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이 건강을 좌우하고 있다”… 고려대, 한·미 비교로 드러난 ‘건강의 구조’

연구진 / 사진 고려대 제공

의료제도 달라도 결과는 같았다… 소득이 건강을 결정하는 현실

건강은 의료 시스템이 결정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러나 의료제도가 전혀 다른 두 나라를 비교한 연구에서, 정반대의 결과가 확인됐다. 시스템이 아니라 ‘소득’이 건강을 좌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려대학교 보건정책관리학부 박성철 교수 연구팀은 서울대 도영경 교수, 스탠퍼드대 카렌 잉글스톤(Karen Eggleston) 교수, 하버드대 데이비드 커틀러(David Cutler) 교수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한국과 미국의 의료 시스템을 비교 분석한 결과, 두 나라 모두에서 소득 수준에 따른 건강 격차가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의료제도 차이를 넘어, 건강을 결정하는 구조적 요인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미국은 민간 중심의 파편화된 의료체계를, 한국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공적 건강보험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연구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두 나라 모두에서 소득이 낮을수록 의료비 지출이 적고, 의료 이용 횟수가 낮았으며, 건강 상태 역시 더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예방 의료 이용률도 낮고, 건강에 해로운 생활 습관을 더 많이 보유하는 경향이 확인됐다. 즉 의료 시스템의 형태와 무관하게, 건강 격차는 동일한 방향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 높은 의료비와 보장 사각지대가 건강 불평등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반면 한국은 전 국민 건강보험 체계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득에 따른 의료 접근성과 건강 결과의 차이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제도적으로는 평등해 보이지만, 실제 이용에서는 격차가 발생하는 ‘보이지 않는 불평등’이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만 건강 격차의 규모는 미국이 더 컸는데, 이는 한국의 건강보험이 불평등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하더라도 일정 부분 완충 역할을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에서는 또 하나의 특징적인 결과가 확인됐다. 고혈압, 고콜레스테롤, 우울증 등 주요 임상 지표는 두 나라가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1인당 의료비는 미국이 훨씬 높았다. 이는 미국이 의료 서비스를 더 많이 이용해서가 아니라, 의료 비용 자체가 높은 구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연구팀은 건강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료 시스템 개혁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박성철 교수는 건강 격차의 근본 원인이 소득과 사회경제적 조건에 있는 만큼, 이를 개선하기 위한 구조적 정책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경우 저소득층의 실제 의료 이용 여부를 점검하고, 예방 의료 접근성을 높이며, 1차 의료 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이번 연구는 한국과 미국 성인 약 40만 명을 대상으로, 의료비 지출과 이용, 접근성, 건강 상태, 건강 행동, 임상 지표 등 6개 영역 30개 지표를 분석해 도출됐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JAMA Health Forum에 게재됐다. 건강은 개인의 선택으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 연구는 그 배경에 구조적인 요인이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의료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하느냐보다, 사람들이 어떤 사회경제적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지가 건강을 결정짓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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