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거부하는 대학, 스스로를 지우는 중이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리더십의 문제 – 상상력을 잃은 고등교육의 위기

AI를 두려워하는 대학, 변화의 문을 닫다

“AI는 대학의 본질을 위협하지 않는다. 대학을 위협하는 것은 무기력이다.” Ian Richardson(스웨덴 스톡홀름대 교수)은 최근 Times Higher Education(2025.11.11) 기고문에서 이렇게 썼다. 그는 “AI의 기술적 잠재력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대학의 전략적 무관심(strategic indifference)”이라고 지적한다. 대학이 AI를 새로운 도구가 아니라 불편한 질문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이미 혁신은 끝났다는 것이다. 30년의 에듀테크 시대가 지나도록 대부분의 대학은 여전히 ‘기술 수용의 당위성’을 논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리처드슨은 “인터넷 기반의 교육기술(EdTech)이 등장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대학은 여전히 변화의 언어를 익히지 못했다”고 말한다. 온라인 콘텐츠, 플립드 러닝, 학습관리시스템(LMS) 등 일부 개선이 있었지만 이는 “혁신이라기보다 미세 조정에 불과하다”고 그는 꼬집는다. “이보다 더 전략적으로 정보기술을 활용하지 못한 산업이 또 있을까?” — 그의 이 수사는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구조적 진단이다. 대학은 디지털 전환을 ‘도입’의 문제가 아닌 ‘제도 설계’의 문제로 다뤄야 했지만, 여전히 기술을 주변 기능으로 취급하고 있다.

타 산업은 변했는데, 대학만 멈춰 있다

리처드슨의 비교는 냉정하다. 그는 “은행은 AI로 리스크를 관리하고, 의료기관은 규제에도 불구하고 예측 분석을 도입했으며, 법률·컨설팅업계조차 AI를 업무 효율화에 사용하고 있다”고 적는다. 반면 대학은 여전히 “표절, 윤리, 학문적 무결성”에 대한 논의에 매몰돼 있다. 즉, AI를 ‘기술’로만 보고, ‘구조 혁신의 기회’로 보지 못한다. 대학의 디지털 전략이 “윤리 논의에 머물러 제도 설계의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은 교육의 보수성과 책임회피를 동시에 겨냥한다.

리처드슨은 대학의 모든 영역에서 이미 AI가 실질적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그는 “행정에서는 입학, 재무, 학생서비스, 거버넌스 전반의 효율화가 가능하며, 연구에서는 문헌검토 자동화와 대규모 데이터 분석, 교육에서는 적응형 학습과 개인화 피드백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구체적으로 적었다. 그러나 문제는 실행의 수준이 아니라 사고의 깊이다. “이 모든 가능성을 전략적으로 연결하고, 우선순위를 설정하며, 이해관계자 전원이 참여해야 한다”는 그의 문장은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닌 거버넌스 혁신의 필요성을 일깨운다.

그렇다면 왜 대학은 움직이지 않는가? 리처드슨은 “변화를 원치 않는 이들이 가장 강력한 권한을 쥐고 있다”고 말한다. 이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익숙하다. “학문적 자율성” “교육의 순수성” “윤리적 우려” 같은 말들이 변화의 속도를 늦추는 명분이 된다. 그는 이를 “technological change에 대한 무관심이 integrity 담론으로 위장된 상태”라고 비판한다. 즉, 기술 회피는 학문적 순수성의 문제로 포장되고, 혁신 부재는 오히려 ‘보수적 가치 수호’로 미화된다. 이 지점에서 대학은 더 이상 지성의 기관이 아니라 관성의 기관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AI의 발전을 주도해온 것은 바로 대학이다. 리처드슨은 “AI 연구를 이끌고 있는 곳이 대학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자기가 만든 변화를 제도화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산업·정부·시민사회가 함께 작동하는 ‘쿼드러플 헬릭스(quadruple helix)’ 모델을 언급하며, “이해관계의 정렬(alignment of interests)이 이루어질 때에만 대학은 진짜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AI를 단순히 ‘학습의 도구’로 두지 않고 ‘조직 설계의 도구’로 재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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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AI보다 무서운 것은 상상력의 결핍이다

“대학의 가장 큰 위협은 AI가 아니라 상상력의 부재(chronic failure of imagination)다.” 리처드슨은 이 문장을 통해 대학 위기의 본질을 정의한다. 그는 “대학이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구조 변화를 상상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AI는 단순히 교수법이나 평가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이 존재하는 이유와 사회적 정당성 자체를 재정의하는 사건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학은 여전히 “AI를 일시적 유행으로 취급하거나, 윤리적 논쟁의 부속품으로 여긴다.” 그 결과, 대학은 변화를 주도하기보다 따라가는 위치로 밀려난다.

리처드슨의 경고는 명확하다. “대학의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과 교육 인증의 독점(monopoly on legitimacy)은 이미 붕괴되고 있다.” 기업, 컨설팅 회사, 교육기관들이 ‘AI 인증 교육’을 내세우며 대학의 영역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과거 대학만이 수행하던 고등 수준의 교육·자격 부여·사회적 승인 기능이 이제 민간으로 분산되고 있다. “AI 기반의 대체 플랫폼이 사회의 요구를 더 빠르게 충족시키는 순간, 대학은 ‘무관심의 시대’ 속으로 사라질 것”이라는 그의 진단은, 기술보다 더 근본적인 ‘사회적 불신’을 경고한다.

AI는 대학을 위협하는 적이 아니라, 대학의 정체성을 시험하는 거울이다. 리처드슨의 글은 단순히 ‘AI를 활용하라’는 조언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다시 설계하라”는 요구다. AI는 대학의 경쟁자가 아니라, 대학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공공적인 기관으로 남을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리트머스다. 대학이 AI를 두려워할 때, 그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상상력의 실패다. 혁신은 기술이 아니라 리더십의 문제다. 변화는 도입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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