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연구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 정부 ‘기초연구 생태계 육성 방안’이 그린 청사진

This post is also available in: English (영어)

다시 등장한 ‘기초연구 생태계’라는 정책 언어

정부가 ‘기초연구 생태계’를 다시 전면에 올려놓았다. 2025년 12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된 「기초연구 생태계 육성 방안」은 2030년까지 한국을 ‘세계 5대 기초연구 강국’으로 도약시키겠다는 목표를 제시한다. 발표 주체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교육부를 중심으로 한 관계부처이며, 정책의 대상은 대학과 연구기관, 그리고 그 안에서 기초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들이다. 이번 방안은 단순한 예산 증액 계획이라기보다, 기초연구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가까운 설계도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기초연구 투자가 양적으로 확대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투자 대비 성과는 정체돼 있으며 상위 1% 연구자 수나 세계 최상위 연구기관 수에서 주요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부족하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문제 인식은 최근의 R&D 예산 조정 과정에서 제기된 학문 다양성 저해, 연구 안정성 약화 논란과도 맞물린다. 이번 방안은 이 같은 상황을 ‘생태계’라는 단어로 묶어 설명하며, 투자 시스템·연구자·연구기관·연구 기반이라는 네 개의 축을 통해 구조를 재정비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한다.

수혜율이라는 지표가 중심에 놓인 이유

이번 방안에서 가장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핵심 개념은 ‘수혜율’이다. 정부는 기초연구 사업을 관리하는 기준을 단순한 예산 규모나 과제 수가 아니라, 전체 연구자 중 어느 정도가 기초연구를 수행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수혜율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2030년까지 전체 교원 수혜율 30%, 전임 교원 수혜율 50%, 신진 교원 수혜율 70%를 확보하겠다는 목표가 대표적이다. 수혜율 중심 관리 방식은 기초연구의 저변 확대라는 측면에서 일정한 설득력을 가진다. 특정 소수 연구자에게 자원이 집중되는 구조를 완화하고, 더 많은 연구자가 기본적인 연구 기회를 확보하도록 하겠다는 취지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지표는 기초연구 정책의 관리 단위를 ‘개별 과제’가 아니라 ‘집단 전체의 참여 비율’로 이동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이는 기초연구를 질적 성과 이전에, 일정한 참여 구조를 유지해야 할 정책 영역으로 재정의하는 변화로도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수혜율이 정책의 핵심 성과 지표로 자리 잡을 경우, 대학과 연구기관은 이 목표치를 관리해야 할 행정적 책임을 함께 부담하게 된다. 수혜율 50%라는 수치는 단순한 평균값이 아니라, 각 대학의 인사 구조, 연구 여건, 학문 분야 구성에 따라 달성 가능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수혜율이라는 숫자가 연구 안정성을 의미하는지, 혹은 새로운 형태의 관리 압력으로 작동할지는 정책이 실제로 집행되는 과정에서 드러날 문제다.

연구 기간 연장과 장기 연구의 조건

정부는 개인 연구 과제의 연구 기간을 기존 1~3년에서 3~5년으로 연장하고, 동일 연구 주제에 대해 최대 두 차례의 후속 연구를 연계 지원함으로써 최대 11년까지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우물 파기’식 장기 연구를 제도적으로 가능하게 하겠다는 설명이다. 연구 기간 연장은 연구자들이 반복적인 과제 신청과 평가 부담에서 벗어나 보다 안정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특히 기초연구의 특성상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분야에서는 연구 기간의 예측 가능성이 연구의 질과 직결된다.

광고
대학

그러나 장기 연구가 실제로 장기적 탐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평가 방식과 성과 요구가 어떻게 설정되는지가 중요하다. 연구 기간이 길어지더라도 중간 단계에서의 평가 기준이 단기 성과 중심으로 유지된다면, 장기 연구는 형식적으로만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 정부가 제시한 장기 연구 확대가 연구자의 시간 사용 방식까지 변화시킬 수 있을지는, 평가 구조와 지원 연계 방식의 세부 설계에 달려 있다.

이번 방안은 포닥과 초기 교원 등 청년 연구자 1만 명을 향후 5년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청년 연구자 문제를 기초연구 생태계의 핵심 요소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부는 ‘성장 사다리’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연구자가 경력 단계에 따라 공백 없이 지원받을 수 있는 구조를 구축하겠다고 설명한다. 청년 연구자 지원 확대는 그 자체로 중요한 정책 방향이다. 다만 청년 연구자의 어려움이 단순히 지원 규모의 부족 때문인지, 아니면 대학의 인사 구조와 연구 고용 체계 전반과 연결돼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일정 기간의 연구비 지원이 청년 연구자의 장기적 경력 안정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지원 이후의 경로가 제도적으로 연결돼 있어야 한다. 이번 방안은 이 경로의 구체적인 모습보다는, 지원 규모와 단계적 지원이라는 틀을 먼저 제시하고 있다.

블록펀딩 도입이 의미하는 정책 전환

대학 연구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제시된 ‘성과 기반 블록펀딩’은 이번 방안에서 가장 구조적인 변화로 평가할 수 있는 요소다. 정부는 대학 단위로 일정 규모의 연구비를 일괄 지원하고, 대학이 이를 활용해 전임연구원, 연구지원 인력, 연구 시설과 장비 확충 등 연구 기반에 투자하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블록펀딩은 대학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제도로 설명된다. 개별 과제 중심의 지원 방식에서 벗어나, 대학이 자체 전략에 따라 연구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동시에 이는 연구 성과에 대한 책임 역시 대학 단위로 이전하는 효과를 갖는다. 성과 기반이라는 조건이 붙는 순간, 블록펀딩은 자율성과 함께 관리 책임을 동반하는 제도가 된다.

제미나이 생성이미지

대학 내부에서 블록펀딩이 어떻게 배분되고, 어떤 기준으로 연구 기반 투자가 이뤄질지는 각 대학의 거버넌스 구조와 직결된다. 연구 중심 대학과 교육 중심 대학, 수도권과 지방 대학 간의 격차가 이 제도를 통해 완화될지, 아니면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조화될지는 정책 시행 과정에서 확인해야 할 부분이다.

기초연구와 AI의 결합, 연구 혁신의 조건

정부는 2030년까지 대학별 기초연구 AI 센터 40곳을 구축하고, 기초연구와 AI를 결합한 연구 인력을 2,000명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AI를 활용한 연구 환경 고도화는 과학기술 정책 전반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기초연구에서 AI 활용이 확대될 경우, 연구 방식 자체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은 분명하다. 대규모 데이터 분석이나 시뮬레이션을 활용한 연구는 기존 접근 방식과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동시에 AI 도입은 연구 평가와 행정 효율화 수단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이번 방안은 연구 혁신과 행정 효율화라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담고 있으며, 이 두 목적이 현장에서 어떻게 조율될지는 향후 과제가 된다.

정부는 민·관 매칭펀드 조성, 산·학·연·정 협의체 구성 등을 통해 민간기업의 기초연구 참여를 확대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이는 기초연구를 공공 재정만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 선택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기초연구에 민간 자본이 참여할 경우, 연구 주제와 방향 설정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는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단기적 성과나 산업적 활용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연구 영역이 상대적으로 불리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방안은 민간 참여 확대를 기초연구 생태계 강화의 한 축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공공성과 자율성의 균형 문제는 여전히 정책 설계의 중요한 변수로 남아 있다.

정부의 「기초연구 생태계 육성 방안」은 기초연구를 개별 과제나 연구자 단위가 아니라, 하나의 시스템으로 관리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수혜율, 장기 연구, 블록펀딩, AI 센터 구축 등은 모두 이 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다만 생태계라는 표현이 실제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각 요소가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작동하는지가 명확해야 한다. 연구자가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지, 대학이 자율성과 책임을 균형 있게 감당할 수 있는지, 그리고 정책 목표가 수치 관리에 머무르지 않고 연구 내용의 다양성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는 이 방안의 실질적 성과를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다. 기초연구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이제, 기초연구를 어떤 구조로 관리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동하고 있다.

#기초연구 #연구정책 #대학연구 #블록펀딩 #수혜율 #청년연구자 #과학기술정책 #스포트라이트유

Social Share

More From Author

넷플릭스 「대홍수」(The Great Flood) : 모성을 실험한 영화 – 아이를 만들었으니, 이제 엄마를 만들어야 했다

3조 원 창업지원의 구조 – 정부 ‘2026년 창업지원 통합공고’가 보여준 관리 방식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