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자 중심 평생교육] ④ 한국 평생교육 체제는 무엇을 다시 설계해야 하나

해외 사례 이후, 한국이 마주한 구조적 질문

국회미래연구원의 분석은 싱가포르와 핀란드 사례를 소개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보고서의 초점은 해외 모델의 이식 가능성이 아니라, 이들 사례가 한국 평생교육 체제에 던지는 구조적 질문에 있다. 성인학습자가 이미 주요 교육 수요자로 이동한 상황에서, 한국의 고등교육과 평생교육 전달체계는 여전히 학령기 중심 구조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 반복적으로 지적된다. 현재 한국의 평생직업교육과 고등교육, 직업훈련 정책은 제도적으로 분절돼 있다. 교육부 중심의 고등교육 체계, 고용노동부 중심의 직업훈련 체계, 지방자치단체의 평생교육 사업이 병렬적으로 운영되면서, 성인학습자의 경력 전환은 하나의 경로로 설계되기보다 개별 제도 사이를 이동해야 하는 과제로 남아 있다. 이는 학습자의 선택 부담을 키우는 동시에, 학습 성과가 누적·연계되기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한계로 작용한다.

보고서는 이러한 분절 구조가 단순한 행정 문제를 넘어, 평생교육 정책의 효과 자체를 제한하고 있다고 본다. 성인학습자가 자신의 경력 단계에 맞는 학습 경로를 한눈에 파악하기 어렵고, 이전 학습 경험이 제도적으로 충분히 인정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평생교육 참여가 반복되기 어렵다. 해외 사례가 공통적으로 보여준 ‘경로 설계’의 중요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 정책에 대한 질문으로 전환된다.

성인학습자의 이동을 가로막는 전달체계

한국의 평생교육 전달체계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성인학습자의 이동을 전제로 설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등교육, 직업훈련, 평생교육은 각각 다른 정책 목적과 재정 구조, 운영 기준 아래 놓여 있으며, 제도 간 연계는 제한적이다. 성인학습자는 자신의 경력 단계에 맞는 학습을 선택하기보다, 어느 부처의 사업에 속하는지부터 판단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국회미래연구원의 분석 역시 이 지점을 구조적 한계로 지적한다. 직업훈련은 고용보험기금 중심으로 운영되며 주로 민간 훈련기관이 참여하고, 대학은 제한적으로만 연계된다. 반면 고등교육 체계는 여전히 학위 중심 구조를 유지하고 있어, 단기 재교육이나 모듈형 학습을 성인학습자의 주요 경로로 포섭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로 인해 학습–훈련–취업 간 연결은 제도적으로 분절되고, 성인학습자의 경력 전환은 개인의 정보 탐색과 선택 역량에 크게 의존하게 된다.

이러한 전달체계에서는 평생교육 참여가 반복되기 어렵다. 이전 학습 경험이 다음 단계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고, 학습 성과의 누적과 인정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해외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된 ‘경로 설계’의 부재는, 한국 평생교육 체제가 단기 사업 확대에도 불구하고 구조적 효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로 연결된다.

학습 성과가 누적되지 않는 자격·인정 구조

한국 평생교육 체제에서 또 하나의 핵심 과제는 학습 성과를 공적으로 인정하고 누적하는 자격·인정 체계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규 학위 과정과 비학위 교육, 직업훈련, 평생교육 프로그램이 각각 다른 기준으로 운영되면서, 성인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습득한 역량이 하나의 체계 안에서 해석되기 어렵다. 학습의 양과 참여 횟수는 늘어났지만, 그 성과가 경력 전환이나 추가 학습으로 연결되는 구조는 제한적이다. 보고서는 이러한 한계가 성인학습자의 학습 선택을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한다. 특정 교육과정을 이수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수준의 역량으로 인정되는지, 다른 제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불명확할 경우, 학습은 일회성 참여에 그치기 쉽다. 이는 성인학습자가 반복적으로 교육체계에 진입하기 어렵게 만들며, 평생교육 정책의 지속성을 떨어뜨리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동한다.

해외 사례와 대비할 때, 한국의 자격·인정 체계는 학습 경로 간 이동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기능이 약하다. 국가 차원의 공통 기준이 부재한 상황에서는, 다양한 교육훈련 공급이 오히려 체계의 분절을 심화시킬 수 있다. 평생교육이 성인학습자의 경력 경로 안에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학습 성과를 공적으로 해석하고 연결하는 기준 체계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이 다시 한 번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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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지역대학은 평생교육 체제에서 어디에 놓여야 하나

국회미래연구원의 분석에서 지역대학은 평생교육 체제 전환의 핵심 변수로 등장한다. 학령인구 감소로 입학 기반이 급속히 축소되는 상황에서, 지역대학은 더 이상 청년 중심 학위 교육만으로 존립하기 어렵다. 동시에 성인 인구 비중이 확대되고, 재직자와 중장년층의 재교육·역량 재설계 수요가 증가하는 환경은 대학의 역할 재정의를 요구하고 있다. 보고서는 이 지점을 위기가 아니라 구조 전환의 계기로 본다. 문제는 현재의 제도 환경에서 지역대학이 성인학습자의 주요 거점으로 기능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직업훈련은 고용보험기금 중심으로 민간 훈련기관이 주도하고, 평생교육 사업은 단기·소규모 프로그램 위주로 운영된다. 대학이 보유한 교육 인프라와 교수 역량, 지역 산업과의 연계 경험은 체계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으며, 성인 대상 교육은 여전히 부차적 기능으로 취급된다. 이로 인해 지역대학은 평생교육 수요가 확대되는 상황에서도 구조적 역할을 확보하지 못하는 모순에 놓여 있다.

보고서는 지역대학이 학위 교육과 비학위 교육, 직업훈련과 평생교육을 연결하는 중간 허브로 기능할 가능성에 주목한다. 성인학습자의 경력 단계에 맞춘 모듈형 교육, 지역 산업 수요를 반영한 맞춤형 재교육, 학습 성과의 누적과 인정이 가능한 체계를 대학이 중심이 되어 설계할 경우, 평생교육 전달체계의 단절을 완화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는 단순한 사업 확대가 아니라, 지역대학의 기능 자체를 평생교육 체제 안에서 재배치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보고서가 강조하는 지점은 한국이 이제 평생교육을 ‘확대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성인학습자가 주요 교육 수요자로 이동한 상황에서, 기존의 청년 중심 고등교육 체제와 분절된 평생교육·직업훈련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정책 효과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 싱가포르와 핀란드 사례는 서로 다른 해법을 보여주지만, 공통적으로 경로 설계와 제도적 연속성을 핵심 조건으로 삼았다. 한국에 필요한 선택 역시 단선적이지 않다. 중앙의 강한 조정이 필요한 영역과, 지역과 기관의 자율성이 효과적인 영역을 구분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전달체계의 통합, 학습 성과의 공적 인정 기준 마련, 성인학습자의 이동을 전제로 한 제도 설계는 중앙 차원의 정책 결단이 요구되는 영역이다. 반면 지역 산업 수요를 반영한 교육 설계와 학습 제공 방식은 지역대학과 교육기관의 자율성이 발휘될 수 있는 공간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

지역대학을 중심에 놓는 재설계의 조건

보고서는 특히 지역대학을 평생교육 체제 전환의 전략적 거점으로 재배치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지역대학을 단순히 성인 대상 교육 프로그램의 공급자로 활용하자는 제안이 아니다. 학위 교육과 비학위 교육, 직업훈련과 평생교육을 연결하는 구조적 허브로 기능하도록 역할을 재설정해야 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의 성인 교육 참여를 제한해온 제도적 장벽과 재정 구조에 대한 재검토가 전제돼야 한다. 성인학습자의 경력 전환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모듈형 교육 설계, 학습 성과의 누적과 인정, 지역 산업과의 연계가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지역대학은 이미 교육 인프라와 인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역 경제와의 연결성도 갖추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자원이 평생교육 체제 안에서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이 지점을 제도 전환의 핵심 과제로 제시한다.

이번 연재가 다룬 해외 사례와 한국 적용 논의를 관통하는 기준은 명확하다. 평생교육을 공급자 중심의 사업 확대가 아니라, 성인학습자의 이동과 선택을 기준으로 재설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학습자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가 아니라, 어떤 경력 단계에 있으며 어떤 역량을 필요로 하는지가 정책 설계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수요자 중심 평생교육은 새로운 제도를 하나 더 만드는 일이 아니다. 전달체계, 자격과 인정 구조, 대학의 역할, 재정과 거버넌스를 하나의 관점에서 다시 엮는 작업에 가깝다. 국회미래연구원의 보고서가 던진 질문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평생교육을 보완 정책으로 둘 것인지, 아니면 고등교육과 노동시장 정책을 재구성하는 핵심 축으로 삼을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다. 그 선택의 결과는 교육 정책을 넘어, 한국 사회의 인적자원 전략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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