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매긴 점수, 누가 책임질 것인가 – 대학 평가의 경계선이 흔들린다

영국 대학가에서 진행 중인 인공지능(AI) 채점 도구 시범운영은 단순한 기술 실험을 넘어 대학 평가의 본질을 다시 묻게 하는 장면이 되고 있다. 영국의 고등교육 디지털 지원기관 Jisc는 여러 대학과 함께 AI가 평가 루브릭과 예시 답안을 바탕으로 점수와 피드백 초안을 만들고, 이를 교원이 검토·확정하는 방식의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주최 측은 이 시도가 교원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하지만, 바로 그 해명이 반복된다는 사실 자체가 오늘의 대학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보여준다. 평가의 자동화가 가능하다는 말이 나오는 순간, 대학은 더 이상 단지 “기술을 도입할 것인가”를 묻지 않는다. 이제 질문은 더 근본적이다. 평가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으며, 대학은 무엇을 평가라고 부를 것인가.

기술은 늘 편의와 효율의 언어로 들어온다. 이번 실험 역시 표면적으로는 익숙한 문제의식 위에 서 있다. 채점 업무는 과중하고, 학생들은 피드백의 일관성이나 속도, 충분성에 불만을 제기해 왔으며, 교원들은 점점 더 많은 행정과 수업, 연구 사이에서 평가 부담을 감당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AI가 초안을 만들고 교원이 최종 확인하는 구조는 얼핏 합리적으로 보인다. 평가의 질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면서도 시간을 아낄 수 있다면, 그 가능성을 검토해보자는 제안은 충분히 현실적이다. 특히 형성평가처럼 학습 중간 단계에서 반복적인 피드백이 필요한 영역에서는 기술의 보조적 활용이 실제로 일정한 효용을 낼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대학은 가장 어려운 질문과 마주한다. 채점은 정말 ‘시간을 줄이기 위한 업무’에 그치는가. 대학 교육에서 평가는 단순한 점수 산정 절차가 아니다. 학생이 무엇을 이해했고 무엇을 놓쳤는지, 어떤 방식으로 사고하고 있으며 어떤 지점에서 더 성장할 수 있는지를 읽어내는 과정이다. 좋은 평가는 정답을 골라내는 일이 아니라 사고의 흔적을 해석하는 일에 가깝다. 같은 문장을 써도 어떤 학생은 개념의 핵심을 짚었고, 어떤 학생은 표현만 흉내 냈다. 같은 오류를 범해도 어떤 학생에게는 기초 개념의 결핍이, 어떤 학생에게는 논리 전개의 미숙함이 드러난다. 이 차이를 읽는 일은 단지 결과물을 분류하는 기술이 아니라 학습자의 현재를 이해하는 교육적 판단이다.

그래서 교원이 ‘최종 승인자’로 남아 있다는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승인이라는 말은 때로 사람의 역할을 좁힌다. 판단의 주체가 아니라 기계가 만든 결과를 마지막에 점검하는 검수자로 인간을 위치시키기 때문이다. 대학 평가에서 교원의 역할은 본래 그보다 훨씬 크다. 교원은 정답을 확인하는 사람이 아니라 평가의 의미를 설계하고, 학생의 응답을 맥락 속에서 읽으며, 피드백의 방향을 결정하는 사람이다. 만약 AI가 만든 초안을 검토하는 절차가 어느 순간 관성화되고, 교원의 판단이 형식적 확인으로 축소된다면, 대학은 평가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의 외형만 남기게 될 가능성이 크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기술보다도 기술이 작동하는 제도의 논리다. 대학이 AI를 도입할 때 늘 교육적 이상만을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현실의 대학은 비용을 절감해야 하고, 업무 효율을 높여야 하며, 빠른 처리와 표준화를 요구받는다. 이때 AI 채점 도구는 ‘보조 장치’라는 이름으로 들어오지만, 운영의 언어 속에서는 곧바로 생산성과 효율의 도구로 번역된다. 처음에는 교원을 돕기 위한 기술이었지만, 어느새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수업을 감당하게 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고, 채점 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새로운 압박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다. 현장 교원들이 인력 문제와 채점 노동의 가치 저하를 우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기술이 지금 당장 사람을 대체하느냐가 아니라, 대학이 이 기술을 어떤 운영 원리 속에 배치하느냐에 있다.

평가의 신뢰는 속도보다 느리게 만들어진다. 학생이 받는 점수는 단지 숫자가 아니라 자신이 어떤 기준으로 읽혔는지에 대한 메시지다. 피드백 역시 더 길다고 해서 반드시 더 좋은 것은 아니며, 더 빠르다고 해서 더 교육적인 것도 아니다. 학생이 신뢰하는 평가는 자신이 누군가의 실제 판단 속에서 읽혔다는 감각을 포함한다. 내 글을 누가 읽었는지, 내 논리가 어떤 기준으로 검토되었는지, 이 피드백이 왜 나에게 주어진 것인지 납득할 수 있어야 평가는 학습으로 이어진다. AI가 생성한 문장이 아무리 매끄럽고 정돈되어 있어도, 그 문장이 학생의 사고 과정을 진짜로 읽은 결과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면 평가는 오히려 더 멀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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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총괄평가, 다시 말해 학점과 학위, 자격 부여와 직결되는 고부담 평가 영역에서는 이 문제가 더욱 무겁다. 학생의 성취를 공식적으로 증명하는 행위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대학이 사회 앞에서 서명하는 책임의 형식이기 때문이다. 이번 시범운영 관계자 역시 AI의 총괄평가 활용은 아직 거리가 멀고, 오히려 초안 피드백이나 형성평가 보조 영역이 더 적절하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이 대목은 오히려 중요한 고백처럼 들린다. 기술을 만든 쪽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교육의 핵심 장면, 특히 자격과 성취를 최종 판정하는 영역에서 인간의 판단을 바깥으로 밀어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여기서 무조건적인 기술 거부로 돌아갈 필요는 없다. 대학은 이미 AI 이전에도 완전하지 않았고, 평가 역시 늘 인간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피드백의 편차, 시간 부족, 채점자의 피로, 대규모 강의의 구조적 제약은 오래된 문제였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AI를 쓸 것인가 말 것인가의 단순한 찬반이 아니다. 어떤 영역까지를 보조로 인정할 것인지, 어떤 순간에는 반드시 인간이 처음부터 끝까지 판단의 주체여야 하는지, 그 기준을 대학 스스로 분명히 세우는 일이다. 기술의 효율을 받아들이더라도 책임의 경계만큼은 흐려져서는 안 된다.

대학이 지켜야 할 것은 채점자의 일자리만이 아니다. 더 본질적인 것은 평가가 교육행위라는 사실이다. 평가는 학생을 선별하는 도구이기 전에 학생의 학습을 비추는 거울이어야 한다. 그 거울이 편리해질 수는 있어도 비어 있어서는 안 된다. AI가 초안을 만들고 사람은 마지막에 이름만 올리는 구조가 일반화된다면, 대학은 언젠가 평가의 책임을 누구도 온전히 지지 않는 체제로 들어설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 학생이 받게 되는 것은 점수가 아니라 판정의 익명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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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 낙관도, 기술 공포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원칙이다. AI가 평가 과정에 들어올 수 있다면, 그 활용 범위와 책임 구조는 대학이 먼저 엄격하게 규정해야 한다. 학생에게 고지하는 수준을 넘어, 어떤 판단이 기계에 의해 제안되었고 어떤 판단이 교원에 의해 최종적으로 이루어졌는지 설명 가능해야 하며, 이의 제기와 검토 절차 역시 더 분명해져야 한다. 무엇보다 대학은 평가를 빠르게 처리해야 할 업무가 아니라 교육의 핵심 장면으로 다시 선언해야 한다. 그래야만 AI는 도구로 머물 수 있고, 대학은 책임의 주체로 남을 수 있다.

AI가 매긴 점수는 계산의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점수에 대한 책임까지 기계가 질 수는 없다. 결국 책임은 사람에게 남는다. 그렇다면 대학은 더 늦기 전에 대답해야 한다. 점수는 누가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라, 그 점수 앞에 누가 이름을 걸 것인가를. 대학 평가의 경계선이 흔들리는 지금, 그 질문을 미루는 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 자신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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