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첫해, 혼란의 뿌리는 무엇인가 ? 교원 수급·최소성취기준·평가체계가 뒤얽힌 제도 불안정성, 내년 개학 전 무엇을 고쳐야 하나

고교학점제가 올해 3월 전면 시행되면서 교육의 개인화·학생 선택권 확대라는 정책 목표가 강조됐지만, 실제 학교 현장은 시행 첫 학기부터 상당한 혼란을 겪고 있다. 일부 교원단체는 시행 석 달 만에 ‘제도 폐지 청원’을 제기했고, 학부모들은 과목 선택과 평가 방식이 동시에 바뀌는 상황에서 진로 설계의 불확실성이 오히려 커졌다고 말한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 「이슈와 논점 2435호」 보고서를 포함한 관련 자료 살펴보면, 혼란의 원인은 특정 요소 하나가 아니라 교·강사 인력 부족, 최소성취수준보장지도(최성보) 운영 기준의 불안정, 선택과목 평가체계의 충돌 등 서로 얽힌 구조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제도 시행 과정에서 핵심 지침이 뒤늦게 정비되거나 정책 간 엇박자가 발생한 점은 현장의 불신을 키우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

선택과목 확대와 학점 이수 체계… 취지는 옳지만 운영 기반은 약했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해 누적 학점이 기준에 도달하면 졸업을 인정받는 방식이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일반·진로·융합 선택과목이 확대되며 학생 선택권이 넓어졌지만, 실제 학교에서는 인력·시설·규모에 따라 개설 가능한 과목이 달라 선택권이 제도 취지만큼 보장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특히 중·소규모 학교일수록 개설 과목 수가 제한되어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수강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며, 이는 지역 간 교육격차 문제로 이어진다. 교사들은 선택과목 수 증가로 인해 다과목 지도, 학생부 기재, 학점 관리 등 업무량이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고 호소한다. 학기제 운영 전환과 성취기준 기반 평가 도입이 겹치며 행정·수업 준비 모두가 과중해졌고, 이는 교육부가 발표한 교사 선발 확대만으로 단기간에 해소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라는 평가도 나온다.

선택과목이 확대된 고교학점제의 특성상 교사는 여러 과목을 동시에 지도해야 하고, 출결·평가·학업성취 관리 등 행정 업무까지 늘어나는 구조가 불가피하다. 교육부는 이러한 여건을 고려해 2026학년도 중등교사 선발 인원을 전년 대비 30% 가까이 늘리는 방안을 발표했지만, 교원단체들은 “단기 증원만으로는 구조적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학생 수 감소로 인해 교원 감축 기조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수요 증가는 쉽지 않다는 점, 그리고 지역 간 교원 배치 격차가 이미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도 제도 운영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로 꼽힌다.
스포트라이트유가 분석한 국회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목표로 하는 ‘충분 규모의 교원 확보’는 고교학점제가 본래 취지대로 작동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현재의 인력 수급 계획은 장기 수요를 충족시키기엔 한계가 있고, 단기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한시적 기간제 교사 활용을 확대하더라도 정규 교원 대비 업무 전문성·안정성이 낮아 현장의 불만이 여전히 남을 수밖에 없다. 선택과목 다양화는 제도의 핵심 축이지만, 인력 기반이 갖춰지지 않으면 오히려 선택권을 축소시키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최소성취수준보장지도(최성보) 논란… 제도의 핵심이 흔들리는 지점

현재 고교학점제를 둘러싼 가장 민감한 쟁점은 ‘최소성취수준(최성보)’ 적용 방식이다. 최성보는 학생이 과목을 이수하기 위한 최소 조건을 의미하며,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보충학습을 통해 학점을 확보해야 한다. 문제는 공통과목과 선택과목에 어떤 기준을 적용할지에 대해 교육부와 현장의 견해가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정리한 논의에 따르면, 공통과목은 성취율과 출석률을 모두 적용하고, 선택과목은 출석만을 기준으로 하는 절충안과 모든 과목을 출석 기준으로 통일하는 방안이 동시에 검토되고 있다. 학교 현장에서는 이 기준 차이가 교육과정 운영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조속한 결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교사들 사이에서는 ‘미이수 처리’를 피하기 위해 평가 난이도를 낮추거나 수행평가 기본점을 올리는 등 왜곡된 평가 관행이 벌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는 성취기준 기반 교육이라는 제도의 취지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반면 일각에서는 엄격한 기준이 오히려 취약학생을 학교 밖으로 밀어내는 결과를 낳고 있다며, 출석 중심의 완화된 이수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어느 쪽이든 이 문제는 고교학점제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근본 쟁점인 만큼, 국교위가 연내에 기준을 정리하지 못하면 내년 개학 전까지 혼란은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절대평가 확대가 고교학점제의 기본 방향으로 제시됐지만, 실제 운영 지침에서는 오히려 상대평가가 확대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공통과목과 일부 선택과목은 상대평가를 유지하면서 진로·융합 선택과목 중 상당수가 절대평가로 운영되는 방식인데, 이 이중적 구조가 가장 큰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올해 고1 학생들은 내년부터 본격적인 선택과목 중심 학습에 돌입하는 만큼, 2026년 3월 학기 시작 전까지 평가체계에 대한 명확한 안내가 필요하다. 교육 전문가들은 학생의 진로·적성 맞춤형 선택을 보장하려면 선택과목의 절대평가 전환이 필수 조건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특목고·자사고의 존재, 지역별 학력 격차 문제, 내신 반영 비율 등의 요소가 얽히면서 상대평가 유지 논리가 여전히 힘을 얻고 있다. 절대평가를 확대하면 고교 간 내신 격차가 커져 대학입시에서 지방 학생들의 불리함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그러나 반대로 상대평가를 유지하면 학생들은 진로에 필요한 과목보다 ‘내신 유리 과목’을 선택하는 전략적 선택으로 내몰리게 되고, 이는 고교학점제의 본래 목적과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결국 평가체계 정비는 선택권 보장, 공정성, 지역 격차 등 서로 충돌하는 교육 가치 사이에서 합리적 균형점을 찾는 고도의 정책 조정이 필요한 영역으로 평가된다.

온라인학교 학점 이수, 신뢰를 확보하지 못하면 선택권 확대도 무의미

고교학점제는 지역·학교 규모에 따른 선택과목 격차를 보완하기 위해 온라인학교를 활용한 학점 이수를 제도적으로 열어두고 있다. 그러나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 분석 결과, 온라인학교 운영이 제도 취지만큼 안정적으로 자리 잡지 못하면서 오히려 신뢰성 논란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시기 대학 온라인 수업에서 발생한 부정행위 논란, 최근 대학의 온라인 시험 부정행위 사건 등은 온라인 기반 학습에 대한 사회적 의구심을 더욱 키우고 있으며, 일부 학부모와 학생은 온라인 이수 학점이 대학 입시에서 동등하게 인정될지 여부에 대해 여전히 불안감을 갖고 있다.
특히 소규모·농어촌 지역의 학교는 필수 선택과목조차 개설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온라인학교는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지만, 이수학점의 공정성과 평가 신뢰가 확보되지 않으면 지역 간 격차 해소라는 본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교육부는 온라인학교 이수에 대한 불이익 금지 원칙을 법령에 명시하고 교육청과 협력해 시스템을 안정화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콘텐츠 품질과 평가 방식, 학사관리 체계 등 여러 요소에 대한 불신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선택권 확대의 핵심축이 되는 온라인학교의 신뢰가 확보되지 않는다면 고교학점제는 구조적으로 ‘불균형한 선택권’을 가진 제도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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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선택과목 확대와 평가체계 변화는 본래 학생의 진로 중심 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취지였지만, 제도가 복잡해질수록 학부모와 학생이 사교육 의존도를 높이는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 인용된 최근 고교생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0% 이상이 “고교학점제 시행 이후 과목 선택과 진로 선택을 위해 학원·컨설팅이 필요해졌다”고 답했다는 결과는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내신 5등급제 전환으로 최상위 등급 학생 비율이 늘어나고 등급 간 격차가 커지는 구조는 중·상위권 학생들의 경쟁 심리를 자극하며, ‘1등급 방어’를 위한 전략적 사교육 의존이 더 강해질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이는 고교학점제가 목표로 한 ‘공교육 내 선택권 확대’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이다. 제도가 복잡해질수록 오히려 정보 접근성이 높은 계층이 유리해지고, 지역·학교·가정환경에 따른 격차가 확대될 수 있다. 교육부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사교육 시장을 모니터링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지만, 현장에서는 선택과목 체계 자체가 과도하게 세분화되어 있어 정보 격차를 사교육이 메우는 구조적 문제가 이미 고착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진로별로 몇 가지 학교 과정을 제시하는 ‘과정제시형’ 모델을 일부 도입해 정보 부담을 줄이는 방안 등이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이는 제도 전반의 철학과 운영 구조를 재검토해야 가능한 문제다.

대입전형과의 연계 부재… ‘무전공 입학’ 확대와 충돌하는 구조

고교학점제는 대학입시와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없는 제도다. 학생이 선택한 과목과 학업 성취가 대학 전형 요소와 연동되어야 학생·교사가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교육과정을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포트라이트유가 확인한 국회입법조사처 분석에 따르면, 고교학점제와 대입전형의 연계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 교육부는 2028 대입제도 개편안에서 미래형 대입 체계를 구상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로 학생 선발권을 가진 대학들이 고교학점제를 반영한 입시 기준을 마련하는 속도는 더디다. 2028학년도 대학별 입시요강도 일부 대학만 발표된 상태라 현장의 불안은 여전히 높다. 여기에 2025학년도부터 대폭 확대되는 ‘무전공 입학(전공자율선택제)’은 고교학점제의 진로 기반 선택과 본질적인 충돌 가능성을 안고 있다. 제도 취지상 학생은 진로에 맞춰 과목을 선택하도록 요구받지만, 대학 입학 단계에서는 전공을 정하지 않은 채 입학해 2학년 이후 전공을 선택하는 방식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조기 진로 선택을 유도하는 고교학점제의 방향성과 배치될 뿐 아니라 학생들이 어떤 과목을 선택해야 대학 전공 선택에 유리한지 판단하기 더 어려운 구조를 만든다. 대학과 고교 교육정책의 엇박자가 해소되지 않으면 학생들은 제도 변화의 부담을 오롯이 떠안게 되고, 고교학점제가 지향해온 ‘진로 기반 선택 교육’ 역시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어렵다.

고교학점제는 단순한 교육과정 개편이 아니라 한국 고등학교 교육 체제를 전환하는 대규모 구조 개혁이다. 따라서 시행 첫해의 혼란은 일정 부분 불가피할 수 있지만, 현장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는 단순 시행 초기의 적응 문제가 아니라 제도 설계와 정책 연계 전반의 보완이 시급한 영역이다. 교·강사 인력 기반, 최소성취기준 운영 방식, 선택과목 평가체계, 온라인학교 신뢰성, 사교육비 증가, 대입전형 연계 등 핵심 요소들이 동시에 영향을 주고받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내년 학기 시작까지 남은 기간 동안 정부와 국교위는 각 쟁점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후속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최소성취기준과 평가체계는 다음 학년도 교육 운영의 뼈대를 결정하는 만큼 연내 결론이 필요하며, 대학과 협력한 대입 연계 정비도 병행되어야 한다. 고교학점제가 본래 취지대로 ‘학생 중심 선택교육’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현장의 혼란을 해소할 수 있는 정책 조정과 실질적 지원이 지금 이 시점에서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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