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에 떨어지는 물감의 비밀… KAIST, ‘미켈란젤로의 고통’ 500년 만에 풀었다

중력 때문에 무너지는 액체막 제어 원리 규명… 정밀 코팅·3D 프린팅·우주 유체 제어 기술로 확장 기대

르네상스 거장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천지창조’를 그리던 시절, 그는 작업의 고통을 “그림이 아니라 고문과 같다”고 표현했다. 천장에 칠한 물감이 얼굴로 떨어지는 문제 때문이었다. 500여 년 전 예술가를 괴롭혔던 이 물리적 현상이 이제 과학적으로 설명되고 제어될 수 있는 기술로 이어졌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진이 천장이나 기울어진 표면에서 액체가 중력 때문에 무너지는 현상을 제어하는 새로운 원리를 규명했다. 이 연구는 정밀 코팅, 전자회로 인쇄, 3D 프린팅 등 다양한 첨단 공정 기술로 확장될 가능성을 제시한다.

천장에 물감이나 액체를 바르면 얇은 막이 형성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아래로 떨어진다. 이러한 현상은 액체막이 중력에 의해 점차 불안정해지기 때문이다. 일상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목욕탕 천장에 맺힌 수증기가 얇은 물층을 형성했다가 물방울로 모여 떨어지거나, 냉장고 내부 천장에 맺힌 물방울이 점차 커지며 아래로 흘러내리는 현상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처럼 위쪽 표면에 형성된 액체가 중력 때문에 무너지는 현상은 물리학에서 ‘레일리–테일러 불안정성(Rayleigh–Taylor instability)’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이 현상은 중력이 존재하는 한 피하기 어려운 자연 현상으로 여겨져 왔다. KAIST 기계공학과 김형수 교수 연구팀은 이 문제를 계면유체역학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액체의 조성을 이용해 불안정성을 제어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다.

연구팀은 거꾸로 매달린 액체에 소량의 휘발성 액체를 혼합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휘발성 성분이 증발하면서 액체 표면의 농도 분포가 달라지고, 그 결과 표면장력의 차이가 생긴다. 표면장력은 액체 표면이 스스로를 안쪽으로 잡아당기는 힘으로, 물방울이 둥근 형태를 유지하게 만드는 원리다. 표면장력 차이가 발생하면 장력이 큰 쪽이 작은 쪽을 끌어당기면서 표면을 따라 흐름이 형성된다. 이를 ‘마랑고니 효과(Marangoni effect)’라고 한다.

연구팀은 이러한 표면 흐름이 중력에 의해 아래로 떨어지려는 액체를 붙잡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실험과 이론 분석을 통해 확인했다. 이 원리는 간단한 실험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물 위에 후추 가루를 뿌린 뒤 세제를 한 방울 떨어뜨리면 후추가 순식간에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세제가 닿은 부분의 표면장력이 약해지고, 장력이 더 강한 주변이 액체를 끌어당기면서 흐름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휘발성 액체의 증발이 이러한 표면장력 차이를 만들어내며, 그 결과 액체를 위쪽 방향으로 끌어올려 중력에 의한 붕괴를 억제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연구 결과 특정 조건에서는 액체막이 중력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현상이 확인됐다. 일부 실험에서는 액체가 떨어지지 않고 액막이 주기적으로 진동하는 새로운 거동도 관찰됐다. 이는 외부에서 별도의 에너지를 공급하지 않고도, 액체의 조성과 자연적인 증발 과정만으로 중력 불안정성을 능동적으로 제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연구진은 이러한 방식이 기존의 기계적 진동이나 전기장, 열 구배 등을 이용한 불안정성 제어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이라고 설명했다. 다성분 액체의 증발 유동을 활용한 계면 설계를 통해 보다 단순하면서도 안정적인 제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가 제시한 원리는 산업 공정에서도 활용 가능성이 높다. 특히 얇고 균일한 액체막을 형성해야 하는 정밀 코팅이나 인쇄 공정에서 안정적인 도포를 가능하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3D 프린팅이나 적층 제조 공정, 기울어진 표면에서의 액체 처리 기술 등 다양한 제조 분야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중력 조건이 크게 달라지는 우주 환경에서의 유체 제어 기술로 확장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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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교수는 “그동안 레일리–테일러 불안정성은 중력이 존재하는 한 피할 수 없는 현상으로 여겨져 왔다”며 “이번 연구는 액체의 조성과 증발이라는 자연적 과정을 활용해 외부 에너지 없이도 중력 불안정성을 능동적으로 제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KAIST 기계공학과 최민우 석박통합과정 학생이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전혜준 박사과정 학생이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Advanced Science)’에 1월 29일 온라인 게재됐으며, 학술지 표지논문(Frontispiece)으로도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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