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 이중소속 도입, 교육용 기본재산 활용 확대, BK21·RISE 집행 자율성 개선까지… 대학 자율화의 폭을 넓히는 조치들이 잇따르면서 고등교육 정책의 기준점이 바뀌고 있다.
대학을 둘러싼 규칙이 달라지고 있다. 정부가 제25차 대학규제합리화위원회를 열고 대학학사, 산학협력, 사립대학 규제, 재정지원사업 집행 방식 등 현장에서 개선 요구가 컸던 영역을 중심으로 제도 손질에 나서면서, 대학 자율화는 선언적 구호를 넘어 실제 운영 체계를 바꾸는 단계로 들어섰다. 핵심은 단순한 규제 완화가 아니다. 학령인구 감소와 인공지능 전환이라는 급격한 환경 변화 속에서 대학이 스스로 생존 전략을 짜고, 지역과 산업의 변화에 더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운영의 재량을 넓히는 데 있다.
이제 대학은 ‘관리 대상’이 아니라 ‘전략 주체’가 되라는 요구를 받는다
이번 조치의 배경에는 더 이상 예전 방식으로는 대학 체제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현실이 놓여 있다. 입학자원 감소는 지방대학부터 수도권 대학까지 모두에게 구조조정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고, 산업 현장은 빠르게 바뀌는데 대학의 제도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도 이어져 왔다. 인공지능 기반 교육 전환, 첨단산업 인재 양성, 지역혁신 거점 역할까지 대학에 요구되는 임무는 커졌지만, 정작 대학 운영을 둘러싼 제도는 오랫동안 세세한 통제와 사전 규제 중심으로 작동해 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변화는 규제를 몇 개 덜어내는 수준이 아니라, 대학을 바라보는 정책 시선 자체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대학은 자율성을 요구하면서도 실제 운영에서는 여러 제도적 벽에 부딪혀 왔다. 캠퍼스 안 유휴부지를 활용해 재정 기반을 넓히려 해도 교육용 기본재산 규제가 걸림돌이 됐고, 산업 현장의 전문가를 교육 현장으로 끌어오려 해도 교원 인사체계는 지나치게 경직돼 있었다. 국가 재정지원사업 역시 자율적 기획보다 세부 집행과 증빙, 평가 절차에 행정력이 소진된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이런 누적된 병목을 풀지 않고는 대학 혁신도, 지역혁신도, 산업 연계도 모두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이번 조치를 밀어 올린 배경으로 읽힌다.
이번 논의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정부출연연구기관과 기업 등의 우수 인재를 대학 교원으로 임용할 수 있도록 교원의 이중소속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대목이다. 이를 위해 「교육공무원법」과 「사립학교법」 개정이 추진될 예정이며, 겸임교원 채용 절차 간소화도 후속 과제로 함께 다뤄진다. 이 조치가 갖는 의미는 단순히 인사제도를 손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지금까지 대학과 산업계, 연구기관 사이에는 협력의 필요성은 컸지만 사람의 이동에는 높은 장벽이 있었다. 현장 경험이 풍부한 연구자와 기업 인재가 대학 교육과 연구에 직접 참여하려면 본업과 충돌하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기존 소속과 대학 중 하나를 사실상 선택해야 하는 구조가 문제로 지적돼 왔다. 특히 AI, 반도체, 첨단 제조처럼 현장 변화 속도가 빠른 분야에서는 이 같은 경직성이 대학 교육의 시차를 키우는 원인으로 꼽혀 왔다.
이중소속의 문이 열리면 대학은 연봉 구조나 인사체계의 한계 때문에 전임으로 채용하기 어려웠던 현장 전문가를 교육과 연구의 핵심 축으로 끌어들일 수 있게 된다. 기업과 연구기관은 대학의 인재와 연구 인프라를 더 밀착해 활용할 수 있고, 학생 입장에서는 실제 산업 현장의 최신 흐름을 강의실 안에서 접할 기회가 커진다. 다만 이 제도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단순히 법 조문을 고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소속 기관 간 책임 배분, 이해충돌 관리, 보수와 평가 기준, 연구성과 귀속 문제까지 함께 설계돼야 제도가 현장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캠퍼스는 더 이상 고정된 교육 공간에만 머물지 않는다
교육용 기본재산의 임대 가능 범위를 지속 확대하겠다는 방향도 이번 조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이다. 캠퍼스 부지와 건물은 오랫동안 엄격한 규제 아래 묶여 있었고, 대학이 보유한 유휴공간을 재정 확충이나 산학연 협력 거점으로 전환하는 데 제약이 컸다. 등록금 동결이 장기화되고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런 경직성은 대학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해 왔다. 공간은 남아도 활용은 어렵고, 재정은 빠듯한데 자산 운용의 자율성은 제한되는 구조가 이어져 온 셈이다.
이제 대학은 교육과 연구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캠퍼스를 보다 전략적으로 운영하라는 요구를 받게 된다. 유휴 건물을 기업 연구공간이나 창업 인프라로 바꾸고, 산학연 협력 시설을 캠퍼스 안에 유치해 수익과 교육 효과를 동시에 도모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선택지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이는 대학을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지역의 혁신 거점, 산업과 인재가 만나는 플랫폼으로 재구성하려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학생들에게는 더 가까운 현장 경험의 기회가 생기고, 지역사회에는 캠퍼스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경제 활동의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숙제는 남는다. 자산 활용의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데 이견은 적지만, 그것이 곧바로 교육 공간의 상업화로 흘러서는 안 된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될 수 있다. 대학 재산이 누구를 위해 어떻게 쓰이는지, 수익이 다시 교육과 연구에 얼마나 투명하게 환류되는지에 대한 기준이 뒤따르지 않으면 규제 완화는 새로운 논란을 낳을 수 있다. 자율 확대와 공공성의 균형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BK21과 RISE의 집행 자율성은 대학 행정의 숨통을 틔울 수 있을까
재정지원사업의 집행 규제 개선도 이번 변화의 중요한 축이다. 정부는 두뇌한국(BK)21 사업의 평가 간소화와 예산 집행 자율성 확대 제안을 후속 사업 기획 과정에서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고, 지역성장 인재양성체계인 RISE 사업에서는 공통운영경비 편성과 관련한 현장 건의를 즉시 반영해 안내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도 지역별 사업비 집행과 관리 현황을 점검하면서 제도 취지와 어긋나는 부분을 개선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이 변화가 의미를 갖는 이유는 대학이 오랫동안 정부 재정지원사업의 수혜기관이면서도, 동시에 촘촘한 집행 통제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연구와 교육을 위해 지원받은 예산이 실제로는 수많은 정산, 승인, 증빙, 평가 대응으로 이어지면서 연구 몰입도를 떨어뜨리고 행정 부담을 키운다는 비판은 계속돼 왔다. 특히 지역혁신 정책과 결합된 사업에서는 지자체와 대학이 지역 여건에 맞는 기획을 하기도 전에 세부 집행 규칙부터 맞춰야 하는 현실이 문제로 지적됐다.
자율성이 확대되면 대학은 사업비를 더 유연하게 조정해 현장 수요에 대응할 수 있고, 지자체와 대학도 지역 산업과 교육 과정을 보다 현실감 있게 결합할 여지가 생긴다. 이는 지역대학이 단순한 교육기관을 넘어 인재 정주와 산업 연계의 중심축이 되는 데 필요한 조건이기도 하다. 다만 자율성을 넓힌다고 해서 행정 부담이 자동으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평가 체계가 그대로인 채 집행 규칙만 일부 손질된다면 현장의 체감 변화는 제한적일 수 있다. 결국 제도의 성패는 예산 항목의 유연화뿐 아니라 평가의 철학이 함께 바뀌는지에 달려 있다.
대학원 규제 완화는 학제 개편의 속도를 바꿀 수 있다
일반대학원 전임교원의 강의비율 규제 완화 방안과 전문대학원 설치 시 사전협의 의무 폐지안도 함께 논의됐다. 이후 대학 의견 수렴을 거쳐 올해 하반기 규정 개정과 지침 반영이 검토될 예정이다.
이 조치는 겉으로 보기엔 세부 행정 규정의 조정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대학이 학문 체계와 교육 과정을 얼마나 빠르게 재구성할 수 있느냐와 연결된다. 산업 변화가 빨라질수록 대학원은 새로운 융합 분야와 전문 영역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하지만, 설치와 운영 단계마다 사전 규제가 촘촘하면 학제 개편의 속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강의비율 규제 역시 대학원 교육의 특성과 연구 중심 운영을 탄력적으로 설계하는 데 걸림돌로 작동해 왔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대학이 대학원의 구조와 기능을 더 현실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여지를 키워줄 가능성이 있다.
이번 조치를 단순한 규제 철폐로만 읽기 어려운 이유는, 자율성이 넓어질수록 대학 스스로 감당해야 할 책임도 함께 커지기 때문이다. 이제 대학은 “규제가 많아서 못 했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한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현장 전문가를 어떻게 영입할 것인지, 유휴 공간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 것인지, 재정지원사업의 자율성을 교육의 질과 지역혁신 성과로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전략이 요구된다. 자율은 권한이지만 동시에 성과와 책임의 압박이기도 하다.
그 점에서 앞으로의 관건은 두 가지다. 하나는 대학 내부의 준비 정도다. 제도가 열려도 이를 활용할 기획 역량과 실행 구조가 부족하면 변화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다른 하나는 정부의 역할 변화다. 과거처럼 세부 기준을 일일이 통제하는 대신, 사후 점검과 투명성 확보, 성과 공유 체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가 중요해진다. 관계 부처와의 협업도 필수적이다. 교원 이중소속만 해도 인사와 법령 문제를 넘어 연금, 보험, 이해충돌, 세제 문제까지 얽힐 가능성이 크다. 캠퍼스 재산 활용 역시 과세와 회계, 용도 규제 등 여러 제도와 연결돼 있어 한 부처의 의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번 변화의 본질은 대학에 대한 규제가 몇 조항 완화됐다는 데 있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가 대학을 바라보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을 일률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던 체계에서, 대학이 스스로 살아남고 스스로 혁신 전략을 설계하도록 공간을 넓혀주는 방향으로 기준점이 이동하고 있다. 교육부도 앞으로 현장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발굴된 과제는 실무협의회를 통해 적극 검토·개선하며, 주요 법령과 규정 개정 사항에 대한 안내와 우수사례 확산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이번 조치를 곧바로 대학 혁신의 완성으로 평가하기는 이르다. 규제를 걷어내는 일은 출발점일 뿐, 실제 변화는 그 이후에 결정된다. 대학이 자율을 전략으로 바꾸지 못하면 완화된 규제는 제도 문구에 머물 수 있고, 정부가 사후 책임 체계를 정교하게 설계하지 못하면 자율 확대는 새로운 혼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결국 이번 조치는 대학 혁신의 답안이라기보다, 이제부터 대학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묻는 새로운 문제지에 가깝다. 규제는 분명 풀리고 있다. 이제 남는 질문은 그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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