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연구원 이슈페이퍼 『지방대학의 현황과 과제』(2025년 4월) 기반 정책 분석
2025년 4월 산업연구원은 『지방대학의 현황과 과제』라는 이슈페이퍼를 통해 지방대학이 처한 구조적 위기와 향후 정책 방향을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1회차 기사에서는 학령인구 감소, 수도권 집중, 재정 악순환 등 지방대학 위기의 실체를 들여다봤다면, 이제는 반대편 질문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실질적인 해법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단지 지방대학 하나의 생존 전략을 묻는 것이 아니다. 이는 국가 차원의 교육정책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균형 발전이 어떻게 가능할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특히, ‘지방대학’이라는 존재는 단순히 지리적으로 지방에 있다는 의미를 넘어서, 지역과 교육이 어떻게 맞물려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만들 것인가를 상징한다.
이제는 단편적인 재정 지원을 넘어, 지방대학의 기능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하고, 정책 구조를 현실에 맞게 개편하며, 지역사회의 변화와 연계된 교육 생태계를 구상해야 할 시점이다. 본 기사에서는 산업연구원이 제시한 제안들을 중심으로, ‘가능한 전략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지방대학, 모든 역할을 할 수는 없다 – 기능의 재정립이 먼저다
한때는 모든 대학이 종합대학을 지향했다. 인문사회, 자연과학, 공학, 예체능 등 전 분야를 갖추고, 학부와 대학원을 아우르며, 연구와 교육을 모두 수행하는 구조가 대학의 이상적 모델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 다르다. 특히 지방의 중소 사립대학은 물리적 여건, 인적 자원, 재정 기반 모두에서 ‘모든 것을 잘하기에는 너무 제한된 조건’에 놓여 있다.
산업연구원은 지방대학의 현실을 고려한 기능 재정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즉, 모든 대학이 동일한 목표를 추구하기보다, 각자의 역할과 조건에 맞는 기능을 분화하여 선택과 집중의 전략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방거점대학은 연구와 고급 인재 양성이라는 국가 단위 기능을 수행하고, 그 외 대학은 학부 중심, 실무 중심, 지역사회 중심의 교육 기능에 특화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기능 재정립은 대학의 자율성과 책임을 동시에 요구한다. 동시에, 정책적 지원은 이 기능 분화를 전제로 설계돼야 한다. 똑같은 잣대를 모든 대학에 적용하는 경쟁 중심 정책으로는 이러한 구조 전환을 유도하기 어렵다. 정책 설계 단계에서부터 대학의 유형과 층위, 기능에 따른 맞춤형 지원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미국 주립대 시스템에서 배우다 – 플래그십과 커뮤니티칼리지 모델
산업연구원이 제시하는 대표적 비교 사례는 미국의 주립대학 시스템이다. 미국 각 주는 플래그십 대학, 일반 주립대, 커뮤니티 칼리지 등으로 층위화된 고등교육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예컨대 캘리포니아의 경우, University of California(UC)는 연구 중심, California State University(CSU)는 교육 중심, California Community College(CCC)는 실무 중심 교육기관으로 각각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 구조는 고등교육의 질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교육 수요를 수용할 수 있는 유연성을 제공한다. 특히 편입 제도가 활발하게 운영되기 때문에, 초기 진입이 낮은 수준의 교육기관이더라도 노력과 성과에 따라 상위 기관으로의 이동이 가능하다. 이는 고등교육이 출발선이 아니라 도달점 중심의 구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지방대학도 이러한 체계에서 배울 점이 많다. 특히, 지방의 중소대학이 커뮤니티칼리지형 모델로 전환해 기초 교양, 지역 커뮤니티 연계, 실무교육 중심으로 개편되고, 동시에 편입과 학점 이수 시스템이 강화된다면, 고등교육 체계 전반의 효율성과 형평성이 개선될 수 있다. 단, 이를 위해서는 제도적 장치, 특히 편입 시스템과 학점 인정 체계의 전면적인 재설계가 병행돼야 한다.

RISE, 글로컬대학 30 – 지역이 대학을 키울 수 있을까
지방대학의 위기 대응책으로 주목받고 있는 두 가지 정책이 있다. 하나는 RISE(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 다른 하나는 글로컬대학 30 프로젝트다. 이들은 기존의 중앙정부 중심 고등교육 정책에서 벗어나, 지역이 주체가 되는 대학 혁신 모델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변화로 평가받는다. RISE는 지역이 대학에 대한 투자와 운영 전략을 스스로 설계하고 집행할 수 있도록 권한을 지자체로 이양하는 방식이다. 이는 대학을 지역발전의 핵심 거점으로 삼고, 지자체가 교육정책과 산업정책을 통합적으로 기획하는 구조다. 예컨대 지역 내 전략산업에 필요한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학과 개편, 기업연계형 교육과정 설계 등이 가능해진다.
글로컬대학 30은 정부가 선정한 30개 비수도권 대학에 집중적으로 재정과 제도적 지원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선정된 대학은 대대적인 학사개편, 조직개편, 지역-산업 연계 모델 등을 통해 ‘지역과 글로벌을 연결하는 대학’으로 변모해야 한다. 핵심은 대학의 자발적 혁신계획에 대한 인센티브 구조이다. 하지만 산업연구원은 이 두 정책에 대해 다소 근본적인 한계를 함께 지적한다. RISE의 경우, 지역마다 고등교육에 대한 정책적 전문성과 인프라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일관된 품질관리와 정책 조율이 어렵다는 점이 약점이다. 특히 대학이 운영 주체로서 충분한 권한을 확보하지 못하거나, 지역 주도권과 충돌할 경우 오히려 갈등만 심화될 수 있다. 글로컬대학 30은 ‘선정된 30개 대학’만을 중심으로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비선정 대학의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을 초래할 수 있으며, 선정 기준이 층위나 기능에 대한 고려 없이 일괄 적용될 경우 대학 간 불균형을 고착화시킬 우려도 있다. 또한 일반대와 전문대 간 통합을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기존 교육 기능이 훼손되거나 캠퍼스 내 정체성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따라서 이들 정책은 ‘무엇을 지원할 것인가’ 못지않게 ‘누가, 왜, 어떤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전략적 질문이 전제되어야 하며, 정책의 설계와 집행 모두에서 기능 분화와 현실성을 반영해야 실질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고숙련-중숙련-실무형 인재 양성 체계 정립
지방대학을 단순히 ‘존재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선 안 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학이 어떤 인재를 어떻게 길러내는가, 그리고 그 인재가 어디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가이다. 산업연구원은 이에 대해 고숙련-중숙련-실무형 인재 양성 체계의 구조화를 제안한다. 지방거점대학은 여전히 고숙련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R&D 중심 교육기관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들은 지역 전략산업(예: 탄소중립, 반도체, 바이오 등)에 특화된 학과를 개설하거나, 대학원 중심의 고급 전문인력 배출 구조를 강화할 수 있다. 특히 국책연구소, 지역특화산업단지와의 연계를 통해 교육과 연구의 통합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다.
비거점 일반대학은 보다 실용적이며, 중숙련형 인재를 중심으로 커리큘럼을 설계할 수 있다. 지역 내 중소기업 수요에 맞춘 산학프로그램, 주문식 교육, 캡스톤 디자인 등 실전형 과목 확대가 필요하며, 졸업생이 곧바로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고용 연계성을 강화해야 한다. 이는 대학의 사회적 책임을 명확히 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직결된다. 전문대학 및 직업대학은 실무형, 기능형 인재 양성에 중점을 둬야 한다. 짧은 교육기간 내 현장 적응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NCS 기반 교육, 자격 취득 과정, 현장 실습 중심 커리큘럼 등이 해당된다. 특히 지방 산업의 고용 구조와 맞물린 ‘학습-고용 일체형’ 모델이 중요해진다.
이러한 3층 구조는 단지 분화만이 아니라, 서로 간의 연계성과 상호 이동 가능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고정된 위계가 아니라, 열린 구조로서의 고등교육 체계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편입 제도 정비, 이동 가능한 대학 체계로
기능이 분화된 고등교육 체계가 성공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대학 간 이동성과 학습 경로의 유연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편입 제도는 여전히 협소하며, 실질적인 상향 이동이나 재도전이 어려운 구조로 남아 있다.산업연구원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편입 시스템의 대대적인 개편을 제안한다. 그 핵심은, 전문대학에서 일반대학, 일반대학에서 거점대학으로의 편입 통로를 체계화하고, 이를 위한 학점 호환 기준, 전공 설계, 교양과목의 표준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지방대학 학생의 상당수가 수도권 진학을 희망하기보다 지역 내 상위 대학으로의 진입을 원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역 내 이동 경로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예컨대 지역별 ‘편입 협의체’를 구성하고, 학기제와 전공 트랙을 조정해 이동성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재직자, 경력단절자, 성인학습자 등 비전통적 학습자 계층을 고려한 학점은행제, 모듈형 교육, 파트타임 학위 과정 확대도 필요하다. 이는 지방대학이 생애 전주기적 학습기관으로 전환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지역 커뮤니티와 연결되는 대학 – 교육의 사회적 확장
지방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을 넘어 지역사회의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산학협력 중심의 연계가 강조되었다면, 앞으로는 교육의 사회적 확장성과 생활밀착형 연계가 중요한 과제가 된다. 대학이 지역 주민과 실질적으로 교류하며, 지역의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학이 주도하는 지역 청소년 대상 진로 프로그램, 노년층 대상 디지털 교육, 청년 창업지원센터 운영, 지역 전통문화 교육 콘텐츠 개발 등은 대학이 지역사회에 실질적 기여를 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이는 교육의 수혜자가 학생에만 국한되지 않고, 지역 주민 전체로 확장되는 교육 거버넌스를 의미한다. 또한, 지역 공공기관, 시민단체, 병원, 복지기관 등과의 협업 모델도 다양화되어야 한다. 특히 사회복지, 간호, 교육, 문화예술 등 전공을 가진 학생들이 지역에서 실습·봉사를 수행하면서, 그 경험이 학문적 학습과 실천적 참여로 연결되도록 설계할 수 있다. 이는 단지 봉사 프로그램이 아니라, ‘지역기반 역량교육’으로 내재화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대학은 단지 학위 수여기관이 아니라, 지역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대응하며, 지역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공공적 플랫폼으로 변모해야 한다. 지방대학의 생존은 지역공동체 안에서 살아 숨 쉬는 관계망으로부터 비롯된다.
현대 사회는 ‘직업 100세 시대’, ‘생애 다직업 시대’로 불릴 만큼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산업구조와 고용환경의 변화는 직무 전환과 지속적 재교육을 필수로 만들고 있으며, 이는 평생학습 체계의 중심에 대학이 자리 잡아야 하는 이유가 된다. 지방대학은 특히 지역 내 평생교육의 허브로 기능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물리적 인프라, 강의 인력, 커리큘럼 운영 경험 등에서 다른 교육기관에 비해 유리하며, 온라인 교육과 오프라인 학습을 융합한 하이브리드 구조 설계도 가능하다. 산업연구원은 지방대학이 성인학습자에게 모듈형 학위과정, 마이크로 크레덴셜(Micro-Credentials), 직무기반 교육과정, 야간·주말 강의 등을 제공함으로써 성인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교육기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지역 내 기업과 협력하여 직무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고, 학습성과를 자격이나 승진과 연결시킬 수 있다면, 그 효과는 더욱 커진다. 특히 지역 이민자, 경력단절 여성, 은퇴 후 재취업을 준비하는 고령층 등 교육 사각지대에 있는 계층에 대한 포용성 확대는 지방대학의 사회적 정당성을 높이는 전략이 될 수 있다. 이는 단지 생존을 위한 확장이 아니라, 공공성을 확장하는 방식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지방대학은 위기 속에 있다. 하지만 그 위기는 동시에 기회일 수 있다. 산업연구원은 지방대학이 기능을 재정립하고, 지역과 연결되고, 새로운 학습자 집단을 포용할 때 그 존재 이유를 다시 증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하나의 해답이 아니라, 각 지방대학이 처한 조건에 맞는 다층적인 전략들이다. 정책은 기능 중심으로 설계되어야 하며, 지역은 고등교육의 주체로 성장해야 하고, 대학은 공공성을 중심에 두고 사회적 역할을 재설계해야 한다.
지방대학은 살아남을 수 있다. 그것은 제도, 구조, 인식의 변화에 달려 있다. 지금 이 변화에 착수하지 않는다면,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너무 많은 지역과 대학을 동시에 잃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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