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대학재정지원사업 30년 ] ⑦ 자율의 이름으로 남은 통제

대학혁신지원사업은 특수목적사업의 파편화를 줄이고 일반재정지원의 가능성을 열었지만, 대학은 여전히 평가와 성과관리의 조건 안에서 움직였다

대학에 자율을 돌려주겠다는 선언

2018년 3월, 교육부는 대학 재정지원사업 개편계획을 발표했다. 핵심은 단순했다. 복잡하게 나뉘어 있던 특수목적 재정지원사업을 정비하고, 대학이 스스로 혁신 방향을 정할 수 있도록 일반재정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고등교육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으로 설명했다. 대학을 정부 사업의 세부 목표에 맞춰 움직이게 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대학이 자신의 여건과 비전에 따라 교육 혁신을 추진하도록 지원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이 방향은 당시 대학사회가 겪고 있던 피로감과 맞닿아 있었다. 박근혜 정부 시기 대학들은 CK, ACE, LINC, PRIME, CORE 등 여러 재정지원사업에 동시에 대응해야 했다. 사업마다 목표와 지표가 달랐고, 지원 기간도 제한적이었다. 대학은 교육과 연구보다 사업계획서 작성, 성과보고, 평가 대응에 많은 행정력을 투입해야 했다. 어느 사업에 선정되느냐에 따라 대학의 재정 운용과 학사 구조가 흔들렸다.

대학혁신지원사업은 이러한 파편성을 줄이겠다는 약속이었다. 대학이 여러 사업에 쪼개어 대응하는 대신, 포괄적인 일반재정지원을 바탕으로 중장기 발전계획에 따라 자율적으로 재정을 활용하게 하겠다는 방향이었다. 적어도 선언만 놓고 보면, 이는 30년간 이어져온 평가·공모 중심 재정지원정책을 완화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질문은 곧바로 따라온다. 대학혁신지원사업은 정말 대학에 자율을 돌려주었는가. 아니면 평가의 방식과 사업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대학은 여전히 정부가 정한 기준과 성과관리 체계 안에서 움직였는가.

대학교육역량강화사업에서 대학혁신지원사업으로

대학혁신지원사업의 출발점을 이해하려면 이명박 정부 시기의 대학교육역량강화사업을 함께 봐야 한다. 이 사업은 비교적 일반재정지원에 가까운 성격을 지녔다. 재학생 수와 일정 지표를 기준으로 대학을 선정하고, 선정된 대학에는 사용처를 상대적으로 넓게 인정하는 방식이었다. 특수목적사업처럼 특정 분야나 특정 프로그램에만 돈을 쓰도록 강하게 제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학 운영비 보전의 성격도 있었다. 그러나 이 흐름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대학특성화사업이 확대되면서 대학교육역량강화사업의 기능은 약화되었다. 대학재정지원정책은 다시 특수목적사업 중심으로 재편됐다. 대학들은 정부가 제시한 사업 목표에 맞춰 학과 구조를 바꾸고, 산학협력 실적을 만들고, 취업률과 충원율을 관리해야 했다.

이 시기의 문제는 분명했다. 사업은 많아졌지만 대학의 자율성은 좁아졌다. 특성화를 말했지만 평가지표는 비슷했고, 사업별 목표가 다르다 해도 대학 현장에서는 유사한 보고와 평가 대응이 반복됐다. 대학은 장기 전략을 세우기보다 다음 사업 공모와 중간평가에 맞춰 움직였다. 대학혁신지원사업은 바로 이 상황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했다. 정부는 사업 수를 줄이고, 대학의 중장기 발전계획과 연계한 자율 혁신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특수목적사업의 과도한 분절을 줄이고, 대학이 필요한 곳에 재정을 쓸 수 있게 하겠다는 방향은 대학사회에 일정한 기대를 주었다.

일반재정지원은 대학재정지원정책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특정 사업 목적에 묶인 돈이 아니라, 대학이 자신의 발전계획에 따라 비교적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재정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대학의 교육 여건을 개선하고, 학생 지원을 강화하며, 학사제도를 바꾸고,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폭넓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대학에 일반재정지원이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대학은 등록금 동결과 학령인구 감소로 자체 수입이 줄어들고 있다. 특히 사립대학은 등록금 의존도가 높은 구조였기 때문에, 등록금 수입 감소는 곧 대학 운영 전반의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 상황에서 특정 목적에만 쓸 수 있는 사업비보다, 대학이 실제 필요에 맞춰 사용할 수 있는 안정적 재정이 절실했다.

대학혁신지원사업은 이러한 필요를 일정 부분 반영했다. 대학은 교육과정 개편, 교수학습 지원, 학생 상담, 교육 인프라, 학사제도 혁신 등 다양한 영역에 사업비를 사용할 수 있었다. 사업의 성격상 기존 특수목적사업보다 대학의 선택 폭은 넓어졌다. 이는 분명한 변화였다. 그러나 일반재정지원이 진정한 자율로 작동하려면 두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지원의 안정성이고, 다른 하나는 평가의 최소화다. 대학이 장기 계획을 세우려면 지원 규모와 기간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재정 사용의 결과를 확인하되, 지나치게 세부 지표로 통제하지 않아야 한다. 대학혁신지원사업은 이 두 조건을 충분히 충족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복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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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자율은 넓어졌지만 문지기는 남았다

대학혁신지원사업은 자율을 강조했지만, 모든 대학에 무조건 지원된 것은 아니었다. 기본역량진단이라는 평가가 여전히 문지기 역할을 했다. 진단을 통과한 대학은 자율협약형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일정 기준에 미달한 대학은 역량강화형으로 분류되어 조건부 지원을 받았다. 진단 결과에 따라 대학의 재정지원 여부와 성격이 달라지는 구조였다. 이 방식은 기존의 평가 중심 구조를 완전히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 대학은 여전히 기본역량진단을 통과해야 했고, 그 결과는 대학의 평판과 재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자율은 진단을 통과한 뒤에 주어졌다. 다시 말해 대학혁신지원사업의 자율은 무조건적 자율이 아니라 평가를 통과한 대학에게 부여되는 조건부 자율이었다.

이 구조는 대학의 행동을 계속 평가 대응 중심으로 만들었다. 대학은 혁신계획을 세우면서도 진단 지표를 의식해야 했다. 충원율, 전임교원 확보, 교육비, 법인 책무성, 교육과정 운영, 학생 지원, 중장기 발전계획 등 여러 항목이 대학 운영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대학은 자율적으로 혁신한다고 말했지만, 그 자율은 평가 기준의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졌다. 문지기가 남아 있는 한 대학은 문지기를 의식한다. 대학혁신지원사업은 공모사업의 파편성을 줄였지만, 평가를 통한 선별이라는 기본 문법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대학혁신지원사업은 대학이 자율적으로 재정을 활용하도록 했지만, 성과관리는 여전히 강하게 작동했다. 대학은 사업 목표를 설정하고, 성과지표를 제출하고, 연차별 실적을 보고해야 했다. 정부는 대학의 재정 사용이 적절했는지, 교육 혁신 성과가 나타났는지를 확인했다. 공적 재정이 투입되는 사업에서 성과관리는 필요하다. 문제는 성과관리의 방식이다. 대학의 교육 혁신은 단기간에 측정되기 어렵다. 교육과정 개편이 학생의 사고력과 진로 역량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상담과 비교과 프로그램이 학생의 대학생활 지속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교수학습 지원이 강의의 질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는 긴 시간과 복합적 분석이 필요하다.

하지만 재정지원사업은 대체로 연차별 실적과 정량지표를 요구한다. 몇 개 교육과정이 개편되었는지, 몇 명의 학생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는지, 만족도가 몇 점인지, 어떤 시스템을 구축했는지가 성과로 제시된다. 대학은 다시 측정 가능한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사업의 이름은 혁신이지만, 실제 운영은 성과보고의 형식을 따라간다. 이때 통제는 직접 명령의 형태가 아니라 관리의 형태로 나타난다. 정부가 어떤 수업을 하라고 지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성과지표와 평가 항목을 통해 대학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지를 정한다. 대학은 그 안에서 자율적으로 움직인다. 자율과 통제가 결합되는 방식이다.

교육 혁신인가, 인프라 보강인가

대학혁신지원사업의 중요한 쟁점 가운데 하나는 사업비가 어디에 쓰였는가이다. 대학들은 교육 혁신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교육 인프라 구축에 상당한 재정을 투입했다. 강의실 개선, 온라인 교육 시스템 구축, 학생지원 공간 조성, 장비와 시설 확충 등이 주요 사용처가 되었다. 이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많은 대학은 노후한 교육시설과 부족한 학습 인프라를 갖고 있었다. 학생 상담, 교수학습, 디지털 교육, 비교과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서는 공간과 시스템이 필요하다. 특히 등록금 동결로 시설 투자가 지연된 대학에서는 대학혁신지원사업비가 교육환경 개선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인프라 보강이 곧 교육 혁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강의실이 좋아졌다고 수업 방식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 플랫폼이 생겼다고 학생의 학습 경험이 깊어지는 것도 아니다. 상담 공간을 만들었다고 학생 지원이 충분해지는 것도 아니다. 인프라는 혁신의 조건일 수 있지만, 혁신 그 자체는 아니다. 대학혁신지원사업이 진정한 교육 혁신으로 이어지려면, 시설과 시스템을 넘어 교육과정의 철학, 교수학습 방식, 학생 평가, 전공 간 연계, 학습 부진 학생 지원, 지역사회와의 연결까지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단기간에 지표로 보여주기 어렵다. 그래서 대학은 비교적 보고하기 쉬운 인프라 구축에 재정을 투입하게 된다. 이것은 대학의 탓이라기보다 사업 구조가 유도한 결과에 가깝다.

대학혁신지원사업은 사립대학 재정 구조 변화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등록금 동결이 장기화되면서 사립대학의 등록금 수입 비중은 줄어들었고, 국고보조금 의존도는 높아졌다. 국가장학금이 학생 부담을 낮추는 역할을 했다면, 대학혁신지원사업은 대학 기관이 직접 활용할 수 있는 재정지원의 중요한 축이 되었다. 이 변화는 양면적이다. 한편으로는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 책임이 확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가 대학 운영과 교육 혁신을 지원하는 재정을 늘린 것은 긍정적이다. 특히 재정 여건이 취약한 대학에게 대학혁신지원사업은 교육 여건을 유지하고 개선하는 데 중요한 재원이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대학의 정부 의존이 심화되었다. 등록금 수입은 줄고, 정부 재정지원사업의 비중이 커질수록 대학은 정부 정책 방향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어떤 지표를 요구하는지, 어떤 사업을 확대하는지, 어떤 대학을 지원 대상으로 삼는지가 대학 운영에 직접적 영향을 준다.

이 구조에서 대학혁신지원사업은 자율을 확대하는 사업이면서 동시에 의존을 심화시키는 사업이었다. 대학은 사업비를 통해 자율적 혁신을 추진할 수 있었지만, 그 재원 자체가 정부 사업에 의존했기 때문에 정책 방향 변화에 취약했다. 자율을 위한 돈이 또 다른 종속의 통로가 될 수 있는 역설이다.

수직적 공평성의 가능성과 한계

대학혁신지원사업은 기존 특수목적사업보다 공평성 측면에서 개선 가능성을 보였다. 연구중심대학이나 대형 대학에 집중되기 쉬운 사업과 달리, 일반재정지원은 보다 넓은 대학에 재정을 배분할 수 있다. 특히 소규모 대학이나 재정 여건이 취약한 대학에 상대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점은 중요하다. 30년간 대학재정지원사업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이미 강한 대학이 더 많은 지원을 받는 부익부 빈익빈 구조였다. 일반재정지원이 확대되면 최소한의 교육 여건을 보장하고, 취약 대학이 교육 개선을 위한 기본 재원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대학혁신지원사업만으로 전체 불평등 구조가 해소되지는 않았다. BK21, LINC, 각종 연구개발사업, 국립대 운영지원, 타 부처 연구비 등 전체 고등교육 재정지원 체계를 보면 수도권, 대형, 연구중심, 이공의학계열 대학에 유리한 구조가 여전히 강하게 작동한다. 대학혁신지원사업이 일부 공평성을 높였더라도, 전체 재정지원 생태계에서는 선택과 집중의 논리가 계속 유지되었다. 또한 기본역량진단을 통과하지 못한 대학은 여전히 낙인과 재정 불안을 겪었다. 취약한 대학을 돕기 위한 지원과 부실 대학을 선별하기 위한 평가가 같은 틀 안에 놓일 때, 정책은 복잡한 메시지를 보낸다. 지원인지 퇴출인지, 회복인지 선별인지가 불분명해진다.

대학혁신지원사업 이후 대학 현장에는 ‘자율혁신’이라는 말이 널리 퍼졌다. 대학은 중장기 발전계획을 세우고, 자체 혁신전략을 만들고, 교육 혁신 모델을 제시했다. 정부가 세부 사업을 지정하기보다 대학이 스스로 혁신 방향을 설계한다는 점에서 이전보다 언어는 분명 달라졌다. 그러나 자율혁신의 언어는 빠르게 표준화되었다. 많은 대학의 사업계획서에는 미래역량, 융합교육, 학생성공, 데이터 기반 교육, 지역사회 연계, 공유·협력, 디지털 전환 같은 표현이 반복됐다. 대학마다 다른 전략을 말했지만, 실제 언어는 서로 닮아갔다. 정부 정책 문서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키워드가 대학의 계획서 언어로 확산된 것이다.

이것은 30년간 반복된 동형화의 또 다른 형태다. 과거에는 취업률과 충원율, 산학협력 지표가 대학을 닮게 만들었다면, 이제는 자율혁신과 학생성공, 지역혁신의 언어가 대학을 닮게 만들었다. 대학은 자율적으로 말하지만, 그 자율의 언어는 정부 정책의 어휘를 따라간다. 물론 정책 언어가 공유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대학들이 공통의 시대 과제에 대응한다면 유사한 표현이 나올 수 있다. 문제는 그 언어가 대학의 실제 차이를 충분히 드러내지 못할 때다. 지역, 규모, 설립 유형, 학생 구성, 학문 분야가 다른 대학들이 모두 비슷한 혁신 언어를 사용한다면, 자율은 다시 형식이 될 수 있다.

RISE로 이어진 지역혁신의 방향

대학혁신지원사업 이후 고등교육 재정지원정책은 RISE로 이어졌다. RISE는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로, 중앙정부가 주도하던 대학재정지원의 일부 권한을 지역으로 이양하고, 지자체와 대학이 함께 지역 발전 전략을 설계하도록 하는 방향을 담고 있다. 이 흐름은 대학혁신지원사업의 연장선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전환이다. 대학의 자율을 넘어 지역의 자율을 강조한다. 중앙정부가 모든 대학을 같은 기준으로 관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이 자신에게 필요한 대학 역할을 정하고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지방대학 위기가 지역 소멸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역 중심 접근은 필요하다. 그러나 RISE에도 위험은 있다. 중앙정부의 평가와 공모가 지역 단위의 평가와 공모로 옮겨가는 데 그친다면, 대학의 부담은 줄지 않을 수 있다. 지자체의 행정 역량과 산업 기반이 지역마다 다른 상황에서, 대학지원 권한의 지역 이양은 새로운 지역 격차를 만들 수도 있다. 강한 지역은 더 강한 대학지원 체계를 만들고, 취약한 지역은 대학과 함께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RISE가 진정한 전환이 되려면, 지역 자율과 함께 국가의 책임이 유지되어야 한다. 지방대학과 지역이 스스로 혁신하라고만 요구해서는 안 된다. 지역 간 격차를 보정하는 국가 재정, 대학의 기본 교육 여건을 보장하는 안정적 지원, 지역 산업과 공공서비스를 함께 설계하는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

대학혁신지원사업을 부정적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이 사업은 분명 이전의 파편화된 특수목적사업 체계에 비해 몇 가지 진전을 만들었다. 대학이 여러 사업에 나뉘어 대응해야 하는 부담을 줄였고, 교육 혁신을 대학의 중심 의제로 끌어올렸다. 대학마다 중장기 발전계획과 교육 혁신 전략을 정비하는 계기도 되었다. 일반재정지원의 가능성을 확대한 점도 중요하다. 한국 고등교육 재정지원정책은 오랫동안 경쟁형 특수목적사업 중심이었다. 대학혁신지원사업은 대학에 비교적 넓은 사용 자율성을 부여함으로써, 대학 운영과 교육 개선에 필요한 포괄적 지원의 필요성을 보여주었다. 이후 고등교육 재정지원 논의에서 일반재정지원 확대는 중요한 방향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대학혁신지원사업은 학생 지원과 교육의 질 문제를 전면에 놓았다. 연구성과나 산업협력뿐 아니라 학부교육, 교수학습, 학생 상담, 비교과, 교육과정 혁신, 학습자 지원 등이 정책의 중요한 영역으로 부각됐다. 이는 대학을 단순히 연구성과나 취업률로만 보는 관점에서 한 걸음 벗어난 변화였다. 따라서 대학혁신지원사업은 30년 대학재정지원사업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문제는 그 전환이 충분히 깊었는가이다.

대학혁신지원사업은 이름처럼 대학을 혁신하기 위한 사업이었다. 그러나 대학을 혁신한다는 말은 쉽게 쓰이지만 어렵게 실현된다. 대학 혁신은 단순히 프로그램을 늘리고 시설을 개선하는 일이 아니다. 학생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어떤 전공 구조를 만들 것인지, 지역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 교수의 역할과 평가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대학 의사결정에 학생과 구성원을 어떻게 참여시킬 것인지까지 포함하는 문제다.

이런 변화는 재정지원사업 하나로 완성되지 않는다. 특히 사업 기간과 평가 주기가 짧으면 대학은 깊은 변화보다 보고 가능한 성과를 우선하게 된다. 대학혁신지원사업이 자율을 넓혔음에도, 성과관리와 평가의 압박이 여전히 컸던 이유다. 또한 이 사업은 대학 재정의 안정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 등록금 동결, 학령인구 감소, 사립대학 재정 취약성, 지방대학 위기라는 구조적 문제는 계속 남아 있었다. 대학혁신지원사업은 그 충격을 일부 완화했지만, 안정적 고등교육 재정체계를 대체할 수는 없었다. 결국 대학혁신지원사업은 미완의 전환이었다. 특수목적사업의 파편화를 줄이고 일반재정지원의 방향을 열었지만, 평가를 통한 선별과 성과관리의 구조는 남았다. 자율의 언어는 확산됐지만, 대학은 여전히 정부 재정지원의 조건 안에서 움직였다.

자율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다

대학의 자율성은 단순히 사용처를 넓혀주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자율은 정부와 대학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의 문제다. 정부가 대학을 신뢰하고, 대학이 공적 책임을 다하며, 그 결과를 사회에 투명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자율과 책무는 함께 가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 대학재정지원정책은 대학을 충분히 신뢰하지 못했고, 대학 역시 공공적 책무를 충분히 제도화하지 못했다. 정부는 평가와 지표로 대학을 관리했고, 대학은 그 지표에 맞춰 대응했다. 이 관계에서는 자율이 쉽게 형식화된다. 사업비 사용 범위가 넓어져도, 평가와 성과관리의 언어가 대학을 지배하면 자율은 제한된다.

대학혁신지원사업 이후의 과제는 분명하다. 일반재정지원을 확대하되, 그것이 단순한 보조금이 아니라 공공적 책무와 결합되도록 해야 한다. 대학의 규모와 지역, 설립 유형, 교육 목적에 맞는 다양한 성과 기준을 설계해야 한다. 단기 지표보다 장기적 교육 성과와 학생 성장, 지역 기여를 볼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대학이 정부 정책 어휘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언어로 미래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혁신지원사업은 자율을 말했지만, 대학정책의 다른 한편에서는 구조조정과 퇴출의 압력이 계속 작동했다. 학령인구 감소는 대학의 생존 문제를 더 날카롭게 만들었고, 평가에서 하위권으로 분류된 대학은 재정지원 제한과 학생 모집의 어려움 속에서 폐교 위험에 노출되었다. 자율과 혁신의 언어 뒤에는 언제나 선별과 퇴출의 그림자가 있었다. 어떤 대학은 혁신지원사업을 통해 교육환경을 개선했지만, 어떤 대학은 기본역량진단과 재정지원 제한 속에서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했다. 고등교육 체제 전체를 어떻게 재편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상태에서, 대학의 운명은 평가와 재정지원 결과에 크게 좌우되었다.

다음 회차에서는 폐교를 다룬다. 대학재정지원사업과 구조조정 정책이 끝내 어떤 대학들을 벼랑 끝으로 몰았는지, 폐교가 학생과 교직원, 지역사회에 어떤 충격을 남겼는지 살펴본다. 대학을 평가하고 지원하는 정책은 결국 어떤 대학을 살리고 어떤 대학을 떠나보낼 것인가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대학혁신지원사업이 자율의 가능성을 보여준 회차라면, 폐교는 그 자율이 닿지 못한 구조조정의 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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