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고령화·지역현안 대응 중심으로 정책 전환…교육부, 평생학습도시 질적 재편 시동
교육부가 2026년 평생학습도시 선정 결과를 발표하면서, 지역 평생교육 정책이 단순한 도시 지정 확대를 넘어 ‘특성화’와 ‘연계’ 중심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올해 발표의 핵심은 숫자의 증가보다 내용의 변화에 있다. 전국 평생학습도시는 206곳으로 늘어 전국 기초자치단체의 91.2%를 차지하게 됐고, 동시에 인공지능(AI), 고령화, 지역 산업, 지역 현안 해결을 축으로 한 특성화 모델과 광역형 협력 모델이 본격 가동 단계에 들어갔다. 이번 정책은 “어디에 살든 평생학습 기회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보편적 목표 위에, 각 지역이 처한 문제를 학습 체계 안에서 풀어내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낸다. 이제 평생학습도시는 더 이상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행정 단위에 머무르지 않는다. 지역의 산업과 인구 구조, 디지털 전환 수준, 고령화 속도에 맞춰 도시별 학습 전략을 다시 설계하는 정책 실험의 장으로 바뀌고 있다.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은 기존 평생학습도시 가운데 9곳을 ‘특성화 평생학습도시’로 선정했다. 여기에는 강원 정선군, 대구 수성구, 부산 연제구, 부산 강서구·북구·사상구·사하구, 전남 곡성군, 전남 나주시, 제주 제주시, 충남 천안시, 충북 충주시가 포함됐다. 이들 지역은 단순한 일반 교양 프로그램이 아니라 AI·디지털 역량, 세대 간 학습, 지역산업 연계, 중장년 재교육, 생활기술 교육 등 지역 맞춤형 평생학습을 전면에 내세웠다.
구체적으로 보면 대구 수성구는 ‘디지털로 연결된 세대, 함께 성장하는 학습도시’를 내걸고 스마트 시니어 교실과 장애인 디지털 역량 강화 과정을 운영한다. 부산 연제구는 ‘부산의 디지털 신항로를 개척하는 학습도시 연제’를 내세워 디지털 항해 준비학교 등을 추진하고, 충남 천안시는 AI 및 디지털 자격증 취득과정과 찾아가는 디지털 프로그램을 중심에 둔다. 충북 충주 역시 생성형 AI 과정과 고령친화형 AI 교육을 포함한 프로그램을 내놓으며, 평생학습이 기술변화 적응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여기서 눈에 띄는 점은 AI가 일부 선도도시의 선택 과제가 아니라 지역 평생교육 정책 전반의 공통 언어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과거 평생학습이 문화교양이나 취미 프로그램 중심으로 이해됐다면, 이번 재편에서는 디지털 문해력과 기술 적응력이 지역 경쟁력의 핵심 조건으로 제시되고 있다. 특히 중장년과 고령층을 디지털 전환의 주변부에 남겨두지 않겠다는 정책 의지가 여러 도시의 사업 설계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신규 평생학습도시 확대…‘전국 시·군·구의 평생학습도시화’에 한 걸음 더
올해는 신규 평생학습도시도 5곳이 추가됐다. 강원 고성군, 경북 김천시, 경북 울릉군, 서울 서초구, 전남 장성군이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이로써 평생학습도시는 2025년 201곳에서 2026년 206곳으로 증가했고, 전국 기초자치단체 대비 비율도 88.9%에서 91.2%로 높아졌다. 교육부는 이를 통해 사실상 ‘모든 시·군·구의 평생학습도시화’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신규 지정 지역의 면면을 보면 지역별 지향점도 뚜렷하다. 김천시는 신중년사관학교와 평생교육지도사 양성과정을 제시했고, 울릉군은 찾아가는 동네경로당과 세대별 맞춤형 교육을 내세웠다. 서울 서초구는 우리동네 10분배움터와 평생학습 페스타, 서초구 아버지센터 운영 등을 포함하며 도시형 생활권 학습모델을 강화했다. 전남 장성군은 청년 로컬창업 프로젝트와 신중년 재취업, 여성 취·창업 교육을 통해 학습이 곧 지역 정착과 경제활동으로 이어지도록 설계했다.
이 대목은 평생학습 정책이 더 이상 ‘배움의 기회 확대’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청년 창업, 신중년 재취업, 고령층 맞춤형 지원, 생활권 내 접근성 강화 등은 모두 지역 인구구조와 노동시장 변화에 대응하는 정책 언어다. 즉, 평생학습은 교육정책이면서 동시에 지역정책이고, 복지정책이면서 산업정책의 성격까지 함께 띠기 시작했다.
전남대·서울시립대·창원대·원광대·한국교통대까지…대학이 들어온 광역형 평생학습
이번 발표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광역형 지역 평생학습 지원이다. 교육부는 광역 단위에서 평생학습도시와 대학, 기업이 하나의 연합체를 이루는 5개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경남, 광주, 서울, 전북, 충북이 그 대상이다. 이는 평생학습 정책의 무게중심이 개별 기초지자체를 넘어 광역 협력 체계로 옮겨가고 있음을 뜻한다. 무엇보다 대학 참여가 뚜렷하다. 경남권에는 연암공과대, 마산대, 한국승강기대, 창원대가 참여하고, 광주권에는 전남대, 광주보건대, 남부대, 광주대, 조선이공대, 송원대가 이름을 올렸다. 서울권에는 서울시립대, 세종사이버대, 동양미래대, 명지전문대, 숙명여대, 고려사이버대, 총신대가 함께하고, 전북권에는 전주대, 원광대, 전주기전대가 참여한다. 충북권 역시 극동대, 가톨릭꽃동네대, 건국대 글로컬캠퍼스, 우석대 진천캠퍼스, 청주대, 충북도립대, 충청대, 충북보건과학대, 한국교통대 등이 포함됐다.
이 구조는 대학을 지역 평생학습의 주변 협력기관이 아니라 핵심 인프라로 재배치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학령인구 감소 시대에 대학이 정규 학위과정 중심 기관으로만 남아서는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광역형 모델은 대학이 지역민의 재교육, 직업전환, 고령층 학습, 디지털 전환 교육을 함께 담당하는 ‘지역 학습 허브’로 이동하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교육부가 평생학습도시 정책을 통해 대학의 지역 역할을 다시 묻기 시작한 셈이다. 광주권은 고령층을 대상으로 건강활력 프로젝트와 기업연계 일자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서울권은 디지털·AI 역량 격차 해소와 관계자 역량 제고에 집중한다. 전북권은 로컬학습과 디지털 생활, 청소년 AI 메이커교육, 디지털 헬스케어 체험 등을 결합했고, 충북권은 지산학 연계 플랫폼과 지역밀착 프로그램을 강조했다. 대학이 단순히 강좌 일부를 맡는 것이 아니라, 지역이 안고 있는 과제의 해법 설계에 직접 참여하는 방식이다.
교육부는 올해 선정된 특성화 평생학습도시에 각 3000만 원 내외, 광역형 지원에는 각 5000만 원 내외의 사업비를 지원하고, 지방자치단체도 이에 상응하는 지방비를 투자하도록 했다. 정책 의지는 분명하지만, 이제 중요한 것은 선정 자체보다 실제 작동 여부다. 지역마다 내세운 AI, 고령층 지원, 로컬 창업, 생활기술, 세대연결이 단발성 프로그램 나열에 머문다면 이번 개편은 상징에 그칠 수 있다. 반대로 대학·지자체·기업이 역할을 분명히 나누고 주민 체감형 성과를 만들어낸다면, 평생학습도시는 지역 활력 회복의 실질적 플랫폼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
교육부는 2026년을 평생학습도시 정책이 “양적 확산을 넘어 질적 혁신으로 도약하는 원년”이라고 규정했다. 이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2001년 이후 누적 지정 확대에 무게를 두었던 정책이 이제는 특성화, 광역 연계, 대학 참여, 지역 문제 해결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발표의 진짜 의미는 206개라는 숫자보다, 평생학습이 지역의 생존 전략과 대학의 역할 재정립을 함께 묶는 정책 언어로 바뀌고 있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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