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활용의 시대, 격차는 접근보다 숙련에서 벌어진다

먼저 익숙해진 사람은 더 멀리 갔다… AI 격차는 기술보다 ‘사용 경험’에서 벌어지고 있다

앤스로픽(Anthropic)의 최신 Economic Index는 생성형 AI 확산이 단순한 보급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먼저 익숙해지고 누가 더 능숙하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성과와 기회가 갈라지는 과정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용은 넓어졌지만, 성공은 고르게 분배되지 않았다. AI 시대의 새로운 불평등은 모델 성능보다 학습 곡선에서 먼저 나타나고 있다.

3월 24일 공개된 앤스로픽의 ‘Economic Index report: Learning curves’는 2026년 2월 5일부터 12일까지 클로드(Claude.ai)와 자사 API에서 추출한 100만 건의 대화 샘플을 바탕으로, 생성형 AI가 실제 경제 활동 속에서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추적한 자료다. 이 자료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단순하지 않다. AI는 더 넓게 퍼지고 있지만, 그 효과는 균등하게 퍼지지 않고 있으며, 먼저 익숙해진 사용자들이 더 높은 가치의 과업을 시도하고 더 높은 성공률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이것이 단순한 조기 수용자의 특성일 수도 있고 사용을 통한 학습효과일 수도 있다고 신중하게 설명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AI 시대의 격차는 ‘접근 여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기술의 확산은 늘 낙관과 불안을 함께 데려온다. 누구나 쓰게 되면 민주화라고 부르고, 먼저 잘 쓰는 사람만 이익을 가져가면 불평등이라고 부른다. 지금 생성형 AI가 서 있는 자리는 정확히 그 두 갈래가 겹치는 지점이다. 겉으로 보면 AI는 빠르게 대중화되고 있다. 그러나 안쪽을 들여다보면 사람들은 같은 도구를 쓰고 있지 않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같은 인터페이스를 열고 있어도 서로 다른 수준의 도구를 쓰고 있다. 누군가는 스포츠 점수를 묻고, 누군가는 기업 가치평가 모델을 돌린다. 누군가는 초안을 부탁하고, 누군가는 자동화된 워크플로를 설계한다. 그리고 바로 그 차이가 생산성의 차이, 더 나아가 노동시장 내 위치의 차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자료의 핵심 문제의식이다.

확산은 빨라졌지만, 그만큼 평평해진 것은 아니었다

보고서에서 먼저 확인되는 것은 사용 저변의 확장이다. 클로드.ai에서 상위 10개 과업이 전체 사용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5년 11월 24%에서 2026년 2월 19%로 낮아졌다. 이는 특정 소수 용도에 사용이 집중되던 초기 국면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과업으로 활용이 퍼지고 있음을 뜻한다. 동시에 개인적 용도의 대화 비중은 35%에서 42%로 늘었고, 교과과정 관련 사용은 19%에서 12%로 줄었다. 일상적 질문과 가벼운 활용이 늘어났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이를 조기 수용자들이 고가치 작업에 먼저 집중하고, 이후 대중적 확산이 일어나면서 보다 넓은 종류의 과업으로 사용이 퍼지는 전형적 ‘도입 곡선’의 한 장면으로 해석한다.

이 변화만 놓고 보면 생성형 AI는 조금씩 평범한 도구가 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평균 과업 가치도 소폭 낮아졌다. 보고서는 미국 직업별 임금을 기준으로 과업의 경제적 가치를 추정했는데, 클로드.ai에서 수행된 과업의 평균 가치는 시간당 49.3달러에서 47.9달러로 하락했다. 이는 스포츠 결과, 날씨, 제품 비교, 가정 유지관리와 같은 단순 질의가 늘어나고, 코딩 작업의 일부가 API 영역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간 입력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평균 교육연수도 12.2년에서 11.9년으로 낮아졌고, 인간이 혼자 수행할 때 필요한 시간 역시 약 2분 줄었다. 쉽게 말하면 AI 사용은 더 넓어졌고, 일부는 더 가벼워졌다.

하지만 여기서 “AI가 대중화되고 있으니 이제 누구나 비슷한 이익을 누릴 것”이라고 결론내리면 너무 빠른 판단이 된다. 같은 자료 안에는 그와 정반대의 흐름도 함께 들어 있기 때문이다. 사용이 넓어지는 동안, 더 오래 사용한 사람들은 더 복잡한 과업을 더 잘 수행하고 있었다. 그 결과 AI의 대중화는 곧바로 AI의 평준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저변 확대 위에서 새로운 숙련 격차가 형성되는 모습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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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쓴다’와 AI를 ‘잘 쓴다’ 사이의 거리

이번 보고서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을 따로 떼어 분석했기 때문이다. 앤스로픽은 가입 후 6개월 이상이 지난 고경력 사용자와 그보다 짧은 저경력 사용자를 비교했다. 그 결과 고경력 사용자는 개인 용도 대화가 10%가량 적었고, 입력에 반영되는 교육 수준은 6% 더 높았으며, 무엇보다 대화 성공률이 10% 더 높았다. 더 세밀한 통제모형으로 비교했을 때도 고경력 사용자는 같은 종류의 과업 안에서 약 3~4%포인트 높은 성공률을 보였다. 이는 단순히 “원래 잘하는 사람이 오래 남아 있는 것”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차이로 제시된다. 보고서는 이를 사용 경험을 통해 AI로부터 원하는 결과를 더 잘 끌어내는 ‘learning-by-doing’, 즉 사용하면서 익히는 숙련 효과와 일치하는 결과라고 본다. 다만 동시에 조기 수용자의 기술 친화성이나 생존편향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이 수치는 단순한 기능 숙달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노동시장 안에서 “AI를 보조도구로 두는 사람”과 “AI를 성과 증폭기로 다루는 사람” 사이의 차이를 말해준다. 고경력 사용자는 작업을 AI에게 일방 지시하는 방식보다 반복적 협업 방식으로 더 많이 활용했고, 업무 목적 사용 비중도 7.3%포인트 높았다. 상위 10개 과업에 사용이 덜 집중됐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익숙한 사람일수록 더 다양한 종류의 일을 AI와 함께 시도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오래 쓴 사람이 단순히 더 자주 쓰는 것이 아니라, 더 넓고 더 어려운 영역으로 사용 범위를 확장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용 기간”이 단순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보고서는 가입 후 시간이 늘어날수록 인간 입력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교육연수가 거의 1년 가까이 증가하고, 개인적 사용은 줄어든다고 설명한다. 오래 남아 있는 사용자들일수록 AI를 일상적 흥미거리보다 복잡한 지식노동에 더 많이 가져간다는 뜻이다. 평균 사용기간이 긴 요청 클러스터에는 AI 연구, 깃(git) 작업, 원고 수정, 스타트업 자금조달 관련 과업이 포함됐고, 평균 사용기간이 짧은 쪽에는 하이쿠 작성, 스포츠 점수 확인, 파티 음식 추천 같은 단순 사용이 많았다. 이것은 AI가 시간이 갈수록 자연스럽게 ‘고도화된 사용’으로 이동한다기보다, 더 고도화된 사용을 지속하는 사람들이 결국 시스템 안에 남아 성과를 누릴 가능성이 높다는 구조를 시사한다.

결국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AI를 쓸 수 있는가”가 아니라 “AI를 다뤄 성과를 만들 수 있는가”다. 이 둘 사이에는 생각보다 긴 거리가 있다. 생성형 AI의 보급률이 높아지는 것만으로 생산성 향상이 고르게 일어난다고 보기는 어렵다. 초기에는 모두가 비슷하게 출발하는 것처럼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더 능숙한 질문을 던지고 더 적절한 모델을 고르며 더 효과적인 협업 루틴을 만든 사람이 훨씬 큰 이득을 가져갈 수 있다. 이때 불평등은 소유가 아니라 운용에서 벌어진다.

왜 더 비싼 일일수록 더 강한 모델을 선택하는가

보고서는 또 하나의 중요한 패턴을 보여준다. 사용자들은 대체로 과업의 가치와 난이도에 맞춰 더 강한 모델을 선택하고 있었다. 유료 클로드.ai 이용자 가운데 컴퓨터·수학 관련 과업에서는 Opus 사용 비중이 평균보다 4.4%포인트 높았고, 교육 관련 과업에서는 반대로 더 낮았다. 더 세부적으로 보면 소프트웨어 개발자 관련 과업에서 Opus 사용 비중은 34%인 반면 튜터 관련 과업은 12% 수준이었다. 과업이 연결된 직업의 시간당 임금이 10달러 올라갈 때마다 클로드.ai에서 Opus 선택 비중은 1.5%포인트, API에서는 2.8%포인트 증가했다. 즉 더 높은 부가가치가 걸린 일일수록 사용자는 더 강한 모델을 더 자주 선택했고, 이 경향은 프로그래밍 방식의 워크플로를 다루는 API 쪽에서 더욱 뚜렷했다.

이 대목은 생성형 AI가 단순한 범용 비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킨다. 사람들은 이미 과업의 무게에 따라 모델을 분화해서 쓰기 시작했다. 어떤 일은 기본 모델로 충분하고, 어떤 일은 비용을 더 들여서라도 더 강한 추론 성능을 써야 한다는 감각이 형성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기업 조직 안에서는 더 선명한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낮은 중요도의 일에는 저비용 모델, 전략적 의사결정이나 고난도 분석에는 고성능 모델을 투입하는 방식이 일상화되면, AI 활용 자체뿐 아니라 ‘어떤 AI를 어떤 일에 붙일 것인가’라는 배치 판단 능력도 새로운 역량이 된다. 결국 AI 활용 격차는 프롬프트 문장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업무 구조를 읽고 적절한 모델 조합을 설계하는 판단력의 문제로 확장된다.

이는 교육 현장에도 그대로 연결된다. 학생과 직장인, 관리자와 실무자, 개발자와 비개발자 사이의 차이는 단순히 AI를 사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서 끝나지 않는다. 더 적절한 모델을, 더 적절한 시점에, 더 적절한 과업에 붙일 수 있는 사람은 같은 시간 안에 더 높은 수준의 결과를 얻게 된다. AI는 모두에게 같은 인터페이스를 열어주지만, 그 안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것은 점점 더 계층화된 사용 전략이다.

클로드.ai에서 API로… 일이 바뀌는 방향도 갈라지고 있다

이번 보고서는 생성형 AI의 확산이 단일 경로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도 보여준다. 소비자용 웹 환경인 클로드.ai와 개발자용 인터페이스인 자사 API는 점점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 클로드.ai에서는 사용이 다양해지고, 개인적 질문이 늘고, 평균 과업 가치가 다소 낮아졌다. 반면 API 쪽은 컴퓨터·수학 관련 과업의 비중이 높아졌고, 상위 10개 과업이 전체 사용량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25년 8월 28%에서 2026년 2월 33%로 높아졌다. 보고서는 이를 자동화 가능한 업무 흐름이 API 쪽으로 모여드는 현상으로 해석한다. 특히 영업·아웃리치 자동화와 자동화된 트레이딩·시장 운영 관련 워크플로는 세 달 전보다 적어도 두 배 이상 더 자주 나타났다.

이 변화는 단순한 제품 구분이 아니라 노동시장 변화의 속도 차이를 암시한다. 웹에서 이뤄지는 사용은 여전히 인간이 중심에 있는 협업 성격이 강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클로드.ai에서는 자동화보다 증강적 사용이 더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검증과 반복, 학습 같은 상호작용이 소폭 늘었다. 반면 API 워크플로는 지시형 성격이 훨씬 강하고 인간 개입이 적다. 다시 말해 웹은 ‘사람이 AI를 곁에 두는’ 공간이고, API는 ‘업무 흐름 속에 AI를 집어넣는’ 공간에 가깝다. 그래서 같은 생성형 AI라도 어디에서 쓰이느냐에 따라 노동시장에 미치는 충격의 결이 달라질 수 있다.

이 점은 한국 사회가 생성형 AI 논의를 할 때 특히 놓치기 쉬운 부분이다. 우리는 종종 AI 사용을 챗봇 인터페이스 중심으로 상상한다. 보고서 작성, 번역, 요약, 아이디어 도출, 학습 보조 같은 영역이 주로 주목받는다. 그러나 산업 현장에서 더 급격한 변화는 오히려 API 기반 자동화에서 먼저 나타날 수 있다. 고객응대, 영업지원, 데이터 정제, 투자정보 모니터링처럼 구조화 가능한 과업은 사람의 손을 거치는 시간을 빠르게 줄일 수 있다. 클로드.ai에서 ‘도구를 잘 쓰는 사람’이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문제와, API에서 ‘도구를 시스템에 심는 조직’이 업무 구조를 바꾸는 문제는 서로 다른 차원이지만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진짜 변화는 바로 이 이중 진행이다. 한쪽에서는 개인의 AI 숙련 격차가 벌어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조직의 자동화 속도 차이가 벌어진다.

국가 간 격차는 줄지 않았고, 오히려 더 짙어졌다

또 하나의 불편한 메시지는 공간적 불평등이다. 미국 내에서는 사용 격차가 다소 완화되는 흐름이 관찰됐다. 1인당 사용량 기준 상위 5개 주의 비중은 2025년 8월 30%에서 2026년 2월 24%로 낮아졌고, 지니계수도 하락했다. 하지만 이 속도는 보다 느려졌으며, 지금 추세라면 주별 이용 수준이 대체로 비슷해지는 데 5~9년이 걸릴 수 있다고 추정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국제 비교에서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는 점이다. 인구를 보정한 국가별 사용량 기준 상위 20개국의 비중은 45%에서 48%로 높아졌고, 국가 간 사용 집중도는 오히려 심화됐다. 초기 도입이 고소득 국가와 지식노동 비중이 높은 지역에 더 강하게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이것은 AI가 인터넷처럼 빠르게 전 세계로 평탄하게 퍼질 것이라는 상상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인프라, 언어, 교육 수준, 업무 환경, 소득 구조, 기업 투자 역량이 다른 상황에서 AI의 확산 속도가 균등할 리는 없다. 더구나 이번 자료가 보여주듯, 초기 도입자의 이점이 사용 경험을 통해 자기강화적으로 커질 수 있다면, 국가 간 격차는 단순 접근성 이상의 문제가 된다. 늦게 들어온 나라와 조직, 개인은 단지 시간을 잃는 것이 아니라 숙련 축적의 초기 구간을 놓치는 셈이기 때문이다. AI의 혜택이 먼저 쌓이는 곳은 이미 지식노동 밀도가 높고 실험 여력이 큰 곳일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는 더 높은 생산성과 더 빠른 자동화, 더 많은 데이터와 더 정교한 활용 노하우로 돌아올 수 있다.

이 대목에서 한국의 위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디지털 인프라와 교육열, 산업 밀도 면에서 비교적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그것이 곧바로 AI 활용의 공정한 분배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대기업과 선도 직군, 영어와 기술 문해력이 높은 집단이 먼저 익숙해지고, 나머지 다수는 일상적 수준의 제한된 활용에 머문다면 국가 내부에서도 같은 격차가 반복될 수 있다. 국가 간 불평등은 국내 계층·직군 간 불평등과 닮은꼴로 재현되기 쉽다.

‘누구의 일’이 먼저 바뀌는가보다 ‘누가 더 빨리 배우는가’가 중요해지는 순간

지금까지 AI와 노동시장을 둘러싼 논의는 주로 “어떤 직업이 대체되나”, “어떤 직무가 영향을 받나”에 초점을 맞춰 왔다. 이번 자료는 그 프레임에 하나를 더 추가한다. 같은 직무 안에서도 누가 AI를 더 잘 배우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의 표현을 빌리면, 고숙련 과업을 가진 조기 수용자들은 AI로 인한 교란에 가장 많이 노출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초기 증강의 혜택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다. 이는 직무 대체와 생산성 증대가 한 사람, 한 집단 안에서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불안은 늘어나고, 보상도 늘어나는 아이러니다.

이 지점에서 노동시장 불평등의 구조는 훨씬 복잡해진다. 과거의 기술 변화가 학력, 산업, 직무 중심으로 격차를 재편했다면, 생성형 AI는 그 위에 ‘학습 속도’라는 축을 하나 더 얹는다. 동일한 사무직이라도 누군가는 AI를 이용해 회의록 정리와 기초 자료조사를 넘어서 분석 틀 설계, 초안 반복개선, 고객응대 자동화 시나리오 작성까지 확장할 수 있다. 반면 누군가는 번역과 요약 수준에서 머물 수 있다. 둘 다 AI를 쓰지만, 생산성 곡선은 전혀 다르게 움직인다. 결국 조직은 같은 직무명 아래에서도 다른 역량 지형을 만나게 된다. 승진, 평가, 과업 배분, 재교육의 기준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교육과 훈련정책에 던지는 함의는 단순하지 않다. “AI를 써보라”는 권고만으로는 부족하다. 보고서가 보여주는 것은 노출 자체보다 반복적 사용과 과업 맞춤형 활용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고경력 사용자는 더 많이 협업하고, 더 높은 가치의 일을 시도하며, 더 높은 성공률을 보였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일회성 도구 소개가 아니라, 현업 맥락에서 반복 사용을 통해 숙련을 축적하게 만드는 훈련 구조다. 즉 AI 리터러시는 기능 설명이 아니라 작업 설계 능력, 모델 선택 감각, 결과 검증 습관, 반복 개선 루틴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직무 역량으로 다뤄져야 한다.

제미나이 생성이미지

생성형 AI는 ‘쉬운 기술’이 아니라 ‘배워야 하는 기술’이다

대중적으로 생성형 AI는 쉬운 기술로 인식돼 왔다. 별도 코딩 지식 없이 자연어로 질문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보고서가 보여주는 풍경은 정반대에 가깝다. 진입은 쉬울 수 있지만 성과를 내는 사용은 결코 자동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오래 사용한 사람이 더 복잡한 과업을 가져오고, 더 협업적으로 일하며, 더 높은 성공률을 기록한다는 사실은 생성형 AI가 이미 하나의 숙련 기술이 되고 있음을 뜻한다. 표면적으로는 누구에게나 열린 기술이지만, 실제로는 사용 전략과 경험이 누적될수록 격차가 커지는 기술이라는 얘기다.

이 말은 AI에 대한 낙관론을 부정하자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생성형 AI가 정말 강력한 도구라면, 그 힘은 당연히 균등하게 발현되지 않는다. 좋은 도구일수록 잘 다루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커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AI를 금지할 것인가 허용할 것인가” 같은 낡은 질문이 아니라, “누가 어떤 기회를 통해 이 도구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기업 안에서는 교육과 실험의 기회가 일부 부서에만 쏠리지 않도록 해야 하고, 학교 안에서는 단순 사용보다 문제정의와 검증을 포함한 활용 역량을 길러야 하며, 정책 차원에서는 중소기업·비전공자·저숙련 직군이 반복 연습의 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보고서가 끝부분에서 밝히듯, 장기 사용자 우위가 온전히 학습효과 때문인지, 아니면 조기 수용자의 기술적 성향과 생존편향 때문인지는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한다. 이는 중요한 단서다. 섣불리 “경험만 쌓이면 누구나 잘하게 된다”고 말할 수도 없고, 반대로 “원래 잘하는 사람만 잘한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다만 그 불확실성 자체가 오히려 더 큰 경고가 된다. 만약 학습효과가 크다면 지금의 격차는 방치할수록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조기 수용자 효과가 크다면 AI 혜택은 애초에 특정 집단에 먼저 집중되는 구조를 더 적극적으로 교정해야 한다. 어느 쪽이든 정책과 교육, 조직 운영은 ‘자연스러운 확산’을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으로 수렴한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AI를 모두에게 열린 기술이라고 부를 것인가, 아니면 먼저 배운 사람에게 더 큰 보상을 주는 기술이라고 부를 것인가. 아마 정답은 둘 다일 것이다. 생성형 AI는 분명 더 많은 사람에게 열리고 있다. 상위 10개 과업 집중도는 낮아졌고, 더 많은 개인적·일상적 사용이 유입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더 오래 사용한 사람들은 더 높은 가치의 일을 더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으며, 고부가가치 과업일수록 더 강한 모델이 더 자주 선택되고, API를 통한 자동화는 특정 업무영역을 더 빠르게 바꾸고 있다. 즉 AI는 개방성과 불평등을 동시에 확장하는 기술이다.

기술 혁신은 늘 새로운 기준을 만든다. 산업화는 기계를 다루는 능력을, 정보화는 정보를 검색하고 처리하는 능력을 갈랐다. 생성형 AI 시대가 만들고 있는 새로운 기준은 아마도 이것일 것이다. 질문을 잘 던지는가, 모델을 맞게 고르는가, 결과를 검증하고 다시 개선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일에 붙일 수 있는가. 그렇게 보면 AI 시대의 경쟁력은 결국 모델 자체에 있지 않다. 더 큰 차이는 언제나 사용자에게서 나온다. 이번 앤스로픽 보고서가 보여준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변화의 핵심은 AI가 더 똑똑해졌다는 사실보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그 AI를 더 능숙하게 다루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앞으로의 노동시장, 교육 현장, 기업 조직을 예상보다 더 깊게 갈라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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