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학령인구 절벽이 바꾼 대학시장의 질서] ①‘약탈적 모집’인가, 수요자의 선택인가

영국 HEPI 보고서가 던진 대학 모집전쟁의 질문

학령인구 감소는 대학 위기의 가장 익숙한 설명이다. 학생 수가 줄어드니 대학이 어려워지고,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이 늘어나며, 결국 일부 대학은 통폐합이나 폐교 압박에 놓인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설명만으로는 고등교육 위기의 실제 작동 방식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다. 학생 수가 줄어든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줄어든 학생이 어디로 이동하는가, 그리고 그 이동의 결과로 어떤 대학과 지역이 먼저 흔들리는가이다.

영국 고등교육정책연구소 HEPI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 「Demographic decline and predatory recruitment: The twin threats to English higher education into the 2040s」는 이 질문을 정면으로 다룬다. 보고서는 잉글랜드 고등교육이 인구구조 변화, 재정 압박, 대학 간 모집 경쟁이라는 세 가지 힘이 결합된 구조적 긴장 상태에 놓였다고 진단한다. 특히 주목한 것은 상위권 대학, 정확히는 ‘하이 타리프 대학’으로 분류되는 대학들이 과거보다 낮은 성적대의 학생까지 더 폭넓게 받아들이는 현상이다.

HEPI는 이를 ‘약탈적 모집’이라고 불렀다. 표현은 강하다. 상위권 대학이 재정 압박을 견디기 위해 입학 문턱을 낮추고, 과거라면 중위권 또는 하위권 대학에 진학했을 학생들을 흡수하면서 고등교육 생태계 전체를 불안정하게 만든다는 문제의식이다. 보고서의 관점에서 보면 이 현상은 단순한 모집 확대가 아니다. 학생 수가 줄어드는 시대에 상위권 대학이 자기 규모를 지키거나 키우기 위해 아래쪽 대학의 학생 기반을 잠식하는 구조적 행동이다.

그러나 이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전에 한 번 멈춰 설 필요가 있다. 대학의 관점에서는 ‘약탈’일 수 있지만, 학생과 학부모의 관점에서도 정말 그렇게 볼 수 있는가. 과거에는 진학하기 어려웠던 대학이 문턱을 낮추고 더 많은 학생에게 기회를 준다면, 수요자 입장에서는 그것이 오히려 선택권의 확대일 수 있다. 학령인구가 줄고, 대학 진학의 투자 대비 효과에 대한 의심이 커지는 시대에 학생과 학부모가 더 선호도 높은 대학, 더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선택지를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상위권 대학이 학생을 빼앗는가”라는 단순한 질문으로는 다룰 수 없다. HEPI 보고서가 던진 진짜 질문은 더 복잡하다. 개별 대학의 생존 전략과 학생의 합리적 선택이 모였을 때, 고등교육 생태계 전체에는 어떤 불균형이 생기는가. 그리고 그 불균형을 사회는 어디까지 시장의 결과로 받아들일 것인가.

2030년 이후, 다시 줄어드는 18세 인구

HEPI 보고서의 출발점은 인구구조다. 보고서에 따르면 잉글랜드의 18세 인구는 세 단계의 흐름을 보인다. 2020년 전후까지 감소했고, 2020년부터 2030년 무렵까지는 빠르게 증가한다. 하지만 2030년 이후에는 다시 감소 국면으로 들어간다. 2020년대의 일시적 인구 증가가 대학에 잠시 숨통을 틔워줄 수는 있지만, 그 뒤에 더 긴 하강 국면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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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중요한 것은 대학 진학 수요가 여전히 18~20세 청년층에 크게 의존한다는 점이다. HEPI는 이 연령대가 대학 입학자의 약 80%를 차지한다고 본다. 물론 성인학습자, 시간제 학생, 국제학생, 온라인 교육 수요가 일부 보완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의 전통적 대학 구조에서 핵심 수요층은 여전히 고교 졸업 직후 대학에 진학하는 청년층이다. 따라서 18세 인구가 줄어들면 대학 수요도 직접적인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과거에는 다른 일이 벌어졌다. 영국은 1970년대에도 인구 증가 뒤 감소를 예상했다. 당시 정부는 인구가 일시적으로 늘어나는 시기에 대학 규모를 과도하게 키우지 않고, 이후 인구 감소기에 낭비되는 자원이 생기지 않도록 하려는 이른바 ‘터널링’ 접근을 고민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학 진학률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학생 수가 계속 늘었다. 인구는 줄어도 더 많은 비율의 청년이 대학에 진학했기 때문이다.

HEPI는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고 본다. 당시의 진학률 상승은 낮은 출발점에서 이뤄졌다. 대학 진학이 보편화되기 전의 사회에서 선진국 평균을 따라잡는 과정이었다. 반면 현재의 고등교육 진학률은 이미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고, 최근에는 상승세가 뚜렷하게 정체되어 있다. 진학률이 다시 크게 뛰지 않는다면, 18세 인구 감소는 학생 수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보고서는 2026년부터 2042년까지 잉글랜드 고등교육 전체 학생 수가 약 16% 줄고, 인구 감소가 본격화되는 2030년부터 2042년까지는 약 18.5%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 숫자는 단순한 통계 예측이 아니라 대학 운영의 전제 자체를 바꾸는 수치다. 많은 대학이 현재의 시설, 교직원, 학과 구조, 재정 계획을 학생 수 유지 또는 성장에 맞춰 설계해 왔다면, 앞으로는 그 전제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재정 압박이 모집 행동을 바꾼다

인구 감소만으로 HEPI 보고서의 문제의식을 설명할 수는 없다. 또 하나의 핵심은 재정 압박이다. 잉글랜드 대학은 등록금 상한이 오랫동안 실질적으로 동결되면서 학생 1인당 재원의 가치가 크게 줄었다. 명목 등록금은 일부 올랐지만 물가 상승을 따라가지 못했고, 대학이 학생 한 명을 교육하면서 확보하는 실질 재원은 감소했다.대학 운영비는 반대로 늘었다. 교직원 인건비, 시설 유지비, 연구 인프라, 학생 지원 서비스, 디지털 전환 비용은 모두 상승 압력을 받는다. 국제학생 등록금이 일부 대학의 재정을 떠받쳐 왔지만, 국제학생 시장 역시 정책 변화와 지정학적 변수에 따라 언제든 불안정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이 가장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대응은 학생 수를 유지하거나 늘리는 것이다.

HEPI 보고서가 특히 주목한 부분도 여기에 있다. 상위권 대학이라고 해서 재정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다. 오히려 이들 대학은 대규모 연구 인프라, 높은 인건비, 넓은 캠퍼스, 다양한 학생 지원 서비스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안정적 수입 확보가 더 중요할 수 있다. 등록금의 실질 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학생 수 확대는 재정 압박을 완화할 수 있는 직접적인 방법이다. 보고서는 상위 대학들이 입학 요건의 경계선을 조정하면서 더 많은 학생을 모집해 왔다고 분석한다. 이는 개별 대학의 관점에서는 이해 가능한 행동이다. HEPI 역시 상위권 대학의 행동을 단순히 비합리적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각 대학은 자기 조직의 수입을 유지하고, 이미 확장된 시설과 인력을 감당해야 한다. 문제는 그 선택이 전체 고등교육 생태계 안에서 어떤 결과를 낳느냐이다.

상위권 대학의 성장이 전체 성장만은 아니었다

HEPI 보고서가 제시한 수치는 이 문제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UCAS 자료를 바탕으로 한 분석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5년 사이 영국 내 학생의 상위 타리프 대학 합격자는 약 11만5천 명에서 14만6천 명으로 늘었다. 약 3만 명, 비율로는 27%가량 증가한 것이다. 같은 기간 전체 합격자 수는 약 46만5천 명에서 50만 명 조금 넘는 수준으로 늘어 약 7% 증가에 그쳤다.

이 차이가 중요하다. 상위권 대학의 모집 증가는 전체 학생 시장이 커졌기 때문에 생긴 자연스러운 증가만은 아니었다. HEPI는 만약 상위권 대학이 2016년의 시장 점유율을 그대로 유지했다면 2025년 상위권 대학의 합격자는 약 12만5천 명 수준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실제 합격자는 약 14만6천 명이었다. 이 차이는 상위권 대학의 성장 상당 부분이 전체 시장의 확대가 아니라 다른 대학군으로 갈 수 있었던 학생의 재분배였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2016년부터 2025년까지 상위권 대학 합격자 증가분 약 3만745명 가운데 약 9천300명만 전체 시스템 성장으로 설명할 수 있고, 나머지 약 2만1천400명은 다른 대학군으로부터의 이동, 즉 재분배에 해당한다고 분석한다. 상위권 대학의 성장이 모두 “새롭게 생긴 수요”가 아니라, 기존 수요의 이동이었다는 뜻이다.

이 대목에서 HEPI는 ‘잠식’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상위권 대학이 과거보다 더 넓은 성적대의 학생을 받아들이면서 중위권과 하위권 대학의 전통적 모집 기반을 침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관점의 차이가 발생한다. 학생을 잃은 대학의 입장에서는 잠식이다. 하지만 학생을 모집한 대학의 입장에서는 정상적인 경쟁 행동이다. 학생과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더 선호도 높은 대학을 선택한 결과일 수 있다.

따라서 같은 현상을 두고도 세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중하위권 대학의 관점에서는 생존 기반의 상실이다. 상위권 대학의 관점에서는 재정 압박 속에서의 합리적 모집 전략이다. 교육수요자의 관점에서는 더 나은 기회에 대한 선택이다. HEPI 보고서의 ‘약탈적 모집’이라는 표현은 이 가운데 첫 번째 관점에 가장 강하게 서 있다.

BBB 이하 학생의 상위권 대학 진학 증가

HEPI가 ‘약탈적 모집’이라는 강한 표현을 쓴 이유는 단순히 상위권 대학의 전체 모집 규모가 커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더 핵심적인 변화는 상위권 대학이 과거보다 낮은 성적대의 학생을 더 많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A레벨 3과목 이상을 가진 지원자 가운데 BBB 이하 성적으로 상위 타리프 대학에 합격한 학생 수는 2016년 1만3천485명에서 2025년 2만5천270명으로 늘었다. 10년 사이 거의 두 배 가까운 증가다. 상위권 대학 신입생 중 BBB 이하 성적 학생이 차지하는 비율도 2016년 15%에서 2025년 29%로 상승했다. 또한 전체 하위 성취 학생 가운데 상위권 대학에 진학한 비율도 2016년 22%에서 2025년 30%로 올라갔다.

이 수치는 상위권 대학의 모집 방식이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과거라면 중위권 또는 하위권 대학으로 향했을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이 이제 상위권 대학으로 이동하고 있다. HEPI는 이 현상을 고등교육 생태계의 재분배로 본다. 대학 간 서열의 위쪽에서 모집 범위가 아래로 내려오고, 그 결과 아래쪽 대학들이 모집 가능한 학생을 잃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도 질문은 남는다. 성적 기준이 낮아진 것을 반드시 부정적으로 볼 수 있는가. 상위권 대학이 더 다양한 성적대의 학생을 받아들이는 것은 고등교육 접근 기회의 확대일 수도 있다. 특히 학생의 잠재력과 성취 가능성을 단순 성적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위권 대학의 문턱 완화는 더 많은 학생에게 상향 이동의 기회를 제공하는 정책적 효과를 가질 수도 있다. 문제는 그 기회 확대가 전체 시스템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배분되느냐이다. 상위권 대학으로 진학한 학생에게는 기회일 수 있다. 그러나 그 학생들이 빠져나간 중하위권 대학에는 충원난과 재정 압박이 남는다. 개별 학생에게는 더 나은 선택이지만, 전체 대학 생태계에는 불균등한 충격이 된다.

캐스케이드 효과, 위기는 아래로 흐른다

HEPI 보고서가 강조하는 또 하나의 개념은 캐스케이드 효과다. 상위권 대학의 모집 확대가 곧바로 하위권 대학만을 타격하는 것은 아니다. 먼저 중위권 대학이 영향을 받는다. 상위권 대학이 과거보다 낮은 성적대의 학생을 받아들이면, 중위권 대학은 자신들이 전통적으로 모집하던 학생 일부를 잃게 된다. 그러면 중위권 대학도 생존을 위해 더 낮은 성적대의 학생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하위권 대학의 학생 풀이 다시 줄어든다. 이처럼 압박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상위권 대학이 모집 범위를 넓히면 중위권 대학은 문턱을 낮추고, 중위권 대학이 문턱을 낮추면 하위권 대학은 더 큰 충격을 받는다. HEPI는 이를 두 단계의 재분배로 설명한다. 상위권 대학의 확장으로 중위권·하위권 대학에서 상위권 대학으로 1만~1만5천 명가량의 학생 이동이 발생하고, 중위권 대학의 추가 조정으로 하위권 대학에서 중위권 대학으로 5천~8천 명 규모의 추가 이동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하위권 대학은 연간 1만5천~2만3천 명의 신입생 손실을 겪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평균 학업 기간을 고려한 재학생 규모로 환산하면 하위권 대학 전체에서 5만~7만5천 명에 이르는 학생 기반이 사라진 셈이다. 이는 단순히 몇몇 대학의 충원율 하락 문제가 아니라, 대학군 전체의 구조적 취약성 문제다.

중요한 점은 이 현상이 인구 증가기에도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2020년대 잉글랜드의 18세 인구는 증가 국면에 있었다. 그럼에도 하위권 대학은 이미 압박을 받았다. 그렇다면 2030년 이후 실제 인구 감소가 시작되면 충격은 더 커질 수 있다. 전체 학생 풀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상위권 대학이 자기 규모를 유지하거나 더 키운다면, 중하위권 대학이 떠안는 감소 폭은 평균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다.

‘약탈’이라는 말의 힘과 한계

HEPI가 사용한 ‘약탈적 모집’이라는 표현은 현상의 위험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대학들이 각자 생존을 위해 움직일 때, 그 행동이 전체 시스템의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특히 하위권 대학이 지역사회에서 담당하는 기능을 고려하면 이 문제는 단순한 대학 간 경쟁으로만 볼 수 없다. 하지만 ‘약탈’이라는 단어에는 한계도 있다. 약탈이라는 표현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를 만든다. 상위권 대학은 빼앗는 쪽, 중하위권 대학은 빼앗기는 쪽으로 보인다. 이 구도는 대학 생태계의 위기를 설명하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학생은 대학의 소유물이 아니다. 특정 성적대의 학생이 반드시 특정 대학군으로 가야 하는 것도 아니다. 상위권 대학이 입학 문턱을 낮췄고, 학생이 그 기회를 선택했다면 그것을 곧바로 약탈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오히려 학생 입장에서는 더 좋은 대학, 더 높은 평판, 더 넓은 네트워크, 더 나은 취업 가능성으로 보이는 선택지를 택한 것이다.

이 점은 한국 고등교육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방대학의 충원난을 말할 때 흔히 수도권 집중을 문제로 지적한다. 그러나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 수도권 대학 선호는 비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다. 수도권은 더 넓은 노동시장, 인턴십 기회, 문화 인프라, 교통 접근성, 대학 브랜드를 제공한다. 지방대학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학생에게 지방대학을 선택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시장의 선택을 그대로 방치하면 된다는 뜻도 아니다. 학생의 합리적 선택이 모여 특정 지역의 고등교육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학생의 선택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의 결과로 발생하는 사회적 공백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다.

학생 선택권과 대학 생태계 사이의 딜레마

HEPI 보고서도 이 딜레마를 인식한다. 보고서는 상위권 대학의 모집 확대를 제한하기 위해 일종의 모집 상한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대학별 모집 규모를 제한해 상위권 대학이 무제한으로 학생을 흡수하지 못하게 해야 고등교육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곧바로 학생 선택권 문제와 충돌한다. 만약 상위권 대학이 더 많은 학생을 받아들일 수 있는데 정부가 이를 막는다면, 일부 학생은 자신이 갈 수 있었던 대학에 가지 못하게 된다. 특히 성적이 다소 낮지만 상위권 대학 진학을 기대할 수 있었던 학생에게는 기회의 제한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HEPI 보고서도 이런 조치가 “학생이 기관보다 중요하다”는 최근 고등교육의 시장주의적 관점과 충돌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고등교육 정책은 학생 선택권과 대학 생태계 안정성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 학생 선택권만 강조하면 지역 고등교육 인프라가 무너질 수 있다. 반대로 대학 생태계 보호만 강조하면 학생에게 더 나은 선택지를 제한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어느 쪽도 간단한 해법은 아니다.

따라서 ‘약탈적 모집’이라는 표현은 논쟁의 출발점으로는 유용하지만, 결론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현상을 공정하게 보려면 대학의 관점, 학생의 관점, 사회의 관점을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 대학의 관점에서는 모집 기반의 잠식이다. 학생의 관점에서는 선택권의 확대다. 사회의 관점에서는 고등교육 기능의 재배치 문제다.

위기의 핵심은 ‘누가 빼앗았는가’가 아니다

HEPI 보고서가 보여준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인구 감소의 충격이 자동으로 균등하게 배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학생 수가 10% 줄어든다고 모든 대학이 10%씩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상위권 대학이 모집 규모를 유지하면, 중하위권 대학은 10%보다 훨씬 더 큰 감소를 겪을 수 있다. 상위권 대학이 더 성장하면, 아래쪽 대학의 충격은 더 커진다. 보고서의 시나리오 분석도 이 점을 보여준다. 모든 대학이 인구 감소에 비례해 함께 줄어드는 경우에는 상위권, 중위권, 하위권 대학 모두 2030년부터 2042년까지 약 18.5~19% 수준의 감소를 겪는다. 그러나 상위권 대학이 2030년의 모집 규모를 유지하면 중하위권 대학은 약 26% 감소를 감당해야 한다. 상위권 대학이 2030년 이후에도 계속 모집을 늘리면 중하위권 대학의 감소 폭은 평균 29% 수준까지 커질 수 있다.

이 차이는 고등교육 위기의 본질을 보여준다. 문제는 전체 학생 수 감소만이 아니다. 감소의 부담이 어디에 집중되느냐가 핵심이다. 그리고 그 부담의 배분은 자연법칙이 아니라 대학의 모집 행동, 학생의 선택, 정부의 규제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제미나이 생성이미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감소가 어떤 대학과 지역에 집중될지는 정책과 시장의 상호작용에 따라 달라진다. 수도권 대학이 계속 선호되고, 상위권 대학이 더 넓은 성적대의 학생을 받아들이며, 지방대학의 지역 기반이 약화된다면 인구 감소의 충격은 지방 중소대학에 먼저, 더 크게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

이 논의가 중하위권 대학을 무조건 보호하자는 주장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모든 대학을 현재 모습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을 수 있다. 학령인구가 줄고 고등교육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바뀌는 상황에서 대학도 변해야 한다. 경쟁력이 낮고 교육의 질을 유지하지 못하는 대학까지 모두 보존해야 한다는 논리는 사회적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다만 대학을 시장에서 탈락하는 하나의 기관으로만 보아서도 안 된다. 대학은 지역에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해 왔다. 청년 교육, 지역 인재 양성, 보건·복지·교육 인력 공급, 성인학습, 지역 산업과의 산학협력, 지역 문화 활동, 청년 정주 기반 등이 그것이다. 특정 대학이 축소되거나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지는 것은 강의실만이 아니다. 지역의 교육 기회와 인력 순환 구조, 때로는 지역사회가 미래 세대를 붙잡을 수 있는 기반도 함께 약화된다.

그래서 앞으로의 논의는 “어떤 대학을 살릴 것인가”보다 “어떤 고등교육 기능을 남길 것인가”로 이동해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은 존중되어야 한다. 동시에 그 선택이 낳는 지역적 공백도 사회가 책임 있게 다뤄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학생을 특정 대학에 묶어두는 것이 아니라, 줄어드는 수요 속에서도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고등교육 기능이 사라지지 않도록 재설계하는 데 있다.

HEPI 보고서가 한국에 던지는 질문

HEPI 보고서는 영국 고등교육의 현실을 다룬다. 그러나 그 문제의식은 한국에도 낯설지 않다. 한국은 이미 학령인구 감소, 수도권 집중, 지방대학 충원난, 대학 구조조정, 정부 재정지원사업 중심의 대학 재편을 동시에 겪고 있다. 영국에서 ‘하이 타리프 대학’과 중하위권 대학 사이의 문제가 있다면, 한국에서는 수도권 대학과 비수도권 대학, 상위권 대학과 지방 중소대학 사이의 문제가 있다.

물론 두 나라의 제도와 맥락은 다르다. 영국의 타리프 그룹과 한국의 대학 서열 구조를 그대로 대응시킬 수는 없다. 영국의 등록금 체계와 한국의 재정지원 구조도 다르다. 그러나 공통된 질문은 있다. 학생 수가 줄어드는 시대에 선호도 높은 대학이 더 많은 학생을 흡수하면, 나머지 대학은 어떤 방식으로 재편되는가. 학생 선택권과 지역 고등교육 인프라 사이의 긴장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대학 구조조정의 목표는 기관의 생존인가, 교육 기능의 재배치인가.

HEPI의 ‘약탈적 모집’이라는 표현은 이 질문을 불편하지만 선명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한국의 논의는 그 표현을 그대로 가져오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수요자의 선택을 약탈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더 선호도 높은 대학을 선택하는 것은 학생과 학부모의 자연스러운 권리다. 그러나 그 권리의 집합적 결과가 특정 지역의 고등교육 기반을 무너뜨린다면, 사회는 그 문제를 방치할 수도 없다.

결국 학령인구 감소 시대의 대학 위기는 ‘누가 학생을 빼앗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줄어든 교육수요가 어떤 기준으로 재배치되고, 그 결과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고등교육 기능이 어디에서 사라지는가의 문제다. HEPI 보고서가 던진 질문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대학은 더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다. 학생은 더 신중하게 선택할 것이다. 이제 남은 질문은 그 경쟁과 선택의 결과를 사회가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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