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세계행복보고서 : 행복의 역설, 더 연결될수록 왜 우리는 덜 만족하는가] ② 청년이 먼저 흔들리고 있다 – 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에서 시작된 하락의 의미

핀란드가 다시 1위에 올랐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그러나 올해 자료를 따라가다 보면, 더 오래 남는 장면은 따로 있다. 많은 나라에서 젊은 세대는 20년 전보다 삶을 더 높게 평가하고 있었는데, 정작 가장 부유하고 가장 안정적이라고 여겨온 몇몇 나라에서는 정반대의 흐름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 대목은 단순한 순위 해설로 넘기기 어렵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선명한 경고음은 국가 평균보다 청년층에서 먼저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분석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지역 명칭 가운데 하나가 NANZ다. 이는 북미와 호주·뉴질랜드를 함께 묶는 표현으로, 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4개국을 가리킨다. 이 4개국은 이번 자료에서 가장 눈에 띄는 하락 흐름을 보인 집단이다. 25세 미만의 삶의 평가는 2006~2010년과 비교해 평균 0.86점 낮아졌고, 행복 변화 순위에서도 136개국 가운데 122위에서 133위 사이에 몰려 있었다.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가 모두 하위권에 모였다는 뜻이다. 반면 같은 기간 136개국 중 85개국에서는 25세 미만의 삶의 평가가 오히려 높아졌다. 세계 전체가 한 방향으로 움직인 것이 아니라, 청년의 삶이 지역별로 다른 궤도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 흐름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그것은 “요즘 청년이 힘들다”는 상식적 문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청년기의 불안은 언제나 있었지만, 지금 나타나는 변화는 훨씬 구조적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잘사는 나라의 청년이 먼저 낮은 점수를 적어내기 시작한 변화다. 이 사실은 오늘의 청년 문제를 개인의 심리나 세대적 특성으로 돌리는 오래된 습관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문제는 청년의 마음이 아니라, 청년이 살고 있는 사회의 방식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청년은 하나의 흐름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전체 그림부터 다시 볼 필요가 있다. 10개 글로벌 권역 가운데 8개 지역에서는 가장 어린 연령대의 삶의 평가가 2006~2010년보다 높아졌거나, 적어도 25세 이상 성인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악화되지 않았다. 청년 웰빙이 절대 수준과 상대 수준 모두에서 하락한 곳은 NANZ 지역과 서유럽이었다. 이 결과는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말해준다. 청년기의 불안이 보편적 생애주기 현상이었다면,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비슷한 방향의 하락이 관찰됐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어떤 사회에서는 청년이 여전히 이전 세대보다 더 높은 삶의 평가를 유지했고, 어떤 사회에서는 그 격차가 빠르게 줄거나 역전됐다.

더 세밀하게 보면 변화는 더욱 분명해진다. 1997년 이후 출생한 Z세대는 대부분 지역에서 여전히 윗세대보다 높은 삶의 평가를 보였다. 1981~1996년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가 그 뒤를 이었고, 그보다 앞선 세대가 가장 낮았다. 그러나 NANZ 지역에서는 이 패턴이 무너졌다. 처음에는 Z세대의 삶의 평가가 가장 높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의 점수는 급격히 낮아졌고, 밀레니얼 역시 유사한 흐름을 보였다. 반면 1980년 이전 출생 세대의 변화는 상대적으로 작았다. 젊은 층일수록 하락 폭이 컸다는 뜻이다.

이 대목은 매우 중요하다. 지금의 청년 문제는 단지 “청년이라서 힘들다”는 수준이 아니라, 특정 세대가 특정한 디지털·사회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는 사실과 이어져 있다. 이들은 사춘기와 청년기를 스마트폰과 함께 통과했고, 연결과 비교, 알림과 자극이 끊기지 않는 환경 속에서 정체성을 만들었다. 그런데 같은 기술 환경이 세계 전역에 퍼졌어도 그 결과는 같지 않았다. 여기서부터 질문은 더 복잡해진다. 왜 하필 이 4개국과 서유럽의 청년층에서 낙폭이 더 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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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는 서구 산업국가 상당수가 2005~2010년보다 덜 행복해졌다고 적시한다. 유의미한 하락을 보인 나라는 15개였고, 반대로 유의미한 상승을 보인 나라는 4개에 그쳤다. 다시 말해 문제는 가난한 나라의 정체나 분쟁 지역의 붕괴만이 아니었다. 이미 경제적으로 성숙한 나라들에서도 삶의 평가는 낮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하락은 전 세대에 균등하게 퍼진 것이 아니라, 청년층에서 더 강하게 나타났다.

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4개국의 25세 미만 하락은 특히 가파르다. 2006~2011년과 2020~2025년을 비교하면, NANZ 지역 청년층의 삶의 평가는 0.812점 떨어졌다. 같은 방식으로 계산했을 때 서유럽은 0.312점, 영국·아일랜드는 0.416점 하락했다. 라틴아메리카는 오히려 0.264점 상승했다. 이 비교는 소득 수준이 높은 사회에서 청년의 삶이 반드시 더 안정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NANZ 지역의 하락 폭은 서유럽보다 거의 세 배에 달했고, 라틴아메리카와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 수치가 던지는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부유한 사회는 대체로 평균 행복이 높지만, 그 부유함이 청년의 삶을 안전하게 떠받친다는 보장은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국가 전체는 풍요로워졌는데, 청년은 오히려 자기 삶의 점수를 더 낮게 매기는 장면이 나타난다면, 그 사회 안에서 청년이 체감하는 압박과 불안, 예측 불가능성이 커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부유함은 왜 청년의 안정을 만들지 못했나

청년의 삶을 지탱하는 것은 단지 현재 소득이 아니다. 지금보다 앞으로가 괜찮을 것이라는 전망, 실패해도 다시 설 수 있다는 감각, 혼자가 아니라는 관계의 기반, 그리고 비교에서 잠시 물러날 수 있는 심리적 공간이 함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잘사는 나라의 청년은 오히려 이 조건들을 더 쉽게 잃어버릴 수 있다. 선택지는 많아졌지만 선택의 부담도 커졌고, 연결은 쉬워졌지만 비교도 상시화됐다. 교육 수준은 높아졌지만 삶의 예측 가능성은 더 불안정해졌고, 자유는 늘었지만 그 자유는 종종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이 점은 한국에도 낯설지 않다. 한국은 이번 비교에서 NANZ처럼 가장 극단적인 하락 사례로 직접 지목되지는 않았지만, “잘사는 사회의 청년이 먼저 흔들린다”는 문제의식은 한국 사회에도 강하게 닿는다. 정보 접근성과 디지털 친숙성, 교육 수준과 문화 역량은 높지만, 청년이 체감하는 삶은 늘 조여 있다. 진학과 취업, 주거와 관계, 미래 설계의 불확실성이 누적되면 청년은 자기 삶을 후하게 평가하기 어려워진다. 성장과 풍요가 청년의 삶을 자동으로 안정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국 역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숫자로 드러난 정서 변화, 걱정은 넓게 늘고 슬픔은 특정 지역에서 더 커졌다

삶의 평가 하락은 단지 “행복이 줄었다”는 추상적 표현으로만 드러나지 않는다. 감정 항목에서도 변화가 관찰된다. 전 세계적으로 부정적 감정은 더 자주 보고됐고, 특히 걱정은 젊은 층에서 광범위하게 늘었다. 그러나 NANZ 지역은 다른 곳보다 슬픔 증가가 더 두드러졌다는 점에서 예외적이었다. 반면 분노는 젊은 층과 성인층 모두에서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흐름이 나타났다. 긍정적 감정은 여전히 부정적 감정보다 더 자주 보고됐지만, NANZ 지역에서는 젊은 세대가 가지고 있던 정서적 우위가 최근 들어 거의 사라졌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면, 2006~2011년과 2020~2025년을 비교했을 때 25세 미만의 부정적 감정은 NANZ에서 0.055 증가했다. 서유럽은 0.031 증가했고, 라틴아메리카는 0.006 증가에 그쳤다. 걱정은 NANZ에서 0.102, 서유럽에서 0.082, 라틴아메리카에서 0.042 증가했다. 그러나 슬픔은 NANZ에서 0.093 늘어난 반면, 서유럽은 0.038, 라틴아메리카는 0.000이었다. 이 차이는 NANZ 지역 청년들의 하락이 단지 일반적 스트레스 증가가 아니라, 우울과 맞닿는 정서 변화까지 동반했음을 보여준다.

이 수치를 한국 사회에 대입해 생각해보면, 분노보다 피로와 불안이 더 일반적인 정서로 떠오른 현실과 맞물린다. 오늘의 청년은 거대한 적과 맞서는 방식보다, 끝나지 않는 경쟁과 비교,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 속에서 지치는 방식으로 무너진다. 감정의 핵심이 분노에서 걱정과 슬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은, 오늘의 청년 문제를 해석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놓는다.

여기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변수는 소셜미디어다. 실제로 이번 분석의 중심 주제 역시 청년 웰빙과 소셜미디어의 관계다. 그러나 자료가 보여주는 결론은 단선적이지 않다. 소셜미디어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단순한 사용량만으로는 지금의 청년 하락을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먼저 확인되는 사실이 있다. 휴대폰을 통한 인터넷 접근과 최근 30일 내 소셜미디어 사용은 25세 미만에서 거의 보편적이었다. 2022년 기준으로 NANZ, 서유럽, 영국·아일랜드, 라틴아메리카 모두 젊은 층의 모바일 인터넷 접근은 85%에서 99% 범위였고, 최근 30일 내 소셜미디어 사용은 90%에서 100% 범위에 있었다. 즉 거의 모두가 이미 연결된 상태였다. 그런데 연결 정도는 유사했지만 청년의 삶의 평가는 크게 달랐다. NANZ에서는 크게 떨어졌고,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오히려 상승했다. 이 결과는 사용 여부 자체보다 훨씬 다른 요소가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47개국 PISA 자료와 갤럽 자료를 결합해 보면, 청년 웰빙은 인터넷을 소통을 위해 더 많이 사용하는 나라에서 유의미하게 높았지만, 평균적인 소셜미디어 사용 시간이 긴 나라라고 해서 청년 웰빙이 유의미하게 낮은 것은 아니었다. 특히 라틴아메리카는 소셜미디어 사용 시간이 높으면서도 청년 웰빙이 높았고, 영어권 국가는 평균적 사용 패턴으로는 설명되지 않을 정도로 낮은 청년 웰빙을 보였다. 다시 말해 “많이 써서 무너졌다”는 설명은 절반만 맞는다. 같은 시간을 쓰더라도 무엇을 위해 쓰는지, 어떤 구조의 플랫폼을 통해 쓰는지, 어떤 사회 맥락 안에서 쓰는지가 훨씬 중요하다.

흥미로운 것은 영어권 내부의 차이다. 영국·아일랜드는 영어권 국가지만 NANZ 4개국만큼 큰 청년 하락을 보이지 않았다. 25세 미만의 삶의 평가 하락은 캐나다·미국에서 0.98, 호주·뉴질랜드에서 0.65, 영국·아일랜드에서 0.39, 영국·아일랜드를 제외한 서유럽에서 0.30이었다. 영어 콘텐츠, 영어 플랫폼 문화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같은 영어권이라도 국가별로 청년이 체감하는 사회적 압박과 정서 환경, 관계 구조는 달랐다.

이 차이는 오늘의 청년 문제를 해석할 때 꼭 필요한 경계선이 된다. 모든 책임을 플랫폼에만 돌리면 사회 구조를 놓치게 되고, 반대로 플랫폼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면 현재의 청년 경험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게 된다. 필요한 것은 “기술이 어떻게 사회 위에서 작동하는가”를 함께 보는 일이다. 기술은 진공 상태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이미 경쟁과 비교가 강한 사회에서는 그 기술이 비교와 불안을 더 강하게 증폭시킬 수 있다.

소속감은 사용량보다 훨씬 큰 변수였다

이번 분석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 가운데 하나는 학교 소속감의 힘이다. 영국·아일랜드의 여학생을 기준으로 보면, 학교 소속감이 낮은 상태에서 높은 상태로 올라갈 때의 삶의 만족 상승 효과는 소셜미디어 사용을 높은 수준에서 낮은 수준으로 줄였을 때보다 네 배 더 컸다. PISA 47개국 전체 표본에서는 그 효과가 여섯 배에 달했다.

이 수치는 여러 해석을 가능하게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 메시지는 분명하다. 청년의 삶을 끌어내리는 것을 줄이는 일도 중요하지만, 청년이 어디엔가 속해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일은 훨씬 더 직접적으로 삶의 만족을 바꾼다. 삶의 만족은 단지 스크린 시간을 얼마나 줄였느냐로 회복되지 않는다. 나를 이해하는 친구가 있는지, 학교와 공동체가 안전한 공간인지, 내가 혼자가 아니라고 느낄 수 있는지가 훨씬 결정적이다.

PISA 자료가 보여준 다른 결과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인터넷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학생보다 어느 정도 사용하는 학생에게 삶의 만족이 더 높은 구간이 존재했고, 소셜미디어·게임·재미를 위한 브라우징에서는 사용량이 과도해질수록 만족이 떨어졌다. 그러나 이 모든 변수보다 더 강하게 삶의 만족과 연결된 것은 학교 소속감이었다. 청년은 단지 디지털 사용량 때문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오프라인 관계망과 소속 구조가 약해질 때 훨씬 더 빠르게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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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청년 문제를 논할 때 우리는 흔히 취업률, 주거 비용, 평균 소득, 스펙 경쟁 같은 숫자를 앞세운다. 물론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이번 자료는 그 숫자들만으로는 청년 삶의 점수를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청년이 자기 삶을 6점으로 쓰는 이유는 단지 월세나 연봉 때문만이 아니라, 실패해도 다시 설 수 있다는 감각이 약하고, 관계의 기반이 취약하며, 끊임없는 비교 속에서 스스로를 점검해야 하기 때문이다. 삶의 조건은 분명 구조의 문제인데, 그 구조는 경제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 청년 문제를 읽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더 많은 기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회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비교와 선택의 부담이 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빠른 연결”도 충분하지 않다. 연결이 깊은 관계를 의미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이것에 더 가까워 보인다. 한국 청년은 실제로 어디에 속해 있다고 느끼는가. 실패와 지연, 우회가 가능한 삶을 허용받고 있는가. 사회는 청년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그 대신 어떤 안정과 신뢰를 제공하고 있는가.

청년이 먼저 흔들리는 사회는 결국 사회 전체가 늦게 흔들리는 사회다. 청년은 단지 예민한 집단이 아니라, 구조의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집단이다. 이들이 자기 삶에 더 낮은 점수를 적어내고 있다면, 사회는 청년의 심리를 탓하기 전에 사회의 구조를 먼저 점검해야 한다.

이번 회차에서 확인되는 사실은 분명하다. 청년 하락은 보편적 운명이 아니었다.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청년의 삶은 나빠지지 않았고, 어떤 곳에서는 오히려 좋아졌다. 반면 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와 서유럽에서는 청년의 삶의 평가가 뚜렷하게 낮아졌다. 이 하락은 단지 소득의 문제가 아니라, 불안과 비교, 관계의 약화, 디지털 환경의 변화가 맞물린 결과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소속감은 매우 강력한 보호 요인으로 드러났다.

이제 남는 질문은 더 구체적이다. 무엇이 청년의 삶을 더 많이 깎아내리고, 무엇이 더 많이 지지하는가. 플랫폼은 모두 같은가. 단순 사용량과 플랫폼 구조는 어떻게 다른가. 연결을 위한 디지털 사용과 비교를 위한 디지털 사용은 왜 다른 결과를 낳는가. 다음 회차에서는 그 지점을 더 좁혀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같은 소셜미디어라도 어떤 것은 관계를 넓히고, 어떤 것은 삶의 만족을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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