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은 오르는데, 사고력은 자라고 있는가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대학 강의실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과제 작성, 요약 정리, 개념 설명, 코딩 보조까지 AI는 이미 학습의 일상 도구가 됐다. 그러나 2026년 초, 국제기구와 글로벌 교육기업이 거의 같은 시점에 발표한 두 개의 연구는 상반된 질문을 던졌다. AI는 학생의 학습을 강화하는가, 아니면 사고력을 약화시키는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디지털 교육 전망 2026’ 보고서에서 생성형 AI가 교육 현장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그 효과가 자동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특히 학생이 문제 해결 과정을 AI에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았다. 보고서는 이를 ‘인지적 오프로딩’ 현상으로 설명한다. 사고의 일부를 기계에 외주화할 때 단기적 성과는 개선될 수 있으나, 장기적 사고 역량은 약화될 위험이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글로벌 교육기업 피어슨(Pearson)은 자사 디지털 학습 플랫폼에서 수집한 수천만 건의 학습 상호작용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AI 기반 학습 도구를 적절히 활용한 학생들이 일반 학습자보다 능동적 독서 행동을 보일 확률이 크게 높아졌다고 발표했다. AI가 단순히 답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고 개념을 재구성하도록 설계될 경우, 학습 참여도가 오히려 상승한다는 주장이다.
OECD가 지적한 핵심은 단순한 기술 사용 여부가 아니라, 사용 방식이다. 학생이 문제 해결 과정에서 스스로 사고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AI가 생성한 답안을 그대로 수용할 경우, 학습의 ‘과정’이 생략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성적 향상과 실제 역량 축적 사이에 괴리가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는 좋아질 수 있지만, 사고의 근육은 충분히 단련되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생성형 AI는 문장을 매끄럽게 정리하고 논리를 구조화하는 데 탁월하다. 이 기능이 반복적으로 사용될 경우, 학생은 점점 더 빠르게 결과물을 제출할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 개념을 정리하고, 오류를 수정하고, 사고를 확장하는 과정이 줄어들면 메타인지 능력은 약화될 수 있다. OECD는 이러한 현상을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교수학습 설계의 문제로 본다. 보고서는 따라서 “즉각적 정답 제공형 AI”보다, 질문을 통해 사고를 유도하는 설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학생이 스스로 논리의 빈틈을 발견하고 설명을 재구성하도록 돕는 구조라면, AI는 사고를 대체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고를 확장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핵심은 도구의 존재가 아니라, 교수자가 그것을 어떻게 배치하느냐다.
8천만 건의 데이터가 말하는 것
피어슨은 자사 디지털 학습 플랫폼에서 축적된 약 8천만 건의 학습 상호작용 데이터를 분석해 AI 도구의 효과를 설명했다. 분석 대상은 전자교재(eText)와 코스웨어를 사용하는 대학생들의 읽기, 노트 작성, 복습, 문제 풀이 행동이었다. 회사 측은 AI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학습자들이 단순 열람에 그친 학생들보다 ‘능동적 독서(Active Reading)’로 분류될 확률이 크게 높았다고 밝혔다. 여기서 능동적 독서란 단순히 텍스트를 읽는 수준을 넘어, 개념을 다시 설명해 보거나 질문을 생성하고 핵심을 요약하는 행동을 포함한다. 피어슨은 AI가 학습자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특정 개념을 다시 묻거나 재구성하도록 유도함으로써 학습 참여를 강화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반복 사용 조건에서는 해당 지표가 두드러지게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연구는 기업이 자체 플랫폼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한 결과라는 점에서 해석에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AI 기능이 어떻게 설계되었는지, 비교 집단의 구성은 어땠는지, 장기적 학습 성과와의 상관관계는 충분히 검증되었는지 등은 추가 검토 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데이터는 AI가 반드시 학습을 약화시키는 도구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OECD의 경고와 피어슨의 주장은 겉으로 보면 정반대처럼 보인다. 한쪽은 사고력 약화를 우려하고, 다른 한쪽은 학습 참여 증가를 강조한다. 그러나 두 입장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공통된 전제가 있다. AI가 학습의 질을 좌우하는 결정적 변수는 아니라는 점이다. 핵심은 설계와 맥락, 그리고 교수자의 개입 방식이다. OECD가 우려하는 것은 ‘무비판적 사용’이다. 정답을 즉시 제공하는 구조, 사고 과정을 생략하게 만드는 사용 방식은 장기적으로 학습 역량을 약화시킬 수 있다. 반면 피어슨이 제시한 긍정적 효과는 ‘구조화된 사용’에 기반한다. 질문 생성, 요약, 반복 확인 등 사고를 촉진하도록 설계된 기능이 전제되어 있다. 결국 같은 도구라도 배치 방식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이 지점에서 대학의 역할이 분명해진다. AI를 허용할 것인가 금지할 것인가의 이분법은 현실적인 선택지가 아니다. 이미 학생들은 AI를 사용하고 있고, 대학 역시 이를 행정과 교육에 통합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용하게 할 것인가”다. 평가 체계와 과제 설계가 변하지 않는다면, AI는 편의 도구로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교수학습 구조 자체를 재설계한다면, AI는 사고 확장의 보조 장치가 될 수 있다.
AI가 학습 과정에 깊숙이 들어오면서 가장 먼저 흔들린 영역은 ‘평가’였다. 보고서 작성과 서술형 과제는 생성형 AI가 가장 쉽게 개입할 수 있는 분야다. 실제로 여러 대학에서 AI를 활용한 과제 작성 사례가 적발되면서, 일부 강의는 대면 시험이나 자필 시험으로 회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은 근본적 해결이라기보다 임시적 방어에 가깝다. 문제의 핵심은 평가가 여전히 ‘결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정답의 정확성과 완성도를 기준으로 점수를 매기는 구조에서는 AI가 생산한 결과물이 인간의 작업과 구분되기 어렵다. 반면 과정 중심 평가, 즉 사고의 전개 과정과 토론 참여, 반복 수정 기록을 중시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경우 AI의 역할은 달라질 수 있다. AI를 활용하되, 그 사용 과정을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설계도 가능하다. 일부 대학에서는 이미 AI 사용을 전면 금지하기보다, 사용 여부를 명시하고 그 과정을 설명하도록 하는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이는 AI를 부정행위 도구로만 규정하기보다 학습 파트너로 인정하되 책임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평가 기준이 바뀌지 않는다면 AI는 통제 대상이 되겠지만, 기준이 재설계된다면 AI는 학습 설계의 일부로 편입될 가능성이 있다.

교수자는 무엇을 설계해야 하는가
AI가 학습 도구로 자리 잡으면서 교수자의 역할 역시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지식을 전달하고, 과제를 출제하고, 결과를 평가하는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생성형 AI는 지식 전달 기능의 상당 부분을 대체하거나 보완할 수 있다. 이때 교수자의 역할은 ‘정보 제공자’에서 ‘학습 설계자’로 이동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OECD 역시 보고서에서 교사의 개입을 핵심 변수로 지목한다. AI를 통해 학생이 즉각적 답을 얻는 상황에서도, 교수자가 추가 질문을 던지고 논리적 연결을 요구할 때 학습의 깊이는 달라진다. AI가 생성한 답안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근거를 검증하고 다른 관점을 비교하도록 설계할 경우 사고 확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교수자는 단순 감독자가 아니라 AI 활용의 방향을 설정하는 조율자가 된다.
피어슨이 강조한 ‘학습 배가 장치(Learning Multiplier)’ 역시 전제 조건이 있다. AI가 학습 흐름 속에 통합되어야 하며, 무작위적 사용이 아니라 목표 지향적 사용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도구의 효과는 교수학습 설계의 정밀도에 비례한다. AI는 자동으로 학습을 개선하지 않는다. 다만 설계가 정교할 때, 그 효과가 증폭될 수 있다. AI를 둘러싼 논쟁은 종종 단순한 선택 문제로 환원된다. 허용할 것인가, 금지할 것인가. 그러나 2026년 현재 대학의 현실은 이미 그 단계를 넘어섰다. 학생들은 AI를 사용하고 있고, 대학은 이를 완전히 차단할 기술적·제도적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 더욱이 연구와 행정 영역에서는 AI 활용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선택지는 ‘금지’가 아니라 ‘설계’다.
OECD의 경고와 피어슨의 데이터는 결국 같은 질문으로 수렴한다. AI가 학습을 약화시키는가 강화시키는가는 도구의 속성이 아니라 사용 구조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사고 과정을 생략하게 만드는 환경에서는 역량이 위축될 수 있다. 반대로 질문을 촉진하고 반복 학습을 구조화하는 설계에서는 참여와 이해도가 높아질 수 있다. 대학은 이 갈림길에서 어떤 방향을 선택할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평가 체계, 과제 설계, 교수자의 역할, 데이터 활용 방식까지 포함한 총체적 재설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AI는 일시적 혼란 요인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설계가 바뀐다면 AI는 학습의 보조 장치를 넘어 사고 확장의 촉매로 기능할 수 있다. 2026년의 논쟁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철학의 문제다. AI는 학생을 약화시키지도, 자동으로 강화하지도 않는다. 다만 대학이 어떤 학습 구조를 설계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는 달라진다. 이제 질문은 명확하다. 우리는 AI를 통제의 대상으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책임 있는 학습 파트너로 설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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