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화로 시작된 5·31 교육개혁 이후, 한국 대학은 왜 평가와 재정지원사업에 더 깊이 묶이게 되었나
1995년의 선언, 30년 뒤의 질문
1995년 5월 31일, 한국 교육정책은 하나의 큰 전환점을 맞았다. 대통령 자문 교육개혁위원회가 발표한 「세계화·정보화 시대를 주도하는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 방안」은 이후 ‘5·31 교육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 개혁의 핵심 언어는 자율화, 다양화, 경쟁, 수요자 중심이었다. 권위주의 시대의 국가 주도 교육체제에서 벗어나 대학이 스스로 경쟁하고, 스스로 특성화하며, 스스로 질을 높이는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이 선언은 한국 대학에 어떤 현실로 남아 있는가. 대학은 과연 더 자율적이 되었는가. 다양화와 특성화는 실제 대학 현장에서 구현되었는가. 정부 재정지원은 대학의 교육과 연구 역량을 높이는 안정적 기반이 되었는가. 아니면 대학을 평가 지표와 공모사업에 종속시키는 또 다른 통제 장치가 되었는가.
이 연재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한국의 대학재정지원사업 30년은 단순히 정부가 대학에 돈을 얼마나 지원했는지를 따지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대학을 어떤 존재로 보았는지, 대학은 그 안에서 어떻게 생존 전략을 짰는지, 그리고 그 결과 한국 고등교육 생태계가 어떤 방향으로 재편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다.
두 개의 결정이 만든 긴 그림자
5·31 교육개혁이 남긴 결정 가운데 대학재정지원정책과 직접 연결되는 축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대학설립 준칙주의였고, 다른 하나는 평가 결과에 따른 차등 재정지원이었다. 앞의 결정은 대학의 수를 늘렸고, 뒤의 결정은 그 대학들을 경쟁의 장으로 밀어 넣었다. 대학설립 준칙주의는 일정한 요건만 충족하면 대학 설립을 허용하는 방식이었다. 국가가 대학 설립을 엄격하게 통제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고등교육 수요 확대에 맞춰 더 많은 교육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취지였다. 당시만 놓고 보면 이 결정은 시대적 요구와 맞닿아 있었다. 고등교육 진학 수요는 커지고 있었고, 민주화 이후 교육 기회의 확대는 중요한 사회적 과제였다.
그러나 문제는 팽창 이후를 충분히 설계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대학은 늘어났지만, 학령인구 감소는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출생아 수 감소는 시차를 두고 대학 입학자원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대학 설립은 빠르게 확대되었고, 특히 사립대학 중심의 고등교육 공급 구조가 더욱 커졌다. 학생 수요가 버텨주던 시기에는 문제가 가려졌지만, 학령인구 감소가 본격화되자 과잉 공급의 충격은 지방대학과 중소 사립대학부터 덮쳤다. 두 번째 결정인 평가 결과에 따른 차등 재정지원은 이후 30년간 대학정책의 기본 문법이 되었다. 모든 대학에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평가를 통해 우수한 대학을 선별하고, 그 대학에 더 많은 재정을 투입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처음에는 대학의 자율성과 특성화를 유도하는 수단으로 제시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평가 지표는 대학의 방향을 사실상 결정하는 기준이 되었고, 재정지원사업 선정 여부는 대학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가 되었다.
자율화의 역설
5·31 교육개혁을 둘러싼 평가는 지금도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이 개혁을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출발점으로 본다. 대학을 시장 경쟁에 맡기고, 교육을 소비자의 선택 문제로 전환했으며, 국가의 책임을 줄이는 방향이었다는 비판이다. 다른 쪽에서는 당시 개혁이 권위주의적 국가 통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민주화의 산물이었다고 본다. 대학과 학교가 국가의 일방적 지시에서 벗어나 더 많은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고, 5·31 교육개혁은 그 흐름을 반영했다는 해석이다. 이 양쪽 해석은 모두 일정한 진실을 담고 있다. 문제는 ‘자율화’라는 같은 단어 안에 서로 다른 의미가 함께 들어 있었다는 점이다. 하나의 자율화는 국가 통제로부터의 해방이었다. 다른 하나의 자율화는 시장 경쟁으로의 편입이었다. 대학은 정부의 직접 통제에서 벗어나는 듯했지만, 곧 평가와 재정지원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통제 안으로 들어갔다. 이 역설이 이후 한국 대학정책의 기본 구조가 되었다. 정부는 대학의 자율성을 말하면서도, 재정지원사업의 목표와 지표를 통해 대학이 가야 할 방향을 정했다. 대학은 자율적으로 사업에 신청한다고 했지만, 등록금 동결과 학령인구 감소 속에서 정부 재정지원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형식은 자율이었지만, 실질은 생존을 건 적응이었다.
한국 대학재정지원정책의 가장 큰 특징은 정권마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기본 구조는 반복되었다는 점이다. 문민정부 이후 대학재정지원정책은 평가, 경쟁, 선별, 차등 지원이라는 틀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국민의 정부에서는 BK21이 출범하며 ‘선택과 집중’이 본격화됐다. 참여정부는 지방대학혁신역량강화사업, 이른바 NURI를 통해 지방대학 지원을 확대했지만, 이 역시 사업단 선정과 평가를 기반으로 했다. 이명박 정부는 대학교육역량강화사업을 통해 포뮬러 펀딩 방식을 도입했다. 박근혜 정부는 CK, PRIME, CORE 등 특수목적 재정지원사업을 확대했다. 문재인 정부는 대학혁신지원사업을 통해 일반재정지원으로의 전환을 시도했고, 윤석열 정부에서는 RISE와 글로컬대학 사업이 전면에 등장했다.
사업의 이름은 달라졌다. 강조점도 달라졌다. 어떤 정부는 연구중심대학을 내세웠고, 어떤 정부는 지방대학을, 어떤 정부는 산학협력을, 어떤 정부는 대학 혁신과 지역혁신을 앞세웠다. 그러나 대학이 정부가 정한 지표에 맞춰 계획서를 쓰고, 평가를 받고, 선정되어야 재정을 확보하는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역사적 신제도주의 관점에서 보면, 한 번 만들어진 제도적 경로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정책 담당 부처, 예산 당국, 대학, 국회, 평가기관, 사업 수행 조직이 그 경로 안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부가 새로운 이름의 사업을 도입해도, 기존의 행정 관성은 계속 작동한다. 그 결과 정책은 변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더 깊은 층위에서는 같은 방식을 반복한다.
예산은 늘었지만 대학은 왜 더 불안해졌나
대학재정지원사업의 예산 규모만 보면 정부 지원은 분명히 늘었다. 1990년대와 비교하면 중앙정부의 고등교육 재정지원 규모는 크게 확대되었다. BK21, LINC, CK, PRIME, 대학혁신지원사업, 국가장학금, 국립대학 운영지원, 글로컬대학 등 굵직한 사업들이 이어졌고, 고등교육 예산은 양적으로 커졌다. 그러나 대학 현장이 체감하는 안정성은 오히려 약해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늘어난 재정의 상당 부분이 안정적 운영비가 아니라 목적이 정해진 사업비였기 때문이다. 대학이 중장기적으로 교육과 연구에 투자하려면 예측 가능한 재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공모사업 방식의 재정지원은 선정 여부에 따라 지원 규모가 달라지고, 사업 기간이 끝나면 재원이 끊긴다. 대학은 장기 전략보다 다음 평가와 다음 사업 공모에 대응하는 데 행정력을 쏟게 된다.
등록금 동결은 이 구조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사립대학은 오랫동안 등록금 수입에 의존해 운영되어 왔다. 그런데 등록금 인상이 장기간 억제되면서 대학의 자율적 재원 조달 능력은 약해졌다. 그 빈자리를 국가장학금과 각종 재정지원사업이 채웠지만, 그 돈은 대학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안정적 운영 재원이 아니었다. 학생 부담 완화라는 정책 목표는 중요했지만, 대학 운영 재정에 대한 별도의 안정적 보전 장치가 충분하지 않으면서 대학들은 정부 사업에 더 의존하게 되었다. 결국 한국 대학은 등록금 의존에서 벗어나는 대신, 교육부와 정부 재정지원사업 의존으로 이동했다. 이것은 공공책임의 확대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대학 자율성의 축소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다. 돈을 주는 쪽이 지표를 정하고, 지표를 정하는 쪽이 대학의 행동을 바꾸기 때문이다.
선택과 집중이 만든 부익부 빈익빈
정부 재정지원사업의 대표적 논리는 ‘선택과 집중’이었다. 모든 대학에 조금씩 나눠주는 것보다, 가능성 있는 대학에 집중 투자해야 세계 수준의 연구 성과와 교육 혁신을 만들 수 있다는 논리다. 이 논리는 BK21에서 강하게 구현되었고, 이후 여러 사업에 반복적으로 적용됐다. 선택과 집중은 성과를 낼 수 있다. 실제로 BK21은 SCI 논문 증가와 대학원 연구역량 강화라는 측면에서 일정한 성과를 냈다. LINC 사업도 일부 대학에서 산학협력 인프라와 현장실습, 캡스톤디자인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대학혁신지원사업은 특수목적사업의 파편성을 줄이고 대학 자율성을 확대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선택과 집중은 동시에 부익부 빈익빈을 강화한다. 이미 좋은 연구 인프라, 우수한 교수진, 높은 충원율, 탄탄한 행정조직을 가진 대학은 재정지원사업에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 선정된 대학은 추가 재원을 통해 지표를 더 개선한다. 그러면 다음 사업에서도 다시 선정될 가능성이 커진다. 반대로 재정이 취약하고 지역 여건이 불리한 대학은 처음부터 경쟁에서 불리하다. 탈락하면 재원을 확보하지 못하고, 지표 개선도 어려워진다. 그 결과 다음 경쟁에서도 다시 불리해진다. 이 구조는 수도권과 지방, 대형 대학과 중소 대학, 연구중심 대학과 교육중심 대학 사이의 격차를 키웠다. 정부는 대학 다양화와 특성화를 말했지만, 실제 평가지표는 많은 대학을 비슷한 방향으로 몰아갔다. 모든 대학이 취업률을 높이려 했고, 모든 대학이 산학협력 실적을 만들려 했고, 모든 대학이 중장기 발전계획과 성과관리 체계를 갖추려 했다. 대학의 고유한 역사와 지역적 역할, 교육철학은 평가표 안에서 충분히 반영되기 어려웠다.
지방대학 위기는 흔히 학령인구 감소의 결과로 설명된다. 물론 학령인구 감소는 핵심 원인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같은 학령인구 감소 속에서도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학이 받는 충격은 다르다. 수도권 대학은 여전히 전국의 학생을 끌어들인다. 지방대학은 지역 내 학생 수 감소와 수도권 유출을 동시에 겪는다. 문제는 재정지원사업의 경쟁 구조가 이러한 지역 불균형을 충분히 보정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지방대학은 지역 산업 기반, 교통, 인구 이동, 취업시장 등 여러 조건에서 수도권 대학과 다르다. 그런데 같은 지표로 경쟁하면 불리한 대학이 더 불리해진다. 충원율은 대학의 노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취업률도 지역 노동시장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산학협력 수익 역시 지역 산업 생태계가 약하면 높이기 어렵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대학재정지원사업은 지방대학의 구조적 조건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지방대학을 지원한다고 내건 사업조차 경쟁 선별 방식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지방대학은 지원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평가 경쟁의 탈락자가 되는 모순적 위치에 놓였다. 지방대학을 살리기 위한 정책이 지방대학 간 경쟁을 강화하고, 그 안에서 다시 일부 대학만 살아남는 구조를 만든 셈이다.
대학은 왜 비슷해졌나
재정지원사업은 대학을 바꾸는 힘을 갖고 있다. 정부가 어떤 지표를 제시하면 대학은 그 지표에 맞춰 조직을 개편한다. 취업률이 중요해지면 취업지원 조직이 커지고, 산학협력이 중요해지면 산학협력단과 가족회사 협약이 늘어난다. 연구 실적이 중요해지면 논문 성과 관리가 강화되고, 충원율이 중요해지면 모집 전략과 학과 구조조정이 대학 운영의 중심이 된다. 이 과정에서 대학들은 서로 닮아간다. 연구중심대학, 교육중심대학, 지역중심대학, 직업교육중심대학이 각자의 방식으로 발전하기보다, 정부가 제시한 공통 지표를 충족하기 위해 비슷한 조직과 제도를 만든다. 이것이 대학재정지원정책이 만들어낸 동형화의 문제다. 특성화를 위한 사업이 오히려 획일화를 낳는 역설도 여기서 발생한다. 대학은 자신만의 특성을 강화하기 위해 사업에 참여하지만, 사업 선정 기준이 유사하면 결국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특성화를 말하게 된다. ‘지역 연계’, ‘산학협력’, ‘융합교육’, ‘혁신인재’, ‘미래역량’ 같은 단어가 거의 모든 대학의 사업계획서에 등장하는 이유다. 언어는 다양해졌지만, 구조는 비슷해졌다.
한국 고등교육 재정의 근본 문제는 국가 책임의 제도화가 충분하지 않다는 데 있다. 초중등교육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제도를 통해 비교적 안정적인 재정 기반을 갖고 있다. 반면 고등교육은 오랫동안 사업별 예산과 공모 중심 지원에 의존해 왔다.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 논의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안정적 법제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 공백은 사립대학 중심의 한국 고등교육 구조와 맞물려 더 복잡해졌다. 한국 대학의 상당수는 사립대학이다. 이들은 공적 기능을 수행하지만, 재정 구조는 등록금과 법인 부담, 정부 보조금이 뒤섞인 형태다. 국가가 고등교육을 공공재로 본다면 안정적 지원이 필요하지만, 사립대학 운영의 투명성과 책무성 문제는 재정지원 확대의 걸림돌이 되어 왔다. 반대로 사립대학을 사적 영역으로만 보면, 학생과 지역사회가 감당해야 할 비용이 너무 커진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지 못한 채, 정부는 경쟁적 재정지원사업을 통해 대학을 관리해 왔다. 안정적 재원을 제도화하는 대신, 사업을 만들고 평가를 붙이고 성과를 요구했다. 대학은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업계획서와 성과지표의 언어를 배웠다. 30년간 축적된 것은 대학의 자율성만이 아니라, 사업 대응 능력이기도 했다.

대학재정지원사업 30년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자율화를 말하며 평가를 강화했고, 다양화를 말하며 동형화를 낳았으며, 지원을 말하며 경쟁을 제도화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재정지원사업이 실패했다는 뜻은 아니다. BK21은 한국 연구대학의 성장에 영향을 미쳤고, NURI는 지방대학 지원의 필요성을 제도적으로 부각시켰으며, LINC는 대학과 산업계의 관계를 넓혔다. 대학혁신지원사업은 파편화된 사업 구조를 일부 정리하고 일반재정지원의 가능성을 열었다. 그러나 개별 사업의 성과와 별개로, 전체 구조는 여전히 질문을 남긴다. 정부는 대학을 지원한 것인가, 아니면 대학을 통제한 것인가. 대학은 재정지원을 통해 강해졌는가, 아니면 사업 의존도가 높아졌는가. 지방대학은 정말 지원받았는가, 아니면 더 불리한 경쟁에 노출되었는가. 학생과 지역사회는 이 정책의 최종 수혜자가 되었는가.
이 연재는 앞으로 BK21, 포뮬러 펀딩, PRIME, 지방대학 지원정책, 산학협력, 대학혁신지원사업, 폐교, 등록금 동결 문제를 차례로 살펴본다. 첫 회의 결론은 분명하다. 한국 대학의 오늘은 갑자기 도착한 위기가 아니다. 30년 전 선택한 정책의 경로가 누적된 결과다. 이제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새 사업명이 아니라, 반복된 처방을 가능하게 한 구조 자체를 다시 묻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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