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산업으로 편입하다. 중국 저장성, 고등교육의 역할 재설계

저장대학교

AI·인재·기술을 묶는 5개년 전략 속에서 대학은 더 이상 교육기관에만 머물지 않는다. 저장성이 제시한 발전 구상은 고등교육을 산업 고도화와 기술 혁신, 인재 공급을 동시에 떠받치는 핵심 장치로 재배치하고 있다.

중국 저장성이 발표한 2026년부터 2030년까지를 대상으로 제시한 제15차 5개년 발전 구상에서 고등교육은 복지나 공공서비스의 일부가 아니라, 혁신 체계의 전반적 효율을 높이는 전략 속에서 교육, 과학기술, 인재를 하나의 축으로 묶고, 그 중심에 대학을 둔다. 특히 고등교육의 “전반적 도약”을 추진하겠다는 방향 아래 저장대학의 세계 일류 도약, 서호대학과 닝보 동방이공대 같은 신형 연구중심 대학 육성, 전당대학 설립 추진, 산업 수요에 맞춘 학문과 인재 체계 재편이 함께 배치돼 있다.

이번 계획은 단순 대학 확충 정책과는 다르다. 저장성은 대학을 산업 전환의 후방 지원 조직이 아니라, 산업 구조 재편을 직접 견인하는 전략 자산으로 다루고 있다. 영국문화원 브리티시 카운슬도 이번 발표를 두고 저장성이 고등교육에 보다 직접적인 경제적·전략적 기능을 부여하고 있다고 보았다. 대학은 산업 고도화와 연구 역량 강화, 인재 개발을 지원하는 역할로 명확히 호출되고 있으며, 학문 구조 역시 국가 전략과 기술 변화, 산업 수요에 더욱 긴밀하게 연동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지식기관에서 산업 엔진으로

저장성 계획의 가장 큰 특징은 대학의 존재 이유를 재정의하고 있다는 데 있다. 대학은 더 이상 지식을 축적하고 전달하는 공간만이 아니다. 계획은 교육강성, 과학기술강성, 인재강성을 일체로 추진하는 조정 메커니즘을 언급하면서, 학과 조정과 인재 양성 방식 역시 국가 전략 수요와 과학기술 발전, 산업 발전 수요에 맞게 바꾸겠다고 적시한다. 전문학위 대학원 양성 방식의 혁신, 산학융합 기지와 엔지니어 협동 혁신센터 조성, 연구생 공동 양성 기반 구축은 모두 그 연장선에 있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대학의 산업 편입이다. 물론 산학협력은 이미 낯선 개념이 아니다. 그러나 저장성의 구상은 협력 수준을 넘어선다. 기업과 대학이 함께 인재를 유치하고, 연구기관과 대학, 기업 간 인력의 순환과 공유를 넓히며, 기업이 기술혁신의 의사결정과 연구조직, 성과 전환 과정에 더 깊이 관여하는 구조를 제도화하려 한다. 대학은 산업 외부의 파트너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 내부의 핵심 구성 요소로 이동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중국이 최근 강조해온 ‘신질생산력’ 개념과도 맞물린다. 저장성 관련 분석 자료는 신질생산력을 데이터와 첨단 기술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생산 체계로 설명하면서, 대학이 지식 전수 기관을 넘어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떠받치는 원천 기술의 공급처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대학이 취업 준비나 연구 성과를 도출하는데 머물지 않고 새로운 성장 모델을 만들어내는 기반시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택과 집중으로 다시 짜는 대학 지도

저장성의 고등교육 구상은 모든 대학을 비슷하게 키우는 방식과도 거리가 있다. 오히려 기능별 분화를 전제로 한 선택과 집중이다. 먼저 저장대학은 세계 일류 대학 전열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는 핵심 축으로 설정된다. 여기에 서호대학, 닝보 동방이공대 같은 신형 연구중심 대학을 육성하고, 전당대학 같은 신규 대학 설립도 추진한다. 동시에 “고수준 응용형 대학”을 건설한다는 문구가 함께 들어가 있다. 연구중심, 산업밀착형, 응용형 대학이 서로 다른 역할을 맡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닝보 동방이공대 사례다. 이 대학은 집적회로, AI, 지능형 제조 등 닝보 지역 산업과 밀착된 학과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연구 성과가 실험실에서 생산라인으로 빠르게 이어지는 모델을 지향한다. 저장성이 그리고 있는 미래 대학의 한 전형이 응축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저장대학이 기초연구와 세계 수준 연구 경쟁력을 상징한다면, 동방이공대와 같은 기관은 산업 문제 해결과 기술 상용화의 전초기지 역할을 맡는다. 민간 자본의 대학 진입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전당대학 추진은 지역 산업 체인과 대학 설립이 직접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대학 설립이 더 이상 국가와 공공 부문만의 고유 영역이 아니라, 산업 전략과 지역 혁신 체계의 일부로 재구성되고 있다는 뜻이다. 대학의 정체성은 공공성만으로 설명되기 어려워지고, 성과와 기능, 그리고 산업적 연결 가능성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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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AI가 교육을 다시 설계하다

저장성 구상에서 또 하나 중요한 축은 인공지능이다. 계획은 인공지능을 혁신 패러다임을 이끄는 핵심 변수로 두고, 연산 능력과 데이터, 모델, 응용, 생태계를 아우르는 인공지능 혁신 발전 고지를 만들겠다고 밝힌다. 대학 역시 이 흐름에서 비켜서 있지 않다. 대학 내 인공지능 학과 설치를 장려하고, 인공지능 일반교육 과정을 강화하며, 산업과 연계된 실전형 훈련 모델을 구축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 대목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AI는 이제 특정 학과의 전문 영역이 아니라 대학 교육 전체를 재구성하는 기준이 된다. 전공에 AI를 덧붙이는 ‘X+AI’ 구조, AI 튜터와 자동 채점 및 피드백 시스템 도입, 스마트 교육 인프라 구축 등은 교육 보조수단 수준을 넘어선다. 이는 교육의 디지털화가 아니라 교육 시스템의 알고리즘화에 가깝다. 저장성 계획이 인공지능을 산업, 소비, 민생, 거버넌스 전반에 적용하는 ‘인공지능+’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학은 이 거대한 전환에서 AI 인재를 공급하고, 응용 기술을 실험하며, 사회 전반의 전환 비용을 줄이는 역할을 맡는다. 다시 말해 AI 시대의 대학은 기술 변화를 해설하는 기관이 아니라, 그 변화를 실행 가능한 제도로 바꾸는 조직이 되고 있다.

이처럼 대학을 급격히 다시 설계하는 배경에는 인재 수급 압박이 있다. 2025~2026년 중국 노동시장에서 AI 관련 인재 수요가 폭증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수백만 명 규모의 AI 인재 부족이 예상된다고 한다. 지능형 제조 분야에서도 대규모 인력 공백이 전망된다. 저장성처럼 첨단 제조와 디지털 경제, AI 산업을 성장축으로 삼는 지역에서는 대학이 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경우 전체 산업 전략이 흔들릴 수 있다. 따라서 저장성의 고등교육 개편은 교육 개선만을 목표로 한 정책으로 보기 어렵다. 그것은 인재 확보 전략이며, 노동시장 병목을 해소하기 위한 공급 체계 개편이다. 교실 안의 교육개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산업의 생존 전략이다. 대학의 전공 개편, 전문학위 확대, 기업 연계형 연구, 응용 중심 훈련은 모두 취업률 제고 차원의 조치가 아니라 첨단 산업의 인력 부족을 메우기 위한 구조 개편이다.

브리티시 카운슬이 저장성 사례를 두고 해외 대학들에 던진 메시지도 이 점을 잘 보여준다. 향후 저장성과의 협력 기회는 단순 교류보다 응용연구, 고급 인재 양성, AI 관련 협력 분야에 더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저장성이 대학에 부여하는 기능이 바뀌면 국제협력의 내용도 바뀐다. 교환학생과 공동학위 중심의 협력보다 연구 상용화와 전략 기술 협력이 주된 내용이 된다는 것이다.

대학의 공공성과 효율 사이의 긴장

문제는 이 모델이 강력한 만큼 긴장도 크다는 점이다. 저장성의 구상은 효율적이다. 지역 산업과 대학을 한 방향으로 정렬시키고, 연구와 인재 양성을 산업 수요에 맞추며, AI와 첨단 기술을 대학 운영과 교육과정 깊숙이 끌어들인다. 그러나 대학이 산업 전략의 일부가 될수록 대학 본연의 자율성과 공공성은 상대적으로 압박받을 수밖에 없다.

첫째는 교육 시스템 내부의 저항과 적응 문제다. 기술과 산업의 급속한 재구조화에 기존 교수진과 행정 체계가 얼마나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둘째는 AI 윤리와 보안 문제다. 교육 전반에 AI가 도입될수록 부정행위, 학술윤리, 개인정보 보호와 같은 문제가 더 날카롭게 떠오른다. 셋째는 자원 편중이다. 저장대학, 서호대학, 동방이공대 같은 핵심 기관에 재정과 관심이 집중될수록 기초교육이나 인문사회 분야,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역의 교육기반은 더 취약해질 가능성이 있다. 이 지점은 저장성이 내세우는 ‘공동부유’ 목표와도 충돌할 수 있다. 첨단 산업과 AI 중심 대학이 빠르게 성장하는 동안, 지역과 계층에 따른 교육 접근성 격차가 벌어진다면 성장 전략은 오히려 새로운 불균형을 낳을 수 있다. 대학을 산업 전략에 편입하는 일은 성과를 빨리 낼 수 있지만, 그만큼 대학이 감당해온 사회적 완충 기능을 약화시킬 위험도 함께 안고 있다.

저장성의 사례는 지방정부의 특수한 실험으로만 볼 수 없다. 이 구상은 중국이 대학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리고 첨단 기술과 제조 경쟁 시대에 고등교육을 어떤 방식으로 재구성하려 하는지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대학은 더 이상 국가 발전의 주변 장치가 아니다. 산업정책, 기술정책, 인재정책, 지역정책이 만나는 결절점에 놓여 있다.

한국 대학에도 적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대학은 어디까지 산업 수요에 맞춰 재편돼야 하는가. 첨단산업 인재 양성과 기초학문의 지속 가능성은 어떤 방식으로 함께 설계할 수 있는가. AI를 교육 시스템에 깊이 도입하는 과정에서 공공성과 자율성, 그리고 인간적 판단의 자리는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지역 혁신을 위해 대학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과, 대학을 지나치게 경제 논리에 종속시켜서는 안 된다는 우려는 앞으로 더 자주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저장성이 보여주는 방향은 분명하다. 대학은 교육기관으로 남아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술과 산업, 인재를 묶는 전략의 중심으로 이동하라는 요구가 이미 시작됐다. 다만 그 이동이 곧바로 대학의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대학이 무엇을 잃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끝까지 묻는 일이다. 산업을 위해 대학을 바꾸는 일은 가능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대학이 대학다움을 잃는다면, 그 효율은 오래가지 못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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