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시대의 충돌, 그리고 2025년 입법조사처 보고서가 제시한 해결의 방향
지브리풍 이미지를 둘러싼 전 세계적 충돌, 그리고 우리가 놓친 핵심 질문
2025년 하반기, 한 장의 이미지가 전 세계 온라인 커뮤니티를 흔들어 놓았다. 생성형 AI가 만들어낸 한 장면이 스튜디오 지브리의 대표작들과 거의 구별되지 않는 수준의 색감·구도·선묘·감정 표현을 보여주며 논란이 촉발된 것이다. 문제는 단순히 ‘비슷한 그림’이 아니라, 이 이미지가 지브리의 승인 없이 이루어진 대규모 데이터 학습을 기반으로 생성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공개된 데이터셋에 지브리 장면 수백 장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 자료들을 통해 모델은 지브리 특유의 미학적 패턴을 그대로 익혔다. 이후 ‘Ghibli style’, ‘Studio-Ghibli-like’라는 문구를 입력하면 비슷한 이미지를 무한히 생성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쟁은 급속히 확산되었다. 일본 내에서는 창작자 권리 침해에 대한 우려가 커졌고, 미국 커뮤니티에서도 애니메이션·일러스트 시장의 잠식 가능성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한국에서도 웹툰 작가·일러스트레이터·디자이너들이 동일한 문제를 호소하며 “AI가 우리의 화풍을 먹어치운다”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이 논란은 단일 기업이나 단일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저작권 체계가 AI학습이라는 새로운 기술 환경을 규정하기에 구조적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마침 이 시기, 국회입법조사처는 「AI 데이터 학습과 저작권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제」라는 제목의 분석 문건을 발간했다. 이 자료는 AI·저작권 충돌의 근본 원인을 정책적 관점에서 정리하고, 향후 입법·행정이 다루어야 할 구조적 과제를 제시한다. 본 기획기사는 지브리 스타일 사건을 출발점으로 삼아, AI 시대의 저작권 갈등이 왜 반복되는지, 그리고 입법기관의 분석이 어떤 제도적 방향을 제시하는지 깊이 있게 해설한다.
지브리 스타일 사건은 왜 세계적 파문이 되었나: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
지브리풍 이미지는 단순한 모방 논란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 배후에는 AI 기술이 기존 저작권 질서를 어떻게 뒤흔들고 있는지 보여주는 구조적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AI 학습 데이터 수집 과정의 불투명성이다. 대부분의 생성형 AI는 수억 건의 웹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한다. 이 과정에서 창작자·출판사·제작사·플랫폼 제공자가 제공한 저작물이 크롤링을 통해 흡수된다. 하지만 누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저장했는지 공개되지 않는다. 둘째, 권리자의 통제권이 사실상 부재하다. 지브리 이미지는 원저작자의 결정과 무관하게 데이터셋에 포함되었고, 이후 AI 모델이 이를 학습했다. 원저작자는 자신의 저작물이 AI 학습에 사용되었는지조차 인지할 수 없다. 셋째, 결과물이 원저작물의 경제적 가치를 잠식할 위험이 크다. 지브리는 세계적 브랜드 파워를 가진 스튜디오다. 그러나 AI는 지브리와 유사한 이미지를 몇 초 만에 만들어낸다. 이는 시장 대체 가능성을 초래하고 브랜드 자산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세 가지 요인은 지브리 사건을 단순한 ‘스타일 모방’이 아니라, 저작권 체계 전체의 문제로 바라보게 만드는 핵심 요소들이다.
AI 시대의 저작권 충돌은 왜 반복되는가: 법적 공백의 구조적 문제
입법조사처의 분석에 따르면, AI 학습 단계에서 발생하는 저작권 혼란은 대부분 현행 법제가 AI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가장 큰 문제는 AI 학습이 ‘공정이용’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공정이용은 미국에서 판례 중심으로 발전한 제도이며, 한국도 이를 도입했지만 적용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특히 AI 학습처럼 대규모 데이터가 활용되는 신기술 환경에서는 기존 공정이용 판단 요소만으로는 판단이 쉽지 않다. 또한 한국에는 텍스트·데이터 마이닝(Text and Data Mining, TDM) 면책 규정이 없다. 일본·EU·영국 등 여러 국가가 이미 TDM 제도를 도입해 연구·교육 목적의 최소한의 데이터 활용을 허용하고 있음에도, 한국은 여전히 이를 법제화하지 못한 상태다. 덕분에 AI 기업은 학습 데이터를 사용하는 것이 합법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반면 창작자는 자신의 저작물이 데이터셋에 포함되어 학습되는지조차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처럼 공정이용의 불확실성과 TDM 부재가 맞물리면서, AI 학습 영역 전체가 법적 회색지대로 남아 있으며 지브리 사건과 유사한 충돌이 반복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현재의 공정이용 판단 요소는: 이용 목적과 성격 , 원저작물의 종류, 이용된 양과 상당성,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 네 가지다. 그러나 생성형 AI 학습에 이 기준을 적용하면 대부분의 요소에서 불명확하거나 부정적인 결론이 나온다. AI 학습은 대체로 영리 목적이다. 따라서 ‘비영리 공익적 목적’에 가까울수록 공정이용 가능성이 높은 일반 논리에 맞지 않는다. 또한 AI 모델이 패턴·구조·문체·구도를 학습하기 위해서는 원저작물의 상당한 부분이 사용된다. 이는 공정이용 요건 중 가장 민감한 판단 기준인 ‘이용된 부분의 규모’ 요소에서 충돌을 만든다. 여기에 시장 잠식 가능성까지 존재하면 공정이용 성립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 지브리 사건처럼 AI가 만들어낸 이미지가 원저작물의 예술적·경제적 가치를 대체할 우려가 있다면, 공정이용으로 인정될 가능성은 극히 미미하다. 결론적으로, 공정이용은 AI 학습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법적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이는 입법조사처 분석의 핵심 진단 중 하나다.
TDM 면책 규정의 한계: 생성형 AI의 광범위한 학습을 포괄하기 어렵다
TDM 면책은 원래 데이터 분석 목적을 위해 저작물을 일정 부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그러나 생성형 AI가 요구하는 데이터 학습 범위는 기존 TDM 체계가 가정한 수준보다 훨씬 크다. LLM이나 이미지 생성 모델은 개별 문서나 단편적 자료가 아닌, 수억 건의 데이터셋에서 전체적 패턴을 학습한다. 따라서 전통적 TDM 규정은 이러한 대규모 패턴 학습을 보호하기 어렵다. EU TDM은 권리자의 거부권을 인정하지만, 실제 크롤링·데이터 수집 과정에서는 이를 기술적으로 반영하기 매우 어렵다. 웹사이트가 ‘AI 학습 금지’를 명시해도 대규모 자동화 프로그램이 이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TDM 제도를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오늘날의 생성형 AI를 포괄하기에는 본질적 한계가 존재한다. 결국 공정이용과 TDM 모두 AI 학습 문제에 대응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으며, AI·저작권 충돌이 반복되는 구조적 원인은 법적 근거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번 분석에서 가장 강조된 지점은 학습 데이터의 투명성 부재다. 현재의 AI 학습 프로세스를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학습 데이터 출처가 공개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모델이 사용하는 데이터셋 목록은 비공개이며, 공개되는 경우조차도 구체적 파일명·출처·저작권 상태는 알려지지 않는다. 둘째, 권리자가 자신의 저작물 이용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작가·사진가·웹툰 제작자·음악가 모두 자신의 작품이 데이터에 포함되었는지 기술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셋째, 수집·이용·학습 단계 전체가 기록되지 않는다. 데이터가 어디서 들어왔는지, 어떤 과정으로 변환되었는지, 어떤 모델 학습에 사용되었는지 추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넷째, 학습된 데이터는 삭제를 요청하더라도 사실상 제거하기 어렵다. 이미 모델 내부 파라미터에 패턴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투명성 결여는 지브리 사건과 국내 창작자 피해 사례에서 가장 근본적인 논점이며, AI 기술이 창작 생태계와 충돌하게 되는 구조적 원인이다.
AI 기업들은 현재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원저작물 이용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오픈AI는 글로벌 언론사와 협약을 맺고 데이터 이용 대가를 지불하고 있으며, 일부 기업은 저작권자에게 수익을 분배하는 구조를 도입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방식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계약 체결 비용이 높아 소규모 기업이나 스타트업은 참여하기 어렵다. 또한 계약의 투명성도 낮아 실제 보상금이 개별 창작자에게 돌아가는지 확인할 수 없다. 더불어 창작자 대부분은 개별 기업과 협상할 능력이나 정보력이 없어, 협상력 격차가 심화될 위험이 있다. 즉, 계약 기반 접근은 단기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AI 기술의 민주적 접근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보고서는 우선 AI 학습 데이터 이용 대가 산정 방식, 분배 기준, 표준 계약서 등 기초적 거래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는 단순히 계약을 촉진하는 차원을 넘어, 창작자의 협상력을 높이는 최소한의 장치다. 불투명한 기업 간 개별 계약을 넘어서 공공적 기준을 마련해야 AI와 창작 산업 모두 장기적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
정책 문헌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제안은 ‘투명성 규범의 확립’이다. 데이터 출처 공개 의무화, 학습 과정 기록, 권리자 통지, 삭제·중단 요청 처리 절차 등이 포함된다. 이는 지브리 사건처럼 자신의 저작물이 AI 학습에 이용되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을 해소하고, AI 기업의 법적 예측 가능성을 높인다. 특히 AI 학습에 사용되는 데이터가 어떤 경로로 수집되었는지를 기록하고 공개하는 체계가 구축된다면, 데이터셋의 적법성 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

AI 학습과 저작권 문제는 문화체육관광부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과학기술정통부는 기술 표준과 AI 산업 정책을 관장하고, 공정거래위원회는 거래 구조의 공정성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보고서는 이 세 부처가 상시적으로 협력해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단일 정책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다층적 문제라는 현실적 진단이다.
한국이 직면한 현실: 창작 강국의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선택
한국은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웹툰·웹소설·일러스트 산업을 갖춘 나라다. 그러나 이러한 산업은 디지털 기반 창작물이 무단 학습되기 쉬운 환경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이미 다수의 국내 작가가 자신의 웹툰 컷이 외국 데이터셋에 포함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AI가 국내 작가 화풍을 거의 동일하게 재현하는 사례도 보고되었다. 한국은 창작자 의존도가 높은 문화산업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AI가 시장을 잠식하는 속도가 더 빠르게 나타날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무엇보다도 ‘학습 단계에서의 규범’이 중요하다. 지브리 사건은 한국에서도 반복될 수 있는 미래의 예고편이다.
지브리 스타일 논란은 특정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AI 기술이 기존 저작권 체계와 충돌하는 방식이 구조적으로 고착화되었음을 보여준다. 국회 차원의 분석은 이 충돌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 개편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으며, 특히 ‘투명성’, ‘권리자 보호’, ‘부처 협력’, ‘거래 구조 개선’이라는 네 가지 원칙이 핵심이다. AI 기술이 더 발전할수록 창작자와 기술 기업 간의 경계는 흐려지고, 데이터의 적법 활용 여부는 더욱 복잡한 문제가 된다. 한국이 창작 생태계를 보호하면서 기술 혁신을 지속하려면, AI 학습 단계에서의 법적 기준을 명확히 하는 작업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지브리 사건이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AI 시대의 저작권은 과거의 틀로는 해결할 수 없으며, 이제는 새로운 규범 체계가 필요하다.
#지브리스타일 #AI저작권 #데이터학습 #생성형AI #입법조사 #저작권개혁 #TDM #공정이용 #스포트라이트유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