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액층 통과·병원균 선택 부착 구조… 전달 효율과 내성 문제 동시 개선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감염 치료는 오랫동안 고용량 항생제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위장 내 강산성 환경과 점액층이라는 장벽으로 인해 약물이 병변 깊숙이 도달하지 못하는 문제가 반복돼 왔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고용량 처방은 항생제 내성 문제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부산대학교 제약학과 유진욱 교수 연구팀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병원균에만 선택적으로 약물을 전달하는 나노입자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번 연구는 약물 전달 방식 자체를 ‘전신 투여’에서 ‘정밀 표적 전달’로 전환하는 접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은 위 점막 깊숙이 위치해 있어 치료가 쉽지 않다. 위 내부는 강한 산성 환경과 점액층이라는 이중 장벽을 갖고 있으며, 약물은 체내 이동 과정에서 간 대사와 희석을 거치면서 실제 병변에 도달하는 농도가 크게 낮아진다. 이로 인해 충분한 치료 효과를 위해 고용량 항생제가 사용되고, 이는 내성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돼 왔다. 연구팀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중 단계 전달’ 전략을 설계했다. 개발된 나노입자는 위장 환경에 따라 기능이 단계적으로 변화하는 구조를 갖는다. 강산성 환경에서는 안정성을 유지하며 약물 누출을 억제하고, 점액층에서는 불필요한 상호작용을 최소화해 깊숙이 침투한다. 이후 감염 부위에서는 별도의 표적 분자 없이도 헬리코박터균에 강하게 부착돼 약물을 집중적으로 전달한다. 이 구조를 통해 약물 사용 방식도 달라졌다. 연구팀은 기존 대비 약 10배 낮은 항생제 용량으로도 헬리코박터균의 99.9%를 제거하는 효과를 확인했다. 또 나노입자가 궤양 조직 내부 최대 400μm 깊이까지 침투하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기존 치료에서 한계로 지적됐던 전달 문제를 실질적으로 개선했다.
이번 연구는 약물 전달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달의 모순(delivery paradox)’을 해결하는 접근으로 평가된다. 유진욱 교수는 위장 내 생물학적 장벽을 극복하면서 병원균에만 선택적으로 부착하는 구조를 동시에 구현한 점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번 기술이 항생제 내성을 줄이면서 치료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치료 전략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Journal of Controlled Release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해당 기술이 헬리코박터 치료뿐 아니라, 점액층과 같은 생물학적 장벽을 가진 다양한 감염성 질환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감염 질환 치료는 더 많은 약을 사용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필요한 위치에 정확히 전달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번 연구는 그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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