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AI 시대의 대학, 무엇을 지키고 어떻게 바꿀 것인가? ]③ AI는 대학을 더 포용적으로 만들까, 더 불평등하게 만들까

맞춤형 학습의 가능성과 사고의 외주화, 디지털 격차와 환경 비용까지, 대학은 이제 AI의 사회적 대가까지 함께 묻기 시작했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둘러싼 대학의 고민은 이제 더 이상 강의실 안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과제에 활용하는 문제, 교수들이 수업과 평가에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 대학 본부가 어떤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것인가의 문제가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질문은 훨씬 넓어졌다. AI는 학생의 학습을 어떻게 바꾸는가. 더 많은 사람에게 교육 기회를 열어주는가, 아니면 이미 존재하던 격차를 다른 형태로 확대하는가. 대학이 편리하게 쓰는 이 기술의 비용은 누가 치르고 있는가. 그리고 대학은 학생들에게 AI를 활용하는 능력만이 아니라, 이 기술이 사회에 남기는 흔적까지 함께 읽어내는 힘을 길러주고 있는가. 유럽 대학들이 최근 AI를 대하는 태도는 바로 이런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기술 활용을 넘어, 그 기술이 공동체와 사회에 남기는 장기적 영향까지 묻기 시작한 것이다.

이 흐름은 매우 자연스럽다. 대학은 단지 새 기술을 빨리 도입하는 기관이 아니라, 그 기술이 사회에 어떤 가치와 질서를 만들지 토론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대학을 떠나 노동시장과 시민사회로 나아간다. 대학에서 어떤 AI 문화를 배우느냐는 곧 사회 전체가 AI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 것인가와 연결된다. 만약 대학이 AI를 단지 편의와 생산성의 도구로만 가르친다면, 학생들은 기술을 더 많이 쓸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둘러싼 윤리와 권리, 환경과 노동, 포용과 배제의 문제를 읽지 못한 채 사회로 나갈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대학이 AI를 둘러싼 불편한 질문까지 함께 던진다면, 학생들은 더 느리고 번거롭더라도 기술을 비판적으로 다룰 수 있는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 오늘 대학의 AI 교육이 중요해진 이유는 여기 있다.

AI 리터러시는 사용 능력이 아니라 판단 능력이어야 한다

지금 많은 교육 현장에서 ‘AI 리터러시’라는 말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대체로 이 말은 학생과 교직원이 인공지능 도구를 기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 프롬프트를 적절하게 작성하고, 필요한 결과를 얻어내며, 업무나 학습에 연결할 수 있는 역량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런 역량은 필요하다. AI가 과학과 산업, 행정과 문화 전반에 걸쳐 스며들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이 학생들에게 최소한의 이해와 활용 능력도 길러주지 못한다면 그것 역시 문제다. 하지만 대학이 말하는 AI 리터러시는 여기서 멈출 수 없다. 기술을 다루는 손놀림만 익힌다고 해서 그것이 곧 교육이 되지는 않는다. 대학이 길러야 할 것은 사용 기술이 아니라 판단의 기준이다.

유럽의 대학들이 특히 강조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AI는 거의 모든 학문과 직업의 환경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따라서 기본적 이해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러나 그 이해는 단순 조작법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학생과 교직원, 행정가와 지도부 모두가 AI의 가능성과 한계를 함께 이해해야 하며, 어떤 상황에서 이 기술이 도움이 되고 어떤 상황에서는 오히려 사람의 역량을 약화시키거나 권리를 해칠 수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 훈련, 법적 이해, 데이터 감수성, 윤리적 인식, 비판적 사고가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디지털 문화 안에서 결합돼야 한다는 시각이다.

이 점은 대학 교육의 본질과도 맞닿아 있다. 대학은 단순히 사회가 요구하는 기술을 공급하는 훈련소가 아니다. 대학은 지식과 도구를 어떻게 해석하고, 그 사용을 어떤 공공적 기준 안에 놓을 것인지 성찰하게 하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AI 리터러시는 “이 기능을 쓰면 더 빨라진다”는 식의 효율 교육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왜 이 상황에서는 AI를 쓰지 않는 것이 더 나은가”, “이 답변이 매끄럽게 보이지만 어떤 편향을 품고 있을 수 있는가”, “내가 편리를 얻는 동안 무엇을 넘겨주고 있는가”, “기술이 제시한 길이 정말 나에게 필요한 길인가”를 묻는 훈련이어야 한다. 결국 대학이 길러야 할 것은 프롬프트를 잘 쓰는 사용자가 아니라, 기술의 힘과 한계를 동시에 읽어낼 수 있는 해석자다.

이런 의미에서 AI 교육은 실은 고전적인 대학 교육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 비판적 사고, 반성적 판단, 메타인지, 공공적 책임감 같은 가치가 새로운 기술 환경 속에서 다시 중요해지고 있을 뿐이다. 대학이 해야 할 일은 기술의 이름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유행어를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길러온 인간적 역량을 AI 시대의 언어로 재구성하는 일이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도구를 잘 다루는 능력’ 이상이다. 그 도구가 자신을 대신 생각하게 만들고 있는지, 자기 판단을 잠식하고 있는지,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남기는지 끝까지 따져보는 힘이야말로 AI 시대의 진짜 교양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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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을 돕는 도구인가, 사고를 대신하는 장치인가

AI를 둘러싼 가장 예민한 질문 중 하나는 이것이다. 이 기술은 학생의 학습을 도와주는가, 아니면 학생이 해야 할 사고를 대신 수행하게 만드는가. 실제로 생성형 AI는 학습 과정에서 매우 유용해 보이는 기능을 제공한다. 긴 글을 짧게 요약해주고, 어려운 개념을 다시 설명해주며,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글의 구조를 잡아주고, 코드를 수정해준다. 언뜻 보면 학생에게 맞춤형 조교가 하나 더 생긴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곧바로 대답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특히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워하던 학생들에게는 첫 진입 장벽을 낮춰주는 기능도 분명 있다.

문제는 이런 편의가 학습의 본질과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학에서 배우는 일은 단순히 정답을 빨리 얻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핵심은 답을 찾기까지의 과정, 잘못된 가설을 세워보고 수정하는 경험, 생각이 막힐 때 그 막힘을 견디는 시간, 문장을 고치며 자기 생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체감하는 과정에 있다. 그런데 AI가 이 과정을 지나치게 매끄럽게 만들어버리면, 학생은 결과를 손에 쥐면서도 정작 배워야 할 인지적 경험은 놓칠 수 있다. 너무 빨리 정리된 개요, 너무 손쉽게 나온 표현, 너무 매끈한 논리 구조는 학습을 돕는 대신 사고의 고통과 시행착오를 생략하게 만들 수 있다. 대학이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유럽의 논의에서도 이런 긴장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AI는 적절히 쓰일 경우 비판적 사고를 자극할 수도 있지만, 무비판적으로 의존할 경우 문제 해결 능력과 자율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특히 학습 과정에서 스스로 사고하는 힘보다 ‘어떻게든 그럴듯한 답을 빨리 얻는 법’이 앞서기 시작하면, 학생은 점점 더 자기 생각의 소유자가 아니라 기술이 정리해준 문장의 사용자로 남게 된다. 이는 단지 공부 습관의 변화가 아니다. 대학이 길러야 할 학문적 시민성, 곧 질문을 만들고 근거를 세우고 스스로 판단하는 힘이 약해지는 문제다.

이 때문에 대학은 AI를 학습 지원 도구로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학생의 인지적 주체성을 대체하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다. “어디까지 써도 되는가”라는 규정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 “무엇을 위해 써야 하는가”라는 교육적 질문이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개념 이해를 돕는 설명, 초안 아이디어 정리, 반복적인 문법 교정 같은 영역은 어느 정도 활용이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학생의 논지 형성, 근거 선택, 해석의 방향, 윤리적 판단처럼 학습의 중심에 놓인 부분까지 AI가 대신 떠맡기기 시작한다면, 대학은 학습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를 외주화하는 문화에 동참하게 된다. AI를 둘러싼 대학의 진짜 고민은 그래서 단순한 허용 범위가 아니라 학습의 주체를 어디에 둘 것인가의 문제다.

학생은 더 똑똑해지는가, 더 의존하게 되는가

AI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적절히 활용하면 학생들은 더 빠르게 정보를 찾고, 더 나은 초안을 만들고, 더 깊이 있는 학습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이다. 실제로 일부 학생들에게 AI는 학습을 시작하게 해주는 발판이 될 수 있다. 막막했던 과제의 첫 문장을 열게 해주고, 낯선 전공 용어를 이해하게 돕고, 반복적 질문을 부담 없이 던질 수 있게 만드는 기능은 분명하다. 특히 학습 과정에서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기 어려웠던 학생에게 AI는 문턱을 낮추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이 점만 보면 AI는 학생을 더 유능하게 만드는 보조 장치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의 풍경도 있다. AI를 자주 활용할수록 학생이 점점 더 자기 힘으로 시작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다. 아이디어 구상은 늘 AI에게 맡기고, 긴 글은 읽기 전에 요약부터 받고, 초안은 언제나 AI가 먼저 작성하고, 모르는 개념은 스스로 자료를 찾기보다 AI의 설명에 먼저 의존하는 식의 학습 습관이 굳어질 수 있다. 이때 학생은 외형상 더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인지적 인내력과 탐색 능력을 조금씩 잃게 될 수 있다. 더 많은 정보를 다루면서도, 정작 무엇을 신뢰할지 스스로 가려내는 힘은 약해지는 역설이 생기는 것이다.

유럽 대학들이 특히 주목하는 것도 이런 의존성의 문제다. 학생이 AI를 ‘보조 도구’가 아니라 ‘생각의 기본 환경’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기술의 출력이 점차 자신의 사고를 선도할 가능성이 커진다. 표현을 만들고 구조를 짜고 결론의 방향을 정하는 과정이 AI의 제안에 끌려가면, 학생은 자기 생각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제안된 생각 중 그럴듯한 것을 고르는 방식으로 학습하게 된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글은 더 정돈돼 보이고, 발표는 더 매끄러워 보이며, 작업 속도는 빨라진다. 그러나 그 안에서 무엇이 학생 스스로 형성한 판단인지, 무엇이 기술의 제안에 대한 선택인지 점점 흐려진다.

이 때문에 대학은 ‘AI를 쓴 학생’과 ‘AI를 쓰지 않은 학생’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접근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중요한 것은 학생이 AI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다. 기술을 비판적으로 활용하며 자신의 학습을 확장하고 있는가, 아니면 자기 사고의 빈자리를 AI로 계속 메우고 있는가. 대학이 정말 고민해야 할 것은 후자다. 학생이 AI를 쓰는 능력보다, AI 없이도 자기 생각을 세우고 다시 검토할 수 있는 힘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더 똑똑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더 많이 의존하게 되는 상황, 이것이야말로 AI 시대 대학이 가장 민감하게 살펴야 할 교육적 위험일지 모른다.

맞춤형 교육의 가능성, 그러나 모두에게 같은 기회는 아니다

AI를 둘러싼 논의가 단지 비관으로 흐를 수만은 없는 이유도 분명하다. 이 기술은 실제로 대학 교육의 포용성을 넓힐 가능성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학생이 같은 속도로 배우는 것은 아니고, 같은 형식의 수업에서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글보다 음성 설명에 더 잘 반응하고, 누군가는 반복적이고 세분화된 안내가 있어야 학습이 시작된다. 어떤 학생은 정해진 시간과 공간의 강의보다 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접근할 수 있는 자료를 필요로 한다. 이럴 때 AI 기반 도구는 개인화된 설명과 보조, 맞춤형 학습 경로, 접근성 높은 콘텐츠 제공을 통해 기존 강의실이 다 담아내지 못했던 수요를 일부 메울 수 있다. 특히 신경다양성 학습자나 평생학습자, 시간 제약이 큰 학습자에게는 AI가 새로운 참여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이 가능성은 실제로 대학이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전통적 대학 교육은 종종 ‘표준적 학습자’를 중심으로 설계돼 왔다. 빠르게 읽고 쓰고, 즉각 반응하고, 강의실 중심의 상호작용에 잘 적응하는 학생이 비교적 유리한 구조였다. 그렇다면 AI는 이 표준을 조금 흔들 수 있다. 학생마다 설명 방식과 자료 형식, 피드백의 깊이를 달리하는 환경이 가능해질수록, 대학은 기존 교육 틀에서 소외되던 학생을 더 많이 끌어안을 여지가 생긴다. 이 점에서 AI는 단지 기술적 도구가 아니라 대학 교육이 그동안 놓쳐왔던 다양성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전제가 있다. 이 가능성은 자동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오히려 설계가 잘못되면 AI는 기존 불평등을 다른 방식으로 확대할 위험도 함께 품고 있다. 예를 들어 맞춤형 학습 도구를 안정적으로 활용하려면 양질의 기기와 네트워크, 디지털 이해, 충분한 시간과 지원이 필요하다. 경제적 여건이 좋은 학생,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학생, 영어 기반 도구를 자연스럽게 활용할 수 있는 학생일수록 더 큰 혜택을 볼 수 있다. 반대로 그렇지 않은 학생은 같은 대학 안에서도 훨씬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 ‘개인화’가 곧 ‘평등’은 아니라는 뜻이다.

게다가 AI가 제안하는 맞춤형 지원은 결국 과거 데이터와 패턴에 기반한다. 이 과정에서 문화적 편향, 언어적 차이, 특정 집단에 대한 낮은 대표성이 개입하면, 가장 도움이 필요한 학생에게 דווקא 부정확하거나 불충분한 지원이 제공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포용적 AI 교육은 단순히 기능을 넣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학생을 기준으로 설계하고 있는지를 끝까지 묻는 문제다. AI가 더 포용적인 대학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은 기술이 원래 착해서가 아니라, 대학이 불평등을 재생산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설계하고 감시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AI는 포용의 기술인가, 새로운 디지털 격차의 시작인가

디지털 격차는 흔히 인터넷 접속 여부나 기기 보유 여부 같은 문제로만 이해되기 쉽다. 그러나 AI 시대의 격차는 훨씬 복합적이다. 누가 더 좋은 모델에 접근할 수 있는지, 누가 더 높은 수준의 유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지, 누가 더 적절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지, 누가 AI의 오류와 편향을 판별할 수 있는지에 따라 격차는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 같은 도구를 쓰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사용의 질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대학 안에서는 이런 차이가 더 선명해질 수 있다. 이미 디지털 친화적 환경에서 성장한 학생, 영어 자료 접근성이 높은 학생, 시간적 여유가 있어 여러 도구를 시험해볼 수 있는 학생은 AI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빠르게 흡수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기초적인 디지털 활용 역량이 충분하지 않거나, 언어 장벽을 느끼거나, 경제적 이유로 안정적 도구과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하는 학생은 같은 기술 변화 속에서도 뒷걸음질치게 될 수 있다. 이는 단지 개인의 적응 속도 차이가 아니다. 대학이 모든 학생에게 같은 출발선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럽의 논의가 AI 교육을 ‘보편적 기본 소양’의 문제로 다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학은 AI를 일부 기술 전공자나 적극적 사용자만의 영역으로 두어서는 안 된다. 모든 학생이 최소한의 이해를 갖고, 어떤 기능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AI가 새로운 특권의 언어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동시에 대학은 학습지원센터, 도서관, 교수학습 지원 조직, 정보화 부서가 함께 학생들의 실제 사용 현실을 파악하고 지원해야 한다. 단순히 수업에서 “AI를 활용해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학생은 그 말 자체가 또 하나의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대학이 주목해야 할 것은 격차의 양적 확대보다 질적 변화다. 과거의 디지털 격차가 정보 접근의 차이라면, 지금의 AI 격차는 판단 역량과 자기주도성, 시간 사용과 학습 전략의 차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더 빨리 더 많이 정보를 처리하는 학생이 유리한 것이 아니라, AI를 활용하면서도 자기 생각과 학습 리듬을 잃지 않는 학생이 유리한 환경이 생길 수 있다. 이 격차는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훨씬 깊다. 대학이 AI를 포용의 기술로 만들고 싶다면, 바로 이 보이지 않는 격차를 더 섬세하게 읽어야 한다.

데이터센터와 전력, 대학은 AI의 환경 비용을 얼마나 알고 있나

AI를 둘러싼 대학의 논의에서 아직 상대적으로 덜 다뤄졌지만 앞으로 더 중요해질 문제는 환경 비용이다. 생성형 AI는 화면 안에서 가볍게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학생은 질문을 입력하고, 몇 초 뒤 답을 받는다. 교수는 긴 문서를 요약하고, 행정 직원은 초안을 정리한다. 사용자는 그저 편리함을 경험하지만, 그 뒤에서는 막대한 연산 자원과 전력, 냉각 시스템, 데이터센터 인프라가 작동하고 있다. AI의 편의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 소비와 물 사용, 자원 채굴, 전자폐기물의 축적 위에서 가능해진다. 대학이 AI를 더 폭넓게 활용할수록 이 비용 역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

유럽 대학들이 이 문제를 교육의 주제로까지 끌어올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대학은 동시에 탄소중립과 지속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캠퍼스의 에너지 절감, 친환경 운영, ESG 가치, 기후위기 대응 교육을 강조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AI 활용 확대를 경쟁적으로 추진한다면 어떤 긴장이 생길까. 교육의 혁신을 위해 더 많은 AI를 쓰자고 말하는 동시에, 그 AI가 어디에서 얼마나 많은 자원을 먹고 있는지 제대로 묻지 않는다면 대학의 지속가능성 담론은 공허해질 수 있다.

이 문제는 단지 “AI는 환경에 나쁘다”는 식의 단순한 선언으로 다뤄질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환경 비용을 의식하는 태도다. 모든 AI 활용이 같은 수준의 자원을 소모하는 것도 아니고, 목적에 따라 효율과 필요성이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대학은 ‘어떤 활용이 정말 가치 있는가’를 더 엄격하게 따져야 한다. 단지 요약의 편의를 위해, 단지 홍보성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단지 더 빠른 문장 생산을 위해 막대한 자원을 소비하는 일이 정당한가를 묻는 것이다. 교육과 연구의 실질적 가치가 큰 활용과, 그저 편리함을 위한 활용을 구분하는 감각이 없다면 대학은 자신도 모르게 지속가능성의 언어와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학생 교육 차원에서도 이 문제는 중요하다. AI를 너무 자연스럽게 쓰는 세대일수록, 그 기술의 물질적 기반을 상상하지 못할 수 있다. 대학은 학생들에게 AI의 환경 비용을 죄책감의 언어로만 가르칠 필요는 없다. 다만 어떤 기술도 공짜로 존재하지 않으며, 디지털의 편의 역시 실제 세계의 자원과 노동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게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AI는 신비로운 마법이 아니라, 사회적 선택의 결과로 이해될 수 있다. 대학의 역할은 바로 이런 인식의 틀을 제공하는 데 있다.

기술 뒤에 가려진 인간 노동, AI는 누구의 희생 위에서 작동하나

AI는 흔히 자동화의 상징으로 이야기된다. 인간의 개입을 줄이고, 시스템이 스스로 학습하며, 효율적으로 결과를 내놓는 기술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이 매끈한 이미지 뒤에는 여전히 많은 인간 노동이 숨어 있다. 특히 생성형 AI의 학습과 유지 과정에는 데이터 라벨링, 콘텐츠 검수, 위험한 표현과 유해 이미지를 걸러내는 작업이 필수적으로 동반된다. 이 과정의 상당 부분은 글로벌 사우스의 저임금 노동에 의존해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대학이 화면 앞에서 편리하게 사용하는 AI의 뒤편에서, 누군가는 불안정한 노동과 낮은 보수, 심리적 손상을 감내하며 모델을 ‘정리’하고 있는 셈이다.

이 문제는 대학이 왜 AI 윤리를 더 넓은 맥락에서 가르쳐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윤리를 단지 “과제 표절을 하면 안 된다”거나 “개인정보를 조심해야 한다”는 수준으로만 다룰 수는 없다. 기술이 어떤 글로벌 공급망과 노동 구조 위에서 가능해지는지, 그 과정에서 이익과 위험이 어떻게 불균등하게 배분되는지까지 함께 봐야 한다. 특히 공공성과 정의를 이야기하는 대학이라면, AI를 둘러싼 국제적 불평등 구조를 외면한 채 ‘혁신’만 말하기는 어렵다.

이런 문제는 기술 사용자의 일상에서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학생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받는다. 교수는 번역과 요약 기능을 쓰고, 행정가는 문서 초안을 다듬는다. 사용 경험은 간결하지만, 그 뒤에서 어떤 노동이 이루어졌는지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대학의 역할은 더 중요해진다. 대학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해야 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AI가 정말 누구의 희생 위에서 돌아가는지, 기술의 이익을 누리는 쪽과 비용을 감당하는 쪽이 어떻게 나뉘는지 질문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고등교육이 해야 할 사회적 해석의 일이다.

이 점에서 AI 교육은 기술의 사용법만이 아니라 기술의 정치경제를 읽는 훈련까지 포함해야 한다. 학생들이 AI를 도구로만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도구가 작동하는 산업 구조와 지정학, 노동 체계까지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대학다운 교육이 된다. 인공지능은 미래의 언어이지만, 동시에 현재의 불평등한 세계질서 속에서 작동하는 산업이기도 하다. 대학이 이 둘을 함께 보여주지 못한다면, AI 교육은 쉽게 반쪽짜리가 될 수 있다.

대학 공동체의 웰빙과 관계, AI는 무엇을 약화시키는가

AI가 대학에 가져오는 영향은 성적과 과제, 행정 절차만으로 측정되지 않는다. 대학 공동체의 관계 맺음 방식, 학생들의 정서적 안정감, 학습과 사회적 상호작용의 습관까지 조금씩 바꿀 수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대학은 이미 학생들의 정신건강 악화, 고립감, 대면 관계의 약화라는 과제를 깊이 경험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AI가 더 많은 영역을 대신하기 시작하면, 대학은 또 다른 종류의 고립과 수동성을 마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학생이 어려운 개념을 이해할 때, 이전에는 교수나 조교, 동료 학생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질문하고 설명을 듣고 토론하며 배웠다면, 이제는 우선 AI에게 묻는 습관이 자리 잡을 수 있다. 물론 이 자체가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과정이 인간과의 관계를 대체하는 기본 경로가 될 때다. 대학 교육은 단지 정보 전달이 아니라, 질문을 주고받고 서로의 해석을 수정하며, 낯선 관점을 만나는 사회적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AI가 점점 더 ‘충분한 대답’을 빠르게 제공할수록 학생은 덜 묻고 덜 토론하며 덜 관계 맺게 될 가능성이 있다.

유럽의 대학들이 웰빙과 인간 관계를 AI 논의 안에 포함시키는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기술은 언제나 시간을 절약해주는 듯 보이지만, 그 절약된 시간이 반드시 더 풍부한 인간 경험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학생들은 점점 더 혼자 화면과 상호작용하면서 학습하고, 더 적은 사회적 마찰 속에서 과제를 처리하며, 더 매끄럽지만 더 외로운 방식으로 대학 생활을 해나갈 수도 있다. 대학이 정말 지켜야 할 것은 성적 처리의 효율만이 아니라, 학생들이 인간으로서 서로 배우고 성장하는 경험의 밀도다.

AI가 학생의 웰빙에 미치는 영향은 곧바로 수치화되기 어렵다. 하지만 대학은 바로 그런 것들을 끝까지 살피는 기관이어야 한다. 어떤 기술이 학습 효율을 조금 높일 수는 있어도 공동체의 대화와 만남, 실패를 견디는 관계적 경험을 약화시킨다면, 그 비용은 결코 작지 않다. 대학이 AI를 둘러싼 대화를 학생의 정신건강과 사회적 관계 문제까지 확장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기술은 언제나 무언가를 쉽게 만들어주지만, 그 과정에서 무엇을 약화시키는지도 함께 물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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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역할은 기술 적응을 넘어 사회적 판단을 가르치는 일이다

AI를 둘러싼 지금의 논쟁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대학은 이 기술 앞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단순히 시장이 요구하는 기술을 가르치고, 학생들이 취업에 필요한 도구를 익히도록 돕는 데 그쳐야 하는가. 아니면 기술이 사회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비용을 감당하는지, 어떤 가치를 지켜야 하는지 함께 따져 묻는 공론장의 역할까지 수행해야 하는가. 유럽의 대학들이 최근 보여주는 태도는 후자에 가깝다. AI는 대학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며, 대학이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곧 사회의 태도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이것은 대학의 오래된 정체성과도 연결된다. 대학은 언제나 사회 변화의 현장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 변화를 한 걸음 물러서서 해석하는 기능을 맡아 왔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대학은 그것을 단지 활용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그 의미를 분석하고 윤리적 기준을 세우며 사회적 대화를 조직해왔다. AI 역시 마찬가지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최신 도구에 적응하는 법뿐 아니라, 그 도구를 둘러싼 사회적 판단의 기준을 배우는 일이다. 기술을 더 잘 쓰는 사람보다, 기술을 더 책임 있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 결국 더 중요한 시대가 오고 있다.

이 때문에 대학의 AI 대응은 결코 학과 몇 곳의 커리큘럼 개편이나 행정 시스템 업그레이드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그것은 대학이 어떤 시민을 길러낼 것인가의 문제다. AI 시대의 시민은 단순히 기술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도 아니고, 무조건 빠르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필요할 때 활용하되, 그것이 공동체와 사회에 미치는 결과를 끝까지 따져볼 수 있는 사람, 편의와 효율의 약속에만 매달리지 않고 권리와 책임, 공정성과 지속가능성을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다. 대학이 이런 시민을 길러내지 못한다면, AI 교육은 결국 기능 훈련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대학의 과제는 단순한 기술 적응이 아니다. AI를 어떻게 수업에 넣을 것인지, 어떤 서비스를 도입할 것인지, 얼마나 빨리 따라갈 것인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학생과 교직원, 시민이 어떤 태도로 이 기술을 마주하게 할 것인지다. 그 질문 앞에서 대학은 여전히 중요한 기관이다. 속도가 빠른 시대일수록, 대학은 판단의 속도를 늦출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어야 한다. 유행의 방향을 따라가는 대신, 정말 가치 있는 변화가 무엇인지 끝까지 묻는 공간이어야 한다. AI 시대의 대학이 해야 할 일은 바로 그것이다.

AI는 분명 대학을 바꿀 것이다. 더 유연한 학습, 더 세분화된 지원, 더 빠른 접근성, 더 다양한 형식의 교육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어떤 학생에게는 이것이 새로운 기회가 되고, 기존 강의실이 제공하지 못했던 포용의 문을 열어줄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AI는 사고를 외주화하게 만들고, 디지털 격차를 새로운 방식으로 심화시키며, 환경 비용과 보이지 않는 노동, 공동체의 관계 약화를 동반할 수도 있다. 즉, AI는 본질적으로 대학을 더 좋게도 더 나쁘게도 만드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작동할지는 대학이 무엇을 기준으로 교육하고 통제하며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지금 대학이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AI를 도입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학생에게 어떤 방식으로 도움이 되게 할 것인가, 어떤 영역은 인간의 판단으로 끝까지 지켜낼 것인가, 어떤 비용을 감수할 수 있고 어떤 비용은 감수해서는 안 되는가를 물어야 한다. 포용과 불평등 사이의 갈림길은 기술의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기술을 다루는 대학의 태도 안에 있다.

1회에서 대학은 AI 앞에서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를 물었다. 2회에서는 그 원칙을 어떻게 전략과 거버넌스로 설계할 것인가를 살폈다. 그리고 마지막 3회에서 도달하는 결론은 분명하다. AI는 대학의 도구이지만, 동시에 대학을 시험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대학은 더 많은 기술을 받아들일수록 오히려 더 선명한 기준을 가져야 한다. 더 많이 활용할수록 더 깊게 책임져야 하고, 더 편리해질수록 더 넓은 사회적 대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결국 AI 시대 대학의 과제는 기술 적응이 아니라 공공적 판단의 회복이다. 더 빠른 답을 내놓는 대학보다 더 나은 질문을 끝까지 붙드는 대학, 바로 그런 대학이 앞으로의 AI 시대를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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