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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보다 먼저 봐야 할 것은 ‘형식’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2026년 한 해 동안 창업지원에 투입하겠다고 밝힌 예산은 총 3조 4,645억 원이다. 참여 기관은 111곳, 추진 사업은 508개에 이른다. 단일 연도로 보면 적지 않은 규모이며, 전년 대비 예산은 5.2% 증가했다. 그러나 이번 발표의 핵심을 단순히 ‘얼마를 쓰느냐’로만 이해하기에는, 보도자료가 담고 있는 정책적 메시지는 다른 지점에 놓여 있다. 이번 공고의 중심에는 예산 규모보다도 ‘통합’이라는 형식, 다시 말해 창업정책을 어떻게 정리하고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정부의 접근 방식이 자리하고 있다. 이번 「2026년 중앙부처 및 지자체 창업지원사업 통합공고」는 개별 부처나 지자체가 각각 발표하던 창업지원사업을 하나의 목록으로 묶어 제시한다. 법적 근거는 「중소기업창업 지원법」 제14조로, 예비창업자와 창업기업이 정책 정보를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이 통합공고는 2016년부터 이어져 왔으며, 2021년 광역지자체, 2022년 기초지자체까지 포함 범위를 넓혀왔다. 이번 공고는 그 확장 흐름이 한 단계 더 진행된 결과물이다.
이번 공고에 포함된 기관 수는 중앙부처 15곳, 지자체 96곳이다. 중앙부처 수는 전년 대비 2곳 늘었고, 지자체는 8곳이 추가됐다. 사업 수 역시 79개가 늘어났다. 외형적으로 보면 창업정책의 참여 주체와 사업 규모는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 통합이 의미하는 바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통합의 성격은 전략적 통합이라기보다는 정보적 통합에 가깝다는 점이 드러난다. 통합공고는 다양한 사업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해 주지만, 각 사업의 설계 방식과 목표, 평가 기준은 여전히 개별 부처와 지자체 단위로 유지된다. 다시 말해 창업정책은 하나의 큰 전략 아래 통합돼 있다기보다는, 다수의 개별 정책을 하나의 목록으로 정렬해 놓은 상태에 가깝다. 이는 창업정책이 범정부적 영역으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정책 간 조정과 방향성 설정은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예산 구조가 말해주는 창업의 정의
유형별 예산 구성을 보면 정부가 창업을 어떤 활동으로 정의하고 있는지가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난다. 전체 예산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융자·보증으로 1조 4,245억 원, 전체의 41.1%다. 여기에 기술개발(R&D) 8,648억 원(25.0%), 사업화 8,151억 원(23.5%)이 뒤를 잇는다. 이 세 가지 유형이 전체 예산의 89.6%를 차지한다. 반면 멘토링·컨설팅·교육, 행사·네트워크, 인력 지원과 같은 항목은 각각 1% 안팎 또는 그보다 낮은 비중에 머문다. 이는 창업정책이 여전히 자금 조달과 기술 개발, 사업화 지원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음을 보여준다. 창업을 하나의 생태계로 설명하면서도, 실제 정책 설계에서는 창업을 재정과 기술 중심의 관리 대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 예산 구조를 통해 확인된다.
기관별 예산 배분을 보면 또 다른 특징이 드러난다. 중앙부처 예산 가운데 중소벤처기업부가 차지하는 비중은 93.9%에 달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농림축산식품부 등이 뒤따르지만 규모 차이는 크다. 지자체 역시 서울, 경기, 경남 등 일부 지역에 예산이 상대적으로 집중돼 있다. 이는 창업정책이 한편으로는 지자체까지 폭넓게 확산돼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다시 중앙의 관리 체계로 정렬되는 구조를 보여준다.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지만, 정책의 중심축은 여전히 특정 부처와 대규모 예산 사업에 놓여 있는 셈이다. 통합공고는 이러한 구조를 감추기보다 오히려 숫자를 통해 명확히 드러낸다.
달라진 것은 예산보다 ‘관리 방식’
이번 공고에서 비교적 뚜렷한 변화는 예산 규모보다 사업 관리 방식에서 나타난다. 정부는 창업지원사업 관리지침을 개편해, 창업기업의 자금 집행 유연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외주용역비를 분할 지급할 수 있도록 하고, 사업 이전에 출원한 지식재산권의 유지 비용까지 지원 대상에 포함시키는 등 집행 방식의 경직성을 완화하겠다는 설명이다. 동시에 부정행위에 대한 관리와 통제는 강화된다. 거짓·부정한 방법으로 사업에 참여한 경우의 참여 제한 기간은 기존 3년에서 5년으로 늘어나고, 정부 지원으로 구축한 장비에 대한 사후 관리도 강화된다. 이는 창업기업을 지원의 대상으로 보면서도, 동시에 공적 자금의 관리 대상이라는 인식을 분명히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원의 유연화와 통제의 강화가 동시에 제시되는 구조다.

창업 생태계라는 말의 현재적 의미
정부는 이번 통합공고를 통해 창업기업이 정보를 보다 쉽게 접하고, 보다 효율적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다수의 사업을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행정적 편의성은 개선됐다. 그러나 창업 생태계라는 표현이 암시하는 유기적 연결과 단계적 성장 구조가 정책 설계 전반에 구현돼 있는지는 별도의 질문으로 남는다. 이번 공고가 보여주는 창업정책의 모습은 ‘확대된 지원’이라기보다 ‘정렬된 관리’에 가깝다. 수백 개의 사업과 수조 원의 예산을 하나의 틀로 묶어 제시하는 방식은, 창업정책이 이제 규모의 문제를 넘어 관리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창업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보다는, 이미 커진 창업정책을 어떻게 운영하고 통제할 것인가가 정책의 주요 과제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통합공고는 하나의 좌표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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