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를 살려야 나라가 산다?… 일본이 먼저 겪은 ‘선택과 집중’의 역설

상위권 대학에 몰아주는 방식만으로는 국가 연구력이 살아나지 않았다. 일본 국립대 20년의 궤적은 한국의 지역거점국립대 강화 논쟁에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한때 일본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연구강국으로 불렸다. 노벨상 수상자 배출, 제조업과 기초과학의 결합, 국립대를 축으로 한 연구 생태계는 일본 사회가 오랫동안 자부심을 가져온 영역이었다. 그러나 지금 일본 내부에서 더 자주 들리는 말은 자부심보다 위기감에 가깝다. 왜 일본의 연구력은 상대적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는가. 왜 연구비 총액은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닌데도, 대학 현장에서는 연구 기반이 약해졌다는 말이 반복되는가. 그리고 왜 국립대는 더 많은 경쟁과 더 많은 평가, 더 많은 외부자금 확보 압박 속에서도 국가 전체 연구력을 다시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는가. 일본 국회도서관 조사자료 国立大学の研究費と研究力をめぐる議論는 이 질문을 정면으로 다룬다.자료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예산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연구를 떠받치는 기초재정이 약해지고, 경쟁적 자금과 선택적 배분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연구자들의 시간과 인력, 장기적 연구 기반이 함께 흔들렸다는 구조적 진단이다. 이 대목에서 한국 독자에게 곧바로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지역거점국립대의 역량을 끌어올려 국가 전체의 고등교육과 연구 기반을 두텁게 만들자는 이른바 ‘서울대 10개 만들기’ 논의다. 이 구상을 곧바로 찬성 또는 반대의 프레임으로 끌고 들어가면 논의는 금방 소모적이 된다. 그러나 일본 사례를 차분히 들여다보면,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해진다. 국가 연구력은 몇몇 상위 대학의 경쟁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본 자료는 연구비 배분에서 이른바 ‘선택과 집중’이 강화될수록 대학 간 격차가 고착화되고, 국립대의 기초재정이 줄어들수록 오히려 연구력 저하가 심화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한국이 던져야 할 질문도 비슷하다. 정말 필요한 것은 ‘서울대급 대학 몇 개를 더 만드는 일’인가, 아니면 지역거점국립대를 포함한 전체 연구 생태계의 바닥을 두껍게 만드는 일인가.

일본은 왜 연구강국의 자리에서 흔들리기 시작했나

일본의 위기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는 논문 순위다. 일본의 기업, 공공연구기관, 대학이 생산한 논문 수의 세계 순위는 지난 약 20년 동안 정체 또는 하락 흐름을 보여 왔다. 더 주목되는 것은 질 높은 논문 지표의 하락이다. 상위 10% 피인용 논문을 보정한 Top10% 논문 수 기준 일본의 세계 순위는 2003년 4위에서 2022년 13위까지 내려갔다. 일본 정부의 과학기술·이노베이션 기본계획 역시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논문 수와 상위 피인용 논문 수의 지위가 상대적·장기적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이는 일시적 부진이 아니라 구조적인 저하라는 뜻에 가깝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일본이 연구개발비 총액 자체가 빈약한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2023년 기준 일본의 전체 연구비는 20.4조 엔으로, 주요국 가운데 미국 91.0조 엔, 중국 87.4조 엔에 이어 큰 규모에 속한다. 국내총생산 대비 연구비 비율도 3.42%로, 미국 3.45%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숫자만 놓고 보면 일본은 ‘연구비가 너무 적어서’ 무너진 나라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연구력은 떨어졌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총액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전체 연구비 규모가 어느 정도 유지되더라도, 그 돈이 어디로 흘러가고, 어떤 방식으로 대학에 배분되며, 그 자금이 연구자들의 시간과 고용 안정, 장기 연구 기반으로 연결되는지가 더 결정적이라는 사실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일본 대학 부문 연구비의 정체가 눈에 띈다. 일본의 국공사립 대학 부문 연구비는 2023년 기준 2.3조 엔으로, 미국 9.7조 엔, 중국 7.2조 엔, 독일 2.9조 엔, 영국 2.4조 엔보다 낮다. 더 중요한 것은 증가율이다. 2000년 대학 부문 연구비를 1로 봤을 때 2023년의 명목 증가율은 일본이 1.0배에 머물렀다. 같은 기간 미국은 3.4배, 독일은 2.7배, 프랑스는 2.2배, 중국은 35.9배, 한국은 7.0배였다. 일본만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했다는 뜻이다. 국가 전체로는 적지 않은 돈을 쓰고 있는데, 정작 대학 부문은 오랜 시간 거의 늘지 않았다면, 국가 연구력의 기반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연구강국의 이름은 유지했지만, 그 토대를 떠받치는 대학 연구재정은 서서히 굳어버린 셈이다.

일본 연구력 저하의 핵심은 돈의 총량보다 돈의 성격 변화였다

国立大学の研究費と研究力をめぐる議論가 특히 강조하는 대목은 연구비의 절대량만이 아니라 ‘연구비의 성격 변화’다. 일본 논문의 75%는 대학에서 생산되고, 그중에서도 국립대가 전체의 약 절반을 차지한다. 다시 말해 일본의 연구력은 국립대의 연구 여건과 거의 직결된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국립대에 안정적으로 배분되는 운영비교부금이 줄어드는 대신, 경쟁을 통해 따내야 하는 연구비의 비중이 커졌다. 국가 전체의 연구 역량을 떠받쳐야 할 주체가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재원보다, 신청서·평가·성과지표에 매달리는 구조로 옮겨간 것이다. 자료는 바로 이 변화가 일본 연구력 저하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한다. 여기에 인력 구조의 변화도 겹쳤다. 법인화 이후 국립대 채용 교원 수는 증가 경향을 보였지만, 새로 채용된 교원 가운데 40세 미만 젊은 연구자의 비중은 지속적으로 줄었다. 더구나 임기제 교원의 비율은 특히 젊은 층에서 높아졌다. 안정적 연구 경력을 밟아야 할 시기에 오히려 더 불안정한 고용 구조가 확산된 셈이다. 연구비 신청과 평가 대응, 법인화 이후 늘어난 관리운영 업무까지 더해지면서 연구자들의 실제 연구시간은 줄었다. 일본 연구력 저하의 원인을 자금, 인재, 시간의 부족으로 정리하는 진단은 바로 이 맥락에서 나온다. 연구는 단지 돈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얼마나 오래 안정적으로 한 주제를 붙들 수 있느냐의 문제인데, 일본은 그 기본 조건을 스스로 약하게 만든 셈이다.

일본 국립대 재정 구조 변화의 분기점은 2004년 법인화다. 법인화 이전 국립대 예산은 사용처가 세세하게 지정되고, 항목 간 전용이나 잉여금 이월도 제한되는 등 국가 예산 체계 안에서 엄격하게 관리됐다. 일본 정부는 법인화를 통해 대학이 보다 자율적이고 기동적으로 재정을 운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듣기에는 매력적인 개혁이다. 국가가 세세하게 통제하던 틀을 풀어주고, 대학 스스로 교육과 연구 활동을 설계하게 한다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조금 달랐다. 법인화 이후 운영비교부금은 매년 일정 비율 감액되는 구조로 들어갔다. 2005년도부터는 효율화 계수가 적용돼 해마다 정률 1% 삭감이 이뤄졌고, 이후 이름은 바뀌었지만 삭감 기조는 이어졌다. 국립대 법인화 당시 부대결의에는 법인화 이전 예산 규모를 바탕으로 필요한 액수를 확보하도록 노력한다는 취지가 담겼지만, 실제로는 2004년 이후 10년 동안 10% 이상 운영비교부금이 줄었다. 최근에는 총액이 약 1조 784억 엔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지만, 이는 이미 상당한 삭감 과정을 거친 뒤의 숫자다. 자율성 확대라는 명분과 달리, 대학 입장에서는 안정적 기초재정의 약화가 먼저 다가온 개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구조 변화가 왜 치명적이었는지는 대학 재정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분명해진다. 국립대에 필요한 돈의 상당수는 단기간에 성과를 증명하기 어려운 기본 경비다. 인건비, 실험실 유지비, 광열비, 행정 지원, 오래 걸리는 기초연구 준비비용은 모두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돈이다. 그러나 이런 돈이 있어야 대학은 다음 단계의 성과를 낼 수 있다. 国立大学の研究費と研究力をめぐる議論에 따르면 2024년도 운영비교부금 1조 784억 엔 가운데 9057억 엔이 인건비와 광열수도비 등을 포함한 가장 기초적인 교육연구 경비였다. 즉 운영비교부금은 단지 “대학에 그냥 나눠주는 돈”이 아니라, 대학이 대학으로 존재하기 위한 최소 기반이었다. 그 바닥이 약해지면, 나머지 경쟁재원은 오히려 공중에 떠 있는 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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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중심 배분은 왜 강한 대학을 더 강하게 만들었나

일본의 문제는 기초재정 축소에서 끝나지 않았다. 남아 있는 기초재정조차 점점 더 성과 중심으로 기울어졌다. 2024년도 운영비교부금 중 1000억 엔은 ‘성과를 중심으로 한 실적 기반 배분’ 방식으로 운영됐다. 국립대를 여섯 그룹으로 나누고, 교육·연구·경영 분야 11개 지표로 상대평가를 한 뒤 결과에 따라 증액 또는 감액하는 구조다. 겉으로 보면 합리적 평가 시스템처럼 들린다. 예산이 한정돼 있다면 더 잘하는 대학에 더 주자는 논리는 누구에게나 쉽게 설득력을 갖는다. 하지만 실제 결과는 매우 편향적이었다. 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성과배분 이후 교육대학과 상당수 문과계 대학의 기초경비는 줄어든 반면, 옛 제국대학과 의과대학, 대학원대학은 대체로 늘어났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연구지표의 예산 비중이 교육지표보다 크고, 연구지표가 주로 영문 국제학술지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기 때문에 인문사회 분야나 교육 중심 대학이 불리해지기 쉽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같은 룰로 경쟁한다고 해도, 출발선과 평가 기준이 이미 특정 유형의 대학에 유리하게 설계돼 있다는 것이다. 평가의 중립성은 숫자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숫자를 성과로 인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일본의 성과 중심 배분은 결국 기존 강자에게 더 유리하게 작동했다. 문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외부 연구비를 더 잘 따낼 수 있는 대학이 성과지표에서도 유리한 평가를 받고, 그 결과 기초재정에서도 더 많은 몫을 가져간다면, 이는 단순한 차등 지원이 아니라 격차의 자기강화 구조가 된다. 실제로 일본 국립대 학장과 교직원 대상 조사에서는 법인화 이후 전공 분야에 따른 연구환경 격차가 확대됐거나 확대되는 편이라는 응답이 약 90%에 달했다. 이 수치는 중요한 경고다. 연구 환경의 차이가 단지 우연한 결과가 아니라 제도 자체에서 비롯된다는 체감이 현장에 널리 퍼져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연구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설계된 제도가 오히려 연구 여건의 불균형을 고착화했다면, 그것은 정책의 성공이라기보다 구조적 실패에 가깝다.

일본의 과학기술정책은 오래전부터 경쟁적 연구비 확대를 중요한 방향으로 삼아왔다. 1996년 제1기 과학기술기본계획에서 이미 경쟁적 자금 확대가 제시됐고, 이후 ‘경쟁’이라는 개념은 기본계획 전반에 스며들었다. 문제는 경쟁적 연구비가 늘어나는 속도에 비해, 대학의 기초경비와 인건비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하는 장치는 충분히 따라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료는 운영비교부금이 줄고 외부자금이 확대되는 구조 변화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기반 경비를 경쟁적 연구비로 충분하고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제도 설계가 정비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뒤늦게 문제를 인식했다. 기반 경비 감소가 기초연구력과 교육연구 기반을 약화시키고, 젊은 연구자의 고용 불안을 키운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2020년 이후 다수의 경쟁적 연구비에서 연구책임자 인건비 지출을 허용했다. 그러나 가장 큰 규모의 경쟁적 연구비인 과학연구비 보조금은 여전히 예외가 남아 있었고, 무엇보다 프로젝트형 자금의 인건비는 해당 과제에만 쓸 수 있기 때문에 대학 전체의 상시적 인건비 기반을 대신하기 어렵다. 경쟁적 연구비는 어디까지나 ‘특정 과제를 위한 돈’이지, 대학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떠받치는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구자가 과제를 따와도 학내 업무는 줄지 않고, 프로젝트 종료 뒤의 고용은 다시 불안정해진다. 결국 연구자는 더 많은 돈을 가져와도 더 안정된 연구자가 되지 못하는 역설 속에 놓인다.

国立大学の研究費と研究力をめぐる議論에 실린 통계는 이 역설을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외부자금을 보유한 교원은 외부자금이 없는 교원보다 연간 연구시간이 363시간 많았지만, 교육활동 시간은 70시간만 줄었고, 총 근무시간은 오히려 265시간 더 많았다. 이는 외부자금을 확보한 연구자가 ‘교육 부담을 덜고 연구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교육과 행정, 연구과제 운영이 모두 겹치며 노동시간 자체가 크게 늘어난다는 뜻에 가깝다. 연구비를 많이 따낸 교수가 더 좋은 연구환경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더 오래 일하고 더 많은 책임을 떠안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구비 확보 경쟁이 심해질수록 대학은 활력을 얻기보다 피로를 축적하게 된다.

경쟁은 연구 주제까지 보수적으로 만들었다

연구비 경쟁의 또 다른 문제는 연구자가 무엇을 연구할 것인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일본 자료는 일본의 연구활동이 이미 확립된 영역의 비중이 크고, 기존 연구와 비연속적인 새로운 영역의 출현은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지적한다. 대학 연구자 인터뷰를 보면, 현재의 경쟁적 연구비 평가는 학술지 영향력지수 같은 지표를 중시하기 때문에 연구 인구가 큰 분야가 유리하고, 새로운 연구나 다른 방향의 연구는 평가받기 어렵다는 불만이 나온다. 쉽게 말해 좋은 평가를 받기 쉬운 주제, 단기간 성과를 보여주기 쉬운 주제, 실패 가능성이 낮은 주제 쪽으로 연구가 몰리게 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연구 시스템 전체에 치명적일 수 있다. 과학은 본래 예측 불가능성과 시행착오를 포함한다. 지금은 쓸모없어 보이는 탐색이 나중에 큰 전환점이 되기도 하고, 기존 학문체계를 흔드는 연구는 처음에는 불확실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연구자가 연구비를 신청하기도 전 단계에서부터 “이 주제가 평가받을 수 있을까”를 먼저 계산해야 한다면, 학문은 점점 안전한 길만 택하게 된다. 国立大学の研究費と研究力をめぐる議論는 연구자들이 구체적인 성과를 예측할 수 없는 초기 단계에서 자유로운 발상으로 연구를 시작하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고 진단한다. 이는 단지 몇몇 연구자의 불만이 아니라, 국가 연구생태계의 모험성과 다양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신호다. 연구비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연구가 보수화된다면, 그것은 연구정책이 놓쳐서는 안 될 경고다.

일본 국립대 재정의 장기 흐름을 보면 운영비교부금은 줄고 외부자금은 늘었다. 2023년 국립대 전체 운영비교부금은 2004년보다 약 1631억 엔 감소한 반면, 외부자금 수입은 약 4914억 엔 증가했다. 숫자만 보면 “줄어든 기초재정을 외부자금이 메웠다”고 말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일부 정책당국은 이렇게 설명해 왔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일본 자료는 그 단순한 등식을 경계한다. 외부자금은 연구를 촉진하는 기능도 있지만 동시에 연구를 방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청 절차와 중간·최종 보고, 사용처 제한, 시한부 자금의 특성, 분야와 세대에 따른 수주 격차는 모두 외부자금 의존의 부작용으로 제시된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국립대 33개교를 분석한 연구 결과다. 외부자금 증가가 일정 수준까지는 연구성과 창출에 도움이 되지만, 외부자금 수입 비율이 특정 수준을 넘어서면 오히려 연구성과가 감소하는 경향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는 외부자금이 무조건 많을수록 좋다는 직관을 흔든다. 일정 수준의 외부자금은 동기와 자원을 제공하지만, 그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행정 부담과 단기성과 압박, 자금 용도 제약, 장기 운영의 불안정성이 더 크게 작동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결국 핵심은 운영비교부금 같은 자기재원과 외부자금 사이에 ‘베스트 믹스’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기반 재정 없는 경쟁은 결국 연구 자체를 갉아먹을 수 있다.

이 진단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의 대학정책 역시 오래전부터 각종 재정지원사업과 평가 중심 배분을 확대해 왔다. 대학 입장에서는 사업을 따내지 못하면 생존 자체가 불안해지고, 사업을 따내더라도 그 돈은 대체로 특정 과제와 특정 기간, 특정 지표에 묶인다. 일본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외부사업의 확대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기초재정을 대체하는 순간부터 시스템 전체가 불안정해진다는 사실이다. 상시적으로 필요한 인력과 시간, 장비 유지, 장기 연구 인큐베이팅은 사업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국가가 외부 경쟁재원 확대를 ‘개혁’으로만 이해할수록 대학은 점점 바닥이 얇아진다.

10조 엔 대학펀드는 새로운 도약이었나, 또 다른 집중의 상징이었나

일본은 최근 국제탁월연구대학 제도를 통해 이른바 ‘세계와 겨룰 수 있는’ 소수 대학에 대규모 장기자금을 투입하는 방향도 택했다. 2022년도부터 도입된 이 제도는 10조 엔 규모 대학펀드의 운용수익을 활용해 국제적 탁월성이 기대되는 몇몇 대학에 연간 수백억 엔을 최장 25년 지원하는 구조다. 대규모 초기 투자로 우수 인재를 끌어들이고, 세계적 연구대학을 키울 수 있다는 논리는 분명 매력적이다. 어느 나라든 세계 상위권 대학 몇 곳은 필요하다는 주장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제도에도 그림자는 짙다. 国立大学の研究費と研究力をめぐる議論는 국제탁월연구대학 인정 요건에 외부자금 확보 상황에 기반한 지속적 사업 성장, 연평균 약 3% 지출 성장률 같은 조건이 포함된다고 설명한다. 이는 대학이 스스로 돈을 더 벌어오는 구조를 요구하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산업계에 직접 도움이 되는 ‘수익성 있는 연구’가 과도하게 중시되면, 학문 분야의 다양성이 약화될 수 있다. 산업적 활용이 어렵거나 성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분야는 점점 주변으로 밀릴 가능성이 있다. 결국 세계적 대학 육성이라는 이름으로도 다시 한 번 같은 질문이 돌아온다. 국가가 원하는 것은 몇몇 ‘잘 버는 대학’인가, 아니면 다양한 학문 분야와 지역대학을 함께 살리는 지속가능한 연구생태계인가.

일본 고등교육 재정개혁의 큰 흐름을 관통하는 말은 ‘선택과 집중’이다. 연구비와 예산을 넓게 나누기보다 성과가 기대되는 분야와 기관에 집중적으로 투입하자는 사고방식은 일본만의 것이 아니다. 연구 인프라 구축, 우수 인재 유치, 국제경쟁력 확보, 평가 비용 절감 같은 측면에서 이 방식은 분명 일정한 설득력을 지닌다. 선택과 집중이 지지되는 이유로 대규모 연구 프로젝트 수행 가능성, 글로벌 경쟁 속 연구환경 경쟁력 확보 필요성, 분산 배분 시 발생하는 평가 부담 등을 소개한다. 정책입안자 입장에서 보면, 한정된 재원을 흩뿌리는 것보다 눈에 띄는 성과가 기대되는 곳에 몰아주는 편이 훨씬 효율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이 효율성이 언제나 국가 전체 연구력의 효율성과 같지 않다는 데 있다. 일본의 선택과 집중은 1990년대 대학원 중점화, 2000년대 국립대 법인화, 경쟁적 자금 확대와 맞물려 더욱 뚜렷해졌다. 대표적 사례로 세계적 교육연구거점 형성을 지원했던 글로벌 COE 프로그램이 제시되는데,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채택된 140개 거점 가운데 상당수가 국립대에, 그중에서도 특히 옛 제국대학에 몰렸다. 특정 대학이 더 큰 지원을 받아 빠르게 성장할 수는 있었겠지만, 그만큼 다른 대학의 연구 기반은 상대적으로 약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집중은 언제나 다른 곳의 공백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일본 내부에서도 선택과 집중을 둘러싼 인식은 엇갈린다. 한편에서는 선택과 집중이 연구력 저하를 불렀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경쟁적 자금이 문제가 아니라 대학의 연구비 대비 논문 생산성이 낮은 것이 문제라고 맞선다. 이 논쟁 자체는 익숙하다. 한국에서도 지역대 지원과 상위권 집중 투자, 균형 배분과 성과 배분 사이의 논의는 비슷한 언어로 반복돼 왔다. 하지만 일본 사례가 흥미로운 이유는 단지 찬반 논쟁 때문이 아니다. 장기간 선택과 집중을 실시해 본 나라에서, 그 결과가 생각만큼 국가 전체 연구력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문제 제기가 축적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정책의 방향은 화려했지만, 현장의 체력은 점점 약해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다.

이 질문은 결국 연구를 ‘개별 대학의 성과’로 볼 것인가, ‘국가 생태계의 작동’으로 볼 것인가의 차이로 이어진다. 몇몇 상위권 대학이 세계 순위를 올리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그러나 국가 전체 연구생태계가 건강하려면 그보다 넓은 층위가 필요하다. 지역거점국립대, 교육대학, 인문사회 분야, 막 학문 경력을 시작한 젊은 연구자, 당장 산업화되기 어려운 장기 연구 분야가 함께 버틸 수 있어야 한다. 일본 자료는 현행 성과배분과 외부자금 경쟁 구조가 바로 이러한 영역을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교육대학과 문과계 대학은 불리했고, 젊은 연구자는 불안정한 임기제 고용에 더 많이 놓였으며, 새로운 연구보다 안전한 연구가 선택되기 쉬웠다. 이 구조가 지속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장은 상위권 몇 곳의 지표가 유지되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국가 전체의 연구 토양이 얇아진다. 지역대가 약해지면 지역 산업과 지역사회가 접속할 연구거점도 약해지고, 다양한 학문 분야가 줄어들면 새로운 융합과 돌파가 나올 가능성도 함께 줄어든다. 특히 기초연구는 특정 상위 대학 몇 곳에서만 유지하기 어렵다. 넓은 연구자 풀, 다층적 대학 체계,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장기 재정이 있어야 한다. 일본의 연구력 저하가 단지 상위권 대학의 경쟁력 부족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의 체력 저하와 연결된 문제로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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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논쟁이 일본에서 읽어야 할 것

이쯤에서 다시 한국의 논의로 돌아올 필요가 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표현은 상징성이 강한 만큼 오해도 쉽게 부른다. 누군가는 이를 서울대의 복제품을 여러 개 만들겠다는 구상으로 이해하고, 누군가는 지역거점국립대를 서울대 수준의 연구·교육 여건으로 끌어올리자는 구조 개혁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어느 쪽 해석을 택하든, 일본 사례가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국가가 정말 피해야 할 것은 지역대 강화 그 자체가 아니라, 몇몇 상위권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이라는 점이다. 일본 자료는 선택과 집중이 대학 간 격차를 고착화하고, 외부자금 중심 구조가 장기적 대학 운영과 학문 다양성을 해칠 수 있다고 반복해서 보여준다.

따라서 한국에서 이 논의를 생산적으로 이어가려면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표어의 찬반을 넘어서야 한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지역거점국립대가 안정적인 기초재정을 갖고 있는가. 지역대 교수와 연구자가 단기 사업 수주에 매달리지 않고 장기 연구를 설계할 수 있는가. 연구중심 상위권 대학뿐 아니라 교육 중심 대학, 인문사회 분야, 지역 기반 학문도 지속 가능한가. 성과지표는 특정 유형의 대학에만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지 않은가. 대학에 필요한 돈이 사업비로만 공급되고 있지는 않은가. 일본의 실패 가능성은 바로 이런 질문을 충분히 묻지 않은 데서 커졌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이 일본과 같은 길을 걷지 않으려면, 지역거점국립대 강화 논의도 ‘선택과 집중의 또 다른 버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역대 몇 곳을 지정해 성과를 내라고 압박하는 방식이라면 이름만 다를 뿐 비슷한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지역거점국립대가 지역의 연구·교육 허브로 기능할 수 있도록 인력, 기초재정, 연구시간, 장기 인프라를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일이다. 서울대 같은 브랜드를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전국 곳곳에 두꺼운 연구 기반을 만드는 일이다. 일본 자료의 표현을 빌리자면, 연구력은 ‘생태계’ 전체가 살아나야 강화된다. 특정 대학의 순위 상승만으로는 국가 전체가 강해지지 않는다.

일본 국립대 20년의 궤적은 한 가지 냉정한 사실을 보여준다. 대학에 더 많은 경쟁을 도입하고, 성과에 따라 더 차등적으로 돈을 배분하며, 외부자금을 더 많이 따오게 만든다고 해서 자동으로 연구력이 커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줄어든 것은 연구자들의 시간, 젊은 연구자의 안정성, 학문 분야의 다양성, 지역대학의 버팀목, 장기 연구의 여유였다. 국가 연구력은 화려한 프로젝트나 상위권 몇 곳의 실적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대학들이 일상적으로 감당하는 인건비, 시설 유지비, 실패를 버틸 수 있는 연구비, 새 주제를 시작해볼 수 있는 자유, 그리고 수도권 바깥에서도 연구가 가능하다는 확신이 함께 있어야 한다. 일본은 바로 그 바닥이 얇아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먼저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지금 한국이 던져야 할 질문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지방대를 살려야 나라가 사는가. 일본 사례는 이 질문에 쉽게 답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반대 방향의 위험은 분명히 보여준다. 지방과 비수도권 대학의 기반이 약해지고, 국가 연구재정이 소수 강자와 단기 성과 중심으로 더 기울어질수록, 국가 전체 연구력은 오히려 취약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지역거점국립대 강화 논의가 의미를 가지려면, 그것은 몇몇 대학의 위상을 올리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국가 연구생태계의 바닥을 두껍게 만드는 전략이어야 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서울대가 아닌 곳에서도 좋은 연구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일본의 연구력 논쟁이 한국에 남기는 가장 값비싼 교훈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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