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자 중심 평생교육] ② 국가는 왜 평생학습을 설계했나— 싱가포르의 선택

평생학습을 국가 전략으로 끌어올린 이유

국국회미래연구원이 해외 사례로 분석한 싱가포르의 평생직업교육훈련 체계는, 평생교육을 교육 정책의 한 영역으로 분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출발점부터 다르다. 이 체계에서 성인학습은 개인의 자기계발이나 취약계층 지원을 넘어, 산업 전환과 노동시장 재편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 인적자원 전략의 핵심 요소로 설정돼 있다. 평생학습은 선택 가능한 옵션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인프라에 가깝다. 싱가포르 정책 당국은 인구 고령화와 기술 변화가 장기화될수록 초기 교육의 효과가 빠르게 소진된다는 점을 전제로 삼았다. 한 번의 학위 취득과 직업 선택으로 생애 경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가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성인기 전반에 걸친 반복적인 역량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정책 설계의 출발점이 됐다. 이 과정에서 성인학습자는 보호 대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역량을 갱신해야 할 핵심 노동력으로 재정의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평생학습을 ‘장려’의 대상이 아니라 ‘설계’의 대상으로 끌어올렸다. 개인의 자율적 선택에만 맡기기보다, 어떤 선택이 가능해야 하는지를 국가가 먼저 구조화해야 한다는 발상이다. 싱가포르의 평생학습 정책은 이 지점에서 시장 중심 접근과 분명한 선을 긋는다.

교육·고용·산업을 묶은 중앙 설계 구조

싱가포르의 평생직업교육훈련 체계는 중앙정부 차원의 명확한 역할 분담 위에서 작동한다. 교육부(MOE)는 제도 설계와 교육 체계 전반을 관할하고, 고용부(MOM)는 노동시장 정책과 직업 전환 수요를 반영한다. 여기에 SkillsFuture Singapore(SSG)와 Workforce Singapore(WSG)가 결합되면서, 학습 설계–재정 지원–취업 연계가 하나의 정책 흐름으로 연결된다. 평생학습이 교육 정책과 고용 정책의 경계에 놓이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통합된 구조를 갖춘 셈이다. 이 중앙집중형 거버넌스의 핵심은 정책의 일관성에 있다. 평생직업교육훈련 과정의 인증, 품질 관리, 자격체계 운영이 단일한 기준 아래 관리되면서, 교육훈련 공급자는 공공 기준에 따라 운영된다. 민간 교육기관 역시 자유로운 시장 주체라기보다, 국가가 설정한 역량 프레임과 품질 관리 체계 안에서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학습자의 선택이 교육기관의 홍보 경쟁이나 단기 수요에 의해 좌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로 읽힌다.

이러한 구조는 평생교육을 개별 사업의 집합으로 만들지 않는다. 교육과 훈련, 고용 정책이 각각의 목표와 재정 논리로 분절될 경우, 성인학습자의 경력 전환은 단기 프로그램 참여로 단절되기 쉽다. 싱가포르의 중앙 설계 구조는 학습자의 경력 이동을 정책 설계의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학습–훈련–취업의 연결성을 제도적으로 확보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SkillsFuture가 만든 개인 단위 학습 구조

싱가포르 평생직업교육훈련 체계에서 SkillsFuture는 단일 프로그램이 아니라, 성인학습자의 학습 선택을 조직하는 제도적 틀에 가깝다. 이 제도는 학습자를 특정 기관이나 과정에 연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경력 단계와 직무 전환 계획에 따라 학습을 설계하도록 전제한다. 학습의 출발점은 학위나 연령이 아니라, 현재 수행 중인 직무와 향후 목표 직무에 필요한 역량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장치는 직무 기반 역량체계다. 싱가포르에서는 산업과 직무별로 요구되는 핵심 역량이 구조화돼 있으며, 교육훈련 과정은 이 역량 체계를 기준으로 설계·인증된다. 학습자는 개별 강좌가 아니라, 자신에게 필요한 역량 단위를 기준으로 교육 과정을 선택하게 되고, 이는 이후 취업이나 직무 전환 과정에서 공통의 언어로 활용된다. 학습과 노동시장이 분리되지 않도록 만드는 연결 장치가 제도 안에 내장돼 있는 셈이다.

SkillsFuture Credit을 통한 학습비 지원 역시 이러한 구조 위에서 작동한다. 지원금은 교육기관이 아니라 개인에게 지급되며, 학습자는 국가가 인증한 교육훈련 과정 가운데에서 선택한다. 이는 선택의 주체를 개인에게 두되, 선택의 범위와 질은 국가가 관리하는 방식이다. 학습 선택의 자율성과 정책적 통제가 동시에 작동하도록 설계된 구조라는 점에서, 싱가포르식 평생학습 모델의 특징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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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평생직업교육훈련 체계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성인학습자가 직무 전환을 위해 학습을 선택할 때 발생하는 기회비용을 정책적으로 고려했다는 점이다. SkillsFuture 체계 아래에서는 단기 강좌나 파트타임 학습뿐 아니라, 전일제 재교육 프로그램도 주요한 학습 경로로 포함된다. 이는 재직자가 일정 기간 노동시장을 이탈하더라도 역량 전환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구조다. 이 과정에서 핵심 장치는 훈련 수당(training allowance)이다. 전일제 재교육 프로그램 참여자에게 일정 수준의 소득 보전을 제공함으로써, 학습 선택이 경제적 위험으로 작동하지 않도록 했다. 직무 전환을 위해 학습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어도, 소득 단절의 부담 때문에 학습을 포기하는 상황을 제도적으로 완화하려는 정책적 판단이 반영돼 있다. 평생학습을 권장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실제로 선택 가능한 경로로 만들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설계는 평생교육을 ‘여유가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선택’에서 분리한다. 싱가포르의 평생직업교육훈련 체계는 학습과 생계가 동시에 고려되지 않으면 성인학습이 구조적으로 확산되기 어렵다는 점을 전제로 삼고 있다. 기회비용을 개인에게 전가하지 않고 정책이 흡수하는 방식은, 국가가 평생학습을 얼마나 전략적으로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싱가포르의 평생직업교육훈련 체계는 단기 교육과 장기 경력 설계를 분리하지 않는다. SkillsFuture 체계 아래에서 교육훈련 과정은 하나의 완결된 ‘프로그램’이 아니라, 누적 가능한 모듈 단위로 설계된다. 학습자는 특정 시점에 필요한 역량 모듈을 선택해 이수하고, 이를 이후 학습과 경력 전환 과정에서 연속적으로 연결할 수 있다. 단기 재교육이 일회성 참여로 끝나지 않도록 만드는 구조다. 이러한 모듈형 설계는 성인학습자의 현실을 전제로 한다. 재직자와 중장년층은 장기간 학습에 전일제로 참여하기 어렵고, 학습 수요 역시 경력 단계에 따라 달라진다. 싱가포르에서는 정규 학위 과정, 모듈형 교육, 단기 재교육, 현장 기반 학습이 상호 배타적인 경로가 아니라, 누적·전환 가능한 하나의 체계로 구성돼 있다. 학습 이력이 분절되지 않고 축적되도록 설계된 점이 특징이다.

이 구조는 성인이 생애 어느 시점에서도 교육체계로 재진입할 수 있는 조건을 제도적으로 보장한다. 학습 참여 여부가 연령이나 학력, 소속 기관에 의해 제한되지 않고, 이전 학습 성과가 다음 단계로 연결될 수 있도록 제도적 연속성이 확보돼 있다. 평생학습을 반복적 참여로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경력 경로 안에 구조적으로 내장시키려는 접근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 교육이나’ 허용하지 않은 품질 관리 장치

싱가포르의 평생직업교육훈련 체계에서 국가의 역할은 학습 기회를 늘리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보다, 무엇이 ‘공적으로 인정되는 학습’인지를 명확히 구분하는 데 정책 역량이 집중돼 있다. SkillsFuture 체계 아래에서 운영되는 교육훈련 과정은 국가 차원의 인증 절차를 거치며, 직무 기반 역량체계와의 정합성이 중요한 기준으로 작동한다. 학습 선택의 폭은 넓지만, 그 선택이 무제한으로 열려 있지는 않다. 이러한 과정 인증과 품질 관리는 교육훈련 공급자에 대한 관리로 이어진다. 공공 교육기관뿐 아니라 민간 교육기관 역시 동일한 기준을 적용받으며, 교육 내용과 운영 방식, 성과에 대한 점검이 이루어진다. 평생학습 시장이 무분별한 과정 공급 경쟁으로 흐르지 않도록, 국가가 최소한의 질적 기준을 설정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구조다. 이는 학습자의 선택 책임을 개인에게만 전가하지 않겠다는 정책적 판단과 맞닿아 있다.

품질 관리 체계는 평생학습을 신뢰 가능한 경로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성인학습자가 교육에 참여한 결과가 실제 경력 이동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그 학습 성과가 노동시장과 고용 정책 영역에서도 인정돼야 한다. 싱가포르의 평생직업교육훈련 체계는 교육과 훈련, 고용 정책 간의 연계를 품질 관리 단계에서부터 고려함으로써, 학습 이력이 제도 밖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설계돼 있다.

싱가포르의 평생직업교육훈련 체계는 성인학습을 ‘권장’이 아니라 ‘경로’로 만든다는 점에서 정책적 효과가 분명하다. 중앙정부가 교육부(MOE)와 고용부(MOM), SkillsFuture Singapore(SSG), Workforce Singapore(WSG)를 통해 학습 설계와 재정 지원, 품질 관리를 통합함으로써, 학습–훈련–취업 간 연결이 제도적으로 보장된다. 성인학습자는 어떤 교육이 노동시장과 연결되는지, 어떤 학습 이력이 공적으로 인정되는지를 비교적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이 구조는 평생학습을 개인의 의지나 정보 접근성에만 맡기지 않는다. 직무 기반 역량체계, 개인 단위 학습비 지원, 전일제 재교육에 대한 훈련 수당, 모듈형·누적 학습 구조, 과정 인증과 품질 관리가 하나의 체계로 작동하면서, 성인학습자의 선택은 실질적인 경력 이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확보한다. 평생교육이 단기 프로그램의 나열로 끝나지 않고, 국가 인적자원 전략의 일부로 기능하는 조건이 여기에 있다.

동시에 싱가포르 모델은 하나의 분명한 질문을 남긴다. 국가가 평생학습을 강하게 설계할수록, 교육기관과 지역의 자율성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다. 중앙집중형 거버넌스는 정책 일관성과 실행력을 확보하는 데 효과적이지만, 지역별·산업별 특수한 수요를 얼마나 유연하게 반영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과제로 남는다.

다음 회차에서는 이 질문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답한 핀란드 사례를 살펴본다. 싱가포르가 ‘강한 중앙 설계’를 통해 평생학습을 구축했다면, 핀란드는 분권과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성인학습자의 경력 전환을 제도화했다. 두 모델의 대비는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평생교육 체제의 방향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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