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21은 한국 연구대학의 성장을 이끌었지만, 선택과 집중의 구조는 수도권·대형·이공계 중심의 불균형을 함께 남겼다
1999년, 연구대학의 시대가 열렸다
1999년 3월, 김대중 정부는 두뇌한국21, 이른바 BK21 사업을 출범시켰다. 외환위기의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았던 시기였다. 국가 경쟁력, 지식기반경제, 세계 수준의 대학이라는 말이 정책의 전면에 등장했고, 대학은 더 이상 학부 교육기관으로만 머물 수 없다는 진단이 힘을 얻었다. 한국에도 세계 학술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연구중심대학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었다. BK21의 목표는 분명했다.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을 육성하고, 국가 경쟁력을 이끌 고급 연구인력을 양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업의 진짜 의미는 목표보다 방식에 있었다. BK21은 한국 대학재정지원정책에서 ‘선택과 집중’이라는 원칙을 대규모 예산과 함께 본격화한 대표적 사업이었다. 모든 대학에 조금씩 나눠주는 대신, 경쟁을 통해 우수한 사업단을 선발하고 그곳에 재정을 집중 투입하는 방식이었다.
1단계 BK21에는 1999년부터 2005년까지 1조 원이 넘는 재정이 투입됐다. 이후 2단계, BK21 PLUS, BK21 4단계로 이어지며 이 사업은 20년 넘게 한국 연구대학 정책의 중심에 자리했다. 사업명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기본 구조는 유지됐다. 연구역량이 있는 대학과 사업단을 선발하고, 대학원생과 신진연구자, 연구팀에 재정을 지원하며, 논문과 연구성과를 중심으로 평가하는 구조였다. BK21은 단순한 하나의 재정지원사업이 아니었다. 이 사업은 이후 한국 대학정책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일 것인지를 보여준 상징적 장면이었다. 경쟁을 통해 선발하고, 선발된 곳에 집중 지원하며, 성과를 다시 평가해 다음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 이 문법은 이후 거의 모든 대학재정지원사업에 반복적으로 적용됐다.
왜 BK21이 필요했나
BK21이 등장한 배경에는 1990년대 후반 한국 고등교육의 복합적 위기가 있었다. 대학 진학률은 높아졌지만 대학의 연구경쟁력은 낮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학부 중심으로 급속히 팽창한 대학 체제가 국가 연구역량을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도 있었다. 여기에 외환위기 이후 국가 경쟁력 담론이 더해지면서, 대학은 경제 회복과 미래 산업을 이끌 인재 양성의 핵심 기관으로 다시 호명됐다. 당시 정책의 논리는 간단했다. 세계 수준의 대학을 만들려면 모든 대학을 같은 방식으로 지원해서는 안 된다. 이미 연구역량을 갖춘 대학과 사업단을 중심으로 재원을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국제 학술지 논문이 늘고, 우수 대학원생이 국내에 남으며, 한국 대학이 세계 순위 경쟁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 논리는 설득력이 있었다. 한국 대학은 오랫동안 학부 교육과 입시 경쟁의 틀 안에서 이해되어 왔다. 대학원이 독립적 연구기관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연구비와 대학원생 지원이 필요했다. 연구를 전업으로 삼는 대학원생에게 장학금과 인건비를 제공하고, 교수 연구팀이 장기적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한국 학문 생태계에 필요한 변화였다. 그러나 바로 그 설득력 때문에 더 깊은 질문은 뒤로 밀렸다. 어느 대학을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으로 볼 것인가. 어떤 학문 분야에 집중할 것인가. 연구성과를 무엇으로 측정할 것인가. 집중 지원이 전체 대학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BK21은 이 질문들에 대해 하나의 방향을 선택했다. 논문 중심, 사업단 중심, 경쟁 선발, 집중 지원이었다.
BK21의 성과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논문이다. 실제로 BK21 이후 한국 대학의 국제 학술지 논문 수는 크게 늘었다. 세계 학술 데이터베이스에서 한국 연구자의 이름이 더 자주 등장했고, 일부 분야에서는 한국 대학 연구팀이 국제적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BK21사업에 대한 평가보고서와 연구자료들에서도 BK21 사업 참여 대학의 SCI 논문 편수와 전임교원 1인당 SCI 논문 편수가 증가했다는 점을 긍정적 효과로 평가했다. BK21 2단계 사업 평가에서도 다수 사업단이 우수등급을 받은 것으로 정리되어 있다. 이 수치만 놓고 보면 BK21은 성공한 사업이었다. 적어도 정부가 설정한 1차 목표, 즉 연구성과의 양적 확대라는 측면에서는 분명한 결과를 냈다.
대학원생 지원 역시 BK21의 중요한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 한국 대학원은 오랫동안 연구자 양성의 핵심 공간이면서도, 대학원생의 생활과 연구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하는 재정 기반이 취약했다. BK21은 대학원생 연구장학금과 인건비 지원을 통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 지원을 통해 국내 대학원에 남아 연구를 지속한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BK21을 단순히 실패한 사업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한국 연구대학의 성장, 대학원 중심 연구체제의 구축, 국제 논문 생산의 확대, 연구성과 관리 체계의 정착이라는 면에서 BK21은 분명한 영향을 남겼다. 문제는 그다음 질문이다. 논문은 늘었다. 그런데 그 논문은 누구의 논문이었는가. 어느 대학의 연구자가 썼고, 어떤 학문 분야에 집중되었으며, 그 성과는 한국 대학 전체에 어떻게 확산되었는가.
선택과 집중이 만든 연구대학의 지도
BK21의 기본 원리는 선택과 집중이었다. 이 원리는 연구성과를 빠르게 끌어올리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이미 연구 인프라와 우수 교원을 갖춘 대학에 재정을 집중하면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방식은 동시에 기존 격차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연구중심대학으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은 곳은 대체로 이미 연구 기반을 갖춘 대학이다. 우수한 교수진, 많은 대학원생, 탄탄한 연구시설, 풍부한 행정지원 인력, 기존의 연구성과를 보유한 대학이 경쟁에서 유리하다. 이런 대학들은 BK21에 선정되기 쉽고, 선정된 뒤에는 더 많은 연구비와 대학원생 지원을 받아 다시 성과를 높인다. 그렇게 높아진 성과는 다음 단계 사업에서 다시 경쟁력을 높이는 근거가 된다. 반대로 연구 기반이 취약한 대학은 출발선부터 불리하다. 특히 지방 중소대학이나 인문사회계열 중심 대학은 BK21의 평가 문법 안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연구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투자와 인력 축적이 필요하지만, 바로 그 축적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지원에서 배제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것이 BK21이 남긴 가장 중요한 딜레마다. 성과를 낼 수 있는 곳에 집중해야 한다는 논리는 단기적으로는 효율적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성과를 낼 수 있는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의 격차를 더 벌린다. 지원이 필요한 대학은 성과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배제되고, 이미 성과가 있는 대학은 더 많은 지원을 받는다. 재정지원이 격차 완화의 수단이 아니라 격차 확대의 장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수도권·대형·이공계 중심의 구조
BK21이 만들어낸 연구대학의 지도는 균등하지 않았다. 수도권, 대형 대학, 이공계·의학계열, 연구중심 대학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구조였다. 정부 재정지원 수혜액이 수도권 소재 대형 대학, 이공의학계 비율이 높은 대학, 연구중심 대학, 재학생 소득 수준이 높은 대학에 더 많이 집중되는 경향을 보여준다. 특히 연구중심 대학과 교육중심 대학 사이의 격차가 크게 나타난다는 점은 BK21의 구조적 특성과 맞닿아 있다. 지방 대학관점에서도 BK21의 집중 구조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2단계 BK21 사업에서 상위 지원 대학 가운데 지방대학은 일부에 그쳤고, 서울 주요 대학이 전체 지원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 것으로 정리되어 있다. 표면적으로 수도권과 비수도권 지원 비율이 균형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특수목적대학의 위치와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따라 실제 지방대학의 체감 수혜는 크게 달라진다.
학문 분야별 불균형도 중요하다. BK21은 연구성과를 국제 논문 중심으로 측정했고, 이는 이공계와 의학계열에 상대적으로 유리했다. 물론 인문사회 분야에도 지원이 있었지만, 연구성과의 산출 방식과 평가 기준은 분야별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려웠다. 인문사회 분야의 연구는 장기적 축적, 저서, 번역, 비평, 사회적 담론 형성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성과가 나타난다. 그러나 국제 학술지 논문 중심의 평가는 이런 성과를 충분히 포착하지 못한다. 그 결과 BK21은 한국 대학의 연구역량을 키우는 동시에, 연구의 중심을 특정 대학과 특정 분야로 더 강하게 기울게 했다. 한국의 연구대학은 성장했지만, 한국의 학문 생태계 전체가 균형 있게 성장했는지는 별개의 문제로 남았다.
BK21은 지방대학에도 기회를 제공했다. 일부 지방 거점국립대와 연구역량을 갖춘 지방 대학들은 사업에 참여했고, 해당 분야의 연구 인프라를 강화할 수 있었다. 지방대학이 모두 배제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전체 구조에서 보면 지방대학은 여전히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지방대학의 어려움은 단순히 연구역량 부족 때문만이 아니다. 우수 대학원생을 모집하기 어렵고, 박사과정 이후 지역에서 안정적인 연구·취업 경로를 마련하기 어렵다. 지역 산업 기반이 취약하면 산학연계 연구도 제한된다. 수도권으로의 인재 유출은 대학원 단계에서도 반복된다. 이런 조건에서 지방대학이 수도권 대형 연구대학과 같은 지표로 경쟁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구나 BK21은 연구중심대학 정책이었다. 지방대학의 핵심 위기가 지역 청년 유출, 충원율 하락, 지역산업 약화, 재정 악화와 연결되어 있다면, 연구중심 사업만으로 지방대학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노무현 정부가 NURI 사업을 통해 지방대학혁신역량 강화를 별도로 추진한 것도 이 한계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NURI 역시 경쟁 선발 방식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지방대학을 대상으로 한 사업이었지만, 그 안에서도 사업단을 선정하고 성과를 평가하는 구조가 작동했다. 결국 연구중심대학 지원사업에서도, 지방대학 지원사업에서도, 경쟁과 평가라는 같은 문법이 반복되었다. 지방 중소대학은 연구 사업에서는 연구성과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지방대학 사업에서는 경쟁력이 약하다는 이유로 다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WCU가 보여준 일시적 성과의 문제
BK21의 연장선에서 살펴볼 수 있는 사업이 WCU, 세계수준연구중심대학 육성사업이다. 이 사업은 해외 석학을 국내 대학에 초빙해 세계 수준의 연구역량을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로 추진됐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대규모 예산이 투입됐고, 노벨상 수상자 등 세계적 연구자들이 한국 대학과 협력한 사례도 있었다. 이 사업은 한국 대학이 국제 연구 네트워크와 연결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해외 석학과의 공동연구는 국내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연구 방법과 네트워크를 제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질문은 사업 종료 이후였다. 재정지원이 끝난 뒤에도 그 네트워크가 유지되었는가. 연구성과는 지속되었는가. 국내 대학의 연구문화와 제도는 실제로 바뀌었는가.
김도한·임지은의 WCU 장기 효과성 분석은 이 질문에 대해 복합적인 답을 제시한다. 사업 기간에는 연구성과와 해외 석학과의 공동연구가 증가했지만, 사업 종료 이후에는 그 효과가 약화되는 경향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는 재정지원사업이 단기 성과를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그 성과를 지속 가능한 구조로 전환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 문제는 BK21 전체에도 적용된다. 사업비가 있는 동안 논문은 늘 수 있다. 대학원생 지원도 가능하다. 연구팀 운영도 활발해진다. 그러나 사업 종료 후에도 연구인력의 경력 경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대학원생이 지속 가능한 연구자로 성장하며, 연구성과가 사회와 지역으로 확산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재정지원이 연구 생태계를 만드는 것인지, 사업 기간의 성과를 구매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한 이유다.
BK21이 한국 대학원생들에게 남긴 영향은 가볍게 볼 수 없다. 대학원생 연구장학금은 연구자 양성의 기본 조건을 개선했다. 등록금과 생활비 부담 때문에 연구를 지속하기 어려웠던 학생들에게 BK21은 중요한 버팀목이 되었다. 특히 이공계 분야에서는 연구실 단위의 프로젝트와 BK21 지원이 결합되면서 대학원생의 연구 참여 기회가 확대됐다. 그러나 대학원생 지원의 질과 구조에 대한 질문도 남는다. 대학원생은 연구 인력인가, 교육받는 학생인가. BK21 사업단 안에서 대학원생은 연구성과를 만들어내는 핵심 주체였지만, 그에 상응하는 권리와 보호 체계가 충분했는지는 별도로 따져야 한다. 연구장학금이 지급되었다고 해서 대학원생의 노동과 학습, 연구자로서의 성장 경로가 모두 안정적으로 보장된 것은 아니다.
또한 대학원생 지원 역시 사업단 선정 구조를 따라갔다. 사업단이 많은 대학의 대학원생은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사업단 선정에서 밀린 대학의 대학원생은 상대적으로 적은 지원을 받았다. 연구자 양성의 기회가 대학 간 격차에 따라 달라진 것이다. 이는 개인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 소속 대학과 학문 분야에 따라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이 달라지는 구조적 문제다. BK21이 대학원생에게 기회를 제공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기회가 한국 대학원 전체의 보편적 연구환경 개선으로 이어졌는지는 더 신중하게 봐야 한다. 특정 사업단과 특정 대학에 집중된 장학금은 해당 집단의 연구역량을 높일 수 있지만, 대학원 교육 전체의 안정성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논문 중심 평가가 바꾼 대학의 언어
BK21은 대학의 연구 문화를 바꾸었다. 연구성과를 관리하고, 국제 학술지 논문을 목표로 삼고, 피인용지수와 실적을 정량화하는 방식이 대학 안에 깊숙이 들어왔다. 교수 개인의 연구활동도, 대학원생의 훈련도, 학과와 대학의 발전계획도 점점 논문 성과와 연결되었다. 이 변화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국제 학술 기준을 의식하게 되었고, 연구의 질을 높이려는 압박도 커졌다. 폐쇄적인 국내 학술 관행에서 벗어나 세계 연구자들과 경쟁하고 협력하는 경험도 늘었다. 한국 대학이 국제 학술장에서 더 적극적으로 발언하게 된 데에는 BK21의 영향이 있다. 그러나 논문 중심 평가는 대학의 언어를 좁히기도 했다. 모든 연구가 논문 편수로 환산되기 시작하면, 학문 분야별 특성과 사회적 기여는 뒤로 밀릴 수 있다. 긴 호흡의 저술, 지역사회 연구, 한국어 학술담론, 교육과정 개발, 공공정책 기여 같은 성과는 평가표 안에서 충분히 보상받기 어렵다. 연구자는 무엇을 연구할 것인가보다 어떤 형태로 실적을 낼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게 된다.
이 문제는 특히 인문사회 분야에서 더 크게 나타난다. 인문사회 연구의 가치는 짧은 기간의 논문 편수로만 판단하기 어렵다. 사회를 해석하고, 역사와 문화를 축적하며, 공론장의 언어를 만드는 작업은 장기적이고 질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런데 연구지원사업의 평가는 정량화 가능한 성과를 선호한다. 이 간극이 커질수록 학문 생태계는 특정한 성과 양식에 맞춰 재편된다.
특성화의 이름으로 진행된 동형화
BK21은 연구중심대학 육성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가진 사업이었다. 그런 점에서 모든 대학이 이 사업의 중심 대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문제는 BK21의 성공 방식이 다른 대학재정지원사업에도 확산되었다는 데 있다. 사업단을 만들고, 지표를 세우고, 성과를 관리하고, 평가를 통해 재선정하는 방식은 이후 대학정책의 보편 문법이 되었다. 이 문법은 대학을 특성화한다는 명분을 갖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대학들을 비슷하게 만들었다. 모든 대학이 연구성과 관리체계를 만들고, 모든 대학이 사업계획서를 쓰고, 모든 대학이 평가에 대응하는 조직을 갖추었다. 연구중심대학이 아닌 대학도 연구중심대학의 언어를 따라야 했고, 교육중심대학도 국제논문과 산학협력, 취업률 지표를 동시에 관리해야 했다.
이것이 동형화의 문제다. 대학이 자신의 역사와 지역, 학생 구성, 교육 목표에 맞는 방향으로 발전하기보다 정부가 제시한 사업 언어에 맞춰 스스로를 설명하게 되는 현상이다. BK21은 연구대학을 키우기 위한 사업이었지만, 그 방식은 한국 대학 전체가 평가와 성과관리의 언어를 학습하는 계기가 되었다.
BK21을 평가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 사업은 분명 한국 대학의 연구역량을 끌어올렸다. 국제 논문이 늘었고, 대학원생 지원 체계가 만들어졌으며, 연구중심대학이라는 개념이 한국 대학정책의 중심에 들어왔다. 세계 학술 무대에서 한국 대학의 존재감이 커진 데에도 BK21의 기여가 있다. 그러나 성과가 있었다는 사실과 그 성과가 공정하고 지속 가능하게 배분되었다는 평가는 다르다. BK21은 수도권 대형 연구대학에 더 유리한 구조를 갖고 있었고, 이공계와 의학계열 중심의 성과 측정 방식은 학문 분야 간 불균형을 키웠다. 지방대학과 중소대학은 이 사업의 주변부에 놓이기 쉬웠다. 대학원생 지원도 사업단 중심으로 집중되었고, 연구성과의 사회적 확산과 장기 지속성은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
따라서 BK21의 평가는 이중적이어야 한다. 연구성과 확대라는 목표에서는 성공했다. 그러나 한국 고등교육 생태계 전체의 균형 발전이라는 관점에서는 한계를 남겼다. 논문을 늘리는 데에는 기여했지만, 그 논문이 만들어낸 연구역량이 대학 간, 지역 간, 학문 분야 간에 얼마나 고르게 확산되었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선택과 집중 이후의 질문
BK21은 한국 대학재정지원사업 30년의 핵심 원리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선택과 집중은 성과를 만든다. 그러나 동시에 격차를 만든다. 성과가 있는 곳에 더 많은 자원이 가고, 자원이 더 많은 곳에서 다시 성과가 나온다. 이 순환은 상위권 대학에게는 성장의 사다리가 되지만, 취약한 대학에게는 넘기 어려운 장벽이 된다. 한국 대학정책은 오랫동안 이 순환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세계 수준의 연구대학을 만들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 몇 곳을 만드는 것이 한국 고등교육 전체의 목표인가. 연구성과의 양적 확대가 학문 생태계의 건강성을 보장하는가. 지방대학과 교육중심대학은 연구대학 중심 정책 안에서 어떤 역할을 부여받아야 하는가. 대학원생은 연구성과의 생산자인 동시에 보호받아야 할 학습자이자 예비 연구자인데, 이들의 경로는 충분히 보장되고 있는가.
BK21이 시작된 지 25년이 넘었다.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세대는 이제 교수와 연구자가 되었고, 그 사업 안에서 훈련받은 연구문화는 한국 대학의 표준이 되었다. 논문은 늘었다. 한국 연구자의 이름도 세계 학술 무대에서 더 많이 보인다. 그러나 그 성과가 한국 사회에, 지역 대학에, 젊은 연구자들에게, 그리고 다양한 학문 분야에 어떻게 돌아갔는지는 여전히 답해야 할 질문으로 남아 있다.
다음 회차에서는 포뮬러 펀딩을 살펴본다. BK21이 선택과 집중의 논리를 연구대학에 적용했다면, 포뮬러 펀딩은 취업률과 충원율 같은 숫자를 대학 재정지원의 기준으로 삼았다. 숫자로 대학을 평가하고, 공식으로 재정을 배분하는 방식은 과연 공정했는가. 그 질문이 다음 회차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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