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결에서 행정명령으로, 그리고 ‘갈취’라 불린 협약까지 — 미국 고등교육의 공공성이 무너지는 과정

2023년 여름, 미국 대법원은 Students for Fair Admissions v. Harvard 사건에서 “대학 입시에서 인종을 고려하는 행위는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그로부터 2년 뒤, 트럼프 행정부는 “Compact for Academic Excellence in Higher Education” 이라는 문서를 내놓았다. 법과 행정, 두 문서의 목적은 같았다. 대학을 다시 국가의 질서 속으로 되돌리는 것. 대법원은 ‘평등’을 내세워 다양성을 지웠고, 행정부는 ‘우수성’을 명분으로 자율성을 통제했다. 그 사이에서 대학은 자유의 언어로 포장된 복종의 체계 속으로 들어갔다. 지금 미국의 고등교육이 맞이한 변화는 단순한 정책 조정이 아니라,지식과 권력의 관계가 뒤집히는 정치적 사건이다.

대법원의 하버드 판결은 “기회의 평등”을 헌법적 기준으로 확정했다. 그 논리는 단순했다. 인종을 고려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차별이라는 것이다. 이 결정으로, 반세기 동안 유지되어 온 소수자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은 폐기되었다. 그 대신 등장한 것은 ‘색맹(colorblind) 헌법주의’였다. 법은 더 이상 불평등의 원인을 보정하려 하지 않고, 모든 개인에게 동일한 규칙을 강요했다. 이 판결은 ‘형식적 평등(formal equality)’을 헌법적 절대가치로 만들었지만, 그 안에서 역사적 불평등의 맥락은 사라졌다. 그 결과, 법은 사회의 현실을 가리기 위한 언어가 되었고, 불평등은 개인의 책임으로 귀속되었다. 이것이 바로 트럼프 행정부가 말하는 ‘공정’의 기초였다.

행정의 확장 – Compact라는 이름의 충성서약

대법원이 법으로 닫은 문을, 행정부는 정책으로 잠갔다. 2025년 트럼프 행정부는 Compact for Academic Excellence를 통해 대학에 새로운 계약을 제시했다. 이 협약은 겉으로는 “연방자금을 받는 대학의 책무성 강화”를 목표로 했지만, 실제 내용은 대학의 자율을 정치적 충성으로 대체하는 구조였다. 입시에서 인종을 고려하지 말 것,
정치적 발언을 자제할 것, 학비를 동결할 것, 외국인 학생을 제한할 것. 이 조항들은 단순한 행정명령이 아니라, 정치적 가치질서의 제도화였다. 이 협약을 지키지 않으면 연방자금이 끊긴다. 따라서 서명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작은 정부의 개혁’이라 불렀지만, 그 본질은 대학의 재정 의존을 이용한 복종의 강제였다.

Compact의 핵심 개념은 ‘Institutional Neutrality’, 즉 기관의 중립성이다. 대학은 사회적·정치적 사안에 대해 어떠한 공식 입장도 내지 않아야 한다. 이 원칙은 표면적으로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정치적 발언의 금지령이었다. 트럼프 진영은 이를 ‘사상의 다양성’이라 불렀다. 그러나 그 다양성은 이념의 균형을 위해 국가가 개입해야 하는 구조였다. 즉, 대학의 사상적 자율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정권의 정치적 균형감각을 학문공동체에 이식하는 것이다. 결국 ‘자유의 시장’은 국가가 설계한 시장이 되었고, ‘사상의 균형’은 검열의 기준이 되었다. 이것이 협약이 말하는 중립의 실체였다.

학계의 반발 – “이건 협약이 아니라 갈취다”

이 협약이 공개된 직후, 미국 학계는 이례적으로 강경한 언어로 반발했다.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로스쿨 학장 어윈 체머린스키(Erwin Chemerinsky)는 이 문서를 “명백한 갈취(extortion)”라고 규정했다. 그는 “정부가 재정지원을 미끼로 대학의 정치적 침묵을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 중앙유럽대(CEU) 총장이자 정치철학자인 마이클 이그나티예프(Michael Ignatieff)는 이 협약을 “오르반식 문화전쟁(Kulturkampf)의 미국판”이라고 지적했다. 헝가리 정부가 비판적 대학을 탄압하며 민주주의의 기반을 무너뜨린 것처럼, 트럼프 행정부 역시 ‘정치적 복종’을 고등교육의 조건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브란다이스대 전 총장 프레더릭 로런스(Frederick Lawrence)는 “이 협약은 대학의 학문적 판단을 행정의 정치적 결정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라며 “대학의 정체성 자체를 뒤흔드는 위험한 선례”라고 경고했다. 미국대학교수협회(AAUP), 미국대학협의회(AAC&U), 학문자유단체(FIRE) 등 주요 단체들 역시 공동성명을 통해 “이 협약은 학문 자유의 근본 원리를 침해하며, 행정부가 대학의 비판 기능을 제도적으로 제거하려 한다”고 밝혔다.

학계가 이 협약을 ‘갈취’라 부르는 이유는 명확하다. 협약은 자율적 합의가 아니라, 재정적 의존 관계를 이용한 강요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부분 대학은 연방학자금대출 제도와 연구보조금에 크게 의존한다. 따라서 정부가 “이 기준을 따르지 않으면 자금을 끊겠다”고 하면, 대학은 실질적으로 거부할 수 없다. 이는 자유계약의 형식을 띤 강압이다. 대학의 재정 자율이 정부 통제의 레버로 변한 셈이다. 이 구조에서 협약은 계약이 아니라 명령, ‘동의’가 아니라 복종의 절차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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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사상의 자유와 국가의 통제

트럼프 행정부는 이 협약을 통해 “보수적 견해를 억압하지 않는 대학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가가 사상적 균형을 설계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국가가 사상의 균형을 설계한다는 것은 곧, 무엇이 균형이고 무엇이 편향인지를 국가가 판단한다는 뜻이다. 이 순간 대학의 학문적 자율은 사라지고, 지식은 정치적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 대상이 된다. 대학의 자유는 더 이상 헌법적 권리가 아니라, 정권의 관용에 달린 정치적 허가증이 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자신들의 개혁을 “작은 정부의 실현”이라 홍보한다. 행정조직을 축소하고, 시장의 효율을 강조하며,정부의 재정 부담을 줄이는 것이 그 명분이다.

그러나 Compact 체제의 실상은 정반대다. 정부는 재정 부담을 시장에 넘기는 대신, 이념적 통제와 행정감시를 강화했다. 즉, 돈은 민간으로 흘러가지만, 권력은 중앙으로 집중된다. 이것은 작은 정부가 아니라 이념 통제형 거대 정부, ‘시장과 국가가 결합한 통제 구조’다. 정책의 효율성은 정치적 복종의 또 다른 언어가 되었다.

민주주의의 후퇴 – 대학이 침묵할 때 생기는 일

대학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공간이다. 비판과 토론, 불만과 실험이 가능한 마지막 제도적 장치다. 그러나 Compact는 대학의 이런 기능을 제도적으로 봉쇄한다. “정치적 중립”은 곧 “사회적 침묵”으로, “사상의 균형”은 “비판의 억제”로 바뀐다. 대학이 정치적 위험을 피하기 위해 말을 아끼는 순간, 사회는 권력에 대한 비판 능력을 잃는다. 결국 민주주의의 후퇴는 언론이나 의회가 아닌, 대학의 침묵에서 시작된다.

대법원의 판결은 법의 이름으로 평등을 재정의했고, 행정부의 협약은 정책의 이름으로 자유를 통제했다. 그 결과, 대학은 두 가지 압박 속에 놓였다. 하나는 법이 강요하는 형식적 평등, 다른 하나는 행정이 요구하는 이념적 충성이다. 이 두 구조가 결합될 때, 대학은 더 이상 사회의 비판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질서를 반영하는 거울이 된다. 자유는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거부’되어야만 유지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은 자유를 법의 언어로 포획하고, 충성을 행정의 절차로 제도화했다. 그 체계 속에서 대학이 살아남는 길은 단 하나, 복종하지 않는 자유를 지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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