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분자만 인식하는 단백질 구현… 질병 진단·신약 개발 확장
생명과학은 오랫동안 자연을 ‘발견’하고 ‘분석’하는 학문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개입하면서, 이제는 원하는 기능을 가진 생체 분자를 직접 설계하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KAIST가 그 전환을 보여주는 연구를 내놓았다. KAIST 생명과학과 이규리 교수 연구팀은 2024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베이커(David Baker, 워싱턴대학교) 교수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특정 화합물을 선택적으로 인식하는 인공 단백질을 AI로 설계하고 이를 실제 작동하는 바이오 센서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단백질을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방식으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정 화합물을 정확히 인식하는 단백질을 설계하는 일은 오랜 난제로 꼽혀왔다. 기존에는 자연 단백질을 탐색하거나 일부 기능을 수정하는 방식이 주로 사용됐지만, 원하는 기능을 처음부터 설계하는 데에는 원자 단위의 정밀 계산이 필요해 한계가 있었다. 특히 저분자 화합물을 선택적으로 인식하는 단백질 설계는 범용적인 방법이 부족해 연구가 제한적이었다. 연구팀은 이 문제를 AI 기반 설계로 풀었다. 단백질과 화합물 간 상호작용을 정밀하게 반영하는 딥러닝 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특정 분자에 결합하는 단백질 구조와 아미노산 서열을 처음부터 설계했다. 이 과정에서는 딥러닝 기반 서열 생성 모델과 물리 기반 도킹 계산이 결합되며, 설계 정확도를 높였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설계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코티솔(cortisol) 등 6종의 화합물을 인식하는 단백질을 설계하고, 이를 실험적으로 검증했다. 특히 코티솔을 인식하는 단백질을 기반으로 바이오 센서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단순 이론이 아니라 실제 작동하는 기술로 이어졌다는 의미다. 이번 기술은 다양한 분야로 확장될 가능성을 가진다. 혈액 내 바이오마커를 정밀하게 감지해 질병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고, 특정 분자를 인식하는 단백질을 활용해 표적 치료제 개발에도 적용될 수 있다. 또한 환경 오염 물질을 감지하는 센서로 활용해 실시간 모니터링 기술로 발전할 가능성도 제시됐다.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됐으며, 이규리 교수가 제1저자, 데이비드 베이커 교수가 교신저자로 참여했다.
이규리 교수는 이번 연구가 AI를 활용해 특정 화합물을 정밀하게 인식하는 단백질을 설계할 수 있음을 실험적으로 입증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생명과학은 더 이상 자연을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원하는 기능을 설계하고 구현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번 연구는 그 변화가 실제 기술로 구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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