍부한 해설과 각주를 붙였기 때문이다. 명언처럼 압축된 아포리즘으로 이어지는 한병철의 문장은 감각적이지만 때로 난해하다는 평을 들어왔다는 점에서, 반가운 선택이다.

아쉬움도 있다. 진단은 날카롭지만, ‘우정의 정치’가 구체적으로 어떤 제도와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는 여전히 흐릿하다. 독일 언론도 이 책을 완결된 사상 체계라기보다 생각을 자극하는 책으로 평가했다. 또 한국어판 제목에 붙은 ‘AI시대’라는 수식과 달리, 책의 무게중심은 인공지능보다 성과사회와 소셜 미디어, 디지털 공론장에 놓여 있다는 점도 알고 읽는 편이 좋겠다.

그럼에도 이 책의 미덕은 분명하다. 우리가 흔히 개인의 인성 탓으로 돌리던 무례함을 사회 구조의 문제로 끌어올려 다시 보게 한다. 댓글창에 무언가를 쓰기 전, 한 번쯤 손을 멈추게 만드는 책이다.

『존중 없는 사회 — AI시대, 사회적 위기』 한병철 지음 · 정창호 옮김 · 간디서원 · 192쪽 ·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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