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AI는 누구의 편인가] ② AI는 노동을 확장할 수 있는가 – 친노동 기술 설계의 조건

자동화를 넘어, 인간의 숙련을 키우는 AI는 어떻게 가능한가

AI가 노동을 확장한다는 말은 단순히 “보조 도구”가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판단과 숙련을 중심에 두고 기술을 배치하는 구조를 의미한다. 자동화형 기술은 인간의 과업을 세분화하고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반면 노동확장형 기술은 인간이 수행하던 핵심 판단을 유지한 채, 반복적이고 정보 처리적인 부분을 보조한다. 이 차이는 미묘해 보이지만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전혀 다르다. 예를 들어 진단 알고리즘이 의사를 대체한다면 의료 노동은 축소된다. 그러나 같은 알고리즘이 1차 판독을 지원하고 의사의 최종 판단을 강화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의사는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할 수 있고, 복잡한 사례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생산성은 오르지만 전문성은 유지된다. 노동이 줄어드는 대신 재배치된다. 기술이 누구의 편인가를 가르는 기준은 바로 이 지점이다.

교육 현장도 마찬가지다. AI가 강의를 대체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면 교사의 역할은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수업 자료 준비와 평가 분석을 지원해 교사가 학생 개별 지도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만든다면, AI는 교사의 전문성을 확장하는 도구가 된다. 같은 기술이라도 설계 철학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

2026년 2월 발표된 MIT 경제학자들의 ‘Pro-Worker AI’ 연구는 기술을 다섯 가지 경로로 구분한다. 노동증강(labor-augmenting), 자본증강(capital-augmenting), 자동화(automation), 숙련평준화(expertise-leveling), 새로운 과업 창출(new task creation)이라는 분류다. 이 구분의 핵심은 단순한 설명이 아니다. 어떤 유형의 기술이 확산되느냐에 따라 노동의 지위가 달라진다는 점을 구조적으로 보여준다. 자동화는 기존 과업을 제거한다. 숙련평준화는 고숙련자의 판단을 소프트웨어로 이전해 진입 장벽을 낮춘다. 반면 노동증강과 과업 창출은 인간의 역할을 중심에 둔다. 특히 연구진은 ‘새로운 과업 창출’만이 명확히 친노동적(unambiguously pro-worker)이라고 규정한다. 기존 업무를 줄이는 동시에 새로운 역할이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생산성 증가는 노동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의료 현장을 예로 들면 차이는 분명하다. 진단 알고리즘이 의사를 대체하도록 설계된다면 자동화다. 그러나 1차 판독을 지원하고 최종 판단은 의사가 담당하도록 설계된다면 노동증강에 가깝다. 같은 알고리즘이라도 설계 철학에 따라 분류가 달라진다. 교육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강의를 대체하는 시스템은 자동화이지만, 교사의 수업 준비와 평가 분석을 보조해 개별 지도 시간을 늘려주는 시스템은 노동증강이다. 기술의 성능보다 배치 방식이 더 결정적이다.

자동화 편향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연구진은 현재 AI 개발 흐름이 자동화와 숙련평준화에 과도하게 기울어 있다고 진단한다. 그 배경으로는 기업 인센티브 구조와 세제 설계, 그리고 기술 서사를 지목한다. 자동화는 인건비 절감이라는 형태로 즉각적인 수익 효과를 보여준다. 반면 노동증강이나 과업 창출은 조직 재설계와 숙련 축적을 요구하며, 효과가 장기적으로 나타난다. 단기 실적을 압박받는 기업 환경에서는 자동화가 더 설득력 있는 선택이 된다. 세제 구조 역시 무관하지 않다. 설비와 소프트웨어 투자에는 감가상각 혜택이 주어지지만, 노동자 재교육이나 숙련 축적에 대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자본 투자는 제도적으로 우대받고, 인적 자본 투자는 비용으로 남는다. 이러한 구조는 기술 선택을 자동화 쪽으로 밀어준다. 자동화가 자연스러운 진화처럼 보이는 이유는 기술 자체보다 인센티브 설계에 있다. 연구를 주도한 Daron Acemoglu는 이전 저작에서도 기술 발전이 항상 노동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흐르지 않았음을 지적해왔다. 이번 분석 역시 같은 맥락에 서 있다.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으며, 특정 이해관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될 수 있다는 것이다. AI의 확산이 불평등 심화를 동반할 가능성은 기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어떤 유형의 기술이 선택되고 장려되는가에 달려 있다는 해석이다.

핵심은 ‘과업(task)’이다. 직업은 여러 과업의 집합이며, 기술은 그중 일부를 대체하고 일부를 강화한다. 자동화가 빠르게 확산되더라도 동시에 새로운 과업이 창출된다면 고용은 재구성될 수 있다. 그러나 과업 창출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노동시장은 압축된다. 생산성은 상승하지만 노동 수요는 줄어드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연구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산업혁명기 기계화는 단순 반복 업무를 줄였지만, 동시에 새로운 직무를 만들어냈다. 정보통신 기술 역시 기존 사무 업무를 축소했지만, 데이터 분석과 플랫폼 관리 같은 새로운 역할을 탄생시켰다. 문제는 현재의 AI 개발이 과업 창출보다는 기존 과업의 세분화와 대체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생성형 AI는 보고서 작성, 코드 작성, 번역, 디자인 초안 등 중간 숙련 이상의 과업까지 자동화 영역으로 편입시키고 있다. 만약 이 변화가 새로운 직무 설계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노동 수요는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생산성의 증가는 자동적으로 고용 확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과업을 설계하지 않으면 노동은 확장되지 않는다.

연구는 자동화 편향이 시장의 자연스러운 결과라기보다 정책과 제도의 산물에 가깝다고 본다. 그렇다면 방향을 바꾸는 열쇠 역시 정책에 있다. 핵심은 기술 유형별 인센티브를 재조정하는 일이다. 자동화형 기술이 세제와 투자 구조에서 우위를 점하는 환경을 그대로 둔 채, 노동증강형 AI가 확산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자본은 구조적으로 가장 빠르게 수익을 실현할 수 있는 경로를 택한다. 우선 세제 설계가 문제로 지적된다. 설비 투자와 소프트웨어 도입은 감가상각을 통해 재무적으로 유리하게 처리되지만, 노동자 재교육과 숙련 투자에 대한 지원은 제한적이다. 인적 자본 축적은 비용으로 인식되고, 기계와 코드에 대한 투자는 자산으로 남는다. 이 차이는 기업의 의사결정을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규정한다. 노동확장형 AI를 장려하려면 교육훈련 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 확대, 직무 재설계에 대한 공공 지원, 연구개발 자금의 방향 조정이 병행되어야 한다. 또 다른 변수는 시장 구조다. 플랫폼 기업이 알고리즘을 통해 노동을 통제하는 구조가 고착되면 AI는 효율 개선보다 감시와 통제의 도구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경쟁이 유지되고, 노동자의 전문성이 제도적으로 보호된다면 AI는 협력형 경로로 설계될 여지가 커진다. 반독점 규제와 데이터 접근성 문제는 기술 설계 방향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기술 정책은 산업 정책과 분리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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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이 논의는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의료 분야에서 AI는 이미 영상 판독과 진단 보조 영역에 진입했다. 문제는 그것이 전문의를 대체하는 구조로 설계되는지, 아니면 진료 접근성을 높이고 전문성을 강화하는 보조 체계로 설계되는지다. 인구 고령화와 의료 인력 부족이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노동확장형 설계는 단순한 이상론이 아니라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교육 현장 역시 마찬가지다. 생성형 AI는 과제 작성과 평가 체계를 흔들고 있다. 이를 이유로 강의를 축소하거나 평가를 자동화하는 방향으로만 대응한다면 교사의 역할은 위축될 수 있다. 그러나 학습 분석과 개별 지도, 맞춤형 피드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한다면 교사의 전문성은 오히려 확장될 수 있다. AI가 교육 노동을 압축할지 확장할지는 정책과 학교 운영 방식에 달려 있다. 플랫폼 노동 영역에서는 선택이 더 분명하다. 배달과 호출 서비스에서 AI는 경로 최적화와 수요 예측에 사용된다. 그러나 동시에 노동 강도 조절과 실시간 감시의 수단으로도 작동한다. 기술이 효율을 높이면서도 노동자의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설계될 경우, 생산성 증가는 불평등 확대와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 노동확장형 설계를 위해서는 알고리즘 투명성과 노동자 참여가 전제되어야 한다.

AI 시대에 가장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할 영역은 대학이다. 숙련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떻게 축적할 것인가의 문제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 자동화형 AI가 확산될수록 단순 지식 전달은 빠르게 대체된다. 대학이 기존의 전달 중심 구조에 머문다면 숙련평준화의 압력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복합적 문제 해결, 판단, 협업 능력을 중심에 두고 교육을 재설계한다면 대학은 노동확장의 기반이 될 수 있다. 과업 창출은 교육과 분리될 수 없다. 새로운 직무는 기존 교과 과정 밖에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데이터 윤리, 알고리즘 관리, 인간-기계 협업 설계 같은 영역은 아직 제도화되지 않았지만 빠르게 중요해지고 있다. 대학이 이러한 영역을 선제적으로 설계하지 못한다면, 노동확장형 AI는 구호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기술은 발전하지만 숙련 체계는 뒤따르지 못하는 간극이 발생할 수 있다.

결국 AI가 노동을 확장할 수 있는지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설계 문제다. 자동화는 가장 쉬운 길이다. 그러나 쉬운 길이 항상 지속 가능한 길은 아니다. 인간의 전문성을 중심에 두는 정책과 교육, 산업 구조가 함께 작동할 때 기술은 노동을 약화시키는 대신 재구성하는 힘이 될 수 있다. AI는 스스로 편을 정하지 않는다. 방향은 제도와 선택이 만든다. 그리고 그 선택은 지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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