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 수준에서 전기 상태 읽고 조작… AI 결합해 소재 설계 가속
반도체와 에너지 기술이 미세화될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나노 수준에서의 물질 거동이 성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 그러나 그동안은 이러한 미세 구조를 ‘관찰’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았고, 설계와 제어에는 한계가 있었다. KAIST 신소재공학과 홍승범 교수 연구팀은 원자간력 현미경(AFM)을 활용해 나노 수준에서 물질을 분석하고 직접 조작할 수 있는 통합 연구 전략을 제시하며, 신소재 연구의 방향 전환을 제안했다. 이번 연구는 단순한 분석 기술 정리가 아니라, 소재 연구의 방법론 자체를 재정의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차세대 메모리와 센서 기술의 핵심 소재로 주목받는 강유전체는 외부 전기 없이도 전기적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진다. 그러나 소자의 크기가 작아질수록 내부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가 전체 성능을 결정하게 되면서, 이를 정밀하게 측정하고 제어하는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기존의 거시적 측정 방식으로는 이러한 나노 수준의 현상을 충분히 분석하기 어려웠다.
연구팀은 AFM의 역할이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AFM은 원래 매우 미세한 탐침으로 표면을 스캔해 원자 수준의 정보를 읽어내는 장비로 사용돼 왔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탐침을 통해 전기 자극이나 압력을 가해 물질의 성질을 직접 바꾸는 ‘조작 도구’로서의 역할이 강조됐다. 연구팀은 AFM 기반의 다양한 분석 기법을 통합했다. 압전반응(PFM), 표면전위(KPFM), 전류 흐름(C-AFM) 측정 등 서로 다른 기술을 결합해, 물질의 구조와 전하 분포, 전기적 특성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는 체계를 제시했다. 이는 단일 측정이 아니라, 물질의 상태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분석 방식이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읽기’와 ‘쓰기’의 결합이다. AFM을 활용하면 나노 영역에서 전기적 도메인을 읽어내는 동시에, 원하는 방식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이는 소재를 분석하는 단계를 넘어, 설계와 제어까지 직접 수행하는 연구 방식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특히 이 기술은 2차원 소재와 초박막 반도체 물질의 성능 분석과 개선에도 활용될 수 있는 것으로 제시됐다.
연구팀은 향후 발전 방향으로 고속 AFM과 인공지능(AI)의 결합을 제시했다. 복잡한 나노 구조 데이터는 사람이 직접 해석하기 어렵기 때문에, AI를 활용해 패턴을 분석하고 최적의 소재 설계를 도출하는 방식이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신소재 개발이 실험 중심에서 데이터 기반 설계로 전환되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이번 연구에는 KAIST 김연규 박사과정과 박건우 석·박사통합과정이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Journal of Materials Chemistry C 표지 논문으로 게재됐다.
홍승범 교수는 AFM이 단순 관찰 장비를 넘어 신소재를 설계하고 정밀하게 제어하는 핵심 공정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소재 경쟁은 더 이상 물질 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를 얼마나 정밀하게 이해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설계할 수 있는지가 기술 경쟁의 핵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번 연구는 그 변화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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