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과 입시, 표현의 자유와 성적 인플레이션까지… 예일대가 스스로 인정한 고등교육 신뢰 위기의 실체와 개혁 과제
미국 대학 사회를 둘러싼 불신은 오래전부터 축적돼 왔지만, 최근 예일대가 내놓은 자기진단은 그 불신을 더 이상 외부의 오해나 정치권의 공격으로만 돌리지 않았다. 예일대는 2026년 4월 공개한 고등교육 신뢰 위원회 자료를 통해 미국 사회의 대학 불신이 실제이며 긴급한 문제라고 규정했고,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이 대학 내부에도 있다고 인정했다. 예일대 총장 모리 매키니스(Maurie McInnis) 역시 관련 입장에서 대학은 단순한 방관자가 아니었다고 밝히며, 고등교육의 신뢰 침식에 학교가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판단을 수용했다. 이 장면이 특별하게 읽히는 이유는 분명하다. 대학은 오랫동안 사회 비판에 직면할 때마다 학문의 자유, 공공성, 연구의 가치 같은 정당한 명분을 앞세워 왔다. 그러나 예일대는 이번에는 그 방어의 언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미국 대학들이 등록금 급등, 불투명한 입시, 캠퍼스 내 자기검열, 정치적 편향 논란, 성적 인플레이션, 행정 비대화 같은 문제를 외면하거나 축소하면서 스스로 신뢰를 깎아온 측면이 있다는 점을 직시한 것이다. 대학이 지식을 만들고 가르치고 보존하는 기관이라는 명제를 계속 말하면서도, 실제 운영과 판단에서는 그 원칙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는 자성이 이번 논의의 출발점이 됐다.
신뢰 하락의 현실, 대학은 더 이상 공통의 선이 아니었다
예일대 위원회가 먼저 짚은 것은 숫자로 드러난 불신의 규모였다. 미국 사회에서 고등교육에 대해 “매우” 또는 “상당히” 신뢰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10년 전 57퍼센트 수준이었지만 2024년에는 36퍼센트까지 떨어졌다. 2025년에 일부 반등이 나타났어도 미국인 10명 가운데 7명은 여전히 고등교육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봤다. 예일대는 이를 일시적 분위기 변화가 아니라, 대학이 사회와 맺어온 관계 자체가 흔들리는 구조적 경고로 받아들였다. 학위가 더 이상 노력과 실력, 전문성과 판단 능력을 상징한다고 믿기 어려워지는 순간 대학의 존재 이유도 약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불신은 모든 집단에서 똑같이 나타나지 않았다. 관련 기사에서 인용된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층의 고등교육 신뢰도는 69퍼센트였지만, 공화당 지지층은 35퍼센트, MAGA 지지층은 24퍼센트에 머물렀다. 대학이 더 이상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중립적 공적 기관으로 보이지 않고, 특정 문화와 가치에 더 가까운 조직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특히 아이비리그와 같은 엘리트 사립대는 미국 고등교육 전체를 대표하지 않음에도 상징성이 크기 때문에, 대학 불신의 집중 표적이 되는 경향이 강하다. 예일대가 이번 논의를 통해 사실상 인정한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오늘의 위기는 대학 일반에 대한 피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엘리트 대학이 공정성과 공공성, 학문적 엄정성을 스스로 충분히 증명하지 못했다는 실망이기도 하다.

미국 사회가 대학을 신뢰하지 못하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여전히 돈이다. 예일대 위원회는 고등교육의 신뢰 하락을 불러온 여러 원인 가운데 비용 문제를 가장 지배적이고 눈에 띄는 요인으로 꼽았다. 미국대학협회 조사에서도 대학이 바뀌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너무 비싸다”는 응답이었다. 정치 성향이나 학교 유형을 막론하고 학비 부담이 지나치게 크다는 데에는 대체로 의견이 모였다. 지난 30년 동안 미국 대학 등록금의 평균 명목 가격은 물가를 감안해도 두 배 이상 뛰었다. 대학은 여전히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말하지만, 미국 사회는 점점 더 “무엇을 위해 이 돈을 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앞세우고 있다.
예일대 역시 이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다. 2025~2026학년도 기준 예일대 학부 등록금은 6만9900달러, 학교가 제시한 연간 총 비용은 9만4425달러에 달한다. 이는 미국 4인 가구의 중간소득보다 높은 수준이다. 같은 자료에서 예일대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표현으로 “너무 비싸다”를 고른 응답이 86퍼센트에 이른다는 점은, 비용 문제가 단순한 체감이 아니라 학교 이미지 자체를 규정하는 요소가 됐음을 보여준다. 더 곤혹스러운 대목은 예일대가 동시에 막대한 기금을 보유한 대학이라는 사실이다. 1995년 40억 달러 규모였던 기금은 2025년 440억 달러를 넘겼다. 대중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이렇게 부유한 대학이 왜 여전히 더 많은 등록금을 요구하느냐는 것이다. 예일대는 저소득층과 중산층 학생의 실질 부담을 낮추기 위해 이른바 고비용-고보조 체계를 운영해 왔다고 설명한다. 현재 학부생 약 5명 중 1명은 등록금과 주거, 식비, 도서, 이동 경비까지 포함한 전액 지원을 받고, 절반이 넘는 학생이 필요 기반 재정보조를 받고 있다. 2026~2027학년도부터는 가구 소득 20만 달러 미만 가정에 등록금 전액 면제를 적용하고, 10만 달러 미만 가정에는 등록금과 기숙사비, 식비까지 모두 지원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확대하기로 했다.
그런데도 예일대 내부에서는 이 모델이 신뢰 회복에는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해 왔다는 평가가 나왔다. 스티커 가격은 지나치게 높고, 재정보조 체계는 복잡하며, 실제 부담액은 가정마다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많은 가정은 정확한 계산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이 학교는 너무 비싸서 우리와 무관하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미국인의 상당수는 아직도 대학이 모든 학생에게 비슷한 수준의 비용을 요구한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바로 이 지점에서 대학이 아무리 지원 확대를 말해도 사회는 이를 공정하고 예측 가능한 제도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비용이 높다는 사실만큼이나, 비용 구조를 일반 시민이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 불신을 키워온 셈이다. 여기에 더해 미국 사회 전체로 시선을 넓히면 문제는 더욱 무거워진다. 학부보다 대학원과 전문직 교육 과정에서 큰 빚을 떠안은 이들이 졸업 후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연방 학자금 대출자 가운데 거의 4분의 1이 디폴트 상태에 있다는 지적은, 대학 교육이 더 이상 자동으로 안정적 삶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이 약해졌음을 뜻한다. 대학은 여전히 미래를 보장하는 제도처럼 말하지만, 사회는 점점 더 비싼 약속이 불확실한 결과로 돌아오는 경험을 하고 있다. 그 간극이 쌓일수록 학위의 상징 자본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입시의 불투명성, 누가 왜 합격하는지 아무도 설명하지 못했다
비용과 함께 엘리트 대학의 신뢰를 갉아먹은 또 다른 축은 입시다. 예일대는 2026학년도 학부 입학률이 4.2퍼센트였다고 밝혔다. 지원자의 거의 96퍼센트가 탈락한 셈이다. 이 정도로 희소한 기회를 두고 사회가 가장 먼저 묻게 되는 것은 당연히 공정성이다. 누가 들어가고 누가 탈락하는가. 그리고 그 이유는 납득 가능한가. 예일대 내부에서도 지금의 입시 체계는 우수한 학생 집단을 구성하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왜 한 학생이 다른 학생보다 선택됐는지를 설명하는 데는 취약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미국의 선택적 사립대학 입시는 오랫동안 ‘한 학급을 구성하는 방식’이라는 논리로 운영돼 왔다. 시험 점수와 내신, 에세이, 활동 이력, 인성, 잠재력 같은 요소를 종합적으로 본다는 포괄 평가가 그 핵심이다. 문제는 이 체계가 너무 많은 주관적 판단을 포함하고 있다는 데 있다. 예일대가 인용한 연구는 비슷한 학업 성취를 가진 지원자들 사이에서도 상위 1퍼센트 소득 계층 출신 학생이 선택적 사립대 합격에서 더 유리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체육 특기자, 동문 자녀, 그리고 고소득과 강하게 연결된 각종 비공식적 이점들이 그 차이의 상당 부분을 설명한다는 분석이다. 입시는 여전히 능력주의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배경의 효과가 제도 깊숙이 남아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예일대 위원회가 특히 문제 삼은 것도 이 특혜 구조였다. 동문 자녀, 운동선수, 교수·직원 자녀, 기부자 자녀와 같은 범주가 입시에서 우대를 받으면, 그만큼 일반 지원자들이 들어갈 자리는 줄어든다. 예일대 내부에서는 학문적 우수성을 최우선 원칙으로 내세우는 학교가 실제로는 다양한 특별 범주를 통해 기회를 분배하고 있다는 점이 공정성 훼손으로 읽혔다. 그래서 위원회는 이런 특별 선호를 줄이고, 입학 판단에서 학업 성취를 가장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관련 기사 역시 예일대가 운동선수, 레거시, 교수·직원·기부자 자녀에 대한 우대를 줄일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고 전했다. 더 눈길을 끄는 제안은 최소 학업 기준의 공개였다. 예일대는 현재 지원자에게 모든 요소를 본다고 안내하지만, 실제로 어느 정도의 학업 준비가 되어 있어야 입학 심사 대상이 되는지는 명확히 말하지 않는다. 위원회는 이러한 모호성이 지원자에게 불필요한 희망과 과잉 경쟁을 낳는다고 봤다. 그래서 최소 SAT 점수나 대학 자체 시험 등, 사회가 이해할 수 있는 분명한 학업 기준을 설정하고 공개하는 방안을 거론했다. 이것은 단순히 수치주의로 돌아가자는 뜻이 아니라, 대학이 자신이 무엇을 보고 판단하는지를 공개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에 가깝다. 예일대가 정말 학문적 우수성을 핵심 가치로 내세운다면, 입시에서도 그 가치가 선명하게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와 자기검열, 대학은 어느 순간 침묵을 학습시켰다
예일대가 비용과 입시만큼 비중 있게 다룬 주제는 캠퍼스 내 표현의 자유였다. 예일대는 오래전 우드워드 보고서를 통해 대학이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논의하며, 도전할 수 없는 것을 도전할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대학 사회는 그 원칙을 지키는 데 어려움을 겪어 왔다. 예일대 내부 평가에서도 획일성에 대한 압박, 사회적 망신 주기, 정치적 긴장, 온라인 공간의 과잉 노출이 캠퍼스 전반의 발언 환경을 위축시켜 왔다는 진단이 나왔다. 실제 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했다. 2025년 예일대 학생 조사에서 학부생의 거의 3분의 1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캠퍼스에서 자유롭게 표현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2015년 17퍼센트였던 수치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보수 성향 학생들의 불편감이 더 두드러졌지만, 위축은 특정 진영만의 현상으로 보기 어려울 만큼 폭넓게 확산된 것으로 읽혔다. 전국 대학생 조사에서도 절반 이상이 수업 시간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는 데 위축감을 느낀다는 결과가 나왔다. 대학이 토론과 비판적 질문의 공간이어야 한다는 이상과 실제 체감 사이의 간극이 상당하다는 뜻이다.
예일대는 이 문제를 단순한 문화 논쟁으로만 다루지 않았다. 학생들뿐 아니라 박사후연구원, 국제학생, 비정년트랙 교원, 일부 정년보장 교수들까지도 연구 주제나 강의 내용, 소셜미디어 발언이 행정적 또는 정치적 불이익으로 이어질까 우려해 침묵하는 분위기를 언급했다. 캠퍼스 내부의 비공식적 순응 압력과 캠퍼스 외부의 정부 권력 압박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대학이 진실을 탐구하는 공간이라고 말해도, 외부 사회는 그 공간을 이미 자유롭지 않은 장소로 인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예일대는 2024년 도입한 ‘기관의 목소리’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대학 지도부가 모든 사회적 쟁점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는 습관을 줄여야, 오히려 구성원들이 더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는 대학 본부가 윤리적 판정기관처럼 행동하는 대신, 다양한 견해가 충돌하고 토론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예일대가 던진 질문은 이것이다. 대학은 무엇이 옳은지를 먼저 선언하는 기관인가, 아니면 서로 다른 판단이 검증되고 다뤄지는 공간인가. 이번 논의는 후자에 더 가까운 쪽으로 무게를 실었다.
정치적 편향과 지적 다원주의, 대학은 왜 메아리 방이 됐나
표현의 자유가 발언의 조건에 관한 문제라면, 정치적 편향은 그보다 한층 구조적인 질문이다. 대학 안에 실제로 얼마나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는가, 특정 이념이 압도하는 상태에서 과연 학문적 검증과 토론이 충분히 이뤄질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예일대 위원회는 미국 대학, 특히 엘리트 대학에 보수적 지적 전통이 충분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오랜 비판을 외면하지 않았다. 전국적으로 교수진의 정당 등록 비율이 민주당 쪽으로 크게 기울어 있다는 추정치와 함께, 예일대 일부 단위에서는 그 격차가 훨씬 더 크다는 분석도 거론됐다. 다만 예일대 내부 논의는 이 문제를 단순한 진영 싸움으로 처리하지 않았다.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연구와 개인 정치 성향을 곧바로 연결하는 것이 무리라는 반론이 나왔고, 인문사회 분야에서는 개인적 신념과 교육자의 책무, 학문적 전문성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또한 오늘날 대학이 마주한 다양한 국제적·학문적 차이를 감안하면 ‘보수 대 진보’라는 이분법만으로는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예일대가 결국 인정한 사실은 분명하다. 메아리 방은 좋은 교육과 연구를 만들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질적 관점과 반대 의견의 충돌이 약해질수록, 대학은 자신이 알고 싶은 것만 확인하는 공간으로 좁아질 위험이 커진다.
이 때문에 위원회는 각 학과와 단과대가 스스로의 지적·방법론적 폭을 점검하는 자기평가를 실시하라고 제안했다. 교수 구성, 교과 과정, 채용과 입학, 연구 접근 방식이 특정 흐름에 과도하게 쏠려 있지 않은지 돌아보고, 학생과 외부 교수의 의견도 반영하라는 주문이다. 방문학자 초빙, 공동강의, 새로운 학술 센터 설립, 대학원 파이프라인 강화 같은 구체적 실험도 거론됐다. 핵심은 특정 정치 세력의 비위를 맞추는 단기 처방이 아니라, 대학의 지적 생태계를 실제로 넓히는 장기 개편이다. 예일대는 이 문제에서 명쾌한 정답보다 실질적 실험이 더 중요하다고 봤다.
강의실의 권위 붕괴, 성적은 더 이상 실력을 말해주지 못했다
예일대 진단에서 가장 뼈아픈 대목 가운데 하나는 교육 그 자체, 다시 말해 강의실의 권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인식이다. 대학은 본래 수업과 읽기, 토론과 탐구를 중심으로 운영돼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학업 외 요소들이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해 왔다. 학생들은 대학 생활을 학문보다 사회적 경험과 경력 관리의 시간으로 받아들이기 쉬워졌고, 대학 역시 연구 실적과 행정 운영, 진로 관리에 더 큰 비중을 두며 강의실의 중심성을 스스로 약화시켜 왔다. 예일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사회가 대학을 의심하기 시작한다고 봤다. 대학이 정작 스스로도 수업과 학습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다루지 않으면서, 바깥세상에 대학 교육의 권위를 믿어 달라고 요구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성적 인플레이션은 그 상징적 사례다. 예일대 학부에서 1963년 A 또는 A- 비율은 10퍼센트였지만, 2022~2023학년도에는 79퍼센트까지 치솟았다. 현재 예일대의 중간값 학생은 A를 받는다. 이는 단지 학생들의 실력이 과거보다 비약적으로 향상됐기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다. 위원회는 진짜 문제를 성적의 압축과 비교 가능성 상실에서 찾았다. 수업과 학과마다 기준이 크게 다른데도 대학은 같은 문자 등급과 GPA 체계로 이를 한 줄로 세운다. 그렇게 되면 성적표는 학생의 학업 성취를 정교하게 전달하기보다, 평가 체계가 얼마나 느슨한지를 드러내는 문서에 가까워진다.
예일대는 이를 되돌리기 위해 공동 기준을 다시 세우자고 제안했다. 대학 전체 평균을 3.0 수준 등 일정 기준으로 조정하는 논의를 시작하고, 당장 가능한 조치로는 각 수업에서 학생이 차지한 백분위를 성적표에 함께 적는 방안이 제시됐다. 엄격한 수업에서 받은 A-와 사실상 대부분이 A대인 수업의 A-를 같은 의미로 다뤄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다. 이렇게 되면 교수는 좀 더 엄정한 평가를 할 수 있고, 학생도 단지 좋은 GPA를 위해 쉬운 수업만 골라 듣는 유인을 줄일 수 있다. 대학이 성적을 다시 신뢰 가능한 신호로 만들 수 있느냐는 교육의 기본을 회복할 수 있느냐와 직결된다.

AI와 집중력의 위기, 대학은 무엇을 인간의 일로 남겨둘 것인가
예일대는 디지털 환경과 인공지능의 확산도 대학 신뢰 위기의 배경으로 지목했다. 강의실 안에서 학생들이 물리적으로는 자리에 앉아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다른 곳에 가 있는 장면은 이제 낯설지 않다. 스마트폰과 노트북, 메시지와 소셜미디어가 수업의 집중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점에 대해 교수와 학생 모두 일정 부분 동의하고 있다는 것이 예일대 내부의 판단이었다. 그래서 위원회는 특별한 교육적 이유가 없는 한 휴대전화와 노트북, 태블릿을 사용하지 않는 강의실을 기본값으로 삼자는 제안까지 내놓았다. 첨단 기기를 무조건 배척하자는 뜻이 아니라, 대학이 끝까지 지켜야 할 학습 환경의 기준선을 다시 세우자는 취지다.
인공지능은 그보다 더 큰 도전으로 제시됐다. 과거에는 수시간, 수일, 수주에 걸친 집중이 필요했던 과제가 이제는 거의 즉시 생성될 수 있다. 교수들은 평가 방식과 강의계획서를 다시 짜야 하고, 학생들은 무엇이 자신의 사고이고 무엇이 기계의 산출물인지 경계를 재정의해야 한다. 예일대는 AI가 엄격한 교육의 기준이었던 집중적이고 훈련된 사고를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봤다. 동시에 이런 기술 변화는 인간 전문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마저 흔들 수 있다고 진단했다. 결국 대학이 지켜야 할 것은 정보 전달 기능 자체가 아니라, 기술이 대신할 수 없는 판단력과 해석력, 윤리적 숙고와 지적 훈련의 영역이라는 뜻이다.
예일대가 이번에 던진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따로 있다. 대학은 정확히 무엇을 하는 기관인가 하는 물음이다. 대학이 모든 사회 문제에 답해야 하고, 모든 도덕적 기대를 만족시켜야 하며, 선택적이면서도 완전히 포용적이어야 하고, 비싸지만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는 상충된 요구 속에서 미국 대학은 점점 본래의 목적을 흐려 왔다고 예일대는 판단했다. 신뢰는 말한 일을 실제로 해낼 때 쌓이는데, 대학이 자신이 무엇을 하는 기관인지조차 분명히 말하지 못하는 순간 신뢰 역시 흐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위원회는 예일대가 2016년 이후 넓혀 온 사명 서술을 다시 좁히고, 연구와 교육을 통한 지식의 창조·전파·보존이라는 보다 집중된 문장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세상을 더 좋게 만들겠다는 포부나 윤리적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이상이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대학을 대학답게 만드는 핵심 사명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학이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며, 그래야 사회도 대학을 다시 해석할 수 있다. 예일대가 이번에 제시한 방향은 거대한 비전보다 선명한 역할 정의에 가까웠다.
예일의 질문은 미국만의 질문이 아니다
이번 논의가 한국 사회에도 낯설지 않게 읽히는 이유는 분명하다. 등록금과 교육비 부담, 입시 공정성에 대한 의심, 캠퍼스 내 정치적 긴장, 대학의 취업기관화, 학문보다 평판과 관리가 우선되는 운영 방식, 성적의 의미 약화 등은 한국 대학도 반복적으로 겪어온 문제들이다. 물론 한국과 미국은 제도 구조가 다르고, 아이비리그와 한국 대학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학이 사회적 존중을 당연한 자산처럼 소비해 온 사이, 시민들은 점점 더 대학의 비용과 절차, 가치와 결과를 따져 묻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적지 않다.
예일대가 보여준 변화의 핵심은 완성된 해법보다 태도에 있다. 대학이 사회의 불신을 무지나 적대의 결과로만 돌리지 않고, 자기 내부의 모순과 실책을 함께 보려 했다는 점이다. 학비가 왜 이렇게 높아졌는지, 입시는 왜 이토록 설명하기 어려운 제도가 됐는지, 강의실은 왜 침묵과 산만함의 공간이 됐는지, 대학은 왜 특정 진영의 문화에 더 가까운 조직처럼 비치는지, 그리고 대학이 정말로 끝까지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묻기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예일대가 던진 질문은 결국 대학의 미래가 외부 공격을 견디는 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신뢰는 방어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설명 가능한 원칙과 납득 가능한 운영, 그리고 스스로를 고칠 수 있는 용기에서 다시 쌓인다.
지금 예일대가 직면한 과제는 하나의 대학이 감당할 범위를 넘어선다. 그러나 미국 고등교육을 대표하는 상징적 기관이 먼저 “대학은 왜 믿음을 잃었나”라고 묻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는 가볍지 않다. 대학이 사회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회복의 출발점은 대학 바깥을 탓하는 데 있지 않고 대학 안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데 있다는 점이다. 예일대는 이번에 바로 그 불편한 출발선을 세상 앞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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