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안의 괴롭힘은 왜 ‘개인 갈등’으로 처리되는가

캠브리지대 고용심판원 공방으로 본 대학 내 권력형 괴롭힘과 제보자 보호의 사각지대

영국 캠브리지대 천문학연구소를 둘러싼 고용심판원 공방이 대학 내 괴롭힘과 성차별, 공익제보자 보호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세계적 명성을 가진 대학에서 제기된 이번 사건은 단순한 해외 대학의 내부 갈등을 넘어, 고등교육기관이 내부 구성원의 피해 호소와 제보를 어떻게 다루는가라는 구조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영국 가디언은 지난 15일 캠브리지대 천문학연구소가 여성 혐오와 괴롭힘의 순환을 방치했다는 주장이 고용심판원에서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천체물리학자인 윈 에반스 교수는 연구소 내 여성 행정직 구성원들이 반복적인 부당 대우를 받았고, 자신이 이를 문제 삼은 뒤 대학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캠브리지대는 해당 주장을 부인하고 있으며, 사건은 심판원에서 계속 다뤄지고 있다.

이번 사안에서 중요한 것은 의혹의 최종 판단을 앞질러 내리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대목은 대학 내부에서 괴롭힘 의혹이 제기됐을 때 사건의 초점이 어떻게 이동하는가이다. 피해 호소는 어느 순간 ‘부서 내 갈등’이나 ‘개인 간 불화’로 정리되고, 제보자의 문제 제기는 ‘동기’와 ‘의도’에 대한 의심으로 전환된다. 대학 조직이 평판과 법적 책임을 관리하려는 순간, 피해자 보호와 사실 확인이라는 본래의 목적은 뒤로 밀릴 수 있다.

피해 호소에서 제보자 공방으로 이동한 사건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사건의 출발점은 캠브리지대 천문학연구소에서 일하던 여성 행정직 구성원에 대한 괴롭힘 의혹이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계약 관리 업무를 맡았던 구드룬 타우슈-페보디 박사는 계약 종료 통보와 업무상 배제, 상급자에 의한 정신적 고통을 주장했다. 에반스 교수는 이 문제를 알게 된 뒤 동료의 안전을 우려해 내부 문제 제기에 나섰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사건은 피해 호소 자체를 넘어 제보자에 대한 불이익 여부로 확장됐다. 에반스 교수는 자신과 동료 교수들이 연구소장으로부터 맞고충을 당했고, 해당 조사가 장기간 이어지며 연구그룹이 위기에 놓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심판원에서 제보 이후 자신의 삶과 연구 기반이 크게 훼손됐다고 진술했다.

대학 측의 입장은 다르다. 캠브리지대는 에반스 교수의 주장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으며, 대학 측 법률대리인은 그의 문제 제기를 연구소장을 향한 개인적 원한의 결과라고 반박했다. 연구소장 역시 관련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현재로서는 어느 한쪽의 주장을 사실로 확정할 수 없는 법적 공방이다. 다만 이 공방은 대학 내 괴롭힘 사건이 제기됐을 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구조를 보여준다. 피해 호소가 제기되고, 이를 알린 사람이 등장하며, 이후 쟁점은 피해 사실 자체와 함께 제보자의 동기, 조직의 대응, 조사 절차의 공정성으로 넓어진다.

대학의 권력관계는 침묵을 만든다

대학 내 괴롭힘은 일반 직장 내 괴롭힘과 닮아 있으면서도 다른 특성을 갖는다. 대학에서는 교수, 연구책임자, 학과장, 연구소장 등이 인사와 계약, 연구비, 추천서, 연구실 배정, 공저자 지위, 지도권한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권한은 공식 직위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학문 분야 안에서의 명성, 외부 연구비 수주 능력, 네트워크, 학계 평판도 권력으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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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이 때문에 피해자는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 계약직 행정직, 박사후연구원, 대학원생, 초빙교원, 프로젝트 기반 연구인력은 더 취약하다. 고용기간이 짧거나 다음 계약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상급자의 평가와 추천은 생계와 경력의 문제다. 대학 내부에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순간, 같은 분야 안에서 다시 자리를 얻기 어려워질 수 있다.

괴롭힘이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피해자가 둔감해서가 아니다. 침묵이 더 안전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폐쇄적인 연구실, 소규모 학과, 특정 교수에게 자원과 권한이 집중된 조직에서는 문제 제기 자체가 위험한 선택이 된다.

대학 내 인권·노동 문제에서 공익제보자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피해자가 직접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동료나 관리자가 문제를 알리는 일은 조직이 위험 신호를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제보 이후 보호체계가 약하면, 공익제보는 제보자 개인에게 큰 위험이 된다.

캠브리지대 사건에서도 에반스 교수의 주장은 바로 이 지점을 향한다. 그는 여성 행정직 구성원에 대한 부당 대우를 문제 삼았지만, 이후 자신이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대학 측은 이를 부인하고 있지만, 이 사건이 던지는 질문은 남는다. 대학은 내부 고발자를 실제로 보호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공익제보자 보호는 선언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제보 이후 조사 기간 동안 제보자의 연구, 업무, 계약, 평가, 승진, 공동연구 관계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임시 보호조치가 필요하다. 조사 장기화로 연구그룹이 흔들리거나, 제보자가 소송과 행정 절차에 소진되거나, 주변 구성원이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 조직은 구성원들에게 분명한 신호를 주게 된다. “문제를 제기하면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신호다.

이 신호가 반복되면 대학 내부에는 침묵의 학습이 쌓인다. 구성원들은 부당함을 보아도 말하지 않는다. 제보자는 고립되고, 피해자는 사라지며, 조직은 사건을 처리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동했을 뿐이다.

내부 구제기구는 누구를 보호하는가

한국 대학에도 인권센터, 고충처리기구, 성희롱·성폭력 상담소 등 다양한 내부 구제 장치가 있다. 그러나 기구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피해자 보호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핵심은 신고 이후 절차가 얼마나 안전하고 독립적으로 설계돼 있는가이다.

국내에서도 대학 인권센터의 사건 처리 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서울대저널은 서울대 자체직원 A씨가 2024년 동료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한 뒤 신고서가 제3자에게 유출돼 2차 피해가 발생했고, 조사가 장기화된 끝에 A씨가 사직한 뒤 사건이 기각됐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는 대학 내부 구제기구가 피해자를 보호하기보다 오히려 추가 피해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보여준다.

신고 사건에서 피신고인의 방어권은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방어권 보장이 신고자의 상세 진술, 증거자료, 참고인 정보, 개인정보의 과도한 노출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 피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한 절차가 피해자를 다시 위험에 빠뜨린다면, 그 제도는 구제 장치로 신뢰받기 어렵다.

따라서 대학은 신고 정보를 이원화할 필요가 있다. 피신고인에게는 방어권 보장을 위한 사건 요지를 제공하되, 피해자의 세부 진술과 증거자료, 참고인 정보는 별도 보안 절차로 관리해야 한다.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와 제보자가 조직 내 보복, 낙인, 직무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임시 보호조치도 함께 작동해야 한다.

영국의 변화, 대학 자율성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신호

영국에서는 대학 내 괴롭힘과 성비위 대응을 둘러싼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영국 고등교육규제기관인 OfS는 2025년 8월부터 성희롱과 괴롭힘에 관한 등록 조건을 전면 시행했다. 대학은 성희롱과 괴롭힘에 관한 정책과 절차를 통합적으로 공개하고, 신고 경로, 정보 처리 방식, 지원 조치, 조사 담당자의 훈련, 조사와 판단의 공정성 등을 명확히 해야 한다.

비밀유지계약, 즉 NDA를 둘러싼 문제도 중요한 변화 지점이다. 영국 정부는 앞서 대학들이 성희롱·괴롭힘 피해자에게 법적 비밀유지계약을 요구해 침묵하게 만드는 관행을 중단하도록 서약을 추진했다. 이는 대학이 사건을 조용히 덮고 평판을 지키는 방식이 더 이상 용인되기 어렵다는 사회적 요구를 반영한다.

이 흐름은 한국 대학에도 시사점이 있다. 대학의 자율성은 중요하다. 그러나 자율성이 내부 구성원의 권리 보호 실패를 방치하는 명분이 될 수는 없다. 대학이 스스로 조사와 구제의 신뢰를 확보하지 못하면, 사회는 더 강한 외부 기준과 감독을 요구하게 된다.

첫째, 신고 절차의 정보관리 원칙을 다시 세워야 한다. 신고자의 진술과 증거자료가 피신고인에게 어디까지 제공되는지, 참고인 정보는 어떻게 보호되는지, 개인정보와 민감정보는 어떤 방식으로 분리 보관되는지 명확히 해야 한다. 방어권과 피해자 보호는 충돌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설계해야 할 절차적 원칙이다.

둘째, 조사기구의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 대학 본부의 평판 관리, 부서 이해관계, 인사권자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조사 구조가 필요하다.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외부 법률전문가, 노동인권 전문가, 심리상담 전문가가 참여하는 독립적 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

셋째, 공익제보자 보호를 실질화해야 한다. 제보자가 조사를 요청했다는 이유로 연구, 업무, 계약, 평가, 승진, 배치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임시 보호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제보 이후 장기간 방치되는 조사는 그 자체로 불이익이 될 수 있다. 조사 기간의 상한, 중간 통지, 임시 조치, 불복 절차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

넷째, 취약한 지위의 구성원을 별도로 보호해야 한다. 대학원생, 계약직 연구원, 프로젝트 행정직, 초빙교원, 박사후연구원은 대학 내 권력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다. 이들이 신고 과정에서 지도교수, 연구책임자, 부서장의 영향력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연구 지속, 학위과정, 계약 연장, 추천서, 근무평가가 보복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제도적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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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평판은 침묵이 아니라 신뢰에서 나온다

대학은 지식과 비판의 공간을 자처한다. 그러나 내부 구성원이 부당함을 말할 수 없고, 제보자가 고립되며, 피해자가 절차를 믿지 못한다면 대학의 공적 신뢰는 유지되기 어렵다. 명문대의 이름이나 연구 성과가 조직 내부의 취약한 구성원을 보호하지 못하는 구조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캠브리지대 고용심판원 공방은 아직 진행 중인 사건이다. 최종 판단은 법적 절차를 통해 가려질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이 이미 던진 질문은 분명하다. 대학은 괴롭힘과 성차별 의혹을 개인 갈등으로 축소하지 않고 다룰 수 있는가. 제보자를 보호할 수 있는가. 내부 구제기구는 피해자에게 안전한가. 그리고 대학의 자율성은 구성원의 권리를 지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는가.

대학이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대학 내 괴롭힘 문제는 더 이상 내부의 조용한 사건으로 남지 않을 것이다. 사회는 대학에 더 높은 수준의 공개성, 독립성, 책임성을 요구하게 된다. 대학의 평판은 침묵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드러내고 바로잡을 수 있다는 신뢰 위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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