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에 따른 배치는 정말 중립적인가
포르투갈의 고등교육 입시는 표면적으로 보면 단순하고 명확하다. 전국 단위 시험 성적을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전공과 기관별로 정해진 정원에 따라 학생을 배치한다. 이 과정은 정치적 개입이나 자의적 판단의 여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설계됐으며, 포르투갈 사회에서도 비교적 ‘공정한 방식’으로 인식돼 왔다. 성적이라는 단일 기준에 따라 경쟁이 이루어지고, 누구나 동일한 규칙 아래에서 평가받는다는 점에서 제도의 정당성은 쉽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OECD는 이 성적 중심 배치 구조가 실제로는 중립적이지 않다고 지적한다. 성적은 개인의 노력과 능력의 결과처럼 보이지만, 그 성적이 형성되는 과정에는 이미 교육 환경, 가정 배경, 지역 격차가 깊게 개입돼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성적을 기준으로 한 배치가 불평등을 만들어내기보다는, 기존의 불평등을 고등교육 내부로 옮겨 심는 방식으로 작동할 위험을 경고한다. 공정하다고 여겨온 규칙이, 결과적으로는 특정 집단에 반복적으로 유리한 경로를 제공하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이다.
numerus clausus, 선택을 관리하는 제도
이러한 배치 구조의 핵심에는 numerus clausus로 불리는 정원 규제 제도가 있다. 포르투갈의 고등교육 정원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관리되며, 전공과 기관별로 입학 가능 인원이 엄격히 설정된다. 이 제도는 인기 전공과 특정 대학으로의 과도한 쏠림을 방지하고, 교육의 질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 도입됐다. 또한 노동시장 수요와 연계해 인력 과잉을 막는 기능도 기대돼 왔다. 하지만 OECD는 numerus clausus가 단순한 수급 조절 장치에 그치지 않는다고 본다. 정원은 곧 선택의 범위를 규정하고, 그 선택은 다시 학생의 학업 경험과 이후 경로를 결정한다. 성적이 높은 학생은 상대적으로 선택의 폭이 넓고, 대도시의 명문 대학이나 ‘programmes of excellence’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성적이 다소 낮은 학생은 전공이나 지역 선택에서 제약을 받으며, 본인의 선호와 무관하게 다른 유형의 기관으로 이동하게 된다. OECD는 이 과정을 통해 정원 규제가 결과적으로 학생을 ‘배치’하는 제도로 기능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정원 규제가 만든 배치의 결과
OECD가 포르투갈의 정원 규제 제도를 분석하면서 주목한 것은, 이 제도가 단순히 ‘입학 인원’을 관리하는 수준을 넘어 학생의 경로를 구조적으로 분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포르투갈에서는 상위 성적 학생일수록 대도시의 전통적 대학(universities)과 경쟁률이 높은 전공에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성적 분포의 하위 구간에 위치한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한 지역 대학이나 폴리테크닉(polytechnic) 기관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 과정은 개인의 선호에 따른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원이라는 제약 속에서 이루어진 배치에 가깝다. OECD는 특히 ‘programmes of excellence’로 분류되는 고선발 과정이 이 배치 구조를 선명하게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입학 성적 20점 만점 기준 17점 이상을 요구하는 이 과정들은 리스본과 포르투를 중심으로 집중돼 있으며, 연구 자원과 사회적 네트워크, 노동시장 연결성이 상대적으로 우수하다. 문제는 이 상위 프로그램에 진입하는 학생 집단의 사회경제적 구성이 균등하지 않다는 점이다. 저소득층 학생과 1세대 대학생은 이러한 프로그램에 진입할 확률이 현저히 낮고, 대신 직업교육적 성격이 강한 폴리테크닉 기관으로 더 많이 배치되는 경향을 보인다.
OECD는 이 현상을 두고 ‘선택(choice)’과 ‘배정(allocation)’의 경계가 모호해졌다고 표현한다. 공식적으로는 학생이 전공과 기관을 선택하지만, 그 선택지는 이미 성적과 정원에 의해 강하게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상위 성적 학생에게는 다양한 선택지가 열려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학생에게는 사실상 몇 개의 경로만 허용된다. 이때 학생의 결정은 자율적 선택이라기보다 제도적 조건에 대한 반응에 가깝다. 이러한 배치 구조는 단기적으로는 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 성적에 따라 학생을 분산 배치함으로써 경쟁을 관리하고, 교육 자원을 합리적으로 배분하는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OECD는 장기적으로 이 구조가 사회적 이동성을 약화시킬 위험을 경고한다. 고등교육 내부에서의 초기 배치는 이후의 학업 경험, 졸업 성과, 노동시장 진입 경로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며, 한 번 형성된 경로는 쉽게 수정되지 않는다. 정원 규제가 공정한 경쟁의 장치로 작동하는 동시에, 불평등의 누적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정원 관리가 ‘공정성’을 보장하는가
포르투갈의 numerus clausus 제도는 오랫동안 공정성을 담보하는 장치로 받아들여져 왔다. 중앙정부가 정원을 관리하고, 동일한 기준에 따라 학생을 배치함으로써 지역·기관 간의 과도한 경쟁을 억제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OECD는 공정성의 기준을 결과의 측면에서 다시 묻는다. 동일한 규칙이 적용됐다는 사실만으로, 결과 역시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보고서는 성적 중심 배치가 중등교육 단계에서 이미 형성된 격차를 고등교육 단계에서 다시 한 번 고착화할 가능성을 지적한다. 사교육 접근성, 학교 간 교육 여건, 가정의 문화적 자본은 성적이라는 하나의 지표에 응축돼 나타나고, 이 지표는 다시 고등교육 내부의 경로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작동한다. 이때 numerus clausus는 불평등을 완화하는 장치가 아니라, 기존의 차이를 정당화하는 제도적 언어가 될 위험을 안고 있다. OECD는 이러한 구조를 ‘형식적 공정성과 실질적 형평성의 괴리’로 설명한다.
폴리테크닉으로 향한 경로는 다른 선택이었는가
정원 규제가 만들어낸 배치의 결과는 대학 유형 간 분화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포르투갈의 폴리테크닉(polytechnic) 기관은 지역 기반의 직업교육과 실무 중심 교육을 담당하도록 설계됐으며, 고등교육의 다양화를 상징하는 제도로 자리 잡아 왔다. 그러나 OECD는 이 이원화 구조가 실제로는 선택의 다양성이라기보다, 성적과 배치에 따른 경로 분기로 작동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상위 성적 학생은 연구 중심 대학과 ‘programmes of excellence’로, 그렇지 않은 학생은 폴리테크닉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반복되면서, 제도적 분화가 사회적 서열로 읽히는 순간이 발생한다.

문제는 이 경로가 단순히 교육 방식의 차이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학 유형에 따른 교육 경험의 차이는 졸업 이후 노동시장 진입, 임금 수준, 직업 이동성에서도 영향을 미친다. OECD는 폴리테크닉이 고등교육 접근성을 넓히는 역할을 해왔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 경로가 사회경제적 배경이 불리한 학생에게 ‘사실상의 기본값(default option)’으로 작동할 위험을 경고한다. 제도는 다양화를 목표로 설계됐지만, 결과적으로는 학생을 구분하고 고정시키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회차가 던지는 질문은 결국 공정성의 정의로 돌아온다. 동일한 시험, 동일한 기준, 동일한 규칙이 적용됐다는 사실만으로 고등교육의 배치가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OECD는 포르투갈의 사례를 통해, 성적과 정원을 중심으로 한 배치 시스템이 형식적 공정성은 확보했을지 모르지만, 실질적 형평성에서는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냈다고 진단한다. 성적은 중립적인 지표처럼 보이지만, 그 성적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정원 규제는 그 차이를 조정하기보다 구조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
포르투갈의 numerus clausus 제도는 극단적인 실패 사례도, 단순한 성공 사례도 아니다. 오히려 고등교육이 일정 단계에 도달한 국가라면 누구나 선택하게 되는 정책적 타협의 결과에 가깝다. 2회차는 이 사례를 통해, 입시와 정원 관리가 단순한 기술적 장치가 아니라 사회적 결과를 만들어내는 제도라는 점을 확인했다. 다음 회차에서는 이 배치 이후의 삶을 살펴본다. 학업을 이어가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이며, 왜 많은 학생이 ‘탈락’이 아니라 ‘지연된 완수’의 경로로 밀려나는가. 고등교육의 공정성은 입학에서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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