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청소년 패널 1만4,320명 추적… 자살·질병 사망은 뚜렷한 연관성 없어, 흡연·대마초·학업 중단이 주요 경로로 확인
청소년기에 겪은 우울 증상이 성인이 된 뒤 자살보다 사고사, 우발적 약물 과용, 폭행 등 외부 요인에 의한 조기 사망(50세 이전) 위험과 더 강하게 연관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고려대학교 보건정책관리학부 김진호 교수 연구팀은 미국의 대표적인 청소년 패널조사인 ‘Add Health’ 대상자 1만4,320명을 1994년부터 2023년까지 약 30년간 추적 분석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분석 결과, 개인 및 가정환경 등 다른 요인의 영향을 제외하더라도 청소년기에 우울 증상이 심했던 사람일수록 조기 사망 위험이 17.5%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 원인을 나눠 살펴보면 차이가 뚜렷했다. 운수사고와 사고성 중독, 폭행 등 사고사와 약물 과용 같은 외부 요인에 의한 사망 위험은 29.6% 더 높게 나타나 가장 강한 연관성을 보였다. 우울 증상이 가장 심했던 상위 25% 집단은 가장 덜했던 하위 25% 집단보다 외부 요인으로 사망할 위험이 2.26배에 달했다.
반면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나 자살은 통계적으로 뚜렷한 연관성이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연구진은 해당 데이터에서 자살로 사망한 사례 수 자체가 적어 이 결과는 신중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이 우울 증상이 조기 사망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분석한 결과, 전체 조기 사망에서는 고등학교 미졸업(16.0%), 흡연(10.8%), 대마초 사용(9.0%)의 영향이 컸다. 외부 요인에 의한 사망으로 한정하면 대마초 사용(12.2%)과 흡연(6.9%)이 주요 요인으로 확인됐다. 우울했던 청소년이 이후 담배나 대마초에 손을 대면서 사고사나 약물 과용 위험이 커지는 것으로 연구진은 해석했다.
연구를 주도한 김진호 교수는 “우울증이 있다고 해서 모두 자살로 이어진다는 것은 잘못된 상식”이라며 “정신 건강이 안 좋음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건강 위협 요소들을 두루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정책적 함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청소년기 우울 증상에 대한 대응은 단순히 증상 관리에 그쳐서는 안 되며, 약물 사용 예방과 학업 지속, 안정적인 사회 진입을 지원하는 통합적 접근이 중요하다”면서 “청소년기의 정서적 어려움이 이후 건강과 사회경제적 불이익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학교와 지역사회, 교육·고용 지원 체계가 유기적으로 연계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는 교신저자인 김진호 교수와 함께 고려대 보건과학과 남나경 석사과정이 제1저자로, 미국 텍사스-오스틴 대학교 사회학과 손혜원 박사과정이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연구 결과는 ‘청소년기 우울 증상이 조기 사망과 연관되는 경로: 생애 과정에 걸친 행동적·사회경제적 경로'(How adolescent depressive symptoms are associated with premature mortality: Behavioral and socioeconomic pathways across the life course)라는 제목으로 소아·청소년 정신의학 분야 국제 학술지 ‘유러피언 차일드 앤드 어도레센트 사이키아트리(European Child & Adolescent Psychiatry)’에 지난 6월 25일 온라인 게재됐다. 연구는 4단계 BK21 정밀보건과학융합 교육연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이번 연구는 청소년기 정신 건강 문제가 자살이라는 단일 결과에 국한되지 않고,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사고와 약물 관련 사망 등 다양한 건강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장기 추적 데이터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청소년 우울 증상 대응을 위해서는 증상 치료를 넘어 약물 예방, 학업 지속, 사회 진입 지원을 아우르는 정책적 연계가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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