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학위 이후의 대학] ③ 대학은 이제 무엇을 보증해야 하나

마이크로 크레덴셜, 현장실습, AI 역량 인증이 던지는 고등교육의 과제

중국의 대졸자 재교육 정책은 하나의 장면을 보여준다.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다시 직업기술교육의 장으로 돌아가고 있다. 1회에서 살펴본 것처럼 중국은 대졸자와 재학생을 대상으로 기술사 클래스, 단기 직무 인증, 마이크로 크레덴셜을 확대하고 있다. 2회에서 본 것처럼 생성형 AI는 대졸 신입이 맡아왔던 기초 사무, 자료 정리, 초안 작성, 단순 분석 업무를 빠르게 바꾸고 있다. 두 흐름이 만나는 지점은 분명하다. 대학 졸업장이 노동시장 진입의 충분한 증거가 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학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학위만으로는 부족하다. 대학은 이제 학생이 무엇을 배웠는지뿐 아니라, 무엇을 해봤는지,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어떤 도구를 활용할 수 있는지를 함께 증명해야 하는 압력을 받고 있다.

학위는 여전히 중요하다. 전공 지식, 사고력, 글쓰기, 탐구 역량, 협업 능력은 고등교육의 핵심 자산이다. 문제는 그 자산이 노동시장에 어떤 신호로 전달되느냐다. 기업은 학생의 성적표만으로 직무 수행 가능성을 판단하기 어렵다. 학생도 자신이 쌓은 수업, 비교과, 프로젝트, 인턴십 경험을 하나의 역량으로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 간극을 줄이는 것이 AI 시대 대학의 새로운 과제다.

학위의 보완 장치로 떠오른 마이크로 크레덴셜

마이크로 크레덴셜은 이 문제에 대한 대표적인 대응으로 주목받고 있다. OECD는 마이크로 크레덴셜을 교육·훈련·노동시장 정책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는 제도로 설명하면서, 기존 학위보다 작고 유연한 단위로 특정 역량을 인증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다만 OECD는 마이크로 크레덴셜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 처방처럼 다뤄지는 흐름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제도의 효과는 품질, 신뢰, 인정 체계, 기존 교육과정과의 연결 방식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유럽연합도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EU 이사회는 2022년 평생학습과 고용가능성을 위한 마이크로 크레덴셜 권고를 채택했다. 핵심은 짧은 교육 이수증을 많이 만들자는 데 있지 않다. 기관, 기업, 산업, 국가 경계를 넘어 인정될 수 있는 공통 접근 방식을 만들자는 것이다. 마이크로 크레덴셜이 노동시장에서 읽히려면, 누가 발급했는지, 무엇을 평가했는지, 어떤 수준의 역량을 증명하는지, 학점이나 자격 체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분명해야 한다.

미국에서도 기술 기반 채용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 대학고용협회 NACE는 2026년 조사에서 고용주의 기술 기반 채용 활용이 늘고 있지만, 정작 대학생들은 이 접근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생들은 여러 활동을 하더라도 그것을 기업이 이해할 수 있는 직무역량의 언어로 번역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문제는 경험의 유무만이 아니라, 경험의 해석 가능성이다.

Coursera가 발표한 2026년 마이크로 크레덴셜 보고서도 이 흐름을 보여준다.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고용주의 다수는 마이크로 크레덴셜을 보유한 졸업생에게 더 높은 초임을 제시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고, 상당수는 마이크로 크레덴셜을 보유한 신입이 입사 첫해 더 나은 성과를 낸다고 평가했다. 물론 이 자료는 플랫폼 기업의 보고서라는 점에서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기업이 학위 외의 검증 가능한 직무역량 신호를 점점 더 중시하고 있다는 흐름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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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한국 대학도 이 변화에 반응하고 있다. 마이크로디그리, 나노디그리, 비교과 인증, 캡스톤디자인, 현장실습, 산학협력 프로젝트, AI 활용 교육은 이미 많은 대학에서 운영되고 있다. 전문대학 영역에서는 AI와 디지털 전환을 중심으로 고등직업교육 혁신 사례도 확산되고 있다.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공개한 사례를 보면, AI 오피스 역량 마이크로디그리, 전교생 대상 AI-X 교과, 스마트팜 기반 AI·빅데이터 실습, 생성형 AI를 활용한 콘텐츠 기획·제작 교육 등이 공유되고 있다.

이 흐름은 의미가 있다. 한국 대학이 전공교육만으로 학생의 취업역량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이미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도가 많아지는 것과 학생의 역량이 선명하게 증명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마이크로디그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서 자동으로 노동시장 신호가 되는 것은 아니다. 비교과 시간이 누적됐다고 해서 기업이 그 경험을 곧바로 직무역량으로 해석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연결이다. 전공 수업, 비교과 프로그램, 현장실습, 산학 프로젝트, AI 활용 교육, 취업지원이 따로 움직이면 학생에게는 활동 목록만 남는다. 반대로 이 경험들이 하나의 성장 경로로 설계되면 학생은 자신이 무엇을 배웠고, 어떤 문제를 해결했고, 어떤 역량을 갖추게 됐는지 설명할 수 있다. 대학이 해야 할 일은 프로그램을 더 많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경험을 읽히는 구조로 묶는 것이다.

AI 시대에 현장실습과 산학협력의 의미도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 현장실습은 졸업 전 취업 준비의 한 과정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신입 일자리의 첫 계단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현장실습이 교육과정의 주변부가 아니라 핵심 인프라가 되어야 한다.

학생은 현장실습을 통해 조직의 언어를 배운다. 보고서가 어떤 방식으로 작성되는지, 회의에서 어떤 정보가 오가는지,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해결하는지, 직무별로 어떤 책임이 나뉘는지를 경험한다. 이것은 강의실에서만 얻기 어렵다. 특히 AI가 단순 업무를 자동화하는 시대에는 현장 경험의 질이 더 중요해진다. 단순히 사무실에 머무른 경험이 아니라, 실제 문제를 다루고 결과물을 만들고 피드백을 받은 경험이 필요하다.

산학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제시한 문제를 학생이 전공 지식과 AI 도구를 활용해 해결해보는 과정은 신입 일자리의 일부 기능을 대학 안으로 가져오는 방식이 될 수 있다. 학생은 문제를 정의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AI를 활용해 초안을 만들고, 결과를 검증하고, 팀원과 협업해 산출물을 완성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수업 과제가 아니라 직무역량의 증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대학의 과제는 현장실습 시간을 늘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어떤 문제를 다루었는지, 학생이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 어떤 결과물이 만들어졌는지, 어떤 피드백을 받았는지, 어떤 역량이 성장했는지를 기록하고 인증해야 한다. 현장실습이 이력서의 한 줄이 아니라 직무역량의 증거가 되도록 설계해야 한다.

AI 역량 인증도 단순한 도구 사용법 교육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생성형 AI를 활용해 문서를 작성하는 법, 이미지를 만드는 법, 코드를 생성하는 법만 가르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기업이 요구하는 것은 AI를 켜는 능력이 아니라, AI와 함께 일할 수 있는 능력이다.

AI와 함께 일한다는 것은 질문을 설계하고, 자료의 신뢰도를 판단하고, 결과물의 오류를 찾아내고, 전공 지식에 비추어 수정하고, 윤리적 문제를 검토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같은 AI 도구를 사용하더라도 전공과 직무에 따라 필요한 역량은 다르다. 인문사회계열 학생에게는 정책자료 분석, 인터뷰 정리, 법령 비교, 콘텐츠 기획 과정에서 AI를 활용하는 경험이 필요할 수 있다. 공학계열 학생에게는 설계, 실험, 데이터 분석, 코드 검토 과정에서 AI를 활용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예체능계열 학생에게는 창작 과정에서 AI를 도구로 활용하되 결과물의 독창성과 저작권, 윤리성을 설명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결국 AI 역량은 별도 비교과 프로그램 하나로 끝낼 수 없다. 전공교육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학생이 전공 과제를 수행하면서 AI를 어떻게 활용하고, 어떤 기준으로 결과물을 검증하며, 인간의 판단이 어디에서 필요한지를 반복적으로 경험해야 한다. 대학은 AI 사용을 금지할 것인지 허용할 것인지의 이분법을 넘어, AI를 활용한 학습과 평가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

대학의 새로운 책무는 학생의 경험을 사회가 읽을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다. 학생은 수업을 듣고, 팀 프로젝트를 하고, 비교과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현장실습을 다녀오고, 공모전에 나간다. 그러나 그 경험이 흩어져 있으면 노동시장은 그것을 하나의 역량으로 읽기 어렵다.

이를 위해 대학은 학생 개인의 역량 포트폴리오를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단순 활동 이력이 아니라 과업, 역할, 산출물, 피드백, 사용한 도구, 성장한 역량이 함께 기록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AI 비교과 15시간 이수”보다 “생성형 AI를 활용해 지역 청년고용 데이터를 분석하고 정책 브리프를 작성했으며, 자료 출처 검증과 오류 수정 과정을 수행했다”는 기록이 더 강한 신호가 된다.

디지털 배지나 마이크로 크레덴셜도 이런 방식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단순히 강의를 들었다는 증명서가 아니라, 어떤 수준의 수행을 했는지 보여주는 인증이어야 한다. 가능하다면 학점, 전공, 비교과, 포트폴리오, 산업계 피드백과 연결되어야 한다. 그래야 대학 내부 인증이 노동시장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이 과정에서 대학의 취업지원 기능도 바뀌어야 한다. 취업지원은 더 이상 4학년 때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돕는 부서의 역할에 머물 수 없다. 1학년부터 학생이 어떤 경험을 쌓아야 하는지, 전공별로 어떤 직무역량을 설계해야 하는지, 현장실습과 산학 프로젝트를 어떻게 연결할지, AI 역량을 어떤 방식으로 평가할지를 함께 설계하는 기능이 되어야 한다. 취업지원은 교육과정의 마지막 단계가 아니라 교육 설계의 출발점에 가까워지고 있다.

물론 마이크로 크레덴셜과 AI 역량 인증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잘못 설계하면 대학 안에 또 다른 스펙 경쟁만 만들 수 있다. 학생은 학위에 더해 수많은 디지털 배지와 인증서를 쌓아야 하고, 대학은 인증 프로그램을 늘리지만 실제 직무역량과 연결되지 않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라 품질이다. 마이크로 크레덴셜이 의미를 가지려면 산업 수요와 연결되어야 하고, 실제 수행평가를 포함해야 하며, 학생의 전공 성장과 이어져야 한다. 기업이 이해할 수 있는 명확한 역량 언어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대학은 학생에게 더 많은 부담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 교육과정을 더 명확하고 유연하게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마이크로 크레덴셜은 학위를 대체하는 장치가 아니라 학위를 보완하는 장치다. 현장실습은 대학 바깥에서 경험을 얻어오는 부가 프로그램이 아니라 대학 교육의 현실성을 높이는 장치다. AI 역량 인증은 기술 유행에 대응하는 단기 프로그램이 아니라 전공교육의 평가 방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AI 시대 대학이 보증해야 할 것은 단순한 졸업장이 아니다. 학생이 어떤 경로를 통해 성장했는지, 어떤 지식과 경험을 결합했는지, 어떤 문제를 해결해봤는지, 어떤 도구를 활용할 수 있는지를 보증해야 한다. 학위는 그 전체 경로를 담는 큰 틀이 되고, 마이크로 크레덴셜과 현장실습, 산학 프로젝트, AI 역량 인증은 그 안에서 학생의 구체적 역량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어야 한다.

중국은 대졸자를 졸업 이후 다시 기술교육으로 보내고 있다. 글로벌 노동시장은 신입에게도 더 많은 경험과 실무역량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 대학도 이미 여러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이제 남은 질문은 제도의 유무가 아니다. 이 제도들이 학생의 성장 경로 안에서 실제로 연결되어 있는가, 그리고 사회가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증명되고 있는가이다.

학위는 여전히 필요하다. 그러나 학위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시대가 오고 있다. 대학의 역할은 학생을 졸업시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학생이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해봤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사회가 읽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학위 이후의 대학이 감당해야 할 새로운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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