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밤 선포된 비상계엄은 ‘실행한 자’만의 범죄가 아니었다. 이를 기획하지 않았고, 직접 명령하지 않았으며, 총을 들지 않았더라도, 헌법을 수호해야 할 자리에 있으면서 이를 말리지 않았다면 그 역시 내란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 법원에서 처음으로 명시됐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이번 판결은, 개인의 형사책임을 넘어 대통령과 국무총리, 그리고 고위 공직자의 헌법적 책임이 어디까지인지를 다시 묻는 사건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판결이 주목되는 이유는 형량의 무게 때문만이 아니다. 재판부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형법 제87조가 규정한 내란죄의 실행 수단으로 인정하면서, 그 과정에서 국무총리의 역할을 ‘보조’가 아닌 ‘헌법적 제동장치’로 재정의했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결정을 단순히 따라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위헌·위법한 권력 행사가 발생하려 할 때 이를 막아야 할 적극적 의무를 지닌 헌법기관이며, 그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작위는 결과적으로 내란을 가능하게 한 행위와 동등하게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상계엄은 왜 ‘내란의 수단’이 되었나
이번 판결의 출발점은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더 이상 정치적 판단이나 통치 행위의 영역에만 두지 않았다는 데 있다. 재판부는 헌법이 예정한 비상계엄 제도라 하더라도, 그 목적과 집행 방식이 헌법기관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헌법 질서 자체를 무력화하는 방향으로 사용된다면 형법 제87조가 규정한 내란죄의 ‘폭동’에 해당할 수 있다고 명확히 판단했다. 즉 비상계엄이라는 형식은 면책 사유가 될 수 없으며, 문제의 핵심은 권한의 존재가 아니라 그 권한이 행사된 방식과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재판부는 2024년 12월 3일 선포된 비상계엄이 국무회의 심의라는 외관을 갖춘 채 진행됐지만, 그 실질은 헌법에 의해 보장된 의회·정당 제도를 부인하고 군과 경찰을 동원해 국회와 중앙선관위를 점거·통제하는 데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행위는 단순한 위기 대응이 아니라 국가의 기본 통치 구조를 물리력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로 평가됐고, 그 결과 비상계엄은 내란의 ‘배경’이 아니라 ‘실행 수단’으로 규정됐다. 이 판단은 비상계엄이 헌법상 제도라는 이유만으로 형사책임의 검토 대상에서 배제될 수 없음을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
‘말리지 않은 책임’은 어떻게 내란의 실행이 되었나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유죄가 인정된 핵심은 적극적인 지휘나 명령이 아니라, 국무총리로서 부담하는 헌법적·법률적 작위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재판부는 국무총리가 비상계엄 선포 과정에서 국무회의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모든 국무위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소집을 통지하며, 위헌·위법 가능성이 있는 결정에 대해 분명한 반대와 제지를 할 의무가 있었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피고인은 이러한 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오히려 국무회의 의사정족수를 맞추는 과정에 관여하며 절차적 외관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이 중대하게 평가됐다. 특히 재판부는 이 같은 부작위로 인해 내란이라는 결과가 충분히 방지될 수 있었음에도 이를 방치했다면, 그 책임은 단순한 직무 태만을 넘어 형법적 책임으로 귀결된다고 판단했다. 이는 형법상 부작위 범죄 이론을 내란죄에 본격적으로 적용한 사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선택’ 역시 국가 질서를 파괴하는 결과에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결국 이 판결에서 한덕수의 죄책은 행동의 과잉이 아니라, 헌법 수호자로서 행동하지 않은 선택에 있었다.
이번 판결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 중 하나는 재판부가 반복적으로 사용한 ‘위로부터의 내란’이라는 표현이다. 이는 기존 내란 사건들이 주로 사회 하층이나 비국가 세력에 의해 발생한 ‘아래로부터의 내란’이었다는 점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국민이 선출한 최고 권력자와 그 주변 권력 구조 내부에서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는 시도가 이루어졌다는 점을 강조한다. 재판부는 이러한 형태의 내란이 역사적으로 ‘친위 쿠데타’로 불려 왔으며, 성공할 경우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남겨 왔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인식은 양형 판단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재판부는 과거 내란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례를 이번 사건의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고 선을 그었고, 그 이유로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 변화와 국가 시스템의 복잡성을 들었다. 선진 민주국가로 평가받는 국가에서 최고 권력자가 헌법과 법률을 경시하는 방식으로 내란에 해당하는 행위를 시도했다는 사실 자체가 정치·경제·외교 전반에 미칠 충격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징역 23년이라는 중형은 개인에 대한 응보라기보다, 헌정 질서에 대한 침범은 그 지위가 높을수록 더 무겁게 책임을 묻겠다는 사법적 경고에 가깝다.
이번 판결이 남긴 가장 큰 질문은 단순하다. 권력이 헌법의 한계를 넘어설 때, 이를 제어해야 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재판부의 답은 명확했다. 대통령 개인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으로는 민주주의를 지킬 수 없으며, 그 곁에서 헌법적 의무를 공유한 국무총리와 고위 공직자 역시 책임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이는 권력 구조를 수직적으로만 이해해온 기존 정치 관행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다. 그동안 한국 정치에서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의중을 조율하고 행정을 총괄하는 실무 책임자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국무총리를 대통령 권한의 연장선이 아니라, 헌법 질서의 공동 수호자로 재위치시켰다. 재판부는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위헌·위법 행위를 단순히 따르거나 침묵했다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이는 향후 국무위원 전반의 책임 논의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 판단이다. 권력 내부에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선택’이 더 이상 정치적 중립이나 신중함으로 포장될 수 없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 판결은 헌법적 책임과 형사적 책임의 경계를 다시 그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그동안 대통령과 고위 공직자의 위헌 행위는 주로 탄핵 심판의 영역에서 다뤄져 왔고, 형사재판은 그 이후의 문제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비상계엄이라는 헌법상 제도조차 그 집행 방식이 내란의 구성요건을 충족한다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고 분명히 했다. 이는 헌법적 판단과 형사적 판단이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사안에 따라 동시에 작동할 수 있음을 확인한 셈이다. 이러한 판단은 향후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나 권한쟁의 심판과도 긴밀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 헌법재판이 권력 행위의 위헌성을 판단하는 과정이라면, 형사재판은 그 위헌 행위가 사회 질서에 끼친 해악을 책임으로 환원하는 절차다. 이번 사건은 이 두 절차가 서로 다른 결론으로 수렴하기보다, 동일한 헌법 질서의 수호라는 목표 아래 맞물려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다음은 누구의 책임인가’라는 질문
재판부의 판단을 그대로 따라가면, 책임의 범위는 한덕수 개인에 머물지 않는다.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국무위원들, 위헌적 조치의 집행을 요구받았던 고위 공무원들, 그리고 명백한 위법성을 인식하고도 이를 제지하지 않았던 권력 내부 인사들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책임을 어떻게 다했는지 되묻게 된다. 이는 사법부가 정치 전반에 던진 일종의 경고에 가깝다. 특히 재판부가 강조한 ‘위로부터의 내란’이라는 개념은 향후 유사한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소환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가장 위험한 위협은 제도 밖의 폭력이 아니라, 제도 안에 있는 권력이 헌법의 의미를 비워버리는 순간이라는 점을 이 판결은 분명히 했다. 권한을 가진 자가 헌법을 해석하는 주체가 아니라, 헌법에 구속되는 객체라는 원칙을 다시 확인한 것이다.
한덕수 판결은 “무엇을 했는가”보다 “무엇을 하지 않았는가”를 묻는 판결이었다. 헌법을 위협하는 순간에 침묵을 선택한 것은 중립이 아니었고, 절차를 갖춘 듯 보이게 만든 행위는 책임 회피가 아니었다. 재판부는 이를 분명히 ‘선택’으로 보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형사책임으로 돌려세웠다. 이 판결이 남긴 메시지는 단순히 과거를 단죄하는 데 있지 않다. 권력의 정점에 가까울수록 헌법을 수호할 책임은 더 무겁고, 그 책임을 외면한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을 확인한 데 있다. ‘말리지 않은 죄’도 내란이 될 수 있다는 이번 판결은, 한국 민주주의가 스스로에게 던진 가장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질문으로 남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