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를 늘리면 의료는 좋아질까 – 전공의 수련 보고서가 던진 불편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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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 확대 논쟁 뒤에 가려진 전공의 수련 붕괴, 그리고 ‘의사 양성 시스템’이라는 구조적 문제

의대 정원 논쟁은 왜 반복되는가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논쟁은 한국 의료정책에서 가장 익숙한 장면 중 하나다. 의사가 부족하다는 통계가 제시되고, 이에 대한 해법으로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이 제안되며, 의료계의 반발과 사회적 갈등이 뒤따르는 구조는 수차례 반복돼 왔다. 문제는 이 논쟁이 언제나 ‘얼마나 더 뽑을 것인가’라는 숫자의 영역에서 맴돈다는 점이다. 의사 인력 부족이라는 현상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는 과정은 지나치게 단순화돼 왔다. 정책 논의는 의료 인력 양성의 전 과정을 바라보기보다, 의대 입학이라는 출발점에만 초점을 맞춰 왔고, 그 결과 문제의 핵심은 반복적으로 비껴갔다.

최근의 의대 정원 확대 추진 과정에서도 이러한 한계는 그대로 드러났다. 정책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OECD 평균에 못 미친다’는 지표를 근거로 제시했지만, 정작 그 의사들이 어떤 경로로 양성되고, 어디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충분히 제시되지 않았다. 지역과 진료과 간 불균형, 필수의료 인력 부족,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 현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온 문제였지만, 이 모든 현상은 다시 ‘정원이 적기 때문’이라는 하나의 원인으로 환원되었다. 이 과정에서 의대 졸업 이후의 단계, 즉 전공의 수련과 전문의 양성 구조는 정책 논의의 중심에서 밀려나 있었다. 그러나 의료 인력은 단순히 숫자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의사는 대학에서 배출되는 순간 완성되는 인력이 아니라, 졸업 이후 수년간의 수련 과정을 거쳐 의료 현장에서 기능하는 전문직으로 형성된다. 의대 정원 확대가 실제 의료 접근성과 필수의료 강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입학 이후의 경로가 어떻게 설계되어 있는지가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 논의는 반복적으로 ‘입구 확대’에만 집중해 왔고, 그 결과 의료체계 내부에서 가장 취약한 지점인 전공의 수련 구조는 오랫동안 구조적 검토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의대 정원 논쟁이 반복될수록, 정작 문제의 중심에 있어야 할 질문은 뒤로 밀려났다. 의사를 얼마나 늘릴 것인가가 아니라, 의사를 어떻게 길러내고 어떤 역할을 맡길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전공의 집단사직이 드러낸 ‘숨겨진 병목’

2024년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는 단순한 갈등이나 일시적 충돌로만 해석하기 어려운 사건이었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자, 대형병원을 포함한 의료 현장은 즉각적으로 기능 장애를 드러냈다. 외래 진료와 수술이 축소되었고, 병동 운영은 불안정해졌으며, 응급과 필수 진료과에서는 인력 공백이 곧바로 환자 안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이 상황은 한국 의료체계가 얼마나 전공의 노동에 의존해 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전공의는 법적으로 수련 중인 의사이자 교육을 받는 피교육생이다. 그러나 현실의 병원에서 전공의는 교육의 대상이기 이전에 필수적인 진료 인력으로 기능해 왔다. 병동의 야간 근무, 응급 상황 대응, 반복적인 처치와 행정 업무까지 상당 부분이 전공의의 몫으로 돌아갔다. 이 구조는 오랜 기간 관행처럼 유지되어 왔고, 병원 운영의 효율성이라는 명목 아래 제도적으로 문제 삼아지지 않았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나자 의료 현장이 즉각적으로 흔들린 이유는, 이들이 교육생이 아니라 사실상 병원 인력 구조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공의 집단사직은 이 숨겨진 병목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병원은 전공의 없이 운영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그동안 전문의와 간호사, 기타 의료 인력으로 대체되지 못했던 업무 상당 부분이 전공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이는 단순히 인력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과 노동의 경계가 무너진 구조적 문제였다. 전공의 수련은 교육을 목적으로 설계되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병원 운영을 유지하기 위한 노동이 우선시되어 왔다. 이 구조가 유지되는 한,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이나 교육의 질 향상은 부차적인 문제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더 중요한 점은 이 병목이 특정 시점에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전공의 수련 환경의 열악함, 장시간 근무, 휴식 부족, 교육과 무관한 업무 부담은 이미 여러 조사와 보고서를 통해 반복적으로 지적되어 왔다. 다만 이러한 문제들은 개별 전공의의 고충이나 근무 여건의 문제로 취급되었을 뿐, 의료체계 전체를 지탱하는 구조적 문제로 해석되지는 않았다. 집단사직이라는 극단적 상황이 발생하고 나서야 비로소, 전공의 수련 구조가 의료 시스템의 취약 지점이라는 사실이 사회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수련은 교육인가, 노동인가 – 전공의의 이중적 지위

전공의 수련 문제의 핵심에는 전공의의 이중적 지위가 놓여 있다. 전공의는 의사 면허를 가진 의료인이지만, 동시에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수련을 받는 교육생이다. 법과 제도는 이중적 지위를 전제로 전공의를 보호하고자 하지만, 현실의 병원 현장에서는 이 구분이 명확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전공의는 교육생이라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낮은 처우와 제한된 권리를 감수해야 하는 동시에, 의사라는 이유로 환자 진료와 의료 사고에 대한 책임을 부담한다. 전공의의 근무 실태는 이러한 모순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주당 80시간에 근접하거나 이를 초과하는 근무, 24시간을 넘는 연속 근무,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휴식과 휴가, 교육과 무관한 행정 업무 부담은 전공의 수련 환경의 일상적인 풍경으로 자리 잡아 왔다. 이러한 근무 형태는 교육을 목적으로 한 수련이라기보다, 병원 운영을 위한 노동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공의는 근로자로서의 권리와 보호를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교육생이라는 지위는 오히려 장시간 근무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작동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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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적 지위는 수련의 질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교육 중심의 수련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지도전문의의 충분한 지도와 피드백,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 단계별 역량 평가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인력 부족과 업무 과중으로 인해 지도와 교육은 후순위로 밀리고, 전공의는 반복적인 진료와 행정 업무에 투입된다. 이 과정에서 수련은 전문 역량을 체계적으로 습득하는 과정이 아니라, 버티며 시간을 채우는 과정으로 변질되기 쉽다. 전공의법은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수련 시간 제한과 휴식 보장, 수련 환경 평가 등을 규정하고 있지만, 법적 장치만으로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도 분명해졌다. 병원 인력 구조가 전공의 노동에 의존하는 상태에서 근무 시간만 제한하면, 교육의 질 저하나 업무 공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결국 전공의 수련 문제는 근로 조건과 교육 체계를 분리해서 접근할 수 없는 사안이며, 전공의를 어떻게 위치 지울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재설계가 요구된다. 전공의를 교육생으로 볼 것인지, 노동자로 볼 것인지, 혹은 그 둘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는 단순한 법률 개정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 인력 양성 시스템 전반을 다시 설계해야 하는 과제다.

전문의 중심 의료체계가 만든 왜곡

전공의 수련 문제가 반복적으로 악화되는 배경에는 한국 의료체계가 가진 구조적 특징이 자리 잡고 있다. 그 핵심은 전문의 중심 의료체계다. 한국에서 의대 졸업 이후 전공의 과정을 거쳐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는 경로는 사실상 선택지가 아니라 기본 경로로 인식된다. 일반의로 의료 현장에 남는 경우는 예외에 가깝고, 전문의 자격이 없으면 의료기관 내에서의 위상, 보상, 경력 전망 모두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기 쉽다. 이로 인해 의사 양성 정책은 자연스럽게 ‘전문의 양성 정책’으로 수렴해 왔다. 이 구조는 의료 인력의 분포를 왜곡시킨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이후 의사들이 선택하는 경로는 상대적으로 명확하다. 임상 경험과 연구 기회, 보상과 근무 여건이 집중된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이동하거나, 개원 및 특정 비급여 진료 영역으로 진출하는 것이다. 반면 지역 의료기관이나 필수 진료과는 과중한 업무와 높은 법적 리스크, 상대적으로 낮은 보상이라는 삼중의 부담을 안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는 개인의 소명의 문제로만 남고, 제도적으로는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지 못한다.

전문의 중심 구조는 전공의 수련 단계에서도 영향을 미친다. 전공의는 미래의 전문의로서 병원의 핵심 인력으로 간주되며, 병원은 이들을 활용해 진료 공백을 메운다. 그러나 이는 교육의 관점에서 볼 때 심각한 문제를 내포한다. 수련은 전문 역량을 체계적으로 축적하는 과정이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전문의가 되기 위한 통과 의례’처럼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 일정한 기간을 버티며 근무하면 자격이 주어지는 구조 속에서, 수련의 질보다는 시간 충족이 우선시되기 쉽다. 이 과정에서 교육과 평가의 실질성은 약화되고, 전공의의 소진은 누적된다. 더 나아가 전문의 중심 의료체계는 의사 인력 정책을 단선적으로 만든다. 의사가 부족하면 전문의를 늘리면 된다는 논리가 자연스럽게 작동하고, 전문의가 늘어나면 의료 접근성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뒤따른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전문의 수가 증가해도 이들이 동일한 지역과 동일한 의료기관 유형으로 이동한다면, 지역과 필수의료의 공백은 해소되지 않는다. 오히려 대형병원 쏠림과 경쟁은 심화되고, 전공의와 전문의 모두 더 높은 업무 강도에 노출될 수 있다. 이처럼 전공의 수련 문제는 개별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전문의 중심으로 설계된 의료 인력 구조의 결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주요국은 의사를 어떻게 길러내는가

전공의 수련 문제를 구조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의사 양성 방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요국의 사례는 공통적으로 ‘의사를 얼마나 뽑을 것인가’보다 ‘의사를 어떻게 길러내고 배치할 것인가’에 더 많은 제도적 에너지를 투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 국가는 전공의 수련을 단순한 병원 내부의 문제로 두지 않고, 국가 차원의 교육·인력 정책으로 다룬다.

미국의 경우 전공의 수련은 독립적인 인증 기구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전공의 교육과 수련 프로그램은 국가 차원의 기준에 따라 인증을 받아야 하며, 인증 여부는 재정 지원과 직결된다. 이는 병원이 전공의를 단순히 인력으로 활용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제한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수련 프로그램은 교육 목표와 평가 체계를 명확히 갖추어야 하고, 지도전문의의 역할과 책임도 엄격하게 규정된다. 근무 시간과 휴식 기준 역시 교육의 질과 환자 안전이라는 관점에서 관리된다.

영국은 전공의 수련을 국가보건서비스 체계 안에서 관리한다. 전공의 교육과 근무는 국가가 재정적으로 책임지며, 병원은 교육 제공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수련 과정은 단계별로 구분되어 있고, 공통 역량과 전문 역량이 통합된 형태로 설계된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교육생으로서의 지위를 분명히 인정받고, 수련의 질은 국가 차원의 평가와 감독을 받는다. 전공의 수련이 병원의 재정 부담으로 전가되지 않기 때문에, 교육과 노동의 경계를 제도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캐나다 역시 전공의 수련을 교육 정책의 연장선에서 다룬다. 전공의 교육은 의과대학 중심으로 운영되며, 정부는 재정을 지원하되 교육 내용과 운영에는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는다. 전문직 단체와 교육기관이 자율성을 가지고 수련의 질을 관리하고, 국가와 사회는 이를 뒷받침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특정 병원의 인력이 아니라, 국가 의료 인력 양성 시스템의 일부로 위치 지워진다.

일본은 의대 졸업 이후 초기 수련을 국가가 전액 지원하는 구조를 통해, 전공의 수련을 공공적 영역으로 관리한다. 이후 단계에서도 지방자치단체와 국가가 재정적으로 관여하며, 지역 수련과 배치를 유도한다. 이러한 구조는 수련을 병원 단위의 문제로 축소하지 않고, 의료 인력의 지역적 균형이라는 정책 목표와 연결한다.

이들 국가의 사례는 하나의 공통점을 보여준다. 전공의 수련은 병원의 내부 운영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할 교육과 인력 정책이라는 인식이다. 교육의 질, 근무 조건, 재정 책임이 분리되어 설계되지 않으면 전공의는 언제든지 값싼 노동력으로 전락할 수 있다. 반대로 수련을 공적 책임 아래 두는 경우, 교육과 노동의 경계를 관리하고 장기적인 의료 인력 구조를 설계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한국의 전공의 수련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는 단순히 제도가 미비해서가 아니라, 전공의 수련을 어디까지 공적 책임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합의가 부재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왜 한국은 정원 확대에만 매달리는가

그렇다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주요국은 의사 양성을 교육과 인력 정책의 문제로 다층적으로 설계하는데, 왜 한국의 정책 논의는 반복적으로 의대 정원 확대라는 단일 해법으로 수렴하는가. 이는 단순히 정책 담당자의 판단 오류라기보다, 한국 의료정책과 고등교육 정책이 결합되어 작동해 온 방식의 결과에 가깝다.

첫째, 단기 성과 중심의 정책 구조가 작동해 왔다. 의대 정원 확대는 숫자로 즉각적인 성과를 제시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다. 몇 명을 늘렸는지, 몇 년 뒤 얼마나 공급이 증가할 것인지 계산이 가능하고, 정책 메시지로 전달하기도 쉽다. 반면 전공의 수련 구조 개편, 전문의 양성 경로 재설계, 지역·필수의료 트랙 구축은 성과가 가시화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고, 다양한 이해관계 조정이 뒤따른다. 이 과정에서 정책은 자연스럽게 ‘설계’보다는 ‘확대’로 기울어 왔다.

둘째, 재정 책임의 문제다. 전공의 수련을 공적 교육으로 인식할 경우, 국가는 교육 비용과 인력 양성에 대한 재정적 책임을 분명히 져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전공의 수련은 오랫동안 병원 내부 문제로 취급되어 왔고, 국가는 법적 규제와 평가를 통해 관리하는 역할에 머물렀다. 수련 비용과 인력 운영 부담은 병원에 전가되었고, 병원은 이를 전공의 노동으로 흡수하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 이러한 구조에서 국가는 정원 확대라는 상대적으로 비용 부담이 분산되는 정책을 선호하게 된다.

셋째, 의료 전달체계와 교육 정책의 분절성이다. 의대 정원 정책은 교육부와 보건복지부가 교차하는 영역이지만, 전공의 수련과 전문의 양성은 주로 보건의료 정책의 하위 영역으로 다뤄져 왔다. 이로 인해 의사 양성은 하나의 연속된 경로로 설계되지 못하고, 입학–졸업–수련–전문의 단계가 각각 다른 논리로 운영된다. 정원 확대는 교육 정책으로 손쉽게 추진되지만, 그 이후 단계의 구조적 문제는 정책의 사각지대로 남기 쉽다.

이러한 조건들이 겹치면서 한국의 의료 인력 정책은 반복적으로 ‘입구 확대’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는 이 접근 방식의 한계를 분명히 드러냈다. 숫자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의료체계의 취약 지점을 보완할 수 없으며, 오히려 기존의 왜곡된 구조 위에 더 많은 인력을 쌓아 올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전공의 수련 개선은 의료정책이 아니라 교육정책이다

전공의 수련 문제를 둘러싼 논의가 반복적으로 난항을 겪는 이유는, 이를 의료 노동 문제나 근로 환경 문제로만 다뤄왔기 때문이다. 물론 전공의의 근무 시간과 처우, 안전과 휴식은 중요한 쟁점이다. 그러나 전공의 수련의 본질은 노동 문제가 아니라 교육 문제에 가깝다. 전공의는 단순히 병원의 인력이 아니라, 국가가 양성해야 할 전문직 인력이며, 그 과정은 고등교육 이후 단계의 전문 교육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교육으로서의 수련을 전제로 할 때, 질문은 달라진다. 전공의가 어떤 역량을 단계적으로 습득해야 하는지, 그 과정에서 지도전문의는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교육의 질은 어떻게 평가되고 피드백되는지가 중심에 놓인다. 근무 시간 제한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교육 목표가 명확히 설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간 규제만 강화될 경우, 수련의 질 저하나 병원 운영의 불안정이라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주요국의 사례는 이 지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들 국가는 전공의 수련을 병원의 자율 영역으로 방치하지 않고, 국가 또는 공적 기구가 교육 기준과 재정 책임을 함께 설계한다. 수련 프로그램의 인증과 평가가 재정 지원과 연결되며, 지도전문의의 교육 책임 역시 제도적으로 규정된다. 이는 전공의 수련이 병원의 비용 절감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한국에서도 전공의 수련을 교육 정책의 영역으로 명확히 위치 지울 필요가 있다. 이는 전공의법의 단순 개정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수련 환경 평가의 실효성을 높이고,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며, 교육의 질과 지도전문의 역할이 실제로 작동하도록 제도 전반을 재설계해야 한다. 동시에 수련 비용에 대한 국가의 재정 책임을 단계적으로 확대하지 않는다면, 교육 중심 수련이라는 목표는 선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전공의 수련을 의료 현장의 부담이 아니라, 국가 인력 양성 투자로 인식하는 전환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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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를 늘리는 대신, 의사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논쟁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한국 사회는 의사를 어떻게 길러내고, 어떤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가. 지금까지의 정책은 이 질문에 충분히 답하지 못한 채, 숫자를 늘리는 방식으로 문제를 관리해 왔다. 그러나 전공의 수련 환경의 붕괴와 의료체계의 불안정은 이러한 접근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의사를 다시 설계한다는 것은 단순히 정원을 조정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의대 졸업 이후의 경로를 다양화하고, 일반의·가정의·지역의사·전문의가 각각 독립적인 전문성과 경력 경로를 가질 수 있도록 구조를 재편하는 것을 뜻한다. 필수의료와 지역의료가 개인의 희생이나 사명감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교육·보상·경력 설계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일도 포함된다. 이러한 설계 없이는 전문의 수가 늘어나더라도 수도권 쏠림과 필수의료 공백이라는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전공의 수련은 이 재설계의 핵심에 놓여 있다. 수련이 교육으로서 기능하지 못한다면, 전문의 양성은 단순한 자격 부여 과정으로 전락하고, 의료 인력의 질과 지속 가능성은 위협받는다. 반대로 전공의 수련을 공적 교육으로 재정의하고, 국가가 책임 있게 설계한다면, 의료체계 전반의 안정성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

의사를 늘릴 것인가라는 질문은 이제 충분히 논의되었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다르다. 어떤 의사가 필요한지, 그 의사를 어떻게 길러낼 것인지, 그리고 그 과정에 사회는 어디까지 책임을 질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전공의 수련 보고서가 던진 불편한 질문은, 결국 한국 의료정책과 교육정책이 더 이상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의대 정원 논쟁은 앞으로도 같은 자리에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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