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난 줄 알았던 존 윅을 다시 만난 발레리나(ballerina 2025 : From the World of John Wick: Ballerina)
‘존 윅 4’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존 윅’은 한 편의 비극과 함께 퇴장한 전설이었다. 수십 명의 적을 베고도 지친 발걸음으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던 그를 보며, 이 시리즈는 마침내 완결되었음을 직감했던 관객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2025년, 그가 다시 스크린에 등장했다. 그저 회상 장면이나 과거 이야기 속 인물이 아니라, 새로운 주인공의 여정 속에서 분명한 존재감을 갖고. 그것도 극장 스크린에서. ‘발레리나’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지만, 동시에 존 윅이 남긴 피의 유산을 잇는 첫 번째 ‘직계’ 작품이다. ‘존 윅 유니버스’라는 표현이 허투루 쓰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명의 복수귀가 만든 세계는 이제, 또 다른 복수의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발레리나(Ballerina, 2025)’는 렌 와이즈먼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아나 디 아르마스가 주연을 맡은 액션 스릴러 영화다. 이 영화는 ‘존 윅’ 시리즈의 세계관 안에서 벌어지는 또 하나의 복수극이며, ‘존 윅: 챕터 3 – 파라벨룸’과 ‘존 윅: 챕터 4’ 사이의 시점을 배경으로 한다. 이브 마카로라는 여성 킬러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녀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찬슬러’라는 인물을 찾아내어 처단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단순한 ‘여성판 존 윅’이라는 수식어를 넘어서, 이브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이 세계를 살아내며, 기존 시리즈가 보여주지 않았던 감정선과 성장 서사를 펼쳐 보인다. 존 윅 세계관의 핵심 장소인 ‘컨티넨탈 호텔’과 ‘러스카 로마’도 등장하며, 키아누 리브스가 직접 존 윅 역으로 카메오 출연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단순한 스핀오프가 아닌, ‘동일한 신화의 다른 장’으로 기능한다.
복수의 무대 위에서 춤추는 발레리나
이야기의 시작은 어느 해안가 별장. 여덟 살 소녀 이브 마카로는 아버지와 단둘이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의 집에는 오래전 잃은 딸의 흔적이 남아 있고, 이브는 오르골 속 춤추는 발레리나 인형을 보며 자라난다. 그러나 이 평온은 곧 깨진다. 검은 복장의 괴한들이 들이닥치고, 그들의 수장은 ‘찬슬러(Chancellor)’라 불리는 음험한 사내다. 그는 이브의 아버지에게 무언가를 요구한 끝에 그를 처형한다. 벽 뒤에서 모든 장면을 목격한 이브는, 이 순간을 절대 잊지 않는다.
죽음의 충격 속에서 도망친 이브는 ‘컨티넨탈 호텔’의 지배인 윈스턴(이안 맥셰인)의 보호 아래 ‘러스카 로마’라는 집단으로 보내진다. 그곳은 존 윅 3편에서도 등장한 킬러 양성소. ‘디렉터’(안젤리카 휴스턴)는 클래식 발레와 살인 기술을 함께 가르치는 냉혹한 훈육자이며, 이브는 이곳에서 살인을 춤추듯 수행하는 기술을 익히게 된다.
세월이 흘러, 성장한 이브(아나 디 아르마스)는 암살자로서의 첫 임무를 맡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어린 시절 목격했던 팔에 X자 문신을 한 남자를 다시 마주친다. 그가 찬슬러의 조직과 연관되어 있음을 확신한 이브는 본능적으로 그를 추적하게 되고, 복수의 본능이 되살아난다. 그러나 디렉터는 복수를 경고하며, 개인적인 감정이 조직의 명령을 앞서선 안 된다고 강하게 제지한다.

하지만 이브는 멈추지 않는다. 그녀는 프라하, 베를린, 알프스 산악지대 등 전 세계를 돌며 찬슬러와 그가 이끄는 ‘X 마크 암살집단’의 실체를 파헤친다. 과정 중에 그녀는 컨티넨탈 호텔의 또 다른 손님인 ‘다니엘 파인’(노먼 리더스)이라는 남성과 조우한다. 그 역시 과거 이브처럼 찬슬러에게 가족을 잃은 인물로, 이브에게 실마리를 제공하며 조용히 응원한다. 한편 존 윅(키아누 리브스)은 짧은 장면 속에서 등장한다. 피를 흘리며 몸을 숨기던 존은 이브와 마주하고, 자신의 과거를 은유적으로 비춘다. 그 짧은 대화는 이브가 자신의 길이 단지 복수를 넘어, 시스템과 맞서는 것임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된다. 이 장면은 영화의 감정적 중심축이자, ‘바통터치’로 기능한다.
마침내 이브는 찬슬러가 운영하는 유럽 어느 곳 눈 덮인 은신처에 도달한다. 이곳은 사이비적 집단의 본거지이자 암살자들의 훈련소다. 그녀는 전투 끝에 찬슬러와 마주하며, 목숨을 건 결투를 벌인다. 그 싸움은 단순한 피의 대가가 아니라, 자신을 사로잡았던 어린 시절의 공포와 슬픔을 쏟아내는 과정처럼 그려진다. 이브는 마침내 찬슬러를 제거하고 복수를 완수하지만, 동시에 자신도 존 윅과 같은 길 위에 놓였음을 깨닫는다. 복수는 끝났지만 자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그토록 벗어나려 했던 ‘킬러의 세계’는 이제 그녀의 새로운 운명이 되었다.
존 윅 유니버스와의 연결고리
‘발레리나’는 단순한 파생작이 아니다. ‘From the World of John Wick’이라는 부제를 정식으로 달고 시작하는 만큼, 이 영화는 본편의 세계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온전히 이해될 수 없다. ‘존 윅: 챕터 3 – 파라벨룸’과 ‘존 윅: 챕터 4’ 사이를 배경으로 삼은 이 작품은, 주인공 이브 마카로의 복수극이라는 독립적 서사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곳곳에서 본편과의 유기적 연결고리를 배치한다.
가장 눈에 띄는 연결은 ‘인물의 등장’이다. 존 윅 본인(키아누 리브스)은 물론이고, 컨티넨탈 호텔의 지배인 윈스턴(이안 맥셰인), 컨시어지 샤론(고(故) 랜스 레딕), 그리고 *러스카 로마의 디렉터(안젤리카 휴스턴)*가 모두 다시 등장한다. 이들은 단순한 카메오가 아닌, 이브의 성장과 복수 여정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기능하며, 관객에게 익숙한 얼굴들이 스토리에 신뢰성과 연속성을 부여한다.
공간의 재활용도 중요한 요소다. 뉴욕의 컨티넨탈 호텔은 물론, 프라하와 알프스 산악지대의 ‘신규 컨티넨탈 지점’, 발레 학교와 무기고를 겸한 러스카 로마의 훈련소까지, 존 윅 세계관의 공간들은 하나의 공통된 지리학적 우주를 형성한다. 이는 ‘존 윅’ 시리즈가 구축해 온 암살자들의 지하사회가 단일 도시에 국한되지 않고 전 지구적 조직망을 갖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외에도 관객들은 ‘금화’, ‘룰 위반의 대가’, ‘신성 공간의 중립성’, ‘하이테이블’ 등 기존 시리즈에서 익숙한 상징들을 그대로 발견하게 된다. ‘발레리나’는 이 설정들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이브라는 새로운 캐릭터의 정서와 상황에 맞춰 그 룰을 변형하고 확장시킨다. 예를 들어, 이브는 하이테이블에 도전하거나 내부 권력 구조를 전복하려는 움직임보다는, 자신의 기억과 복수를 추구하는 개인적인 동기를 가지고 세계를 관통한다. 이는 존 윅이 처음 개에게서 비롯된 사적인 복수로 시작해 거대한 질서에 맞서는 서사로 나아갔던 것과 비슷한 흐름이지만, 그 스케일과 감정의 결은 조금 다르다.
무엇보다 상징적인 장면은, 존 윅과 이브가 직접 마주치는 짧은 시퀀스다. 이 장면은 단순한 팬 서비스가 아니다. 비탄과 분노를 에너지로 삼아 움직이는 두 캐릭터가, 서로의 고통을 비추는 거울처럼 등장하며 영화 전체의 정서를 결정짓는다. 존 윅은 말한다. “진실을 알고 싶다는 집착이 우리를 에덴에서 쫓겨나게 했지. 넌 그걸 감당할 준비가 됐나, 이브?” 이는 영화의 철학적 깊이를 암시하는 동시에, 그녀의 이름 ‘Eve’와 성경의 원죄 신화를 절묘하게 연결짓는 장면이다. 결국 ‘발레리나’는 존 윅 유니버스의 구조를 전면적으로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서사와 감정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세계의 일부’를 확장한다. 이는 단순한 세계관 공유를 넘어, 하나의 신화적 세계를 살아가는 또 다른 인물의 여정을 그린다.
존 윅과 발레리나에 열광하는 이유
한편으로는 끊임없는 살육, 다른 한편으로는 스타일리시한 연출. ‘존 윅’ 시리즈는 이러한 양가적 감정이 공존하는 세계를 10년 넘게 이어오며 전 세계 관객을 사로잡았다. 평범한 스릴러라면 세 편 정도에서 마무리됐을 수도 있었지만, ‘존 윅’은 4편에 걸쳐 완결 서사를 마무리했고, 이제는 스핀오프인 ‘발레리나’로까지 확장되었다. 왜 이 잔혹하고도 비장한 세계는 관객에게 이렇게 매혹적인가?
① 룰이 있는 세계, 윤리가 있는 폭력
‘존 윅’ 유니버스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규칙이 존재하는 폭력의 세계’다. 이곳에서의 폭력은 단순한 충동이 아니라, 계약과 명예, 질서와 배신 사이에서 발생한다. ‘컨티넨탈 호텔 안에서는 살인을 금한다’는 규칙 하나만으로도 이 세계는 현실과는 다른 내적 논리를 가진다. 사람들은 이 세계의 룰을 배우고, 이해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충돌에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발레리나’ 역시 이러한 규칙을 고스란히 따르면서, 복수라는 고전적인 주제를 새롭게 해석한다. 이브가 움직이는 동기는 철저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그녀 역시 이 세계의 룰에 따라 움직이며, 그 룰의 경계를 넘는 순간부터 위험에 노출된다. 관객은 그 경계의 아슬아슬함에서 긴장감을 느끼며, 동시에 룰을 부수는 쾌감도 함께 경험한다.
② 폭력의 미학화 – 총성과 발레, 유혈의 안무
‘존 윅’ 시리즈가 다른 액션 영화와 가장 크게 차별화되는 지점은 바로 ‘폭력의 미학화’다. 전투 장면 하나하나가 무용처럼 구성되고, 총격전이 하나의 안무로 완성된다. ‘발레리나’는 이 전통을 물려받으면서도, 주인공의 훈련 배경인 클래식 발레를 시각적으로 접목시킨다. 예를 들어, 이브는 싸우는 와중에도 몸을 회전시키거나 중심을 낮추는 등, 발레의 움직임과 살인의 기술을 융합시킨다. 특히 후반부 알프스 눈밭에서의 전투, 실내 ‘냉장 보관실’을 무대로 한 총격전, 구형 수류탄을 활용한 장면 등은 마치 죽음의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듯한 연출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이는 단순한 액션을 넘어서, 하나의 시청각적 퍼포먼스로 승화된다.
③ 감정이 있는 캐릭터 – 복수 그 너머의 슬픔
존 윅과 이브 마카로, 이 둘은 모두 사적인 상실로부터 출발한 복수자다. 그러나 이들의 매력은 단지 ‘강해서’가 아니라, ‘슬퍼서’ 가능해진다. 그들은 고통 속에서 싸우고, 무자비한 폭력 속에서도 사랑과 기억을 간직한 채 전진한다. 관객은 이들이 쏘는 총성보다는, 총을 쏘게 만든 감정의 기원에 더욱 공감하게 된다. ‘발레리나’는 이러한 감정을 더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이브는 복수의 과정 속에서 잃어버린 유년의 기억, 가족, 존재의 의미를 되짚는다. 그녀는 기계적인 살인자가 아니라, 고통의 무게를 짊어진 인간이다. 존 윅이 슬픔을 침묵 속에 가뒀다면, 이브는 그 슬픔을 행동으로 드러낸다. 이 감정의 밀도는 영화의 긴장감을 더욱 끌어올린다.
④ 확장 가능한 세계, 새로운 주인공의 가능성
‘존 윅’ 시리즈가 흥미로운 점은 ‘세계가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존 윅은 그 세계를 걷는 첫 번째 인물이었을 뿐, 컨티넨탈, 하이테이블, 러스카 로마 등 이 세계의 다양한 구성원들은 언제든 새로운 서사를 이끌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 ‘발레리나’는 바로 그 가능성을 보여준 첫 번째 작품이다. 이브는 존 윅과는 전혀 다른 배경과 감정을 지닌 인물이지만, 그가 남긴 세계의 유산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객에게 익숙하면서도 신선하다. 앞으로 이브를 주인공으로 한 연작이 가능하다면, 관객들은 ‘존 윅 이후’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
관객은 더 이상 ‘총을 쏘는 남자’ 하나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이제는 총을 쏘는 이유, 그 이유가 만들어낸 세계, 그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를 보고 싶어 한다. ‘발레리나’는 바로 그 갈망에 응답하는 작품이며, 그렇기에 대중은 또 한 번 열광하게 되는 것이다.
아나 디 아르마스의 등장과 확장되는 서사
키아누 리브스가 만든 ‘존 윅’이라는 캐릭터는, 고독하고 묵묵한 복수자이자 시리즈의 얼굴이었다. 그를 중심으로 4편에 걸쳐 완결된 한 명의 여정을 마무리한 지금, 제작진은 과연 ‘그 다음’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라는 선택에 직면했다. 그 해답으로 등장한 인물이 바로 아나 디 아르마스다. 그녀는 ‘007: No Time to Die’에서 단 10분도 되지 않는 분량으로 강렬한 액션 존재감을 남기며 이미 전 세계 관객에게 ‘차세대 액션 스타’로 눈도장을 찍은 바 있다. ‘발레리나’는 그 잠재력을 본격적으로 발현시킨 첫 단독 주연 액션물이며, 동시에 그녀의 스타성과 감정 연기 모두를 시험하는 작품이다.
아나 디 아르마스가 연기한 이브는, 한편으로는 연약한 유년의 상처를 지닌 인물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훈련된 살인기계다. 이 양면성은 발레라는 상징과 살인이라는 직업 사이를 오가며 극적으로 강화된다. 그녀는 하이힐을 신은 채로 냉장창고에서 싸우고, 턴을 하며 적의 급소를 베어내는 등, 전투 방식조차 ‘우아함과 파괴성’을 동시에 지닌다. 이는 ‘존 윅’의 투박한 스타일과는 분명히 결이 다르다. 이브는 ‘세계관 최강자’가 아니라, ‘무너지기 쉬운 인간’이라는 점에서 더 인간적인 울림을 준다. 존 윅이 슬픔을 삼킨 채 묵묵히 총을 쏘았다면, 이브는 그 감정을 그대로 끌어안고 폭발시키는 인물이다. 아나 디 아르마스는 이 감정의 굴곡을 억제하지 않고 정면으로 드러낸다. 때로는 흔들리고, 때로는 분노에 잠식되는 이브의 모습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녀의 전투를 단지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감당하게 만든다.
감정 연기뿐만 아니라, 액션 연기의 물리적 완성도도 인상적이다. 리뷰들에 따르면 아나 디 아르마스는 대부분의 스턴트를 직접 소화했으며, 무술과 총기 조작, 와이어 액션 모두에서 탄탄한 기량을 보여줬다. 그녀는 단순히 ‘여성 킬러’의 틀에 갇히지 않고, 신체성과 감정, 인내와 격렬함이 공존하는 새로운 액션 히어로의 모델을 제시한다. 이런 점에서 ‘발레리나’는 ‘여성판 존 윅’이 아니라, 존 윅 유니버스를 여성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첫 시도로 평가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아나 디 아르마스라는 배우의 내공과 존재감이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브 마카로가 단순히 존 윅의 후계자로 소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존 윅의 세계에서 태어났지만, 그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며, 싸우며, 선택한다. 존 윅이 명예와 룰의 충돌에서 고민했다면, 이브는 자신의 기억과 감정, 인간성과 죽음 사이에서 방향을 찾는다. 그녀는 시스템에 맞서는 영웅이 아니라, 과거의 망령과 자신을 분리하려는 인물이다. 이 점에서 ‘발레리나’는 존 윅 유니버스의 확장판이라기보다, 변주곡에 가깝다. 같은 멜로디를 공유하지만, 다른 감정과 다른 리듬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 감정과 리듬을 가능하게 한 배우가 바로 아나 디 아르마스다.

한계와 가능성: 스핀오프의 딜레마
‘존 윅’이라는 브랜드가 전 세계적 신드롬으로 확장된 지금, 그 세계관을 공유하는 스핀오프 작품들의 제작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더 컨티넨탈’이라는 프리퀄 시리즈가 OTT로 먼저 시도되었고, ‘발레리나’는 첫 극장용 스핀오프 작품이라는 상징을 안고 등장했다. 그러나 스핀오프는 본편보다 더 어려운 게임이다. 팬의 기대는 높지만, 그 기대에 완벽히 부응하지 못하면 ‘2류’라는 낙인이 쉽게 찍히기 때문이다.
‘발레리나’는 분명 시각적으로 화려하고, 서사적으로도 단단한 복수극의 틀을 갖추고 있다. 아나 디 아르마스의 활약, 존 윅과의 연결성, 그리고 세계관의 전개 가능성 등 다방면에서 기대할 만한 요소들을 제공한다. 하지만 많은 평론가들이 지적했듯, 서사의 빈틈과 감정 몰입의 부족은 이 영화의 분명한 약점으로 꼽힌다. 이런 한계는 단순히 배우의 문제라기보다, 서사 구조의 단조로움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존 윅’시리즈는 매편마다 세계의 비밀이 조금씩 드러나고, 주인공의 감정도 진화했지만, ‘발레리나’는 비교적 평면적인 복수서사에 머무른다. 중반 이후 전투와 추격이 반복되며, 정서적 긴장감이 일정 수준에서 정체되는 느낌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발레리나’는 확장의 출발점으로서 충분한 의미를 가진다. 본편의 핵심 요소들을 유지하면서도, 여성 주인공을 중심에 놓고, 폭력의 미학을 또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특히 존 윅 스타일 액션의 계승과 여성적 감각의 융합은 액션 장르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시도가 실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발레리나’는 비록 ‘완벽한 영화’는 아니지만, ‘시리즈의 세계를 넓히고 싶은’ 제작진의 의도와 관객의 궁금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완성도는 확보하고 있다. 이는 후속 작품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이며,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위한 디딤돌이 된다. 스핀오프는 본래 ‘중간지대’다. 본편만큼 강렬하길 기대되지만, 본편처럼 서사의 축이 되어선 안 된다. 관객은 그 틈새에서 새로운 시선과 감정을 기대하고, 제작진은 그 균형을 맞춰야 한다. ‘발레리나’는 그 중간지대의 균형을 간신히 지켜낸 첫 작품이자, 앞으로의 방향성을 시험하는 프로토타입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본 존 윅, 다시 열린 세계
‘발레리나’는 분명 새로운 주인공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관객이 이 영화를 보며 가장 먼저 기대했던 것은 하나일 것이다. “존 윅은 나올까?” “나온다면 어떻게 등장할까?” 그 대답은 ‘짧지만 결정적인 등장’이다. 존 윅은 이브의 여정 중반, 극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전편에서 중상을 입고 몸을 숨긴 그가, 여전히 살아 있으며, 여전히 이 세계의 어두운 질서를 통과하고 있음을 확인시키는 장면이다. 그는 직접적으로 싸우지도 않고, 길게 대화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존재 하나만으로, 화면은 긴장감을 얻고, 세계는 갑자기 깊어지며, 관객의 시선은 흔들린다.
이 짧은 장면에서 이브와 존은 몇 마디를 주고받는다. 대사는 많지 않지만, 그 안에 복수의 무게, 살아남는 것의 대가, 그리고 이 세계를 살아가는 자의 비극이 응축돼 있다. 한 평론가는 이 장면을 두고 “이브에게 주어진 마지막 경고이자, 동시에 가장 강력한 축복”이라고 표현했다. 이 장면이 특히 인상 깊은 이유는, 존 윅이 더 이상 이야기의 중심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세계의 중심축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마치 신화 속 전설이 한순간 현신한 것처럼, 그의 등장은 관객에게 무언의 상징을 건넨다. 그것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이 이야기는 내가 시작했지만, 이제는 너희가 계속해나가야 한다.”
개봉 전부터 ‘존 윅은 정말 죽었는가?’라는 논쟁이 끊이지 않았고, ‘발레리나’는 그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해답은 피하면서도, 관객의 욕망에 정확히 반응했다. 죽지 않았다는 확인, 여전히 존재한다는 암시, 그리고 언젠가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기대. 그것만으로도 존 윅의 등장은 이 영화의 감정적 클라이맥스다.
관객 입장에서, 이 장면은 단순한 반가움을 넘어서는 감정이다. 4편에서 모든 것을 마치고 퇴장한 인물을 다시 스크린에서 본다는 것, 그것도 동일한 무채색의 슈트에, 말 없는 표정으로 등장한 그를 마주한다는 것은 마치, 과거의 전설과 눈을 맞추는 경험에 가깝다. 그리고 동시에 깨닫게 된다. ‘존 윅’이라는 이름은 끝났지만, 존 윅의 세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 그는 돌아올 수도 있고, 아니면 다시는 등장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남긴 룰, 고통, 복수, 명예는 여전히 새로운 인물들을 통해 반복되고, 재해석되며, 계속해서 살아간다. ‘발레리나’는 그 첫 번째 증거다. 그리고 이브 마카로는, 그가 남긴 피의 무대 위에서 새로운 춤을 시작한 인물이다.

총성과 발레 사이, 피의 유산을 잇는 자
발레와 총성, 우아함과 파괴, 기억과 복수. ‘발레리나는 이 모든 상반된 요소들을 하나의 무대 위에 올려놓고, 그 위에서 주인공 이브 마카로가 춤추듯 싸우고, 싸우듯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녀는 고통 속에서 자랐고, 살인을 예술처럼 익혔으며, 사랑하는 이를 앗아간 자를 끝내 처단했다. 그러나 그 복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이브는 이제 존 윅이 남긴 피의 유산을 계승한 또 하나의 ‘전설’이자, 그 유산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처음으로 묻는 존재가 된다. 영화는 이브의 결단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의 내면에서 이어진다. “복수는 정당한가?”, “슬픔은 언제 무기로 변하는가?”, “룰이 있는 폭력은 과연 더 나은 것인가?”
이 질문들은 단순한 액션 영화로부터는 나오기 어려운, ‘존 윅’ 유니버스 특유의 철학적 울림이다. 그리고 ‘발레리나’는 그 철학을 여성의 감정과 신체, 슬픔과 의지로 번역해내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였다. 그 결과가 완벽하진 않더라도, 그 시도 자체가 충분한 의의와 가능성을 지닌다. 앞으로 이브의 여정이 또 다른 시리즈로 이어질지, 아니면 한 편의 독립된 비극으로 남을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존 윅이라는 인물이 만들어낸 세계는 더 이상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제 그 무대는 새로운 주인공들, 새로운 방식의 싸움,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감정을 품고 나아가야 한다.
* 첫장면에 등장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무술감독 정두홍과 수영은 존윅 시리즈에 열광하는 한국관객들에게만 보내는 숨은 선물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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