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수 확대만으로는 미래를 설명할 수 없는 시대다. 유네스코(Transforming higher education_ global collaboration on visioning and action – UNESCO)는 AI, 불평등, 공공성 약화, 노동시장 변화, 국제이동 확대의 흐름 속에서 대학의 존재 방식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세계는 이미 학위 중심, 연한 중심, 공급자 중심의 낡은 틀을 넘어선 고등교육을 말하고 있다. 질문은 분명하다. 한국 대학은 그 전환의 문턱 앞에서 어디에 서 있는가.
미래를 준비하던 대학, 이제는 미래 앞에서 시험대에 서다
대학은 오랫동안 미래를 준비하는 기관으로 여겨져 왔다. 과거의 지식과 현재의 문제를 연결하고, 아직 오지 않은 사회를 상상하도록 돕는 공간이라는 믿음도 그 위에 세워졌다. 그래서 대학은 늘 사회 변화의 해설자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금 대학은 더 이상 바깥세상을 설명하는 데 머물 수 없는 위치에 놓여 있다. 기후위기, 분쟁과 전쟁, 민주주의의 흔들림,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확산, 노동환경의 재편, 지식의 상업화와 플랫폼화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상황에서 대학 자신이 과연 어떤 제도여야 하는지가 다시 묻히고 있기 때문이다. 유네스코는 바로 이 지점에서 고등교육의 미래를 다시 그려야 한다고 말한다. 고등교육은 여전히 사회적 가치와 공동선을 만들어내는 핵심 기반이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그 역할을 충분히 감당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 이 자료 전체를 관통한다.
이 대목이 중요한 이유는 대학 위기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대학 위기라는 말은 대개 학령인구 감소, 등록금 동결, 재정 압박, 취업률 저하, 지역대학 소멸 같은 현실적 문제를 중심으로 사용돼 왔다. 물론 그 어떤 문제도 가볍지 않다. 그러나 유네스코가 던지는 물음은 그보다 더 근본적이다. 대학은 여전히 필요한가가 아니라, 지금의 대학은 미래에도 유효한가라는 질문이다. 다시 말해 대학의 생존 여부가 아니라 대학의 작동 원리 자체가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이는 개별 대학의 경영 전략을 넘어, 고등교육이 어떤 사회적 계약 위에서 다시 정리돼야 하는지를 묻는 일과 맞닿아 있다. 유네스코가 제시한 고등교육 전환의 로드맵은 바로 그 새로운 사회적 계약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2022년 제3차 세계고등교육회의를 중심으로 다년간의 토론과 250회의 세션, 1,500여 개의 산출물과 250개의 지식 생산물이 축적됐고, 그 결과 고등교육의 미래를 위한 공통의 의제와 전환 원칙이 정리됐다.
이렇게 보면 지금 대학을 둘러싼 위기는 단지 운영의 위기가 아니다. 그것은 대학이 어떤 존재였고, 앞으로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를 다시 정리해야 하는 정체성의 위기다. 한때 대학은 지식의 중심지이자 사회적 상승의 통로로 비교적 선명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대학은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요구에 노출돼 있다. 산업은 더 빠른 인재 공급을 요구하고, 시민사회는 더 큰 공공성과 책임을 요구하며, 학생은 더 유연하고 실질적인 학습경로를 요구하고, 기술은 교육의 형식 자체를 흔들고 있다. 대학은 이 모든 요구에 응답해야 하지만, 동시에 시장이나 기술의 즉각적 명령에만 종속돼서는 안 된다. 유네스코가 고등교육을 사회적 가치 창출의 기반으로 다시 부각시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학을 지탱하는 기준은 효율 하나가 아니라 형평성, 공공성, 자유, 비판성, 지속가능성까지 포함하는 더 넓은 원리여야 한다는 뜻이다.
양적 확대의 시대가 끝난 뒤 남은 질문
고등교육의 외형만 보면 지난 수십 년은 분명한 팽창의 시대였다. 유네스코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고등교육 등록자는 2억6900만 명에 이르렀다. 전통적 대학 진학 연령대 인구 가운데 43%가 고등교육에 참여하고 있다는 수치도 제시된다. 여기에 700만 명이 넘는 학생이 자국 밖에서 공부하는 국제이동 흐름까지 더하면, 고등교육은 더 이상 소수 엘리트의 특권적 공간이라고만 말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확장됐다. 숫자만 보면 인류는 어느 정도 고등교육의 대중화를 실현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유네스코의 시선은 멈추지 않는다. 참여의 확대가 곧 정의의 실현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 많은 사람이 대학에 간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배우는 것은 아니다. 같은 고등교육이라 해도 어떤 학생은 연구 인프라와 국제교류, 안정적인 학습 지원을 갖춘 환경에서 공부하지만, 다른 학생은 비용 부담과 디지털 접근성 부족, 사회문화적 장벽과 지역적 제약 속에서 학습을 이어가야 한다. 누군가는 국경을 넘나들며 교육 기회를 넓히지만, 누군가는 생계와 가족 책임 때문에 애초에 이동 자체가 불가능하다. 등록자 수의 증가는 현실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출발점일 수는 있어도, 고등교육의 공정성과 포용성을 입증하는 결론은 아니다. 유네스코가 형평성과 다원주의에 대한 책무를 전환의 첫 원칙으로 제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변화는 한국에도 낯설지 않다. 한국은 이미 세계적으로 높은 고등교육 진학률을 기록해 온 사회다. 그러나 그 높은 진학률이 곧 모든 문제의 해결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도 동시에 드러나고 있다. 어느 대학에 진학하느냐에 따라 경험하는 학습 환경과 사회적 기회는 크게 다르고,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여전히 크며, 등록금과 생활비 부담은 학생과 가정에 적지 않은 압력을 가한다. 여기에 성인학습자, 경력 전환자, 중도학습자 같은 새로운 학습자군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기존의 청년 중심 대학 체제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진학률이 높다는 사실만으로 고등교육의 포용성을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계가 이미 양적 확대 이후의 조건을 묻고 있다면, 한국도 이제는 몇 퍼센트가 대학에 가는가보다 누가 어떤 조건에서 배우고 남는가를 더 진지하게 따져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대학의 문이 열려 있다는 말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입학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포용성의 핵심 지표처럼 여겨졌다. 이제는 그보다 더 복합적인 조건이 중요해졌다. 입학 이후에 학습을 지속할 수 있는지, 유연한 시간표와 다양한 경로가 마련돼 있는지, 경제적·심리적 지원이 충분한지, 디지털 환경에서 소외되지 않는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실제로 성장할 수 있는 문화가 존재하는지가 함께 논의돼야 한다. 대학이 문을 연다는 것은 단순히 선발 규모를 늘리는 일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조건을 가진 이들이 대학을 자신의 삶과 연결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일이 됐다. 이 점에서 유네스코의 제안은 단지 선발의 확대가 아니라 체류와 성장의 공정성으로 논의를 옮겨놓는다.
대학은 더 이상 지식을 독점하지 않는다
대학의 위기를 말할 때 흔히 놓치기 쉬운 또 하나의 변화는 지식 환경 자체가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오랫동안 대학은 지식을 생산하고 축적하고 전달하는 가장 권위 있는 공간으로 기능해 왔다. 물론 지금도 대학은 여전히 중요한 연구기관이자 교육기관이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 오픈사이언스, 데이터 기반 연구, 민간 플랫폼과 기업의 지식 생산 확대는 지식의 흐름을 과거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바꾸고 있다. 유네스코는 많은 고등교육기관이 여전히 전문가 지식을 동원해 세계적 과제에 대응하려 하지만, 오늘의 세계에서는 지나치게 단선적이고 기술관료적인 해법이 오히려 문제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짚는다. 또한 디지털 기반 지식 생산과 소비의 비대칭, 상업화, 데이터와 연구 인프라 접근의 불균형도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본다.
이 변화는 대학의 권위를 약하게 만든다는 차원에서만 볼 일이 아니다. 오히려 대학의 역할을 다시 정의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과거에는 대학이 얼마나 많은 지식을 쌓고 있느냐가 권위의 근거였다면, 이제는 어떤 지식을 누구를 위해 만들고 어떻게 검증하며 어떤 공공적 기준 아래 사회와 공유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플랫폼 기업이 막대한 데이터를 쥐고 알고리즘을 통해 지식의 가시성을 좌우하는 시대, 연구가 상업적 이해관계와 결합되는 속도가 빨라지는 시대, 정보의 양은 폭증하지만 신뢰할 만한 지식의 기준은 오히려 더 복잡해지는 시대에 대학은 더 이상 지식의 창고만으로는 자기 역할을 설명할 수 없다. 대학은 지식의 공공성과 신뢰를 지키는 제도로서 자신을 다시 세워야 한다.
이 지점에서 유네스코가 강조하는 오픈사이언스의 방향은 의미심장하다. 지식은 폐쇄된 권위의 성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사회와 공유되고 검증되며 활용돼야 한다는 생각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나 개방이 곧 평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데이터, 연구 장비, 국제 네트워크에 접근할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격차는 더 커질 수도 있다. 그래서 문제는 단지 지식을 열어두는가가 아니라, 그 개방의 구조가 누구에게 얼마나 실질적인가에 있다. 대학은 이 변화 속에서 지식의 독점자를 포기하는 대신, 지식의 신뢰와 공정한 접근을 설계하는 공적 기관으로 재배치될 필요가 있다. 이는 곧 대학의 평가 체계와 연구 문화, 산학협력의 방향, 지식의 공공적 환원 문제까지 다시 묻게 만든다.
한국 대학 역시 이 질문을 피할 수 없다. 논문 수와 연구비 규모, 기술이전 실적과 국제 랭킹이 대학의 성과를 설명하는 데 중요한 기준으로 쓰여 왔지만, 그런 지표만으로 대학의 사회적 역할을 충분히 말할 수 있는지는 점점 더 불분명해지고 있다. 연구는 활발해졌는데 시민이 대학을 신뢰하는가, 지식은 축적되는데 그 지식이 공공의 언어로 번역되고 있는가, 산학협력은 늘어나는데 대학의 자율성과 비판성은 유지되고 있는가 같은 질문은 여전히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 유네스코가 지식과 대학의 관계 변화를 별도의 핵심 의제로 다루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지식의 시대가 끝난 것이 아니라, 지식을 다루는 규칙이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학위 중심 대학의 시간표는 이미 흔들리고 있다
고등교육의 미래를 둘러싼 논의에서 가장 현실적인 변화를 꼽으라면, 그것은 학습경로의 변화일 것이다. 오랫동안 대학은 비교적 단순한 시간표 위에 세워져 있었다. 일정한 연령대의 청년이 입학해 정해진 연한 동안 교육을 받고 학위를 취득한 뒤 노동시장으로 이동하는 구조가 그것이다. 이 모델은 산업화 시대의 사회와 꽤 잘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노동시장이 빠르게 재편되고, 생애 중간의 직무 전환이 일상화되며, 기술의 변화가 기존 지식의 유효기간을 짧게 만들고, 더 많은 성인이 다시 학습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오면서 이 단선형 구조는 더 이상 충분한 설명력을 갖기 어렵게 됐다. 유네스코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마이크로크리덴셜, 부분학습, 선행학습 인정, 유연한 경로 설계, 평생학습과의 통합이 고등교육의 핵심 흐름이 되고 있다고 짚는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프로그램 몇 개를 더 도입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학이 학생을 바라보는 기본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는 뜻에 가깝다. 대학은 더 이상 18세 청년만을 전제로 한 기관일 수 없다. 이미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성인학습자, 재직자, 경력 전환자, 비전형 학습자, 지역사회 학습자들이 고등교육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등장하고 있다. 누군가는 직장을 다니며 짧은 단위의 재교육을 원하고, 누군가는 경력 단절 이후 다시 학습을 필요로 하며, 누군가는 특정 기술만을 보완하기 위해 대학을 찾는다. 이런 학습자는 전통적인 4년제 학위 과정 하나로는 포섭하기 어렵다. 결국 대학은 한 번 입학하고 한 번 졸업하는 공간이 아니라, 삶의 여러 국면에서 다시 찾아오는 학습 인프라로 변해야 한다. 유네스코가 유연하고 평생학습 친화적인 고등교육을 강조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한국에서 이 문제는 학령인구 감소와 맞물리며 더욱 절박해진다. 많은 대학이 신입생 충원율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미래를 준비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학생 수가 줄어드는 사회에서 대학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면 대학이 누구를 학생으로 상정하고 있는지부터 바뀌어야 한다. 청년 학령층만을 전제로 한 시스템은 이미 한계에 이르렀다. 성인학습자에게 적합한 시간 운영과 학사제도, 직무 전환과 재교육 수요를 반영한 교육과정, 비학위·단기과정과 정규학위 간의 유연한 연계, 이전 학습의 인정 체계가 함께 마련되지 않는다면 대학은 줄어드는 청년층을 놓고 더 치열하게 경쟁하는 구조 안에서만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 경쟁은 결국 고등교육을 더 경직되게 만들 위험이 있다.
이 점에서 유네스코가 말하는 전환은 학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학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학위는 여전히 중요한 사회적 장치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자격의 언어여야 할 필요는 없다. 짧은 과정, 모듈형 학습, 현장 경험과의 결합, 이전 학습의 공식 인정 같은 제도는 더 복잡해진 삶의 경로를 고등교육이 받아들이기 위한 장치들이다. 대학의 문턱을 낮춘다는 것은 입학 경쟁을 느슨하게 하는 차원을 넘어, 대학과 사회 사이에 놓인 시간표 자체를 다시 쓰는 일이다. 대학이 사회보다 느리게 바뀌면, 사람들은 대학 밖에서 다른 학습 경로를 찾게 될 것이고 대학은 점점 주변화될 수 있다. 반대로 대학이 학습자의 생애주기에 맞춰 유연하게 열릴 수 있다면, 고등교육은 다시 공공적 기반시설로서의 의미를 회복할 수 있다.
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똑똑한 대학이 아니라 더 인간적인 대학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대학을 둘러싼 담론에서 AI는 거의 빠지지 않는 핵심어가 됐다. 많은 대학이 생성형 AI 활용 지침을 만들고, 행정 자동화와 학습 분석 시스템을 도입하고, AI 관련 교육과정을 신설하며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유네스코가 이 자료에서 보여주는 시선은 기술 낙관론과는 거리가 있다. 유네스코는 디지털 기술과 AI가 고등교육의 미래를 바꾸는 중요한 요소임을 분명히 인정하면서도, 그 활용은 어디까지나 인간 중심적이어야 한다고 못 박는다. 기술은 접근성을 확대하고 맞춤형 학습을 가능하게 하며 새로운 교수학습 방식을 열 수 있지만, 동시에 불평등을 심화하고 교육의 상호작용을 약화시키며 데이터와 플랫폼에 대한 의존을 강화할 수 있다. 기술을 더 많이 쓰는 것이 곧 더 나은 대학을 뜻하지 않는다는 경고가 여기에 담겨 있다.
이 지적은 특히 중요하다. 오늘날 많은 대학이 AI를 미래 경쟁력의 상징처럼 다루지만, 실제로 더 본질적인 질문은 AI를 무엇을 위해 쓸 것인가에 있다. 수업 준비 시간을 줄이기 위한 편의의 도구인지, 학습자 맞춤형 지원을 위한 공공적 장치인지, 학생을 더 정밀하게 감시하고 평가하기 위한 기술인지에 따라 AI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유네스코는 디지털 전환을 말하면서도 탐구, 비판적 사고, 창의성, 인간 존엄, 협력과 같은 가치들을 동시에 강조한다. 이는 기술이 교육의 목적을 대신 정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AI는 도구일 수는 있어도 대학의 존재 이유를 결정해주지는 못한다. 대학은 기술을 도입하는 곳이기 전에, 기술을 어떤 원칙 아래 둘 것인지를 판단하는 곳이어야 한다.
한국 대학의 현실을 돌아보면 이 문제는 더 선명해진다. 많은 대학이 AI 활용을 빠르게 논의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교육혁신, 행정효율화, 연구지원, 평가관리, 홍보전략이 뒤섞인 상태에서 AI가 호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떤 대학은 AI를 학생 중심 교육의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려 하지만, 어떤 대학은 수업과 평가의 통제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또 AI 활용 역량을 갖춘 대학과 그렇지 못한 대학 사이의 격차 역시 작지 않다. 이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 보유량이 아니라 기술을 다루는 윤리와 철학이다. 대학이 AI를 통해 무엇을 더 인간답게 만들 것인지, 무엇을 끝까지 인간의 판단과 관계 안에 남겨둘 것인지, 어떤 부분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것인지를 분명히 하지 않는다면 디지털 전환은 혁신이 아니라 혼란이 될 수 있다.
유네스코가 인간 중심의 디지털 기술과 AI를 원칙 가운데 하나로 내세운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기술은 학습자와 교원을 돕는 수단이어야지, 교육의 방향을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고등교육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판단, 토론, 의심, 협업, 실수와 성찰의 과정을 포함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대학은 가장 앞선 기술을 가장 빠르게 도입하는 곳이기보다, 기술을 가장 신중하고 공공적인 방식으로 다루는 곳이어야 한다. 미래의 대학 경쟁력은 자동화의 속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의 효율성과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함께 지켜낼 것인가에 대한 답변 능력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대학과 사회의 거리를 다시 조정해야 한다
고등교육을 둘러싼 또 하나의 큰 변화는 대학과 사회 사이의 관계가 이전보다 훨씬 복잡해졌다는 점이다. 유네스코는 많은 사회에서 공공기관 전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으며, 고등교육기관도 그 예외가 아니라고 본다. 동시에 사회는 대학에 더 실용적인 기여를 요구한다. 학생과 학부모는 취업 가능성을 중시하고, 정부는 재정 투입의 효율을 묻고, 기업은 현장 적응력이 높은 인재를 원한다. 이러한 압력 속에서 대학은 사회와 더 밀착되기를 요구받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비판적 사고와 민주주의, 장기적 지식 생산을 떠받치는 공적 기관으로서의 역할도 놓칠 수 없다. 유네스코가 대학과 공공의 관계 변화를 핵심 주제로 다루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학은 사회와 가까워져야 하지만, 사회의 즉각적인 요구에만 종속되는 기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 긴장은 한국에서도 매우 익숙하다. 대학은 취업률과 산업연계, 지역혁신, 재정사업 수행, 산학협력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와 연결되기를 요청받는다. 그 자체는 자연스럽고 필요한 흐름이다. 문제는 그 연결이 너무 쉽게 단기 성과 중심으로 수렴할 때다. 대학이 사회와 연결된다는 말이 곧 기업이 요구하는 기술을 빠르게 공급하는 체계로 축소될 때, 대학은 자신이 맡아야 할 더 넓은 공공적 역할을 잃기 쉽다. 대학은 노동시장과 무관한 기관일 수는 없지만, 노동시장에만 종속된 기관이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지역사회와 시민사회, 민주주의와 문화, 사회적 갈등과 공적 숙의의 공간으로서 대학의 의미를 함께 지켜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네스코는 특히 학문 자유와 표현의 자유, 제도적 자율성의 중요성을 분명히 강조한다. 이는 단지 교수사회의 권리를 보호하자는 선언이 아니다. 대학이 비판과 탐구의 공간으로 기능하려면 정치적 압력, 경제적 이해관계,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일정한 자율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뜻이다.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작동하려면 불편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지적 공간이 필요하고, 대학은 그 공간의 일부를 맡고 있다. 따라서 학문 자유는 대학 내부의 특수한 원리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건강성과 연결되는 원리다. 유네스코가 고등교육을 단순한 기술 훈련 기관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와 공공선을 위한 핵심 기반으로 규정하는 것도, 바로 이 비판성과 자율성의 중요성을 전제로 한다.
결국 대학과 사회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거리의 절대값이 아니다. 너무 멀어서도 안 되지만, 너무 가까워져 즉각적 이해관계에 흡수돼서도 안 된다. 대학은 사회의 요구를 듣되, 그 요구를 비판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어야 하고, 단기 성과를 추구하되 장기적 가치의 언어를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유네스코가 말하는 공공성과 책무는 바로 이러한 균형의 문제다. 대학이 사회와 단절된 탑이 아니라면, 동시에 사회의 주문서만 처리하는 기관도 아니다. 대학은 사회가 자기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드는 장치여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지금처럼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고등교육이 여전히 필요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전환의 원칙은 새로운 구호가 아니라 오래된 기준의 재정의다
유네스코가 제시한 고등교육 미래의 핵심은 7개의 가이드 원칙에 집약돼 있다. 형평성과 다원주의에 대한 책무, 배우고 가르치고 연구하고 국제협력할 자유의 증진, 탐구와 비판적 사고와 창의성의 촉진, 인간 중심의 디지털 기술과 AI, 협력과 연대의 윤리, 지속가능성과 책임, 그리고 질·우수성·적합성에 대한 더 풍부한 이해가 그것이다. 얼핏 보면 이는 익숙한 미덕들을 다시 정리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원칙들은 고등교육을 움직여 온 오래된 기준을 다시 묻는 훨씬 더 급진적인 제안에 가깝다. 유네스코는 대학이 앞으로 더 포용적이고, 더 잘 연결되고, 더 자원 기반이 튼튼하며, 더 비판적이고 창의적이며, 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작동해야 한다고 본다. 이는 단순한 개선의 목록이 아니라 작동 원리의 재설정이다.
형평성과 다원주의는 그 첫 번째 출발점이다. 오랫동안 대학은 선발의 공정성을 강조해 왔다. 누구에게 문을 열 것인가, 어떤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할 것인가가 중요한 논의였다. 그러나 이제 형평성은 입구의 문제를 넘어 과정과 결과의 문제까지 포함한다. 다양한 배경을 지닌 학습자가 실제로 대학에서 살아남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있는지, 서로 다른 경험과 관점이 대학 안에서 정당한 목소리를 가질 수 있는지, 배제된 집단이 상징적으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포함되고 있는지까지 함께 봐야 한다. 다원주의는 단지 다양한 사람을 한 공간에 모아두는 것이 아니라, 그 다양성이 지식 생산과 학습 경험을 실제로 변화시키는지를 묻는 원리다. 유네스코가 첫 번째 원칙으로 이를 제시한 것은 고등교육의 미래가 더 넓은 포함의 언어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배우고 가르치고 연구하고 협력할 자유는 두 번째 축이다. 여기서 자유는 대학 내부의 낭만적 자율성을 미화하는 말이 아니다. 대학이 사회적 압력 속에서도 탐구를 지속하고, 국경을 넘어 협력하며, 불편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조건을 의미한다. 특히 정치적 간섭, 권위주의적 통제, 지식의 상업화, 국제 협력의 위축이 동시에 존재하는 시대에 이 원칙은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고등교육은 사회의 현재를 따라가는 곳이 아니라, 사회가 놓치고 있는 문제를 먼저 질문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유가 제도적 토대로 보장돼야 한다. 자유를 잃은 대학은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는 있어도, 미래를 열어가는 공간이 되기는 어렵다. 유네스코가 학문 자유와 제도적 자율성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탐구와 비판적 사고와 창의성의 원칙은 대학 교육이 점점 더 기능주의적 압력에 노출되는 상황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취업과 즉시 활용 가능한 기술은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대학이 그것만을 위해 존재할 수는 없다. 사회는 복잡해지고 문제는 서로 얽혀가는데, 이미 정해진 답을 빠르게 적용하는 능력만으로는 대응할 수 없는 영역이 늘어나고 있다. 새로운 질문을 만드는 힘, 서로 다른 관점을 이해하고 조합하는 힘, 기존의 틀을 의심하는 힘이야말로 미래 사회가 필요로 하는 핵심 역량일 수 있다. 대학이 프로젝트와 현장성을 강조하더라도, 그 바탕에는 여전히 탐구와 비판, 상상력의 훈련이 있어야 한다. 유네스코가 대학을 사회적 가치 창출의 기반으로 보는 것도, 고등교육이 단순한 기능 습득을 넘어 사고의 질을 바꾸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인간 중심의 디지털 기술과 AI는 이미 앞서 본 것처럼 기술 도입의 여부보다 기술의 위치를 묻는다. 이 원칙은 고등교육이 기술혁신의 속도에 밀려 수동적으로 재편되어서는 안 된다는 선언과도 같다. 대학은 기술을 받아들이되 인간의 존엄과 학습의 본질, 관계와 공정성의 원리 아래 두어야 한다. 기술의 편리함이 교육의 목적을 대체하게 두지 않는 것, 데이터 활용이 학생 통제의 논리로만 흐르지 않도록 하는 것, 디지털 접근성의 격차가 새로운 교육 불평등으로 굳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이 원칙의 실제 과제다. 이는 AI 시대 대학의 경쟁력을 새로 정의하는 일이기도 하다. 단순히 최신 기술을 보유한 대학보다, 기술을 가장 인간적으로 다룰 줄 아는 대학이 더 중요한 모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협력과 연대의 윤리는 오늘날 고등교육의 경쟁질서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 있다. 대학은 오랫동안 순위와 실적, 선발 경쟁과 연구비 경쟁 속에서 움직여 왔다. 이러한 경쟁은 일정 부분 혁신을 자극했지만, 동시에 대학 간 격차를 확대하고 교육과 연구의 공공성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기도 했다. 유네스코는 미래의 고등교육이 협력적 거버넌스와 연대의 윤리 위에서 다시 상상돼야 한다고 본다. 이는 대학이 서로를 이겨야 하는 기관이기보다 지식을 공유하고 공동 문제를 해결하는 네트워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기후위기, 민주주의 후퇴, 전쟁과 분쟁, 불평등 같은 문제는 한 대학이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경쟁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문제 앞에서 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조건이 되고 있다.
지속가능성과 책임의 원칙도 빼놓을 수 없다. 이제 고등교육은 기후위기와 생태적 한계, 세대 간 정의,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외부 변수로만 다룰 수 없다. 대학의 운영 방식, 교육과정, 연구 의제, 지역과의 협력 모두가 지속가능성의 질문과 연결된다. 유네스코는 고등교육이 보다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핵심 사회적 행위자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는 대학이 단지 기후 관련 강의를 몇 개 개설하는 수준을 넘어, 자신의 제도와 실천 전체를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다시 들여다봐야 함을 뜻한다. 지속가능성은 환경 이슈 하나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미래 세대까지 포함한 사회적 책임의 언어다.
마지막으로 질, 우수성, 적합성에 대한 더 풍부한 이해는 지금의 대학 평가 체계를 정면으로 흔드는 문제의식이다. 오랫동안 대학의 질은 서열, 순위, 연구실적, 취업률 같은 비교적 단순한 지표들로 환원돼 왔다. 그러나 유네스코는 미래의 고등교육에서 질과 우수성은 더 다층적으로 이해돼야 한다고 본다. 어떤 대학이 누구에게 얼마나 적합한 교육을 제공하는지, 사회적 기여와 공공적 책임을 얼마나 감당하는지, 지역과 세계를 어떻게 연결하는지, 포용성과 창의성을 얼마나 실현하는지까지 함께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평가의 기준을 늘리자는 말이 아니라, 질을 이해하는 관점 자체를 바꾸자는 제안이다. 대학은 더 이상 한 줄의 순위로 설명될 수 없는 시대를 향해 가고 있다. 미래의 고등교육은 성과를 측정하는 언어부터 다시 써야 할지 모른다.
유네스코가 그린 변화의 방향은 대학 안팎의 구조를 함께 바꾸라고 말한다
유네스코는 원칙을 제시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고등교육이 나아가야 할 변화의 방향도 비교적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더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패러다임, 더 유연한 통합, 평생학습과의 강한 연결, 노동시장과의 역동적 접점, 총체적이고 통합적인 교육, 탐구와 비판적 학습, 활동적·문제해결형·프로젝트 기반 학습, 그리고 미래의 필요와 열망을 고려한 학습 설계가 그것이다. 이는 단순히 교육과정을 일부 개편하자는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학의 경계와 시간표, 학생상과 교육방식, 사회와의 연결 방식을 모두 다시 생각하자는 요청에 가깝다.
여기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개방성과 포용의 강조다. 대학은 더 많은 사람에게 열려 있어야 하지만, 그 개방은 물리적 개방만을 뜻하지 않는다. 대학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배경과 조건이 더 다양해지는 만큼, 대학은 그 다양성에 맞는 지원과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입시의 문제를 넘어 교육과정 설계, 교수학습 방식, 학생지원 체계, 학사 운영 전체와 연결된다. 또 유연한 통합과 평생학습의 강조는 대학이 독립된 섬처럼 존재하기보다, 학교교육 이후의 다양한 학습과 노동 경험, 지역사회 활동과도 연결되는 체계로 바뀌어야 함을 뜻한다. 교육은 정규 학위의 울타리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에 걸쳐 분산돼 있다는 사실을 대학이 제도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시장과의 역동적 접점이라는 표현도 섬세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 이는 대학이 산업의 요구에 단순 종속돼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급변하는 노동시장 속에서 학생과 시민이 더 긴 생애에 걸쳐 학습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뜻에 가깝다. 대학은 즉시 투입 가능한 인재를 생산하는 공장이 아니라,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판단력과 학습 능력, 전환 능력을 기르는 곳이어야 한다. 따라서 노동시장과의 연계는 단기 맞춤형 훈련보다도,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학습자의 역량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유네스코가 총체적이고 통합적인 학습, 탐구와 비판적 사고, 프로젝트 기반 학습을 함께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능적 숙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흐름은 한국 대학의 교육 방식에도 적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여전히 많은 대학에서 교육은 학기, 학점, 전공, 강의실, 시험 중심 구조에 단단히 묶여 있다. 물론 그 체계는 오랫동안 안정성과 비교 가능성을 제공해 왔다. 그러나 문제는 사회의 변화 속도가 이 체계보다 훨씬 빨라졌다는 데 있다. 학생이 졸업 시점에 보유한 지식보다 졸업 이후 스스로 배우고 다시 전환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지는 사회에서, 대학의 교육이 여전히 정답 중심, 전달 중심, 일회성 평가 중심에 머문다면 그 격차는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유네스코가 말하는 변화의 방향은 결국 대학이 가르치는 내용만이 아니라, 배우는 방식과 살아가는 방식까지 함께 바꿔야 한다는 요청으로 읽힌다.
한국 대학은 어디에 서 있는가
이제 남는 질문은 분명하다. 세계가 이처럼 고등교육의 작동 원리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면, 한국 대학은 어디에 서 있는가. 한국 역시 대학의 위기를 겪고 있다는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학령인구 감소, 수도권 집중, 지역대학의 위축, 등록금 동결과 재정 압박, 재정지원사업 중심의 운영, 취업률과 충원율 중심의 관리 체계 속에서 위기의 체감은 매우 크다. 그러나 문제는 위기의 존재 자체보다 그 위기를 해석하는 언어에 있을지 모른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대학을 유지할 것인가, 통폐합할 것인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영할 것인가의 질문에 익숙하다. 반면 유네스코가 던지는 질문은 대학이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어떤 학습경로를 제공해야 하는가, 공공성과 유연성을 어떻게 함께 세울 것인가에 더 가깝다. 두 질문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크다.
예를 들어 한국 대학의 상당수는 여전히 청년 신입생 중심 구조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 학사제도와 시간표, 교과 운영과 학생지원의 많은 부분이 전통적 학령기 학생을 전제로 설계돼 있다. 성인학습자와 재직자, 경력 전환자를 위한 유연한 경로는 점차 확대되고 있지만, 아직 대학 전체의 작동 원리를 바꿀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렵다. 마이크로디그리나 비학위과정이 도입되고는 있으나 그것이 정규학위와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사회적으로 널리 인정받는 체계로 정착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이는 한국 대학이 평생학습 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여전히 과도기적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유네스코가 강조하는 유연한 학습경로와 생애 전반의 학습 접근성은 한국 고등교육에 아직 본격적인 과제로 남아 있다.
AI와 디지털 전환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 대학은 비교적 빠르게 기술을 도입하는 편이지만, 기술을 어떤 철학 아래 둘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 AI가 교육 혁신의 도구가 될 것이라는 기대는 높지만, 그것이 실제로 학습의 질과 공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하는지, 대학 간 격차를 더 벌리는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교육을 더 인간적으로 만드는지 아니면 더 관리 중심으로 만드는지에 대한 점검은 부족하다. 기술의 도입 속도는 빨라질 수 있지만, 원칙의 성숙은 자동으로 따라오지 않는다. 유네스코가 인간 중심 AI를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 틈을 경고하는 것이다. 한국 대학이 미래를 준비하려면 최신 기술을 채택하는 데서 멈출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을 둘 윤리적·교육적 기준을 함께 발전시켜야 한다.
공공성과 학문 자유의 문제도 더 무겁게 다뤄질 필요가 있다. 한국 대학은 취업과 산업 수요, 정부 재정사업, 평가지표, 국제경쟁력이라는 언어에 매우 익숙하다. 그러나 대학이 공공적 토론과 비판적 지식 생산, 민주주의의 지적 기반으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대학은 사회와 연결돼야 하지만, 그 연결이 곧바로 시장 적합성의 논리로만 수렴할 경우 대학의 자율성과 비판성은 쉽게 후퇴할 수 있다. 연구는 성과로 계량되고 교육은 효율로 측정되며 대학의 존재 이유는 점점 더 좁아질 수 있다. 유네스코가 형평성, 자유, 협력, 지속가능성, 적합성의 풍부한 이해를 함께 말하는 것은 이런 축소를 경계하기 위해서다. 한국 대학 역시 효율과 경쟁력의 언어만으로는 스스로의 미래를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시점이다.
이처럼 보면 한국 대학의 과제는 단순히 국제 의제를 뒤따라가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국내 현실 속에서 더 절실하게 드러나는 문제를 새로운 좌표계로 다시 읽어내는 데 있다. 학령인구 감소는 재정 위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학생 개념의 재정의 문제다. 지역대학의 위축은 단지 충원율의 문제가 아니라 고등교육의 공공성과 지역 균형의 문제다. AI 도입은 편의성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철학의 문제다. 평생학습은 부수적 프로그램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이 누구를 위한 기관인가의 문제다. 대학 평가 역시 순위와 실적의 문제가 아니라 질과 적합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다. 유네스코가 던진 질문은 바로 이 전환을 요구한다. 한국 대학의 미래는 과거의 언어를 조금 수정하는 데서 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더 큰 전환이 필요하다.

대학의 미래는 대학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대학을 다시 정의하는 일이다
유네스코가 그린 고등교육의 미래는 화려한 혁신의 청사진이라기보다, 대학이 다시 공공의 신뢰를 얻기 위해 감당해야 할 질문들의 목록에 가깝다. 더 많이 선발하는 대학, 더 높은 순위를 차지한 대학, 더 최신 기술을 도입한 대학이 미래의 대학이라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에게 열려 있고, 더 다양한 생애 경로를 받아들이며, 더 인간적인 기술 활용 원칙을 세우고, 더 넓은 사회와 비판적으로 연결되는 대학이 앞으로의 기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유네스코는 고등교육을 해체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반대로 고등교육이 여전히 인간과 사회의 미래를 위해 필수적인 제도라고 본다. 다만 그 필수성을 유지하려면 대학이 자신을 바꾸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결국 대학의 미래가 대학을 지키는 데서 오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엇을 끝까지 지켜야 하고, 무엇을 과감히 바꿔야 하는지를 구분하는 데서 미래가 시작된다. 탐구와 비판, 자유와 공공성, 사회적 가치와 공동선에 대한 약속은 지켜야 한다. 그러나 학위 중심의 경직된 시간표, 선발 중심의 포용 이해, 순위와 실적에 과도하게 기대는 질 개념, 기술을 목적처럼 다루는 습관은 바뀌어야 한다. 유네스코가 제시한 전환의 원칙들은 바로 이 구분을 위해 존재한다. 고등교육은 더 이상 대학 내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사회가 미래를 준비하는가를 보여주는 거울이 됐다.
지금 세계는 대학의 작동 원리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학생 수 확대 이후의 형평성을 묻고, 학위 이후의 학습경로를 상상하며, AI 이후의 인간성을 고민하고, 효율 이후의 공공성을 따지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도 더 이상 옛 질문만 반복할 수는 없다. 대학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어떤 대학이어야 하는가를 먼저 묻고, 그 질문에 맞는 제도와 재정, 평가와 거버넌스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대학의 미래는 이미 도착한 문제가 아니라, 지금 다시 결정해야 할 선택의 문제다. 유네스코가 내놓은 고등교육의 새 지도는 바로 그 선택의 갈림길 앞에서 읽힐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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