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를 늘리겠다는 말만으론 버티지 못한다… 일본 ‘지방창생 2.0’이 던진 축소사회 대응의 현실론

도쿄 집중을 막지 못한 10년의 실험 끝에 일본은 ‘인구 감소를 전제로도 지역이 유지되는 체제’로 방향을 틀었다. 청년·여성이 머무는 지역, 광역 연계, 생활인구와 관계인구의 확장, AI·디지털 기반의 지방 재구성이 이제 한국에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국가균형발전의 언어는 오랫동안 비슷했다. 지방에 일자리를 만들고, 사람이 돌아오게 하고, 출산과 정주를 늘리면 수도권 집중을 완화할 수 있다는 기대였다. 일본 역시 같은 길을 걸었다. 2014년 아베 신조 내각은 인구 감소와 도쿄권 일극 현상을 시정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지역 활성화 정책인 지방창생을 도입했고, 일자리와 인구 이동, 결혼·출산·육아, 지역 연계를 핵심 축으로 삼아 10년간 정책을 이어갔다. 그러나 2024년까지의 평가에서 드러난 결론은 분명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인구 감소 속도가 둔화되거나 증가 사례가 나타났지만, 전체적으로는 목표했던 수준의 인구 증가를 이루지 못했고 도쿄권 집중도 근본적으로 완화하지 못했다.

이 실패가 의미하는 것은 단순한 정책 미비가 아니다. 일본은 이제 인구를 되돌릴 수 있다는 낙관 자체를 수정하기 시작했다. 2025년 6월 일본 정부가 내놓은 ‘지방창생 2.0 기본구상’은 그 전환을 상징한다. 핵심은 인구 감소를 막는 데만 매달리기보다,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지역의 경제와 생활이 유지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지방창생 2.0은 성장의 조건을 ‘인구 증가’에서 ‘축소사회 속 지속 가능성’으로 바꿔 놓은 정책이다.

인구 감소를 부정하지 않는 정책으로의 전환

일본이 이렇게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숫자가 말해준다. 2025년 1월 1일 기준 일본 총인구는 1억2433만여 명으로, 일본인 인구는 16년 연속 감소했다. 합계출산율도 2021년 1.30명에서 2024년 1.15명으로 떨어졌다. 2070년 일본 총인구는 2020년보다 약 31% 줄어든 8699만 명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고령화 비중은 38.7%까지 높아질 전망이다. 인구를 다시 늘리는 전략만으로는 국가 운영의 기본 전제를 세우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 점에서 지방창생 2.0은 지방창생 1.0과 결이 다르다. 1.0이 인구 감소에 제동을 걸려는 데 정책의 중심을 두었다면, 2.0은 감소를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사회와 경제가 작동하는 방식을 다시 설계한다. 이는 패배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행정의 현실주의에 가깝다. 인구가 줄더라도 서비스는 유지돼야 하고, 산업은 재편돼야 하며, 지역은 무너지는 대신 다른 규모와 구조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판단이다.

일본의 지난 10년은 지방정책이 왜 쉽게 수도권 집중을 돌려세우지 못하는지를 보여준다. 2024년 분석 기준으로 소멸 가능성 지자체 수는 2014년 896개에서 744개로 줄었지만, 이 역시 구조적 반전이라 보기 어렵다. 인구가 늘어난 일부 지자체의 경우 출생 증가보다 이주자 유입의 영향이 컸고, 외국인 유입 증가 역시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각 지역이 서로 인구를 끌어오려는 경쟁에 빠지면서 전국 차원의 균형 회복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실제 일본의 인구 분포는 여전히 도쿄권 집중으로 요약된다. 47개 광역지자체 가운데 총인구가 증가한 곳은 도쿄도와 지바현 두 곳뿐이었고, 일본인 주민만 놓고 보면 증가 지역은 도쿄도 한 곳뿐이었다. 도쿄권 4개 지역이 전체 인구의 29.7%를 차지하며, 15~29세 청년층이 진학과 취업을 위해 계속 유입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젊은 여성의 도쿄 이동이 더 뚜렷하다는 점이 중요한 특징으로 제시됐다. 지역이 청년과 여성을 붙잡지 못하면 지방소멸 대응도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지방창생 2.0이 청년과 여성에 초점을 맞춘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은 이제 단순한 이주 장려보다, 청년과 여성이 실제로 살고 싶어 하는 지역을 만드는 문제를 더 앞세운다. 일자리의 양뿐 아니라 질, 생활환경, 커뮤니티 기반, 직장문화, 성별 역할에 대한 무의식적 편견까지 지역정책의 범주로 끌어들였다. 지방에 대학과 교육기회, 안정적인 경력 경로, 돌봄과 생활 인프라가 함께 갖춰지지 않으면 인구 분산은 지속되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광고
대학

한국에도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자료는 비수도권 청년의 수도권 전입 사유가 19~24세에는 교육과 직업, 25~29세에는 직업 중심으로 나타난다고 짚는다. 결국 지방소멸 문제는 출산정책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고용, 주거, 문화, 돌봄, 이동권이 한꺼번에 얽힌 정주 환경의 문제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한다. 지방을 살린다는 말이 청년에게는 지역에서 어떤 경력을 만들 수 있는지, 여성에게는 어떤 삶의 안전과 기회가 보장되는지로 번역되지 않으면 정책은 구호를 넘지 못한다.

‘사는 사람’만이 아니라 ‘관계 맺는 사람’을 늘리는 방식

지방창생 2.0의 또 다른 변화는 인구를 오직 상주인구 기준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본은 정주인구와 관광객 사이의 중간지대를 뜻하는 ‘관계인구’를 확대하고, 고향 주민등록이나 두 지역 거주 같은 제도를 통해 지역과 느슨하지만 지속적인 연결을 제도화하려 하고 있다. 이는 한 지역에 완전히 이주하지 않더라도 방문하고, 머물고, 일하고, 소비하고, 관계를 맺는 사람을 지역 활력의 일부로 보겠다는 발상이다. 한국 역시 이미 생활인구 개념을 도입했지만, 앞으로는 방문을 넘어 체류와 정주로 이어지는 단계적 설계가 더 중요해질 수 있다. 자료가 제시하듯 장기 체류자 등록이나 복수주소제도 같은 논의는 단순한 통계 보완이 아니라, 인구 감소 시대의 지역정책이 주민등록 중심 사고를 넘어설 수 있는지 묻는 과제이기도 하다. 사람을 한 번에 ‘옮겨오게’ 하는 것보다 여러 형태의 체류와 관여를 축적해 지역의 기반을 넓히는 방식이 더 현실적인 대응일 수 있다는 점에서다.

지방창생 2.0은 AI·디지털 활용, 드론 물류, 스마트 농업, GX와 같은 기술 요소를 포함하지만, 더 눈에 띄는 것은 광역 연계의 강조다. 일본은 개별 지자체 단위로는 유지하기 어려운 서비스와 산업을 광역 블록 단위에서 다시 묶어 경제권과 생활권을 키우는 방향을 제시한다. 행정 경계를 넘어 산업·교통·관광 프로젝트를 공동 추진하는 방식이다. 이는 인구 감소 시대에 지역 생존의 단위를 더 크게 보겠다는 의미다. 한국에서도 이 대목은 중요하다. 수도권 대응의 관점에서 비수도권 각 지역이 따로 경쟁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자료가 언급하듯 정부는 이미 ‘5극 3특’ 전략을 내놓았고,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출범도 예정돼 있다. 앞으로의 균형발전은 개별 시·군·구의 생존을 각각 지원하는 수준을 넘어, 권역 단위의 산업과 생활 인프라, 행정통합까지 아우르는 재편 전략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지방을 살리는 문제는 더 이상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규모의 지역 체계를 다시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가 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4월 12일 내놓은 이 분석은 일본 사례를 통해 한 가지 분명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여전히 지방정책을 인구를 늘리는 계획으로만 이해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일본의 지방창생 2.0은 성공의 완성형이라기보다, 실패를 통과한 뒤에 나온 수정안에 가깝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현실적이다. 인구 감소를 인정하지 않는 정책은 지속되기 어렵고, 수도권 집중을 외면한 지방정책도 힘을 얻기 어렵다. 이제 필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붙잡을 것인가’만이 아니라 ‘줄어드는 사회에서도 어떤 지역을 유지할 것인가’를 묻는 국가 전략이다. 한국의 지방정책도 그 질문 앞에 서 있다.

참고 : 국회 입법조사처 자료 [ NARS 현안분석 410호-20260412)축소사회를 전제로 한 일본의 지방창생 2.0 특징과 시사점 ]

#일본지방창생 #지방창생2_0 #축소사회 #지방소멸 #국가균형발전 #생활인구 #관계인구 #청년정주 #여성정주 #광역연계

Social Share

함께 읽어보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