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후 취업률과 임금 자료를 기반으로 학과별, 대학별 교육 품질 비교… Rocki 교수, “ELA는 고등교육의 새로운 평가지표 돼야”
‘좋은 교육’은 어디에서 증명되는가
전통적으로 고등교육의 질은 수업의 충실도, 교수진의 역량, 커리큘럼의 체계성 등 교육 내부 요인으로 평가되어 왔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학생 만족도나 교수 평가와 같은 설문조사 기반 지표가 널리 활용되고 있으며, 외부 전문가나 고용주 의견을 반영하는 인증 방식도 활발하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들은 대체로 질적 평가에 머무르며, 실질적인 ‘성과’를 측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
폴란드의 마렉 로키(Marek Rocki) 교수는 이에 대해 다른 접근을 제시한다. 바로 졸업생이 노동시장에서 얼마나 빨리, 얼마나 높은 임금으로 취업하는지를 통해 교육의 질을 정량적으로 측정하자는 것이다. 그는 2024 유럽 고등교육 품질보증 포럼(EQAF)에서 발표한 논문을 통해 “교육의 질은 교실이 아니라 고용시장에서 드러난다”고 단언한다.
그가 근거로 삼는 것은 폴란드 교육부가 운영하는 ‘졸업생 경제적 이력 추적 시스템(Ekonomiczne Losy Absolwentów, ELA)’이다. 이 시스템은 졸업생의 고용 여부와 임금 수준을 5년간 추적하며, 이를 대학과 학과 단위로 정리해 공개한다. Rocki 교수는 이 데이터를 활용해 전공별, 학교별로 교육성과를 비교하고, 국가 단위의 품질 보증 시스템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분석했다.
이 에서는 ELA 시스템의 구조와 활용 사례, 주요 지표와 그 의미,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고등교육 평가의 새로운 방향에 대해 자세히 살펴본다.
ELA 시스템: 행정데이터 기반의 졸업생 성과 추적
ELA 시스템은 폴란드 교육과학부(Ministry of Science and Higher Education)의 요청에 따라 2017년부터 운영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사회보장기구(ZUS)와 고등교육 정보 시스템(POL-on)의 행정 데이터를 연계해 구축되었으며, 졸업생들의 경제 활동과 고용 현황을 실시간에 가까운 형태로 추적한다. 2024년 기준으로 이 시스템에는 2014년부터 2022년까지 약 300만 명에 달하는 졸업생의 정보가 누적되어 있다.
ELA가 가장 주목받는 이유는, 이 데이터가 대학·학과 단위로 세분화되어 제공되며, 졸업생 집단의 규모가 10명을 초과할 경우 고용률, 실업률, 평균 임금, 구직 소요 시간 등 약 700여 개의 지표로 분석된 결과가 자동 생성된다는 점이다. 이 자료는 매년 업데이트되며, 졸업생 집단별로 5년 동안의 데이터를 추적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예를 들어 2018년 졸업자의 경우 2019년부터 2023년까지의 5년간 고용 현황과 임금 추이를 확인할 수 있으며, 이는 특정 학과의 교육이 실제 노동시장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실증적 근거로 활용된다.
단, 이 시스템은 직업의 내용(예: 직무의 분야나 수준)은 추적하지 않기 때문에 전공 일치 여부는 분석할 수 없다. 그러나 Rocki 교수는 이 한계에도 불구하고, 구직 기간과 임금 수준만으로도 해당 교육의 시장성과 실효성을 진단하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핵심 지표: WWB와 WWZ로 본 고용성과
ELA 시스템의 중심에는 두 개의 핵심 지표가 있다. 바로 ‘상대 실업률 지수(WWB, Względny Wskaźnik Bezrobocia)’와 ‘상대 임금 지수(WWZ, Względny Wskaźnik Zarobków)’다. 이 두 지표는 단순한 고용률이나 평균 임금보다 더 정교하게 졸업생의 노동시장 성과를 평가하도록 설계되었다.
WWB는 특정 졸업생 집단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평균 실업률과 비교해, 졸업생의 실질적인 실업 위험이 얼마나 되는지를 상대적으로 나타낸다. 수치가 1보다 낮으면 해당 졸업생 집단의 실업률이 지역 평균보다 낮다는 뜻이고, 1보다 높으면 오히려 고용이 어려운 상황임을 의미한다.
WWZ는 각 졸업생의 평균 임금을 해당 지역의 평균 임금과 비교하여 산출한다. 이 지표가 1보다 크면 졸업생이 지역 평균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다는 뜻이며, 1보다 낮으면 상대적으로 낮은 보상을 받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 두 지표는 단일 수치로 졸업생의 노동시장 경쟁력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며, 경제 발전 수준이 다른 지역 간 비교에서도 왜곡 없이 분석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에서 실용성과 신뢰성이 높다. Rocki 교수는 “이 지표들은 단순히 ‘취업했는가’에 머무르지 않고, 졸업 후 얼마나 빨리 양질의 일자리를 확보했는가를 보여주는 구조적 지표”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ELA 데이터에 따르면, 동일한 학과(예: 경영학, 건축학, 컴퓨터과학 등)라도 대학에 따라 WWB와 WWZ 수치에 큰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한 대학의 컴퓨터과학 졸업생은 평균 임금이 지역 평균의 2배를 넘는 반면, 또 다른 대학은 평균 이하의 결과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러한 차이는 교육과정의 질, 실무 연계성, 산업 협력 여부, 교수진의 역량 등이 고용성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인증 평가와 노동시장 지표의 상관관계
Rocki 교수는 ELA 시스템의 데이터를 폴란드 고등교육 인증기관(PKA: Polska Komisja Akredytacyjna)의 평가 등급과 비교하는 분석을 통해, 대학 교육의 질 평가와 노동시장 성과 간의 상관관계를 살폈다. PKA는 각 학과에 대해 ‘우수(distinguished)’, ‘긍정(positive)’, ‘조건부(conditional)’, ‘부정(negative)’ 등으로 평가하며, 이는 주로 내부 품질보증 체계, 교수진 구성, 교육과정 충실도 등을 기준으로 이뤄진다.
분석 결과는 명확했다. 전공별로 ‘우수’ 평가를 받은 학과 졸업생들은 대체로 낮은 WWB(실업 위험)와 높은 WWZ(상대 임금)를 기록했으며, 반대로 ‘조건부’ 평가를 받은 학과의 졸업생들은 실업률이 높고 임금 수준이 낮은 경향을 보였다. 이는 인증 제도의 정성적 평가와 노동시장 지표 간에 일정 수준의 정합성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흥미로운 예외도 존재했다. 일부 학과는 ‘조건부’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졸업생의 고용성과가 매우 뛰어났으며, 반대로 ‘우수’ 평가를 받은 학과 중 일부는 졸업생이 높은 실업률과 낮은 임금을 기록했다. 이에 대해 Rocki 교수는 “PKA 평가가 교수진 확보나 연구 인프라 등의 형식적 요건에 집중될 경우, 실제 교육의 효과성과는 괴리가 발생할 수 있다”며, “ELA 지표는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정량적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분석은 특히 인증제도가 모든 전공에 동일하게 적용되기 어려운 현실에서, ‘성과 중심의 외부 평가’로서 졸업생 데이터가 유의미한 보완 지표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곧 고등교육 정책과 질 관리 체계 전반의 설계를 바꾸는 근거로도 활용될 수 있다.
정책적 시사점: 졸업생 데이터, 질 관리의 새로운 축
ELA 시스템이 제시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함의는 ‘정량적 결과 중심의 질 평가’가 고등교육 정책 전반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Rocki 교수는 기존의 인증 제도와 질 보증 체계가 주로 형식적 조건과 질적 진술에 의존해왔던 반면, ELA는 실질적인 교육 효과를 수치로 드러내는 실증적 지표라는 점에서 보완적이자 대안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이 시스템은 특정 학과가 동일한 명칭을 갖고 있더라도, 실제 커리큘럼 구성이나 졸업생 성과가 완전히 다를 수 있음을 보여주며, ‘과정 중심’의 평가에서 ‘성과 기반’ 평가로의 전환 필요성을 부각시킨다. 예컨대 ‘경영학’이라는 동일 전공이더라도, 한 대학은 졸업생들이 빠르게 고임금 일자리에 진입하고, 다른 대학은 구직에 장기간 소요되며 낮은 임금에 머무는 경우가 존재한다. 이는 교육의 실질적 질을 비교하고 정책 개선을 설계하는 데 있어 더 정교한 분석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또한 ELA는 매년 자동으로 데이터를 축적하고 공개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주기성이 불규칙하거나 일회성에 그치기 쉬운 인증 심사보다 시의성과 투명성이 높다. 이에 따라 고등교육기관 내부의 자기평가나 전략 수립뿐만 아니라, 교육부·품질보증기관의 정책 결정에서도 유용한 참고 지표로 기능할 수 있다.

Rocki 교수는 “ELA는 단순한 졸업생 취업률 조사 시스템이 아니라, 고등교육의 ‘책임성과 신뢰’를 회복하는 도구”라고 말한다. 그는 각 대학이 졸업생의 노동시장 성과를 자율적으로 진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교육내용과 교수법, 산학협력 전략 등을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ELA는 교육의 질이 ‘강의실’에서 시작되어 ‘사회’에서 증명되는 전체 과정의 일부임을 상기시키며, 미래 고등교육 평가 패러다임 전환의 중요한 전조로 작용할 수 있다.
강의실을 넘은 질 평가의 지평
고등교육의 질은 더 이상 교육과정 문서나 설문조사만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ELA 시스템이 보여주는 졸업생의 고용성과는, 교육의 실질적 효과를 정량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새로운 척도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폴란드의 이 시도는 유럽 전역, 나아가 한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의 고등교육 정책에 있어서도 중요한 실험이자 참고 사례가 된다.
교육은 사회로 연결되어야 하며, 그 연결의 완성은 졸업 이후 사회에서 학생들이 어떤 평가를 받는가로 귀결된다. 졸업생의 현실은 대학의 현실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 현실을 데이터로써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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