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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언어로 채워진 고등교육의 미래
2026년 고등교육 담론은 유난히 분주하다. 인공지능, 자동화, 녹색 전환, 첨단산업이라는 단어들이 대학관련 기사와 정부 발표, 각종 보고서를 채우고 있다. 대학은 미래 산업을 뒷받침할 인재 양성의 거점으로 호명되고, 교육은 국가 경쟁력과 성장 전략의 일부로 정렬된다. 기술 변화의 속도가 워낙 빠른 탓에 이러한 방향 설정은 자연스럽고 불가피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담론의 중심에는 언제나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만 있을 뿐,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스킬과 역량, 직무 적합성, 고용 가능성은 반복되지만, 그 교육이 궁극적으로 어떤 인간을 길러내고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주변부로 밀려난다. 계획은 촘촘해졌지만, 방향은 오히려 흐려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대학은 점점 더 민첩해야 하고, 산업과 정렬돼야 하며,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야 하는 조직으로 규정된다. 하지만 민첩함과 정렬이라는 언어가 의미를 대신할 수는 없다. 방향 없는 가속은 진보라기보다 관성에 가깝다. 기술과 정책의 언어가 대학을 이끌고 있는 지금, 고등교육은 다시 한번 가장 기본적인 질문 앞에 서 있다. 우리는 이 교육을 통해 젊은 세대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가.
“아무도 뒤처지지 않게”라는 말의 공백
최근 고등교육 정책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표현 중 하나는 ‘포용’이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교육, 접근성을 넓히는 대학, 다양한 배경의 학습자를 포괄하는 제도가 강조된다. 이는 분명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이 구호는 한 가지 전제를 요구한다. 뒤처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가 분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방향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포용은 쉽게 형식적 언어로 전락한다. 대학은 더 많은 학생을 받아들이고, 더 다양한 경로를 제공하지만, 그 과정이 어떤 삶과 어떤 사회를 향하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결과적으로 ‘아무도 뒤처지지 않게’라는 말은 이동의 목적을 정하지 않은 채 속도만 관리하는 표현이 된다. 모두를 태운 열차가 어디로 향하는지 묻지 않는 한, 포용은 교육의 철학이라기보다 운영 원칙에 머문다.
이 지점에서 고등교육은 묘한 역설에 직면한다. 사회적 약자를 포함시키기 위해 제도를 확장할수록, 교육의 의미는 더욱 중립적이고 무색해진다. 무엇을 위한 기회인지, 어떤 가능성을 열어주기 위한 접근성인지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포용이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그 포용이 지향하는 세계가 먼저 제시돼야 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지금의 고등교육 담론은 중요한 질문 하나를 비워둔 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대학은 언제부터 ‘생산 시스템’이 되었나
대학이 스스로를 설명하는 언어는 지난 수십 년 사이 크게 달라졌다. 교육의 가치는 점점 더 수치와 지표로 환원되고, 성과는 관리 가능한 항목으로 분해된다. 학생 만족도, 취업률, 이수 기간, 연구 성과 지수는 대학의 현재를 설명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기준이 된다. 이 과정에서 대학은 지식과 사유의 공간이라기보다, 예측 가능하고 효율적인 생산 시스템에 가까운 모습으로 재구성돼 왔다. 이러한 변화는 역할의 전환으로 이어진다. 학생은 배움을 통해 변화하는 존재라기보다 ‘학습자’라는 관리 단위가 되고, 교수는 사유를 이끄는 존재가 아니라 콘텐츠를 전달하는 주체로 정리된다. 호기심과 탐구는 핵심 성과 지표에 포함되지 않는 요소로 밀려나고, 교육은 거래와 이행의 언어로 설명된다. 무엇을 얼마나 빠르게 전달했는지가 중요해질수록, 왜 배우는지는 점점 설명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 체계가 점점 스스로를 강화한다는 데 있다. 측정 가능한 것만이 중요해지고, 중요한 것은 측정 가능해야만 살아남는다. 대학은 점점 서로를 닮아가며, 동일한 지표를 놓고 경쟁한다. 차별성은 줄어들고, 교육의 고유한 목소리는 흐릿해진다. 한때 사회의 지적 양심이자 질문의 공간이었던 대학이, 점차 구분하기 어려운 기관으로 수렴해 가는 배경에는 바로 이 ‘관리 가능한 교육’이라는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자동화 시대, ‘내일의 직업’이라는 허상
고등교육 정책이 가장 자주 호출하는 미래는 언제나 노동시장의 변화다. 자동화와 인공지능이 기존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대학은 ‘미래 직업’을 대비하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한다. 새로운 기술에 맞는 전공을 신설하고, 산업 수요에 맞춘 교육과정을 재편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제시된다. 변화의 속도가 빠를수록, 교육 역시 그 속도를 따라가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는다. 그러나 이 접근은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내일의 직업을 예측하는 일 자체가 점점 더 불확실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화는 특정 직무를 대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업의 형태 자체를 재구성한다. 오늘 유망하다고 여겨지는 분야가 몇 년 뒤에도 같은 의미를 지닐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럼에도 대학은 여전히 특정 직무를 목표로 교육을 설계하며, 불확실성을 더 세분화된 기술 교육으로 대비하려 한다.
이 지점에서 교육은 미래를 준비하기보다 미래에 쫓기는 상태에 놓인다. ‘내일의 직업’을 상정한 교육은 필연적으로 단기적일 수밖에 없고, 변화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다시 수정돼야 한다. 결과적으로 대학은 미래를 앞서가기보다, 언제나 한 걸음 늦게 따라가는 구조에 갇힌다. 자동화 시대의 문제는 기술 부족이 아니라, 예측에 기반한 교육 모델 자체가 더 이상 안정적인 해답이 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능력은 무엇인가
자동화와 인공지능이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업무를 빠르게 대체하는 시대에, 대학 교육이 집중해야 할 지점은 오히려 기술이 잘 다루지 못하는 영역에 있다. 판단이 필요한 상황에서의 숙고, 가치가 충돌하는 순간의 선택,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고 책임을 감당하는 능력은 여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능력은 교육과정에서 부차적인 요소로 취급되거나, 측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주변부로 밀려난다. 문제는 이 능력들이 단순한 인문학적 소양이나 교양의 차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불확실한 환경에서 의미를 구성하고, 기술의 사용 방식에 윤리적 기준을 부여하며, 사회적 결과를 예측하는 힘은 자동화된 시스템이 대신해 줄 수 없다. 오히려 기술이 강력해질수록, 이러한 판단 능력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대학이 기술 활용 능력만을 강조할수록, 기술을 통제하고 성찰하는 역량은 교육의 사각지대로 남게 된다.
이 지점에서 교육은 훈련과 형성 사이의 선택을 요구받는다. 훈련은 특정 기능을 빠르게 습득하게 하지만, 형성은 시간을 들여 사고의 틀과 태도를 만들어 간다. 대학이 단기적 적응 능력에만 집중할 경우, 학생들은 변화에 반응하는 데는 익숙해질 수 있지만, 변화의 방향을 질문하는 힘은 갖기 어렵다. 자동화 시대의 교육 과제는 더 많은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함께 살아갈 인간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에 놓여 있다.
‘기술 부족’이 아니라 ‘의미 부족’의 문제
지금의 고등교육 담론은 대체로 동일한 진단을 반복한다. 대학이 산업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학생들은 충분한 기술을 갖추지 못한 채 사회로 나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처방 역시 익숙하다. 더 많은 실무 교육, 더 빠른 커리큘럼 개편, 더 촘촘한 산학 협력이 제시된다. 그러나 이러한 처방은 문제의 표면만을 다룰 뿐, 왜 교육이 공허하게 느껴지는지에 대한 설명은 제공하지 못한다. 실제로 대학이 겪고 있는 위기는 기술의 부족이라기보다 의미의 결핍에 가깝다.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느냐보다, 왜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을 얻지 못한다. 교육은 다음 단계로 이동하기 위한 조건으로 인식되고, 성찰이나 탐구는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취급된다. 이 과정에서 대학은 삶을 이해하는 틀을 제공하는 공간이 아니라, 다음 관문으로 넘어가기 위한 준비 구간으로 축소된다.
의미가 빠진 교육은 쉽게 소진된다. 아무리 최신 기술을 가르치더라도, 그것이 개인의 삶과 사회의 방향 속에서 어떤 위치를 갖는지 설명되지 않는다면 학습은 단기적 성과에 머문다. 기술은 끊임없이 갱신되지만, 의미를 구성하는 능력은 그렇지 않다. 대학이 다시 질문해야 할 것은 어떤 기술을 더할 것인가가 아니라, 이 교육이 어떤 세계를 전제하고 있는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다.
대학은 스스로를 변화에 열린 조직이라고 말해 왔다. 혁신, 전환, 유연성은 고등교육 담론에서 빠지지 않는 단어다. 그러나 실제 대학의 변화 속도는 이러한 언어에 비해 현저히 느리다. 이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에 가깝다. 교육과 연구, 평가와 재정이 모두 기존의 성과 지표와 관리 체계에 묶여 있는 한, 대학이 취할 수 있는 변화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교육 영역에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새로운 교육 방식을 시도하더라도, 그것이 기존의 평가 틀에 맞지 않는 순간 주변부로 밀려난다. 깊은 토론과 탐구 중심 수업은 시간 대비 효율이 낮다는 이유로 불리해지고, 정답이 없는 질문을 다루는 교육은 성과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축소된다. 대학이 변화를 말하면서도 동시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설계된 구조 안에 머무는 이유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혁신이 예외로 취급된다. 소수의 실험적 프로그램이나 특성화 사례는 주목받지만, 대학 전체의 운영 방식과 교육 철학을 바꾸는 계기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변화가 개인이나 프로젝트의 성취로 남는 한, 대학은 기존의 틀을 유지한 채 새로운 언어만 덧붙이게 된다. 고등교육의 전환은 선언이 아니라 구조의 재설계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점에서, 지금의 혁신 담론은 여전히 표면에 머물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대학이 동일한 궤적을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대학과 교육 실험들은 속도와 효율 대신 경험과 맥락을 중심에 두는 방식으로 고등교육을 재구성하려 한다. 캠퍼스를 지식 전달의 공간이 아니라 문제 해결과 탐구의 출발점으로 재정의하고, 교실 밖의 세계를 학습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시도들이다. 이들은 기술을 교육의 목적이 아니라 도구로 위치시키며, 배움의 과정 자체에 더 큰 비중을 둔다. 이러한 모델에서 교육은 더 이상 완결된 커리큘럼이 아니라, 학생이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이해된다. 정해진 답을 습득하기보다, 복합적인 문제를 해석하고 서로 다른 관점을 조율하는 경험이 교육의 핵심으로 자리 잡는다. 인공지능 역시 경쟁자가 아니라 협력자로 다뤄지며, 기술을 활용하되 기술에 의해 사고가 제한되지 않도록 설계된다. 이는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교육이 일관된 의미를 유지할 수 있는 한 가지 가능성을 보여준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시도들이 ‘더 혁신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덜 조급하기 때문’에 주목받는다는 사실이다. 이들 대학은 미래를 예측하려 하기보다, 불확실성을 전제로 교육을 설계한다. 무엇이 유망한 기술인지를 묻기보다, 어떤 판단과 태도가 장기적으로 유효한지를 질문한다. 변화의 속도에 맞추는 대신, 변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교육의 기준을 세우려는 접근이다.
이 지점에서 고등교육은 분명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하나는 더 빠른 대학이다. 학위 기간을 단축하고, 교육과정을 모듈화하며, 즉각적인 성과를 중심으로 대학을 재편하는 방향이다. 이 모델은 효율성과 접근성을 강조하며,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을 내세운다. 그러나 그 속도가 교육의 깊이를 보장해 주는지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다른 하나는 의미 있는 대학이다. 이 모델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고의 형성과 책임 있는 판단을 중시한다. 학생을 곧바로 노동시장에 투입 가능한 인력으로 만들기보다,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스스로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주체로 성장시키는 데 초점을 둔다. 단기적 성과는 눈에 잘 띄지 않을 수 있지만, 교육이 개인과 사회에 남기는 흔적은 더 오래 지속된다. 이 대비는 단순한 이상론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고등교육은 사회의 요구에 즉각 반응하는 기관이 될 수도 있고,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함께 숙고하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빠름과 의미 사이의 긴장은 지금의 대학이 피할 수 없는 질문이며, 그 답은 각 대학의 구조와 철학 속에서 드러나게 된다.
대학은 다시 질문하는 공간이 될 수 있을까
고등교육을 둘러싼 논의는 여전히 분주하다. 기술은 더 빠르게 발전하고, 노동시장은 더 불확실해지며, 대학에 요구되는 역할은 계속 늘어난다. 그러나 질문의 방향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러한 논의는 같은 자리를 맴돌 가능성이 크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어떤 기술을 더할 것인가라는 질문만으로는 대학이 처한 혼란을 설명하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더 근본적이다. 대학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그리고 어떤 인간과 어떤 사회를 전제하고 교육을 설계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교육을 성장 전략의 수단으로만 이해할 때, 대학은 필연적으로 정책과 산업의 하위 요소로 축소된다. 반대로 대학이 사유와 판단, 책임을 기르는 공간이라는 정체성을 회복할 때, 기술 변화는 위기가 아니라 교육의 조건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대학의 미래는 속도의 경쟁이 아니라 방향의 선택에 달려 있다. 더 빠른 교육이 아니라, 더 깊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교육. 더 많은 기술이 아니라, 기술을 다룰 줄 아는 인간을 길러내는 교육. 대학이 다시 질문하는 공간이 될 수 있을지 여부는, 결국 지금 우리가 고등교육을 어떤 언어로 설명하고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2026년을 시작한 지금, 대학은 다시 한번 그 질문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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