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AI 이후의 대학, 인간의 역량을 다시 묻다 ②] 정답을 찾는 평가에서, 판단을 증명하는 평가로

영국 고등교육정책연구소(HEPI)가 펴낸 ‘Being indispensable: Capabilities for a human-AI world, the FUTURES framework’는 생성형 AI 시대 대학이 맞닥뜨린 가장 현실적인 장면을 정면으로 건드린다. 학생들은 이미 AI를 쓰고 있고, 대학은 여전히 과거의 평가 관성을 붙들고 있다. 이 간극이 커질수록 수업은 현실을 놓치고, 평가는 신뢰를 잃는다. 생성형 AI의 확산이 대학에 던진 진짜 과제는 학생이 AI를 썼는지 안 썼는지를 색출하는 일이 아니라, 그 도구를 어떤 기준으로 활용했고 어디에서 인간의 해석과 판단이 작동했는지를 교육적으로 드러내는 일이다. 생성형 AI는 이미 교수·학습과 행정 전반에 깊이 들어와 있고, 학생과 교직원은 제도보다 빠른 속도로 적응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학의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까운 과제가 됐다.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질문의 방향이다. 그동안 많은 대학은 생성형 AI를 둘러싼 논의를 학업윤리 위반 가능성이나 과제 대필의 위험으로 좁혀 왔다. 물론 그것은 중요한 문제다. 다만 거기서 멈추면 대학은 기술 변화가 흔드는 학습의 구조를 제대로 읽지 못한다. 학생이 AI를 활용해 자료를 요약하고, 초안을 작성하고, 아이디어를 발상하고, 발표 구조를 정리하는 현실이 이미 보편화된 상황에서는 “금지”만으로 교육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대학이 묻기 시작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학생은 그 결과물을 검증했는가. 어떤 한계를 발견했는가. 왜 그 판단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는가. 그리고 최종 책임은 누구의 이름으로 지는가. 평가의 중심이 결과물의 소유권에서 사고 과정의 책임으로 이동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AI를 금지하는 대학은 오래 버티기 어렵다

교육 현장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생성형 AI는 비교과 특강에서 잠깐 다루고 끝낼 보조 주제가 아니다. 학생들은 수업 밖에서 먼저 사용법을 익히고, 대학은 뒤늦게 원칙을 고민하는 역전 현상을 겪고 있다. 실제 현장에서도 학생들은 생성형 AI를 학습에 적극 활용하면서도,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어떻게 밝혀야 하는지, 어떤 방식이 진정성 있는 학습으로 인정되는지에 대해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교원들 역시 기술의 가능성은 체감하면서도, 전공 수업과 평가 안에서 이를 어떻게 책임 있게 통합할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부족했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결국 수업 설계와 평가 원칙의 재정비를 요구하는 신호다. 생성형 AI가 현실이라면, 대학은 그 현실을 교육과정 안에서 다루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이 지점에서 FUTURES 프레임워크가 주목한 것은 “도구 사용 능력”만이 아니었다. 이 틀은 기술 인프라가 충분한가를 따지는 기관 준비도 점검을 넘어, 학생 개인이 어떤 역량을 길러야 하는지를 중심에 둔다. Jisc의 AI maturity toolkit이 거버넌스와 시스템, 데이터 관리, 기관 차원의 준비 상태를 다룬다면, FUTURES는 학생의 역량 발달 경로와 교육과정 안의 인간 중심 가치 정착을 다룬다. 다시 말해 서버를 갖추고 정책 문서를 만드는 일만으로는 AI 시대 대학이 완성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학생이 디지털 유창성, 윤리적 판단, 회복탄력성, 사회적 지능, 전문적 참여를 실제 학습 경험 속에서 어떻게 축적하느냐는 문제다.

그래서 AI 리터러시는 더 이상 별도의 보충 수업으로 남아 있을 수 없다. 전공 바깥에서 “AI 사용법”을 가르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수업 안에서, 전공 맥락 안에서, 과제와 토론과 프로젝트 안에서 다뤄져야 한다. 학생이 생성형 AI 결과물과 인간이 쓴 결과물을 비교하고, 차이를 분석하고, 왜 더 나은 판단이 필요한지 설명하는 활동은 단순한 디지털 활용 훈련이 아니라 학문적 훈련이 된다. 구조화된 성찰 과제 역시 같은 의미를 가진다. 무엇을 AI에 맡겼고 무엇을 스스로 판단했는지, 어느 대목에서 오류를 발견했고 어떻게 수정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장치는 곧 학습의 질을 높이는 도구가 된다. 학습성과를 명확히 알리고, AI 사용 가능 범위와 표기 방식, 독립적 작업의 기준을 선명하게 제시해야 한다는 원칙은 이런 이유에서 나온다. 그것이 공정성과 자신감을 함께 높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용 여부가 아니라 사용의 방식과 책임이다

평가의 언어도 바뀌어야 한다. 그동안 많은 과제는 학생이 혼자서 결과물을 생산했는지를 전제로 설계됐다. 하지만 이제 질문은 달라졌다. 학생이 혼자 썼는가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도구를 활용했고 그 과정에서 어떤 판단을 수행했는가가 핵심이 된다. 생성형 AI를 아예 금지하는 방식은 현실적으로도 오래 지속되기 어렵고, 교육적 가치 역시 크지 않다. 오히려 일부 과제에서는 AI 사용을 장려하거나 필수화하는 편이 더 정직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학생이 왜 그 도구를 썼는지 설명해야 하고, 출력물의 한계와 오류를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하며, 최종 결과물에 어떤 식으로 반영했는지 밝혀야 한다. 이 과정은 학업정직성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 맞는 정직성의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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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여기서 대학이 놓치지 말아야 할 단어는 ‘진정성’이다. 생성형 AI가 아무리 정교한 문장을 만들어도, 해석과 적용과 판단의 책임까지 대신 지지는 못한다. 그래서 앞으로의 평가는 학생이 무엇을 산출했는가보다, 그 산출을 어떤 근거 위에서 선택했고 어떤 맥락에 적용했는가를 더 많이 물어야 한다. 인간의 통찰이 여전히 결정적인 영역, 즉 해석, 적용, 증거 통합, 의사결정의 정당화, 윤리적 추론, 창의성 같은 부분이 평가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원칙은 매우 분명하다. 진짜 과제는 “AI를 썼느냐”가 아니라 “AI를 사용한 뒤에도 여전히 인간에게 남아 있는 판단을 어떻게 보여주느냐”로 옮겨간다.

이 변화는 생각보다 훨씬 큰 전환을 요구한다. 기존의 평가는 종종 답을 빠르게 정리하고 깔끔하게 제시하는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생성형 AI는 바로 그 일을 매우 빠르게 수행한다. 그렇다면 대학은 무엇을 평가해야 하는가. 하나의 근거만이 아니라 서로 충돌하는 자료를 비교하는 능력, 정보의 신뢰도를 점검하는 능력, 알고리즘의 편향 가능성을 의식하는 능력, 불확실한 상황에서 선택의 이유를 설명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 FUTURES의 ‘회복탄력성과 적응력’ 영역이 비판적 사고, 창의성, 평생학습, 모델 편향 인식, 혁신 방법론, 복잡한 의사결정을 묶어 제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앞으로 대학의 시험과 과제는 단순 산출물보다 해석의 정교함과 판단의 책임성을 더 강하게 요구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교수자는 감시자가 아니라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평가가 바뀌려면 교원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이제 교수자는 학생이 AI를 썼는지 추적하는 감시자보다, 어떤 과제가 인간의 사고를 드러내는지 설계하는 기획자에 더 가까워져야 한다. 실제로 교원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도구 사용 교육이 아니다. 자신의 수업에서 생성형 AI가 무엇을 바꾸는지 성찰하고, 그것이 교육 목표와 어떻게 만나는지 검토하며, 학생에게 어떤 기대를 분명하게 전달할 것인지 정리하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 생성형 AI를 활용해도 교수의 교육 전문성은 대체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어떤 기준을 세워야 하는지, 어떤 과제가 학생의 독립적 사고를 드러내는지 판단하는 능력은 더 중요해진다. 교원의 전문성은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차원의 설계 능력으로 이동한다.

교원 연수 역시 선택적 역량 개발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AI 활용 역량, 윤리와 제도 준수에 대한 이해, 학문 분야를 넘는 협력 체계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 특히 인문학과 예술 분야처럼 진정성, 해석, 창의성의 의미를 더 예민하게 다루는 학문 분야일수록 이러한 논의는 더 정교해야 한다. 생성형 AI가 초안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곧 해석을 대신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간의 창의성이 언제 중심에 남아야 하는지, AI는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토론하는 수업이 더 중요해진다.

대학 전체가 다시 배워야 할 AI 시대의 교육 원리

생성형 AI는 강의실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 차원의 전략과 거버넌스도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교육 가치와 데이터 거버넌스, 학업정직성, 형평성, 지속가능성을 함께 묶는 원칙이 필요하고, 학생 모두가 적절한 생성형 AI 도구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환경 영향에 대한 안내와 책임도 포함돼야 한다. 특히 유료형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학생만 더 강력한 도구를 활용하는 상황은 대학 교육의 공정성을 정면으로 흔든다. 제도적 개입 없이 방치할 경우 기존의 불평등이 디지털 역량 격차로 다시 확대될 수 있다는 경고는 결코 가볍지 않다. 대학이 AI 시대의 교육을 말하려면, 사용 가능 여부만이 아니라 접근 가능 여부까지 함께 다뤄야 한다.

이 때문에 명확한 기관 정책이 중요하다. 어떤 상황에서 생성형 AI 사용이 허용되는지, 어떤 경우에는 제한되는지, 학생은 어떤 방식으로 AI 지원을 밝혀야 하는지, 각 학문 분야에서 진정성 있는 학습은 무엇을 뜻하는지까지 세밀하게 설명해야 한다. 모호한 원칙만으로는 불안을 줄일 수 없다. 오히려 학생과 교원 모두를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AI 환경에 맞는 새로운 학업정직성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주문은, 징계를 강화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기준을 현실에 맞게 다시 세우자는 요청이다. 결국 대학의 신뢰는 금지의 강도보다 설명의 명확성에서 나온다.

여기에 환경과 지속가능성 문제도 빠질 수 없다. 생성형 AI는 교육 효율을 높일 수 있지만, 상당한 계산 자원과 에너지를 요구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따라서 대학이 AI를 적극 활용하겠다고 말할 때는 그 편의성만이 아니라 자원 비용과 환경 책임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디지털 전환이 교육 혁신의 이름으로만 소비되면, 대학은 또 다른 비용을 외면한 채 앞만 보게 된다. AI 전략에 에너지와 탄소 고려를 포함시키고, 조달과 배치 단계에서 투명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안은 그래서 교육정책의 부수 항목이 아니라 핵심 원칙에 가깝다.

정답보다 설명, 결과보다 판단

결국 생성형 AI 시대의 대학은 스스로의 오래된 질문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 대학은 학생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그 답은 기술 자체보다 교육의 방식에서 나온다. 이제 대학은 정답을 빠르게 정리하는 학생보다, 근거를 비교하고 오류를 판별하며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판단을 설명할 수 있는 학생을 길러야 한다. 평가 역시 그 변화를 따라가야 한다. 출력물을 얼마나 그럴듯하게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그 출력을 어떻게 검토했고 무엇을 자신의 사고로 다시 구성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인간의 이름으로만 책임질 수 있는 판단, 해석, 윤리, 창의, 설명의 능력이 앞으로의 학습성과가 된다.

생성형 AI는 대학을 대체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학이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평가 방식과 학습의 정의를 다시 묻게 만든다. 살아남는 대학은 AI를 가장 빨리 들여온 대학이 아니라, AI를 포함한 학습 환경 속에서도 인간의 사고와 책임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에서 완성되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가르친 대학일 것이다. 정답을 찾는 평가의 시대는 서서히 저물고 있다. 이제 대학은 판단을 증명하는 평가로 건너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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