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AI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 AI가 전쟁을 더 쉽게 만들 때, 평화는 더 어려운 선택이 된다

자동화된 폭력의 시대에 다시 묻는 인간 책임

전쟁은 언제나 기술과 함께 변해왔다. 화약은 전장의 거리를 바꾸었고, 항공기는 공격의 범위를 바꾸었으며, 핵무기는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폭력의 의미를 바꾸었다. 이제 인공지능은 전쟁의 속도와 판단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감시와 정찰, 표적 식별, 드론 운용, 사이버 공격, 정보 조작, 심리전, 작전 시뮬레이션, 무기체계의 자동화까지 AI는 이미 군사 영역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다. 기술은 전쟁을 더 정밀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전쟁을 더 쉽게 만들 수도 있다.

교황청 회칙 『Magnifica Humanitas』의 마지막 장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앞선 회차들이 AI 시대의 인간 존엄, 사회교리, 데이터 윤리, 교육과 노동의 문제를 다루었다면, 마지막 회차는 그 논의를 전쟁과 평화의 문제로 확장한다. AI가 교육과 노동, 소통과 자유를 바꾸는 기술이라면, 전쟁에서는 생명과 죽음의 판단에 관여하는 기술이 될 수 있다. 이때 문제는 더 이상 편리함이나 생산성의 차원이 아니다. 되돌릴 수 없는 결정, 곧 인간의 생명과 공동체의 파괴를 둘러싼 책임의 문제다.

AI가 전쟁을 더 정교하게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은 얼핏 설득력 있게 들린다. 더 정확한 정보 분석, 더 빠른 위험 감지, 더 정밀한 표적 식별은 민간인 피해를 줄이고 군사적 판단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기술이 전쟁을 더 빠르고 더 원거리에서, 더 비인격적으로 수행하도록 만들 때, 인간은 폭력의 무게를 덜 느끼게 될 수 있다. 버튼을 누르는 사람은 전장의 얼굴을 보지 않고, 알고리즘은 표적을 데이터로 분류하며, 피해자는 지도 위의 점이나 화면 속의 신호로 바뀐다. 그 순간 전쟁은 더 끔찍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 견디기 쉬운 형태로 포장될 위험이 있다.

AI가 군사 영역에 들어올 때 가장 큰 문제는 책임의 흐려짐이다. 사람이 직접 판단하고 명령하고 실행할 때도 전쟁의 책임은 복잡하다. 그런데 의사결정 과정에 AI가 개입하면 책임의 사슬은 더 불투명해진다. 누가 판단했는가. 데이터를 수집한 사람인가, 모델을 설계한 사람인가, 시스템을 훈련한 기관인가, 무기체계를 승인한 정부인가, 현장에서 시스템을 작동시킨 군인인가. 알고리즘이 특정 표적을 위험하다고 분류했고, 인간은 그 판단을 거의 자동적으로 승인했다면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회칙은 바로 이 지점을 경고한다. 전쟁에서 공격 결정이 자동화되거나 불투명해질수록 책임을 포기할 위험이 커진다. 따라서 전쟁에 사용되는 모든 시스템은 결정 과정을 추적하고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하며, 책임과 비난이 “기계” 속으로 사라져서는 안 된다. 치명적 무력 사용은 불투명하거나 자동화된 과정에 위임될 수 없고, 실제적이고 자각적이며 책임 있는 인간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 이는 기술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인간 생명의 가치가 계산 절차에 완전히 맡겨질 수 없기 때문이다.

AI는 빠르다. 그러나 모든 판단이 빨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전쟁에서 속도와 효율이 최고의 기준이 될 때, 인간은 가장 중요한 것을 잃는다. 공격 여부, 표적 선택, 민간인 피해 가능성, 작전 중단 여부, 협상과 대화의 가능성은 단순히 빠른 계산으로 결정될 문제가 아니다. 느림이 필요한 판단이 있다. 망설임이 윤리인 순간이 있다. 다시 확인하고, 멈추고, 얼굴을 떠올리고, 피해자의 삶을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AI가 판단을 빠르게 만들수록 인간은 더 깊이 멈출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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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언어는 사람을 쉽게 지운다. 적, 표적, 작전지역, 피해 규모, 부수적 손실, 전략적 목표라는 말은 전쟁을 관리 가능한 사건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그 말 뒤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집을 잃은 사람, 가족을 잃은 아이, 병원과 학교를 떠나야 하는 시민, 돌아갈 수 없는 피난민, 평생 몸과 마음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피해자가 있다. AI가 전쟁에 들어올 때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 인간의 얼굴이 더 쉽게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알고리즘은 사람을 얼굴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패턴, 위치, 행동, 신호, 확률을 분석한다. 군사적 판단에서 이런 분석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분석이 인간의 얼굴을 대체하면 전쟁의 도덕적 문턱은 낮아진다. 화면 속 점이 실제 사람이라는 감각이 희미해지고, 표적의 정확도가 피해자의 고통을 가릴 수 있다. AI가 아무리 정교해도 한 사람의 죽음이 갖는 무게를 알지 못한다. 기계는 애도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으며,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래서 전쟁에서 AI를 논의할 때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기술적 정확도가 아니다. 인간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는가. 민간인과 전투원을 구분할 수 있는가. 방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삶을 고려하는가. 피해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공격을 멈출 수 있는 인간의 판단이 살아 있는가. 이러한 질문이 없다면 AI는 폭력을 줄이는 도구가 아니라 폭력을 최적화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현대의 전쟁은 더 이상 전장 안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사이버공격은 병원과 금융망, 전력망과 행정망을 흔들 수 있다. 정보 조작은 선거와 여론,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 AI가 만든 이미지와 영상, 가짜 음성, 자동화된 댓글과 계정은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흐린다. 전쟁은 총성과 폭격으로만 시작되지 않는다. 사회의 판단 능력과 신뢰를 무너뜨리는 방식으로도 시작된다.

회칙은 사이버공간도 전장이 되었다고 본다. AI의 도움을 받은 사이버공격, 데이터 조작, 영향력 캠페인은 공개적 무력 충돌이 일어나기 전에도 한 나라 전체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책임의 귀속이 어렵다는 점이다. 누가 공격했는지 불분명할 때, 과잉 대응과 오판, 확전의 위험은 커진다. 보이지 않는 공격은 보이지 않는 분노를 만들고, 책임을 확인하기 어려운 폭력은 더 큰 폭력을 부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평화는 사회가 사실을 공유할 수 있는 능력, 서로 다른 집단이 대화할 수 있는 통로, 국제사회가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 시민이 허위정보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는 교육을 포함한다. AI 시대의 평화는 군사정책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디어 리터러시, 데이터 거버넌스, 사이버 규범, 국제법, 교육, 언론의 책임이 모두 연결된 문제다.

권력의 문화는 전쟁을 정상화한다

『Magnifica Humanitas』는 오늘의 세계가 “권력의 문화”에 빠질 위험을 말한다. 권력의 문화는 힘을 가진 자가 의제를 정하고, 자원을 가진 자가 기준을 만들며,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는 일이 정치의 자연스러운 연장처럼 받아들여지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 문화 안에서 전쟁은 예외적 비극이 아니라 언제든 선택 가능한 수단이 된다. 평화는 적극적으로 세워야 할 책임이 아니라, 다음 충돌이 오기 전의 짧은 휴지기처럼 여겨진다.

전쟁이 정상화되는 과정은 갑작스럽게 일어나지 않는다. 먼저 언어가 바뀐다. 상대는 대화할 수 있는 이웃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위협으로 묘사된다. 복잡한 갈등은 선과 악, 우리와 그들, 친구와 적의 단순한 구도로 축소된다. 역사적 기억은 선택적으로 사용되고, 피해자의 고통은 자기 편의 이야기 안에서만 강조된다. 언론과 플랫폼은 분노와 공포를 증폭시키고, 알고리즘은 더 강한 반응을 부르는 콘텐츠를 밀어 올린다. 사람들은 점점 더 대화보다 응징을, 협상보다 압박을, 이해보다 적대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AI는 이 과정을 가속할 수 있다. 허위정보를 더 빠르게 만들고, 여론을 더 정교하게 조작하며, 적대적 감정을 더 세밀하게 자극할 수 있다. AI가 만든 가짜 이미지와 영상은 분노를 현실보다 먼저 움직이게 할 수 있고, 자동화된 계정은 여론의 크기를 부풀릴 수 있다. 전쟁은 무기체계에서만 자동화되는 것이 아니다. 적대감의 생산과 확산도 자동화될 수 있다. 그래서 AI 시대의 평화는 무기 통제만이 아니라 언어와 정보, 기억과 감정의 통제를 함께 요구한다.

오랫동안 전쟁윤리는 어떤 조건에서 전쟁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물어왔다. 침략에 대한 방어, 최후의 수단, 비례성, 민간인 보호 같은 기준이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회칙은 오늘의 현실에서 “정당한 전쟁”의 언어가 너무 쉽게 전쟁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어 왔다고 본다. 자위권의 엄격한 의미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오늘날 인류에게는 갈등을 해결하고 생명을 증진할 수 있는 더 효과적이고 능력 있는 도구들이 있다고 말한다. 대화, 외교, 용서, 협상, 국제법, 다자주의가 그것이다.

이 주장은 순진한 이상론이 아니다. 오히려 현대 전쟁의 현실을 직시한 현실론에 가깝다. 오늘의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시작은 빠르지만 중단은 어렵다. 군사력은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갈등을 장기화시키고, 민간인 피해와 난민, 경제 붕괴와 환경 파괴, 세대 간 트라우마를 남긴다. 전쟁이 한 번 시작되면 그 피해는 전장에 머물지 않는다. 식량, 에너지, 금융, 공급망, 교육, 보건, 이주, 지역 안보까지 연쇄적으로 흔든다.

그렇다면 평화는 단순한 감상적 구호가 아니다. 평화는 제도와 절차, 신뢰와 검증, 예방과 중재, 피해자 보호와 재건을 포함하는 고도의 정치적 능력이다. 전쟁을 준비하는 데 거대한 예산과 인력, 기술과 제도가 투입된다면, 평화를 준비하는 일에도 그에 상응하는 진지함이 필요하다. 갈등 예방, 외교 인력 양성, 국제기구 개혁, 사이버 규범 수립, 인도주의 지원, 난민 보호, 교육과 언론의 책임은 모두 평화의 인프라다. AI 시대의 평화는 기도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그것은 설계되고 훈련되고 제도화되어야 한다.

사랑의 문명은 감상적 구호가 아니다

회칙은 권력의 문화에 맞서는 대안으로 “사랑의 문명”을 제시한다. 이 표현은 종교적이고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문서가 말하는 사랑의 문명은 감상적인 선의가 아니다. 그것은 정의와 제도, 사회적 책임과 국제협력으로 번역되어야 하는 공적 과제다. 사랑은 사적인 감정에 머물지 않고, 약한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고,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고, 공동선을 위한 구조를 세우는 힘이 되어야 한다.

사랑의 문명은 전쟁을 피하자는 말만이 아니다. 그것은 전쟁을 가능하게 하는 문화와 경제, 언어와 제도를 바꾸자는 요청이다. 무기 산업의 이익이 갈등을 연장시키는 구조, 상대를 악마화하는 정치 언어, 역사적 기억을 왜곡하는 선전, 국제법을 선택적으로 적용하는 강대국의 태도, 피해자의 고통을 전략적 계산 아래에 두는 냉혹함을 바꾸자는 것이다. 사랑의 문명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의 어두운 구조를 끝까지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인간을 다시 중심에 놓으려는 시도다.

이 점에서 사랑의 문명은 AI 시대의 기술윤리와 연결된다. AI가 인간을 더 연결하고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랑의 문명을 돕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재난을 예측하고, 난민 지원을 조직하고, 허위정보를 탐지하고, 외교적 소통을 보조하고, 인도주의 구호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AI가 감시와 조작, 자동화된 공격과 군비 경쟁의 도구가 된다면, 그것은 권력의 문화를 강화한다. 같은 기술이라도 어떤 문명의 방향에 놓이는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말의 비무장화에서 평화는 시작된다

회칙이 제시하는 평화의 길 가운데 하나는 “말의 비무장화”다. 무기를 내려놓기 전에 먼저 언어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뜻이다. 현대 사회에서 말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다. 말은 사람을 모으고, 분노를 만들고, 적을 만들며, 폭력을 정당화한다. 특히 디지털 플랫폼에서는 말이 빠르게 확산되고, 알고리즘은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표현을 더 넓게 퍼뜨릴 수 있다. 전쟁의 문화는 총과 미사일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조롱, 혐오, 음모론, 적대적 이미지, 모욕의 언어가 먼저 길을 닦는다.

말의 비무장화는 침묵하자는 뜻이 아니다. 부정의를 비판하지 말자는 뜻도 아니다. 오히려 더 정확하고 책임 있게 말하자는 것이다. 상대를 인간 이하로 만들지 않고도 잘못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분노를 표현하되 거짓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 피해자를 말하되 복수의 감정만을 부추기지 않아야 한다. 복잡한 문제를 단순한 적대 구도로 축소하지 않아야 한다. AI 시대에는 이 과제가 더 중요하다. 생성형 AI는 말과 이미지를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책임 없는 언어의 생산도 훨씬 쉬워진다.

대학과 언론은 이 지점에서 특별한 책임을 갖는다. 대학은 학생들에게 논쟁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적으로 만들지 않고, 근거와 논리로 비판하며, 사실을 확인하고, 자기 입장을 수정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언론은 갈등을 선정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사건의 맥락과 피해자의 목소리, 책임의 구조를 함께 보여주어야 한다. AI 시대의 평화교육은 거창한 국제정치 과목만이 아니라, 말하는 법과 듣는 법, 검증하는 법과 다투는 법을 가르치는 일에서 시작된다.

피해자의 관점에서 기술을 보아야 한다

평화의 문제에서 가장 쉽게 사라지는 사람은 피해자다. 전쟁을 말할 때 지도자와 군사전략, 동맹과 안보, 무기체계와 국제정세가 앞에 나온다. 그러나 전쟁의 실제 무게는 피해자가 짊어진다. 집을 잃은 사람, 가족을 잃은 사람,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 폭력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시민이 전쟁의 현실이다. 회칙은 피해자의 관점을 채택하는 일이 인간으로 남기 위해 필요하다고 본다.

AI 시대의 전쟁 논의에서도 피해자의 관점은 결정적이다. 자율무기체계가 얼마나 정밀한지, 드론이 얼마나 효율적인지, 사이버 공격이 얼마나 전략적인지보다 먼저 물어야 한다. 그것이 실제 사람의 삶에 어떤 결과를 낳는가. 민간인은 어떻게 보호되는가. 병원과 학교, 식수와 전력, 통신과 피난로는 어떻게 지켜지는가. 피해가 발생했을 때 누가 책임지고 회복을 돕는가. AI 무기의 성능을 말하기 전에 피해자의 삶을 말해야 한다.

이 관점은 기술 개발자에게도 중요하다. 연구자와 개발자는 자신이 만드는 기술이 어떤 맥락에서 사용될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 특정 알고리즘이 감시와 통제, 공격과 선별의 도구로 전용될 가능성은 없는가. 연구 결과가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에 흡수될 때, 연구자는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가. 기술은 중립적이라고 말하는 순간, 기술이 사용될 수 있는 현실의 권력 구조를 보지 못하게 된다. AI 시대의 연구윤리는 실험실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기술이 닿을 피해자의 얼굴까지 상상하는 능력이다.

평화를 말하면 현실을 모르는 이상론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있다. 국제정치는 힘의 세계이고, 평화는 좋은 말이지만 실제로는 군사력과 억지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반대로 평화를 말하는 쪽에서도 때로 현실의 복잡한 이해관계와 두려움, 안보 딜레마를 충분히 보지 못할 수 있다. 회칙은 이 둘을 모두 경계하며 건강한 현실주의를 말한다.

건강한 현실주의는 폭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권력의 이해관계, 역사적 상처, 경제적 계산, 안보 불안, 정치적 선동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본다. 그러나 그것을 보았다고 해서 폭력에 체념하지 않는다. 힘이 우세하니 앞으로도 힘이 지배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현실주의가 아니라 냉소다. 진짜 현실주의는 무엇이 가능한지를 찾기 위해 현실을 정확히 본다. 신뢰를 만들 수 있는 제도, 검증 가능한 합의, 민간인 보호 장치, 인도주의 통로, 중재와 협상, 단계적 긴장 완화, 사이버 규범 같은 구체적 방법을 찾는다.

AI 시대의 평화도 이런 현실주의를 필요로 한다. 자율무기를 당장 모두 없애자는 선언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어떤 기술을 금지할 것인지, 어떤 기술은 엄격히 제한할 것인지, 어떤 경우에도 인간 통제를 보장해야 하는지, 국제 검증 체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사이버 공격의 책임을 어떻게 규명할 것인지, 민간 인프라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구체적 논의가 필요하다. 평화는 좋은 마음만으로 세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좋은 마음 없이도 세워지지 않는다. 건강한 현실주의는 이 둘을 함께 붙드는 태도다.

대화와 외교는 낡은 방식이 아니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할수록 외교와 대화는 느리고 비효율적인 방식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전쟁의 속도가 빨라지는 시대일수록 대화의 필요성은 더 커진다. AI는 판단을 압축하고, 사이버공격은 순식간에 확산되며, 허위정보는 사회의 감정을 빠르게 흔든다. 이런 시대에 대화와 외교가 사라지면, 오판과 과잉 대응의 위험은 더 커진다.

회칙은 권력의 문화에서 협상의 문화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화와 외교는 갈등 해결의 예외적 수단이 아니라 표준적 수단이 되어야 한다. 특히 불편하고 인정하기 어려운 상대와도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외교는 좋은 사람끼리만 만나는 일이 아니다. 적대하는 당사자 사이에서 최소한의 신뢰와 출구를 만드는 일이다. 대화는 상대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필요한 인간적 방법이다.

이 대목은 국제정치뿐 아니라 시민사회에도 적용된다. 사회 내부의 갈등이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서로를 설득 가능한 상대가 아니라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알고리즘은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묶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더 낯설고 위험하게 보이게 만든다. 대화의 능력은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는다. 학교와 대학, 언론과 시민사회가 훈련해야 한다. AI 시대의 민주주의는 기술을 잘 쓰는 시민보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시민을 더 필요로 한다.

다자주의의 위기와 AI 거버넌스

AI와 전쟁의 문제는 한 나라의 법과 정책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자율무기, 사이버공격, 데이터 조작, 위성 감시, 군사 AI 연구는 국경을 넘는다. 한 나라가 규제를 강화해도 다른 나라가 군비 경쟁을 가속하면 불안은 계속된다. 기술기업과 민간 연구소, 군사기관과 국가정보기관, 국제기구와 시민사회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래서 AI 시대의 평화는 다자주의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회칙은 오늘의 다자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본다. 공동의 미래와 세계 공동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기구와 제도는 약화되고 있고, 국제법보다 힘의 논리가 앞서는 장면이 늘고 있다. 경제적 세계화가 자동으로 민주주의와 안정,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도 충분히 실현되지 못했다. 오히려 정체성 정치와 민족주의, 불신과 갈등이 확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AI 군비 경쟁은 더 위험하다. 신뢰가 약한 세계에서 빠른 기술은 오판의 속도를 높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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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AI 거버넌스는 국내 산업정책만으로 좁혀져서는 안 된다. AI 안전, 자율무기 규제, 사이버전 규범, 데이터 조작 대응, 민간 인프라 보호, 국제적 책임 규명 체계가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특히 치명적 무력 사용에 관여하는 AI 시스템은 국제적 기준이 필요하다. 인간 통제, 결정 과정의 추적 가능성, 민간인 보호, 책임소재 확인, 무기 경쟁 억제는 어느 한 국가의 선의에만 맡겨둘 수 없다. AI 시대의 평화는 국제사회의 공동 규범을 요구한다.

대학과 연구자는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가

AI와 전쟁의 문제는 정부와 군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연구자, 대학, 기업, 투자자, 학술기관도 이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다. 많은 기술은 처음부터 군사 목적으로 개발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중용도 기술은 쉽게 다른 방향으로 전용될 수 있다. 영상 인식 기술은 의료와 안전에 사용될 수 있지만 감시와 표적 식별에도 사용될 수 있다. 자연어 처리 기술은 교육과 번역에 사용될 수 있지만 여론 조작과 심리전에도 사용될 수 있다. 드론과 로봇 기술은 물류와 재난 대응에 쓰일 수 있지만 무기체계에도 연결될 수 있다.

회칙은 연구자들이 자기 분야만 좁게 바라볼 때, 자신이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기술 발전이 더 넓은 맥락에서 어떤 프로젝트에 협력하게 되는지 성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대학의 연구윤리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대학은 연구 성과와 산학협력, 기술이전과 특허를 말할 때 그 기술의 사회적 사용 가능성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모든 군사 관련 연구를 단순히 배제하자는 말이 아니다. 다만 연구가 인간 존엄과 평화, 민간인 보호와 공공선의 기준 아래 놓여야 한다는 뜻이다.

AI 시대의 대학은 기술 경쟁력만이 아니라 기술 책임성을 가르쳐야 한다. 공학도는 성능뿐 아니라 사용 맥락을 배워야 하고, 정책 전공자는 규제뿐 아니라 인간 존엄의 기준을 배워야 하며, 인문사회 전공자는 기술을 외부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실제 사회 시스템 안에서 읽어야 한다. 대학은 AI를 개발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동시에, AI의 방향을 묻는 시민을 길러내야 한다. 연구자는 기술이 어디에 쓰일지 모른다고 말하는 데서 멈출 수 없다. 모른다면 더 물어야 하고, 알 수 있다면 더 책임져야 한다.

AI 시대의 교육을 말할 때 우리는 주로 코딩, 데이터 분석, 프롬프트 작성, AI 활용 능력을 떠올린다. 그러나 마지막 회차가 보여주는 것처럼 AI 시대에 더 절실한 교육은 평화교육일 수 있다. 평화교육은 전쟁을 반대하는 구호를 외우는 교육이 아니다. 갈등을 이해하고, 혐오의 언어를 분별하고, 허위정보를 검증하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상상하며, 협상과 대화의 가능성을 배우는 교육이다.

AI가 소통을 가속할수록 학생들은 말의 책임을 배워야 한다. AI가 이미지를 조작할수록 학생들은 시각 자료의 진위를 확인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AI가 여론을 분석하고 조작할 수 있을수록 학생들은 민주적 판단과 공론장의 윤리를 배워야 한다. AI가 군사 기술로 전용될 수 있을수록 학생들은 기술 개발의 사회적 책임을 배워야 한다. 평화교육은 국제정치 전공자만의 과목이 아니라 AI 시대의 시민교육이다.

대학은 이 교육을 교양과 전공, 비교과와 연구윤리 안에서 다룰 수 있다. 기술과 사회, 전쟁과 평화, 미디어 리터러시, 국제법과 인권, 데이터 윤리, 공학윤리, 갈등조정과 의사소통 교육이 함께 필요하다. 학생들은 AI를 잘 쓰는 법만 배워서는 안 된다. AI가 폭력의 문턱을 낮출 수 있는 시대에, 폭력에 휩쓸리지 않는 판단력을 배워야 한다.

전쟁은 종종 강한 선택처럼 보인다. 단호하고 빠르며, 즉각적인 대응처럼 보인다. 반대로 평화는 느리고 약해 보일 수 있다. 대화는 답답하고, 협상은 불완전하며, 외교는 오래 걸린다. 그러나 실제로 더 어려운 선택은 평화다. 평화는 분노를 관리해야 하고,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복수의 악순환을 끊어야 하며, 불편한 상대와도 마주 앉아야 한다. 평화는 현실을 모르는 순진함이 아니라, 현실이 너무 파괴적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선택하는 어려운 길이다.

AI 시대에는 이 어려움이 더 커진다. 전쟁의 기술은 점점 빨라지고, 정보 조작은 점점 정교해지며, 무기체계는 점점 자동화된다. 속도와 효율, 정밀성과 예측 가능성은 군사적 유혹을 강화한다. 그러나 인간 사회가 그 유혹에 끌려가면, 전쟁은 더 쉽게 시작되고 책임은 더 흐려지며 피해자는 더 멀어진다. 그러므로 평화는 더 의식적인 선택이 되어야 한다. 멈춤, 검증, 대화, 책임, 인간 통제, 피해자 보호, 국제협력은 모두 어려운 선택이다. 그러나 바로 그 어려움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연재를 마치며, AI 시대에도 인간으로 남기

이 연재는 AI의 성능이 아니라 인간의 자리를 묻는 데서 시작했다. 첫 회는 AI 시대의 바벨탑과 예루살렘이라는 두 길을 물었다. 둘째 회는 산업혁명기의 노동 질문이 AI 시대의 알고리즘 권력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살폈다. 셋째 회는 인간이 데이터보다 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넷째 회는 AI가 이해하지 않지만 판단하게 되는 시대에 인간의 책임을 물었다. 다섯째 회는 AI 시대의 교육이 빠른 답변보다 질문을 지키는 일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마지막 회차는 이 모든 논의를 전쟁과 평화의 문제로 확장한다.

AI는 인간을 대신해 계산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을 대신해 책임질 수는 없다. AI는 표적을 분석할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의 얼굴을 애도할 수는 없다. AI는 전략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그러나 평화를 선택하는 용기를 가질 수는 없다. AI는 말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말의 상처를 스스로 감당하지는 않는다. 결국 AI 시대의 문명은 기계가 얼마나 똑똑해지는가로 결정되지 않는다. 인간이 무엇을 포기하지 않는가로 결정된다.

그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인간 존엄이다. 사람을 데이터와 점수, 표적과 위험도, 효율과 비용으로만 보지 않는 시선이다. 공동선이다. 기술의 혜택이 소수의 권력과 이익에 갇히지 않도록 묻는 기준이다. 책임이다. 판단의 결과를 기계 뒤에 숨기지 않고 인간이 감당하는 태도다. 교육이다. 빠른 답변 속에서도 느린 질문을 지키는 훈련이다. 평화다. 폭력이 더 쉬워지는 시대에 더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용기다.

『Magnifica Humanitas』가 AI 시대에 던지는 마지막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권력의 문화를 따를 것인가, 사랑의 문명을 세울 것인가. 이 질문은 종교적 언어로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대학과 기업, 정부와 시민사회, 연구자와 교육자, 언론과 시민 모두에게 열린 공적 질문이다. AI가 전쟁을 더 쉽게 만들 수 있는 시대에, 평화는 더 어려운 선택이 된다. 그러나 바로 그 어려운 선택을 포기하지 않는 곳에서 인간은 여전히 인간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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