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자유를 둘러싼 위기는 이제 일부 권위주의 국가의 문제가 아니다. 독일 프리드리히알렉산더대와 V-Dem Institute가 2026년 공개한 ‘Academic Freedom Index Update 2026’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학문의 자유가 뚜렷하게 후퇴한 국가는 50개국에 이르렀고, 개선된 나라는 9개국에 그쳤다. 더 주목할 대목은 이 후퇴가 단지 교수 개인의 발언이나 연구 주제의 제약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학이 스스로 운영 원리를 결정하고, 인사와 교육과 연구의 우선순위를 정하며, 외부 권력으로부터 완충지대를 확보하는 능력, 곧 대학의 자율성이 흔들릴 때 학문의 자유 전체가 함께 약해진다는 사실이 이번 지표에서 다시 분명해졌다.
대학의 자유를 말할 때 많은 사람은 가장 먼저 강의실을 떠올린다. 교수는 자유롭게 가르칠 수 있는가, 연구자는 정치적 눈치를 보지 않고 질문을 던질 수 있는가, 학생은 토론과 비판을 통해 지적 성장을 경험할 수 있는가가 먼저 떠오르는 것이다. 그러나 학문의 자유는 개인의 용기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그것은 제도적 토대 위에 놓여 있다. 이번 지표는 학문의 자유를 개인 차원과 제도 차원으로 함께 본다. 개인 차원에는 연구와 교육의 자유, 학술 교류와 확산의 자유, 학문·문화적 표현의 자유가 포함된다. 제도 차원에는 대학 자율성과 캠퍼스의 안전성 및 비간섭성이 포함된다. 다시 말해 학문의 자유는 교수 개인의 발언권만이 아니라 대학이라는 기관이 외부 비학문 권력으로부터 얼마나 독립적인가와 직결된다.
이 지점은 한국 사회에서도 자주 오해된다. 우리는 학문의 자유를 흔히 “불편한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권리” 정도로 축소해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대학의 총장을 어떤 절차로 뽑는지, 예산 배분에 정치 권력이 얼마나 깊숙이 개입하는지, 연구 과제를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고 중단하는지, 특정 사상이나 사회적 의제를 이유로 학과 개편이나 채용 방향이 달라지는지 같은 문제 역시 학문의 자유의 핵심에 속한다. 교수의 입이 열려 있어도 대학의 손발이 묶이면 자유는 금세 껍데기가 된다. 이번 자료가 던지는 가장 강한 메시지도 여기에 있다. 학문의 자유는 ‘말할 자유’ 이전에 ‘스스로 운영할 자유’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세계는 지금 학문의 자유를 잃어가고 있다
2025년을 기준으로 보면 학문의 자유는 여전히 라틴아메리카, 유럽, 북미, 오세아니아, 그리고 아프리카 남부·서부의 상당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보호되고 있다. 반면 아시아와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보호 수준이 낮은 곳이 적지 않다. 문제는 수준의 차이보다 흐름의 방향이다. 장기 추이를 보면 세계 평균은 2012년을 전후해 하강하기 시작했고, 이후 그 하락이 이어졌다. 인구 가중치를 반영한 추세에서는 이 하락이 더 도드라진다. 이는 단순히 “몇몇 나라가 나빠졌다”는 뜻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의 삶에서 학문의 자유가 실질적으로 후퇴하고 있음을 뜻한다.
지난 10년 동안 후퇴가 가장 많이 나타난 항목은 연구와 교육의 자유, 캠퍼스의 안전성, 학술 교류의 자유, 학문·문화적 표현의 자유였다. 대학 자율성은 상대적으로 변화가 덜한 항목으로 보였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율성이 다른 차원의 자유를 떠받치는 기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감소 폭이 다소 작게 보이더라도 의미는 훨씬 무겁다. 실제로 2015년부터 2025년 사이 대학 자율성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후퇴한 국가는 43개국이었다. 이는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광범한 국제적 흐름에 가깝다.
이 대목이 중요한 이유는 학문의 자유를 둘러싼 위기가 더 이상 군부독재나 노골적 검열을 시행하는 체제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제도를 유지하는 나라에서도, 헌법과 법률이 대학의 자유를 형식적으로 인정하는 나라에서도, 실제 운영 현장에서는 외부 권력이 점진적으로 대학을 길들이는 방식이 나타난다. 총장 선출 구조를 바꾸고, 예산에 조건을 달고, 채용 기준에 정치적 메시지를 심고, 특정 학문 분야를 사회적 가치의 이름으로 압박하는 식이다. 학문의 자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다. 대개는 대학의 자율성이 조금씩 깎여 나가면서 무너진다.
대학 자율성은 왜 그렇게 중요한가
국제기구와 학계는 오래전부터 대학 자율성을 학문의 자유의 전제조건으로 보아 왔다. 1997년 유네스코 권고는 대학 자율성을 고등교육기관이 학문 활동과 기준, 운영, 관리에 관해 효과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자기통치의 정도로 정의한다. 여기에는 국가가 제공하는 재정에 대한 공적 책임이 포함되지만, 동시에 학문의 자유와 인권 존중이 분명한 원리로 전제된다. 국제연합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위원회 역시 고등교육기관의 자율성이 학문의 자유의 향유를 위해 필요하다고 본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도 오래전 판결에서 대학이 충분한 자율성을 갖지 못하면 개인의 학문 자유는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 논리는 현실적으로도 설득력이 크다. 자율적인 대학은 정치적 압력 앞에서 인사와 연구 판단을 일정 정도 지켜낼 수 있다. 학문적으로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연구자를 조직적으로 보호할 여지도 커진다. 학과 개편과 교육과정 운영, 학생 선발, 연구 지원의 방향을 외부 권력의 단기 이해에 휘둘리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진다. 반대로 자율성이 약한 대학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언제든 외부 통제에 취약해진다. 총장이나 이사 선임에 권력이 개입하고, 예산과 사업선정이 길들이기 수단이 되며, 특정 분야 연구가 ‘정치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축소될 수 있다. 심지어 노골적 검열이 없어도 운영 통제를 통해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번 지표는 이 논리를 수치로도 보여준다. 2000년부터 2025년까지 179개국을 평균한 결과, 대학 자율성과 연구·교육의 자유 사이의 상관계수는 0.91에 달했다. 매우 강한 정적 상관관계다. 대학이 자율적일수록 연구와 교육의 자유가 강하게 보호된다는 뜻이다. 물론 상관관계가 곧 인과를 기계적으로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정도의 관계는 대학 자율성이 단순한 행정 편의나 조직 운영의 문제가 아니라 학문 자유 전체를 지탱하는 핵심 안전장치라는 해석에 상당한 근거를 제공한다.
대학을 통제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입을 막는 일이 아니다
권력은 늘 직접 검열만으로 학문을 통제하지 않는다. 오늘날 더 빈번하게 나타나는 방식은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대학의 지배구조를 재편하고, 재정 지원에 정치적 조건을 붙이며, 지도부 인선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특정 학문 분야를 ‘사회적 유해성’이나 ‘비효율성’의 이름으로 압박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겉으로는 행정 개혁이나 공공성 강화, 세금 책임성, 사회적 균형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실제 효과는 대학 내부의 결정 권한을 외부로 이동시키는 데 있다.
이런 방식이 더 위험한 이유는 그것이 자주 합법의 외형을 띠기 때문이다. 노골적으로 책을 금서로 지정하거나 교수의 발언을 형사처벌하지 않아도, 예산을 줄이고 평가 기준을 바꾸고 사업선정의 문턱을 조정하는 것만으로 대학은 스스로 위축된다. 어느 학문 분야가 불이익을 받을지 예측하게 되고, 어떤 표현이 조직 전체를 위험하게 만들지 계산하게 되며, 결국 공식 명령이 오기 전에 먼저 자기검열이 시작된다. 이때 학문의 자유는 폭력적으로 파괴되기보다 행정적으로 마모된다. 대학은 여전히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의 선택지는 급속히 줄어든다.
이번 자료가 자율성을 ‘개인적 자유를 보호하는 집단적 방패’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교수 개개인이 아무리 용감해도 대학이라는 조직이 외부 압력에 취약하면 오래 버티기 어렵다. 한 명의 발언을 막지 못해도 연구센터를 폐지할 수 있고, 강의를 금지하지 못해도 채용을 막을 수 있으며, 특정 논문을 검열하지 못해도 연구비를 끊을 수 있다. 대학의 자율성이 무너지는 순간, 학문의 자유는 직접 탄압이 아니라 제도 조정의 형식으로 침식된다.
이번 지표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대학 자율성의 후퇴가 민주주의 국가들에 집중되는 양상이다. 2015년과 2025년을 비교했을 때 자율성이 유의미하게 하락한 43개국 가운데 21개국은 2015년 당시 이미 자율성이 매우 잘 보호된 나라들이었다. 여기에는 오스트리아, 폴란드, 포르투갈, 네덜란드, 슬로바키아, 스위스 같은 유럽 국가들, 캐나다와 미국 같은 북미 국가들, 아르헨티나·볼리비아·엘살바도르·페루 같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포함됐다. 대학 자율성이 애초부터 취약했던 나라만 더 나빠진 것이 아니라, 비교적 안정적인 민주주의 제도 안에 있던 나라들에서도 대학 자율성이 후퇴했다는 뜻이다.
이 흐름은 학문의 자유를 둘러싼 기존의 안일한 가정을 흔든다. 민주주의와 대학 자율성은 자동으로 함께 유지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선거가 있고, 사법제도가 작동하며, 언론이 존재한다고 해서 대학이 안전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는 대학에 대한 개입이 “국민의 뜻”, “세금의 책임”, “이념적 균형 회복”, “편향 시정” 같은 언어로 정당화되기 더 쉽다. 그렇게 되면 대학 자율성의 침해는 반민주적 폭력이 아니라 다수의 요구를 반영한 제도 조정처럼 포장된다.
이 점에서 오늘의 학문의 자유 위기는 단지 표현의 자유 문제만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스스로를 어떻게 대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민주주의가 자신과 다른 지식 생산의 공간을 허용하지 못할 때, 민주주의는 다원성과 숙고를 잃기 시작한다. 대학은 단지 취업 준비기관이나 전문인력 공급기지가 아니라 사회가 자기 자신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공적 공간이다. 이 공간이 정치 권력의 즉각적 요구에 종속될수록, 민주주의는 더 많은 정보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빈약한 판단구조 속으로 들어간다.
미국 사례가 던지는 충격은 속도에 있다
이번 자료가 특별히 미국을 조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은 오랫동안 세계 고등교육의 상징적 중심 중 하나였고, 대학의 제도적 자율성과 연구 역량이 가장 강한 나라로 인식돼 왔다. 그런데 이번 분석에서는 미국의 대학 자율성 하락이 서유럽과 북미의 평균적인 하락보다 훨씬 빠르고, 헝가리·인도·튀르키예처럼 민주주의 후퇴로 자주 언급되는 국가들과 비교해도 짧은 기간에 급격하게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 자율성 하락은 2020년을 전후해 시작됐고, 2025년 들어 더 급격히 심화됐다. 2015년부터 2025년까지 미국의 대학 자율성은 50%나 악화됐으며, 전문가 평가는 이를 ‘상당한 자율성’ 수준에서 ‘보통 수준의 자율성’으로 낮춰 놓고 있다. 2019년 3.3이던 값이 2025년에는 1.7까지 떨어졌다.
이 수치가 의미하는 것은 단지 한 해의 정치 소란이 아니다. 대학 자율성처럼 제도적 관성이 큰 항목이 이 정도 속도로 떨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심각한 경고다. 더욱이 서유럽과 북미의 평균 자율성은 같은 기간 소폭 하락하는 데 그쳤다. 미국만 유독 가파른 내리막을 보였다는 뜻이다. 대학 자율성은 본래 갑자기 반 토막 나는 항목이 아니다. 국가의 고등교육 제도, 사법적 전통, 연구재정 체계, 대학 운영 관행이 오랜 시간 형성한 균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그 균형이 짧은 시간 안에 상당 부분 훼손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더 주목할 점은 하락의 방식이다. 이번 자료는 미국의 후퇴가 주로 주(州) 차원의 조치들에서 시작됐고, 2025년 들어 연방 차원의 강한 집행 조치들이 이를 증폭시켰다고 설명한다. 대학 인증제도의 정치화 시도, 연방 자금 지원을 정부 요구에 대한 순응과 연결하는 조치, 연구 지원을 활용해 입학·채용·거버넌스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 명문 사립대와의 공개적 충돌 등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수천 건의 연방 연구지원이 종료되거나 동결됐고, 다양성·형평성·포용성 관련 지침과 주 단위 입법도 대학의 독립적 판단 영역을 축소하는 압력으로 작용했다. 최대 35%, 약 320억 달러 수준의 예산 감축 제안이 대학들로 하여금 내부 자원을 재배치하고 연구 방향을 바꾸도록 강제하는 효과를 냈다는 분석도 담겼다.
미국의 사례는 왜 ‘표현의 자유 논쟁’만으로 설명되지 않는가
미국의 대학 문제를 둘러싸고 흔히 제기되는 설명 중 하나는 ‘진보적 문화가 대학을 지배하면서 보수적·비주류적 견해를 억압했다’는 주장이다. 이번 자료도 이런 논쟁을 소개한다. 대학이 특정 가치관의 패권적 공간이 되면서 비판적이거나 보수적인 관점을 가진 연구자들이 사회적 제재, 평판 손상, 경력상 불이익을 우려해 침묵하게 된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미국 대학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은 이런 문제의식 위에서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 지표의 결론은 그와는 다른 쪽에 무게를 둔다. 자율성이 높을수록 연구와 교육의 자유도 함께 높다는 실증 결과가 더 강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대학 내부의 이념 편향 논쟁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대학이 어떤 관점을 배제하거나 조롱하는 문화를 갖는다면 그것 역시 학문의 자유를 해칠 수 있다. 그러나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국가 권력의 직접 개입이어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국가가 ‘균형 회복’을 명분으로 대학 운영에 개입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 개입은 매우 쉽게 학문적 자율성 전체를 훼손하는 방향으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특정 강의를 문제 삼는 것에서 시작한 개입이 예산 배분, 인사 구조, 연구 의제, 평가 체계까지 번지면, 대학은 더 다양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두려워하게 된다. 자유의 문제를 통제의 방식으로 풀려는 시도는 결국 자유의 기반 자체를 약화시킨다.
미국 사례는 바로 그 점을 보여준다. 대학 내부의 문화적 편향 문제를 고치겠다는 명분이, 결과적으로는 대학의 자율성을 크게 흔들고 연구·교육 환경을 더 정치화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핵심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대학은 편향됐는가”만이 아니라 “그 편향 문제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다룰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자유를 강화하는 교정인지, 자유를 줄이는 교정인지 구별하지 못하면 대학은 개혁의 이름으로 더 쉽게 종속된다.
하버드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 체계 전체의 문제다
미국 대학을 둘러싼 갈등은 종종 몇몇 초엘리트 대학의 논란으로 소비된다. 그러나 이번 자료가 강조하는 것은 사건의 상징성보다 구조적 파장이다. 연방정부가 연구비와 인증, 행정지침, 예산 압박을 통해 대학을 상대로 공개적 힘겨루기를 시작하면, 표면적으로는 하버드나 아이비리그가 중심에 서더라도 실제 충격은 전체 대학 체계로 확산된다. 자원이 풍부한 대학도 압박을 받는다면, 재정 여력이 적고 정치적 방어력이 약한 대학은 훨씬 더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연구비 동결이나 사업 폐지, 특정 분야에 대한 부정적 낙인, 장기 연구 프로그램 축소는 대학의 시간감각을 바꿔놓는다. 대학의 연구는 선거 주기보다 길고, 행정부 임기보다 길며, 사회적 유행보다 길다. 그러나 정치 권력이 대학을 단기 성과와 순응의 논리로 압박하면 대학도 점점 짧은 시간 안에서 판단하게 된다. 지금 당장 공격받지 않기 위한 선택이 누적되고, 그 결과 대학은 장기적 지식 생산기관이 아니라 현재 권력과 여론의 변동에 민감한 관리 조직으로 변한다. 이런 변화는 단지 미국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 대학들이 미국의 연구생태계와 재정구조, 정책 흐름에 깊이 연결되어 있는 만큼 그 파급력은 국제적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일방적으로 무너지고 있다는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자료는 미국에서 법원과 학술공동체, 시민사회가 일정한 제동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함께 짚는다. 정치적 동기에 기반한 연구지원 제한 조치 가운데 일부는 법원에서 제동이 걸렸고, 승인되지 않았던 많은 연구과제가 다시 복원되는 결과도 나타났다. 이는 대학 자율성이 한번 훼손되면 영원히 회복 불가능하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사법적 견제, 학계의 조직적 대응, 시민사회의 감시가 작동할 경우 후퇴를 늦추거나 되돌릴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점은 중요하다. 학문의 자유는 무력한 가치가 아니다. 그것은 제도 속에 자리를 잡고 있을 때 회복력을 발휘한다. 문제는 그 회복력이 자동적으로 발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학이 스스로를 공공적 가치의 이름으로 설명하고, 시민사회가 왜 대학 자율성이 특정 집단의 특권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장기적 이익인지를 설득하며, 법원이 권력의 과잉 개입을 제한할 수 있어야 한다. 학문의 자유는 좋은 원칙이기 때문에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지킬 제도와 언어와 연대가 있을 때만 살아남는다.
한국 대학사회는 이 흐름을 남의 일로 볼 수 없다
이제 질문은 자연스럽게 한국으로 향한다. 한국은 이번 지표에서 상위 10~20% 구간에 포함돼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에 속한다. 그러나 그것이 안심의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 상위권 국가들 사이에서도 자율성의 하락이 나타났고, 민주주의 국가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의 대학들은 오랫동안 국가의 재정지원 체계, 정원 규제, 평가 제도, 각종 재정사업, 구조개혁 정책과 촘촘히 연결되어 왔다. 형식적으로는 대학 자율성을 인정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정부가 강한 유도력을 행사하는 구조가 누적되어 있다. 그런 환경에서 대학은 종종 스스로 선택하는 기관이라기보다 공모사업과 평가 지표에 반응하는 조직처럼 움직여 왔다.
물론 한국의 상황은 미국과 다르고, 헝가리나 튀르키예와도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자료가 주는 함의는 분명하다. 대학 자율성을 약화시키는 방식은 반드시 노골적 정치 탄압의 형태로만 오지 않는다. 공공성 강화, 재정 효율화, 산업 수요 대응, 지역혁신, 인구감소 대응 같은 명분 속에서도 얼마든지 대학의 독자적 판단 공간은 줄어들 수 있다. 대학 스스로의 문제도 있다. 자율성을 요구하면서도 내부 거버넌스의 민주성과 투명성을 강화하지 못하면 사회적 신뢰를 얻기 어렵다. 자율성은 책임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권고 역시 자율성을 국가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이 아니라 공적 책임과 병행되는 자기통치로 본다.
한국 대학사회가 지금 되물어야 할 것은 “정부는 대학을 얼마나 지원하는가”만이 아니다. “대학은 자기 판단을 얼마나 보존하고 있는가”, “연구와 교육, 인사와 조직 개편의 핵심 결정을 어느 수준까지 스스로 내릴 수 있는가”, “재정지원이 사실상 정책 순응의 조건으로 작동하고 있지는 않은가”, “정치권과 여론이 특정 사안을 이유로 대학의 교육·연구 내용까지 재단하려 할 때 이를 막아낼 언어와 제도가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재정이 부족한 시대일수록 자율성은 사치로 밀려나기 쉽지만, 바로 그럴 때일수록 자율성은 더 중요해진다. 돈이 부족할수록 대학은 더 쉽게 통제되기 때문이다.
학문의 자유를 둘러싼 논의가 때로는 사회적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대학 내부 사람들의 이해관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교수의 특권을 지키려는 주장처럼 들릴 때도 있다. 그러나 대학 자율성은 특정 직업집단의 편의를 위한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즉각적인 권력의 필요와 장기적 진실 탐구를 구분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오늘 쓸모없어 보이는 질문이 10년 뒤 사회를 바꾸는 발견으로 이어질 수 있고, 불편한 연구가 미래의 공공정책을 바로잡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권력에 비판적인 분석이 공동체의 오류를 줄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대학이 그런 일을 하려면 당장의 인기나 권력의 요구보다 더 긴 시간 안에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이 자율성을 잃는 사회는 결국 질문의 범위를 잃는다. 무엇을 연구해도 되는지보다 무엇을 연구하면 곤란한지가 먼저 계산되기 시작하고,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는지보다 어떤 강의가 문제를 일으킬지가 더 중요해진다. 그렇게 되면 대학은 사회가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탐색하는 장소가 아니라 이미 허용된 것만 반복하는 장소가 된다. 이 변화는 서서히 일어나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한 해의 예산 삭감이나 한 번의 인사 개입은 사소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조치가 쌓일수록 대학은 질문의 수준을 낮추고, 연구의 폭을 좁히며, 사회는 결국 덜 자유로운 지식 체계 속에 살게 된다.

학문의 자유를 지키는 일은 결국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다
이번 자료는 여러 나라의 서로 다른 사정을 하나의 공통된 언어로 묶어 보여준다. 학문의 자유는 후퇴하고 있으며, 그 후퇴는 개인의 입을 막는 방식만이 아니라 대학의 자율성을 침식하는 방식으로도 진행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50개국에서 학문의 자유가 나빠졌고, 43개국에서 대학 자율성이 유의미하게 후퇴했다. 자율성과 연구·교육의 자유 사이에는 매우 강한 정적 상관관계가 확인됐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그 후퇴가 유난히 빠르고 가파르게 나타났다. 이 모든 사실은 같은 결론으로 수렴한다. 자유로운 학문은 자유로운 대학 없이는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학의 자율성을 지키는 일은 결국 민주주의의 자기방어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선거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자신을 비판하고 검증할 독립적 지식 공간을 허용할 때 비로소 성숙해진다. 대학이 정치와 사회의 모든 요구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다.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 대학은 공적 책임을 지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적 책임과 정치적 종속은 다른 말이다. 사회에 책임지는 대학과 권력에 순응하는 대학은 전혀 다른 기관이다.
오늘의 질문은 그래서 단순하다. 대학은 누구의 기관인가. 선거에서 이긴 권력의 당면한 요구를 수행하는 기관인가, 아니면 사회 전체를 위해 더 길고 더 깊게 질문하는 기관인가. 이 질문 앞에서 대학 자율성은 더 이상 추상적 원칙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사회를 원하는지에 대한 선택이다. 자유로운 대학을 지키지 못하는 사회는 결국 자유로운 판단의 능력도 잃게 된다. 학문의 자유가 흔들릴 때 무너지는 것은 연구실의 평온만이 아니다. 사회가 스스로를 성찰하는 힘 자체가 함께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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