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②] AI 시대의 대학, 금지보다 기준이 필요하다

평가의 신뢰, 교수의 역할, 전공별 격차까지… 대학은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판별할 것인가

영국 고등교육정책연구소(HEPI)가 2026년 내놓은 생성형 AI 학생 조사 결과는 대학이 더 이상 “AI를 쓸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질문에 머물 수 없음을 보여준다. 영국 학부생 1,054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 학생의 95%는 적어도 한 가지 방식으로 AI를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고, 94%는 평가 과제를 준비하는 데 생성형 AI를 활용한다고 응답했다. 이미 학생들의 학습환경은 바뀌었고, 대학의 고민도 이제는 사용 여부가 아니라 기준과 설계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특히 학생의 65%는 자신이 받는 평가 방식이 생성형 AI의 확산 이후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고 있었고, 68%는 오늘날 살아가기 위해 생성형 AI를 효과적으로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정작 교수진이 자신의 미래를 위한 AI 역량 개발을 충분히 돕고 있다고 느낀 학생은 48%에 그쳤다. 학생의 현실과 대학의 준비 사이에 분명한 간극이 생겨난 것이다. 이 간극은 단지 기술 적응 속도의 차이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대학은 본래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면서 동시에 무엇이 학습이고 무엇이 평가되어야 하는지를 정하는 제도적 공간이다. 그런데 생성형 AI는 바로 그 중심부를 흔든다. 학생은 이제 혼자서만 개념을 이해하고 자료를 읽고 글을 정리하지 않는다. AI에게 개념 설명을 듣고, 논문을 요약받고, 생각의 구조를 정리한 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해석을 덧붙인다. 문제는 이 과정이 어디까지 학습으로 인정되고 어디서부터 학습의 외주화로 간주될 것인지가 아직 충분히 정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금 대학이 마주한 것은 단순한 신기술 도입이 아니라 학습과 평가의 정의를 다시 세워야 하는 상황이다.

대학은 이미 바뀐 현실을 뒤늦게 따라가고 있다

학생들이 체감하는 변화는 분명하다. 2025년 조사에서 56%였던 “평가 방식이 AI에 대응해 달라졌다”는 응답은 2026년 65%로 높아졌다. 반대로 “별 변화가 없었다”고 느끼는 학생은 11% 수준으로 줄었다. 평가를 둘러싼 대학의 움직임이 더 이상 일부 과목이나 일부 기관의 실험이 아니라 상당히 광범위한 현상이 됐다는 뜻이다. 교실 안에서 AI가 들어온 자리는 단순히 학생이 더 편하게 과제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그보다는 대학이 평가의 방식과 목적 자체를 재검토하도록 압박받는 지점에 더 가깝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는 흥미로운 흐름이 함께 제시된다. 코로나19 시기 이후 많은 대학이 전통적 시험장에서 벗어나 24시간 디지털 과제나 오픈북 방식으로 움직였고, 이후 생성형 AI가 본격 확산되자 학문적 진실성에 대한 우려가 다시 커졌다. 그 결과 일부 대학은 전통적 시험 방식으로 돌아가기도 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아예 AI 사용을 전제로 설계된 평가와 AI를 배제한 평가를 병행하려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중요한 신호다. 지금의 대학은 단일한 정답을 찾은 것이 아니라, 어느 과제에서는 전통적 역량을 확인하고 어느 과제에서는 AI 활용 역량 자체를 평가해야 한다는 새로운 분기점 위에 서 있다.

이 변화는 표면적으로는 평가 방식의 수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깊은 질문을 품고 있다. 시험과 과제는 원래 무엇을 증명하기 위한 장치였는가. 학생이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인지, 자료를 다루는 능력을 보는 것인지, 혼자서 사고를 밀고 나가는 힘을 측정하는 것인지, 아니면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수행 능력을 판단하는 것인지에 따라 AI를 허용할 범위는 전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생성형 AI는 그 질문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만들었다. 대학은 이제 학생이 “무엇을 제출했는가”만이 아니라 “어떻게 도달했는가”를 함께 보아야 하는 상황에 들어섰다.

과제는 더 이상 결과물만으로 학생을 설명하지 못한다

이번 조사에서 학생들은 평가 과제를 준비할 때 생성형 AI를 매우 구체적인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거의 3분의 2는 개념 설명을 듣는 데 AI를 활용했고, 절반은 관련 글을 요약하는 데 사용했다. 40% 안팎은 연구 아이디어를 제안받거나 생각을 구조화하는 데 AI를 썼고, 36%는 AI를 검색 도구처럼 사용했다. 13%는 시각자료나 오디오 등 다른 형태의 결과물 제작에도 활용했다. 그리고 12%는 AI가 생성한 문장을 직접 평가물에 포함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2024년 3%, 2025년 8%였던 이 비율이 꾸준히 올라온 점은 대학이 더 이상 ‘드문 일탈’의 수준으로 이 문제를 다룰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개별 수치보다 사용의 층위다. 학생이 AI에게 개념을 설명받는 것과 AI가 써준 문장을 그대로 제출하는 것은 전혀 같은 행위가 아니다. 하나는 학습 보조의 성격이 강하고, 다른 하나는 결과물 대체에 더 가깝다. 문제는 지금 대학의 논의가 종종 이 둘을 충분히 구분하지 못한 채 “AI 사용”이라는 하나의 덩어리로 다루어진다는 점이다. 현실의 학습은 이미 그보다 훨씬 복잡해졌다. 학생들은 AI를 완성본 생산기계로만 쓰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중간 단계마다 끼워 넣고 있다. 즉, AI는 학습의 출발점에도, 전개 과정에도, 정리 단계에도 들어와 있다. 그런 상황에서 과제 결과물만을 보고 학생의 역량을 판단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더구나 사용과 수용의 간격도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평가에서의 AI 활용과 그것을 허용 가능한 것으로 보는 인식의 차이는 2024년 평균 16%포인트에서 2026년 4%포인트 수준까지 줄었다. 기술을 둘러싼 사회적 수용과 실제 사용이 점점 수렴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규정이 느리게 움직이는 동안 학생들의 실제 행위는 이미 새로운 상식으로 굳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학이 기준을 내놓지 않으면 학생들은 각자 자기 방식의 기준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고, 그 결과 같은 과제에서도 누구는 안전하다고 느끼고 누구는 불안을 느끼는 불균형한 환경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제 평가의 초점은 단순히 “AI를 사용했는가”를 적발하는 데 둘 수 없다. 오히려 어떤 단계에서 어떤 목적의 사용이 허용되는지, 그리고 최종 결과물에서 학생 자신의 판단과 해석이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지를 더 세밀하게 안내해야 한다. 생성형 AI는 결과물의 모양을 비슷하게 만들 수 있지만, 사고의 깊이와 선택의 이유까지 대신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그 점을 평가 속에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가 앞으로의 핵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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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금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허용 범위를 분명히 하는 일이다

학생들이 AI를 덜 쓰게 만드는 이유를 묻는 항목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은 제도적 금지 그 자체보다 부정행위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 환각(hallucination)과 같은 오류 가능성, 편향된 결과에 대한 불안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 대학이 AI를 금지하거나 억제하기 때문에 덜 사용한다”는 응답이 2025년 31%에서 2026년 21%로 낮아졌다는 사실이다. 이는 대학들이 AI를 이전보다 더 받아들이고 있음을 시사하는 동시에, 금지의 효력만으로는 학생들의 실제 사용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학생들의 자유서술에는 여전히 “쓰지 않았는데도 AI 사용으로 의심받을까 걱정된다”는 불안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어떤 학생은 에세이에서 특정 단어를 쓰는 것조차 조심하게 된다고 답했다. 또 다른 학생은 문해력이 좋은 학생들조차 AI 탐지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이것이 보여주는 바는 분명하다. 대학이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추상적인 경고가 아니라 평가별로 구체화된 허용 범위다. 어느 과제에서는 AI를 사용해도 좋지만 반드시 사용 사실을 명시해야 할 수 있고, 어떤 과제에서는 자료 요약까지만 허용되며, 또 어떤 과제에서는 아예 AI 사용을 배제하고 전통적 글쓰기 역량을 평가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기준이 사전에 명확하게 제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HEPI가 제안한 권고 역시 여기에 무게를 둔다. 모든 학생에게 구조화된 AI 기초 교육을 제공하고, 평가별 허용 범위를 명확히 공지하며, AI 사용을 전제로 한 평가와 AI를 배제한 평가를 병행해 학생들에게 분명한 신호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학생이 학습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AI를 쓰도록 가르쳐야지, 학습 자체를 위탁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도 함께 제시된다.

이 점은 우리 대학 현장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금지하면 해결된다”는 단순한 접근이 아니다. 이미 거의 모든 학생이 과제 과정에 생성형 AI를 활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준 없는 금지는 오히려 사용을 음성화하고 불신만 키울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활용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어떤 사용은 학습에 도움이 되며 어떤 사용은 학습을 무너뜨리는지 교육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대학은 기술을 통제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학습 설계의 요소로 다룰 수 있게 된다. 생성형 AI 이후의 학문적 진실성은 ‘아무 도구도 쓰지 않는 순수성’이 아니라 ‘도구를 어떻게 책임 있게 드러내고 사용하는가’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

교수자는 채점자만이 아니라 학습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생성형 AI가 들어온 이후 교수자의 역할 역시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과제 지시문을 내고 결과물을 평가하는 방식만으로도 어느 정도 학생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학생이 어떤 자료를 읽었는지, 어떤 질문을 AI에 던졌는지, 어떤 방식으로 초안을 구성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무엇을 판단하고 수정했는지까지 더 중요해졌다. 즉, 교수자는 이제 결과물의 품질만 보는 사람이 아니라 학습의 경로를 설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떤 과제는 AI를 사용하면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의 비판적 해석을 요구할 수 있고, 어떤 과제는 인간의 독자적 서술 능력을 검증하기 위해 AI를 배제해야 할 수 있다. 이 둘을 구분하고 설명하는 일이 교수자의 새 역할이 된다. 이번 조사에 실린 의학교육 사례는 이 문제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의료 시뮬레이션 학습에서 AI 지원과 인간 피드백을 함께 받은 학생들이 가장 좋은 성과를 보였고, 반대로 AI 지원만 받은 학생들은 성취는 가장 낮았지만 자신감은 가장 높았다. 강한 도구를 쥐여준다고 해서 학습이 자동으로 깊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적절한 시점, 적절한 훈련, 적절한 피드백이 결합되어야 AI가 학습을 돕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인간의 피드백이 빠진 AI 의존은 학생에게 과잉 확신과 잘못된 판단을 남길 수도 있다. 이는 고등교육 전반에 적용되는 중요한 경고다. AI가 강력할수록 교수자의 역할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 정교해진다.

그렇다면 교수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과제의 목적을 이전보다 더 명확히 밝혀야 한다. 이 과제가 개념 이해를 위한 것인지, 정보 탐색 훈련인지, 분석적 글쓰기를 위한 것인지, 실제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인지가 분명해야 학생도 AI 활용 범위를 이해할 수 있다. 둘째, 결과물 중심 평가에서 과정 중심 확인을 일부 결합할 필요가 있다. 초안 메모, 사용한 프롬프트에 대한 성찰, 수정 이유, 참고한 자료의 경로 같은 요소는 학생의 실제 사고를 드러내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셋째, AI를 ‘허용한다/금지한다’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어떤 역량을 기르기 위해 어떤 방식의 AI 사용을 유도할 것인지 설계해야 한다. 결국 교수자는 AI 시대에 학생을 감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고를 훈련시키는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AI 리터러시는 별도 특강이 아니라 정규 교육과정의 문제다

학생들은 이미 AI 역량을 미래 생존의 기술로 인식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68%는 오늘날 세상에서 잘 살아가기 위해 생성형 AI를 효과적으로 이해하고 사용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교수진이 자신의 미래를 위한 AI 역량 개발을 돕고 있다고 느끼는 학생은 48%에 그쳤다. 무려 20%포인트의 간극이다. 학생들이 체감하는 중요성과 대학이 제공하는 교육 사이에 구조적 미스매치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이번 조사는 이것을 단순한 만족도 문제가 아니라 교육과정 설계의 문제로 읽게 한다. 학생들은 AI를 중요한 기술로 여기는데, 대학은 아직 그것을 충분히 커리큘럼 속에 녹여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전공별 격차다. 예술·인문 분야 학생들은 다른 분야 학생들보다 교수진이 AI 역량 개발을 도와준다고 느끼는 비율이 더 낮았고, AI 역량의 필요성 자체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더 회의적이었다. 예술·인문 분야에서는 저작권, 표절, 일자리 축소에 대한 우려가 더 크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제시된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 AI 리터러시는 더 중요할 수 있다. 경계와 위험을 더 많이 느끼는 분야일수록, AI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감정적으로 거부하는 것도 아닌 비판적 이해와 사용 기준이 더욱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입학 전 경험의 차이다. 대학 입학 전 학교에서 이미 생성형 AI를 사용해 본 경험이 있다고 답한 학생은 51%였지만, 33%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STEM 계열 학생들의 사전 경험이 더 높았고, 성별 격차도 남아 있었다.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서도 일부 AI 도구 활용에는 차이가 나타났다. 이는 AI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중립적 기회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더 익숙한 학생은 더 잘 활용하고, 낯선 학생은 입학 직후부터 뒤처질 수 있다. 따라서 AI 리터러시는 일부 학생만의 선택적 역량이 아니라 대학이 공적으로 보장해야 할 기초 역량 교육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HEPI가 제시한 권고는 명확하다. 모든 학생에게 AI 전환기 교육을 구조화해 제공하고, 일반적 차원의 AI 리터러시와 전공 특화 활용 능력을 함께 가르치며, 교직원 역시 AI 훈련과 시간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AI에 관한 교육이 별도 워크숍이나 일회성 특강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다. 핵심은 학생이 단지 AI를 쓸 줄 아는 수준을 넘어서, 그것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한계를 알고, 책임 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있다. 결국 AI 리터러시는 소프트웨어 사용법 교육이 아니라 판단력 교육의 일부여야 한다.

도구 접근성의 문제를 방치하면 새로운 교육격차가 커진다

AI 시대의 대학에서 또 하나 놓치기 쉬운 문제는 접근성이다. 조사에 따르면 학생의 절반은 대학이 자신들에게 AI 도구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대학이 AI 도구를 제공한다고 답한 비율은 38%에 머물렀다. 2024년 9%, 2025년 23%에서 2026년 38%로 빠르게 늘긴 했지만, 여전히 학생들의 기대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도구 제공이 없다고 해서 학생들이 AI를 못 쓰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어떤 도구를 어떤 조건에서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할 것인가의 차원이다. 무료 도구와 유료 도구, 일반 서비스와 데이터 보호 장치가 강화된 서비스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이 차이가 곧 학습 품질과 정보보호 수준, 나아가 교육기회의 차이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대목에서 대학의 역할은 단순히 라이선스를 구매해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AI 도구를 직접 제공하면 학생들에게 비교적 윤리적이고 통제 가능한 도구를 안내할 수 있고, 수업과 평가 설계 역시 그 도구를 전제로 보다 일관되게 구성할 수 있다. 반대로 이를 방치하면 학생들은 각자 다른 플랫폼, 다른 품질, 다른 보호 수준의 도구를 쓰게 되고, 그 격차는 결과적으로 학습경험의 격차가 된다. 특히 비용보다 더 근본적인 장벽은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아는가’의 문제다.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른 격차가 무료 서비스가 있는 상황에서도 나타났다는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접근성은 단순한 가격 문제가 아니라 정보와 안내, 교육의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대학은 AI 도구를 두고 ‘학생 개인의 선택’이라고만 말하기 어렵다. 강의계획서, 학습지원 체계, 데이터 보호 원칙, 장애학생 접근성, 전공별 활용 지침까지 모두 연결된 제도적 사안이기 때문이다.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학생과 사용할 수 없는 학생의 차이가 아니라, 기술을 비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학생과 그럴 기회를 얻지 못한 학생의 차이가 앞으로 더 큰 교육격차가 될 가능성이 높다. AI 이후의 교육 공정성은 “누가 더 열심히 했는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누구에게 어떤 도구와 어떤 훈련이 제공되었는가라는 질문도 함께 포함해야 한다.

대학이 지켜야 할 것은 기술 이전의 교육 원칙이다

생성형 AI가 대학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는 그 효율성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대학이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교육 원칙을 다시 묻게 만들기 때문이다. 학생이 직접 읽고, 직접 생각하고, 직접 쓰는 과정은 왜 중요했는가. 그것은 단지 비효율적인 전통이 아니라, 느리고 불편한 과정을 통해 판단력과 비판력, 자기 언어를 형성하는 훈련이었기 때문이다. AI는 이 과정을 단축시킬 수 있다. 때로는 훌륭하게 보조하고, 때로는 위험하게 대체한다. 그래서 대학이 해야 할 일은 기술을 무조건 거부하거나 무조건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교육 원칙은 지켜야 하고 어떤 절차는 바뀔 수 있는지를 분명히 하는 일이다.

이번 조사에서 학생들의 목소리는 바로 그 긴장을 드러낸다. 어떤 학생은 AI 덕분에 복잡한 읽기자료를 빨리 정리하고 더 깊은 분석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또 다른 학생은 “이제는 내 뇌를 전혀 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같은 기술이 한 학생에게는 학습 증폭기이지만 다른 학생에게는 사고 대행 장치가 되고 있는 것이다. 대학의 과제는 바로 이 갈림길을 제도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학생이 AI를 통해 학습을 확장하고 있는지, 아니면 학습을 외주화하고 있는지를 구분할 수 있는 수업과 평가를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고등교육이 감당해야 할 핵심 작업이다.

그래서 AI 시대 대학의 원칙은 단순해야 한다. 첫째, 학습을 강화하는 AI 사용은 가르치고 장려하되, 학습을 대체하는 사용은 분명히 경계해야 한다. 둘째, 기술 활용 역량은 미래를 위한 필수 역량으로 다루되, 전통적 글쓰기와 독립적 사고 능력도 동시에 보호해야 한다. 셋째, 모든 학생이 공정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구와 교육을 함께 제공해야 한다. 넷째, 교수자 역시 새로운 기준과 역할에 맞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이 네 가지 없이 AI는 대학을 혁신하는 도구가 아니라 혼란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제미나이 생성이미지

생성형 AI 이후의 대학은 무엇을 평가할 것인가

결국 질문은 다시 여기로 돌아온다. 대학은 앞으로 무엇을 평가할 것인가. 지식의 암기와 재현은 AI가 더 잘할 수 있다. 문장의 유창함만으로는 학생의 실력을 말하기 어려워졌다. 자료 탐색 역시 검색창을 넘어 대화형 AI가 선행하는 시대가 됐다. 그렇다면 대학이 확인해야 할 것은 더 이상 결과물의 매끈함만이 아니다. 학생이 어떤 질문을 던졌는지,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어떤 기준으로 자료를 선별했는지, AI의 답변을 어디까지 신뢰하고 어디서 의심했는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어떤 자신의 언어를 남겼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생성형 AI는 평가를 어렵게 만든 것이 아니라, 무엇이 진짜 평가의 대상인지 더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국의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변화는 특정 국가의 특수 사례로만 보기 어렵다. 학생들이 이미 AI와 함께 공부하고 있고, 대학은 장려와 경계 사이에서 기준을 재정립하고 있으며, 전공과 배경에 따라 격차가 벌어지고 있고, 교수자의 역할 역시 다시 정의되고 있다는 흐름은 한국 대학에도 낯설지 않다. 차이는 얼마나 빨리 이 현실을 인정하고, 교육과 평가의 원칙을 선제적으로 정리하느냐에 있다. 이제 대학이 해야 할 일은 학생들의 변화를 뒤쫓으며 사후적으로 규제를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수업에서 어떤 AI 역량을 길러야 하고 어떤 평가에서 어떤 인간적 역량을 끝까지 확인할 것인지를 먼저 설계하는 일이다.

AI를 막을 것인가, 받아들일 것인가의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있다. 남은 질문은 이것이다. AI와 함께 공부하는 세대 앞에서 대학은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평가하며, 무엇을 끝까지 인간의 몫으로 남겨둘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분명한 대학만이 앞으로의 교육을 주도할 수 있다. 기준 없는 허용도, 사고 없는 금지도 결국 대학을 약하게 만든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의 속도를 따라가는 조급함이 아니라, 기술 이후에도 유효한 교육 원칙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생성형 AI 시대의 대학은 그 원칙 위에서만 다시 신뢰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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